오늘은 믿음의 기도가 무엇인가를 설교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두 군데를 읽었는데 야고보서에 오늘 열왕기상 엘리야의 기도를 믿음의 기도라고 이름하였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성경이 말한 바로는 대부분 중보기도입니다. 내 공동체를 살리고 누군가를 회복하고 그 영혼이 일어나기를 간구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의 기도로 온 백성이 하나님 앞에 각성하여 돌아오는 복의 통로로 쓰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최고로 행복한 일입니다. 나로 인하여 공동체가 각성이 이뤄진다, 내 주변이 하나님 앞에 우뚝 서게 된다, 이것처럼 행복한 게 없어요.
우리가 다윗과 여로보암을 성경이 정반대로 비교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 자신이 믿음이 뜨거울 뿐 아니라, 자기 주변을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데 쓰임받습니다. 반면 여로보암은 자기도 하나님 떠나고 자기 주변도 믿음을 저버리고 하나님 떠나게 만든 사람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가장 복되고 성공적인 것이 뭐냐, 나로 인하여 복받은 사람이 많은 거예요. 나로 인하여 복음을 깨닫고 영혼구원된 사람이 많은 거예요.
믿음의 기도를 다른 말로 의인의 간구라고 해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기도할 때 파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41절을 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 왕에게 큰 비가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건 뭐냐? 확신입니다. 무슨 확신인가요? 이제 기근이 끝났다, 이제 하늘이 열렸다, 이제는 비가 내린다! 왜 엘리야는 이 확신을 가질까요? 이스라엘의 농사의 법칙을 여러분이 아시지요? 하늘이 언제 열리고 하늘이 언제 닫히는가? 하늘이 열렸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영적관계가 열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다시 관계가 열려요? 어떻게 백성들의 믿음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아요? 이스라엘이 뭐라고 부르짖었나요? 엘리야의 기도응답으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을 때, 불이 제단을 태워버리는 것을 이스라엘이 보고 뭐라고 말해요? 그가 주 하나님이시다 그가 주 하나님이시다! 이건 이스라엘의 회개예요. 다시 그 입으로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그러면 하늘이 열립니다.
우리의 삶에 언제 하늘이 닫히는가? 언제 열리는가?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늘이 닫힌다는, 나와 하나님과의 개인적 교제가 닫히면 하늘이 닫힙니다. 이사야 58장,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너희 죄악이다. 너희 죄 때문에 주께서 너희에게 얼굴을 돌리신다, 그래서 기도응답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랬어요. 오늘 믿음의 기도를 배워봅시다. 엘리야는 우리와 본성이 똑같은 사람으로 믿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따라서 합시다. 믿음의 기도는 담대함과 간절함으로 드리는 중보기도다. 담대함은 뭐냐? 하나님의 뜻을 알고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간절함은 뭐냐? 하나님의 응답싸인이 있을 때까지 부르짖는 끈기입니다.
첫째,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부르짖는 담대한 기도입니다.
다같이 41절을 읽어봅니다. 보시면 오늘 엘리야는 비가 오는 것에 확신이 있나요? 없나요? 조금 의심했나요? 안 했죠! 빗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랬어요. 개역성경은 큰 비의 소리가 들린다 그래요. 이걸 아합에게 말합니다. 영어성경에는 Heavy rain이라고 해요. 이 빗소리를 엘리야는 어떻게 들었을까요? 어떻게 큰 비가 온다는 확신이 생겨요? 어떻게 이런 담대함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일하심의 원리가 뭔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일하심의 원리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담대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예측가능하십니다. 왜 그래요? 항상 미리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따라 일하십니다.
우선 여러분이 다 알고 있는 사실부터 확인을 해봅니다. 이스라엘이 기근이 왔다, 하늘이 닫혔다, 무엇 때문인가요? 죄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나 사이를 막아버립니다. 죄의 핵심은 탐욕입니다. 이스라엘의 탐욕은 뭔가요? 바알숭배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숭배를 하게 된 것은 탐욕 때문인데, 놀랍게도 바알신앙은 풍요를 약속하는 신입니다. 바알신과 아세라 여신은 하늘의 신 땅의 신이예요. 그래서 이스라엘이 바알신을 따른 것은 그 가나안 땅에서 더 잘살아보려는 탐욕 때문입니다. 바알신이 풍요로운 수확을 줄 것이라고 믿어요. 그런데 더 잘살아보려고 탐욕 때문에 하나님을 버렸는데 이게 죄예요. 그래서 하늘이 닫혀서 기근이 왔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은 내가 누구를 따라야 진정으로 풍요를 누리는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입니다.
자 하나님이 뭐라 말씀하셨나요? 신명기 말씀에,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면 내가 하늘을 열고 하늘에서 가을비 봄비를 내려 수확이 풍성하게 해주겠다, 너희를 나를 떠나 다른 신을 섬기면, 내가 하늘을 닫아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다, 기근이 올 것이다, 이렇게 경고하셨어요. 하나님의 일하심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똑같습니다. 자 이제 3년반 기근이 왔습니다. 왜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으니까! 하나님이 하늘을 닫으신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을 닫으십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180도 달라졌어요. 갈멜산에서 엘리야의 기도로 불이 내려왔지요. 그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다 외치고 뭐했습니까? 회개하고 각성이 된 것입니다. 바알숭배 선지자들을 다 진멸시켰죠. 바알숭배를 때려부쉈죠. 이스라엘이 회개한 것입니다. 자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온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어떻게 됩니까? 열려요? 닫혀요? 열리는 시간이죠. 그래서 엘리야가 그 하나님의 뜻을 알아요. 확신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기도는 담대함을 동반합니다. 비가 올 것이다!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것이 중심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실 일이예요. 하나님이 하겠다고 이미 약속하신 일이예요.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우리가 기도하면 그것이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뜻에 반하는 일을 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뭐냐?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뜻이 이뤄지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3단계로 일하십니다. 첫째, 일하시겠다고 미리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곧바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둘째, 누군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그렇게 일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기도를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이예요.
아니 왜 굳이 기도하면 일하신다고 정해놓으시나요? 기도없이 그냥 하나님 알아서 하시면 안 됩니까? 왜 기도하는 사람이 필요하신 것처럼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그렇게 물으면, 하나님이 하실 대답이 뭘까요? 그래? 내가 너희 기도 없이 나 혼자 다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으냐? 그렇지 않죠. 생각해보세요. 천지창조, 우주만물, 전능하신 하나님이 태초에 세상 만드실 때, 인간없이 다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어떤 도움도 필요하시지 않아요. 그런데 왜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마치 일할 수 없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으면 가만 있다가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제서야 일을 하시는가? 하나님은 가능하면 우리와 함께 당신의 일을 하고 싶어하십니다. 그것 때문입니다.
여러분, 바벨론 포로생활 몇 년입니까? 70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정확히 70년 못 박아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질문! 이스라엘은 몇 년 만에 바벨론에서 돌아옵니까? 70년이죠. 70년 후라면 포로 당시 잡혀가는 사람들의 자녀의 인생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떠나 살면 하나님께서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이 한번 살짝 징계하시면 우리 삶의 지축이 흔들려요. 그런데 70년 후 회복된다 하나님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그 말씀 듣고 세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1번, 70년 후 회복될 것을 믿고 기도한다, 2번, 70년보다 더 빨리 회복되기를 기도한다, 3번, 70년 후에도 회복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세 가지 옵션중에서 믿음의 기도는 몇 번입니까? 1번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고 그 말씀따라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기도한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2번, 3번도 있었습니다. 바벨론포로가 시작되었을 때, 어떤 선지자들은 우린 곧 돌아가게 된다! 70년까지 포로생활 하지 않아도 된다! 뭐죠? 거짓선지자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70년후 돌아갈 것을 믿지 않아요. 기도없습니다. 바벨론 문화에 동화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기도를 하시나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알고 기도하시나요?
엘리야는 이제 큰 비가 내린다 이거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아요. 그리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비가 온다 말하고 확신으로 기도합니다. 뭘 기도합니까? 큰 비를 내려달라는 것입니다. 왜 기도합니까? 하나님은 우리 기도없이는 일을 안하십니다. 남의 기도응답을 본 사람은 대부분 놀라기는 하지만, 아직 믿음의 기도는 못합니다. 엘리야는 이제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다 이것을 강력하게 붙듭니다. 이제 큰 비의 소리가 들린다, 엘리야는 빗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이 온 것을 들어요.
둘째, 믿음의 기도는 이루어질 때까지 드리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42절 다같이 읽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으로 올라갑니다. 갈멜산에 왜 올라가는가?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을 체험한 곳이 갈멜산이고 하늘이 열린 곳이 갈멜산입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을 강력하게 체험한 그곳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야곱에게는 벧엘이었습니다. 그가 가장 위급하고 두려웠던 시간에 야곱이 하나님 만납니다. 하늘에서 사닥다리가 내려오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하나님이 거기서 야곱을 만나주십니다. 내가 네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룰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 야곱이 아침에 일어나 제단을 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집, 나중에 야곱이 늙었을 때 아들들로 인하여 가나안 백성들의 공격을 받을 위기에 처합니다. 다 죽을 것 같은 위기상황, 그때 야곱이 말합니다. 벧엘로 올라가자! 나를 위기에서 건져주신 그 하나님을 만났던 그곳으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자!
엘리야는 갈멜산이 내 기도에 불로 응답하신 체험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간 엘리야가 어떤 자세로 기도를 시작하는지가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왜 이런 기도 자세가 나오는가? 이게 바로 간절함이 표출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산꼭대기로 올라가 몸을 굽히고, 얼굴을 어디 넣어요?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어요. 얼굴이 두 무릎사이로 들어가게 하려면 굉장히 구부려야 합니다. 엘리야는 몸이 마른 사람이었나봐요. 제가 해보려고 하니까 배가 나와서 안되요. 믿음의 기도를 마른 사람이 하는 것일까요? 왜 이런 특이한 자세가 나왔을까요? 반드시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셔야 한다는 간절함 때문입니다. 비를 내리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제 아합왕과 백성들이 엘리야가 선포한 말을 듣고 비를 기다립니다. 3년 반 동안 말라 비틀어진 땅에 비가 온다, 이것을 단비라고 하죠. 비가 내린다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영육이 다 해갈되는 것입니다. 비를 주셔야 갈증이 해소가 됩니다. 물이 바닥이면 사람 살 수가 없어요. 비가 와야 농작물 가축 사람이 생존하는 땅에 3년반 메말라 버렸어요. 목을 축이는 일입니다. 그 다음, 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개와 각성을 받아주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바알숭배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온 이스라엘백성을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심으로 다시 껴안아주시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비가 내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알고있습니다. 더군다나 선지자의 입으로 자신있게 선포를 해버렸어요. 그래서 그만큼 간절했습니다. 야고보서를 보면 엘리야가 기도하는데 간절함으로, Earnestly, 기도를 합니다. 이 간절함은 회당장 야이로의 기도에 나옵니다. 그는 주님 발앞에 엎드리어 많이 간구합니다. 주님 내딸이 죽게 되었나이다. 12살짜리 딸이 죽을 병에 걸려 죽어가는데 아버지가 딸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그때 야이로에게 아 주님께 한번 나가보자, 마음이 뜨겁게 올라와요. 죽어가는 딸을 위한 기도, 이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병에 걸렸을 때, 장로들은 기름을 바르고 간절히 간구하라 그래요.
언제까지 간절함으로 기도하는가? 엘리야는 일곱 번 합니다. 43절, 엘리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이 언제 있는지 확인을 합니다. 시종에게 바다 쪽을 살펴보라고 그래요. 갈멜산이 이스라엘 땅 왼쪽 높은 곳이고, 그 좌편에는 지중해입니다. 산에서 바다가 곧바로 보여요. 시종이 바다끝을 보는데 아직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때 엘리야는 기도하면서 일곱 번 시종을 다녀오라 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기도는 일곱 번을 쌓는 기도입니다. 무슨 뜻인가요? 7일 동안 작정기도를 말하는 건가요?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 숫자입니다. 마침내 일곱 번째 바다 저쪽에서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인다, 시종이 외칩니다. 이것이 응답입니다. 먹구름이 온다는 것입니다. 왜 기도가 일곱 번째 응답이 오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때가 찼음을 말합니다. 아람장군 나아만이 문둥병을 이스라엘 땅에 고치러왔는데 엘리사가 한마디로 답합니다.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라! 여섯 번째까지 문둥병증상이 낫지 않았습니다. 일곱 번째 몸을 담그는데 어린아이 살결같이 깨끗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완전 숫자 일곱입니다. 기도를 할 때 믿음의 기도는 간절함입니다.
그 간절함은 뭐냐? 기도가 쌓이고 하나님의 때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모래시계를 뒤집어놓으면 그 좁은 곳으로 모래가 천천히 내려갑니다. 언제 모래시계를 뒤집는가? 마지막 남은 모래까지 쏵 빠지는 그 시간입니다.
어떤 기도든지, 분량이 있습니다. 한 영혼을 VIP로 삼으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기도분량이 있다고 봅니다. 그 영혼을 위한 기도가 쌓여 일곱번이 되면 그 마음문이 철커덕하고 열립니다. 엘리야가 손바닥만한 구름이 떠올랐다는 말에 얼마나 기뻤을까요? 역시 우리 하나님, 내 기도를 이번에도 응답하시는구나,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일하시는구나! 이 기쁨, 기도응답의 기쁨을 성경은 희락이라고 했어요. 베드로 사도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라고 했어요. Unspekable joy! 이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인다는 보고를 받은 즉시 엘리야가 아합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지금 빨리 병거를 타고 내려가십시오. 큰 비가 몰려옵니다.
기도응답이 될 때는, 기도한 사람의 심령에, 아 이 기도가 응답되는구나 뭔가 뭉클한게 잡힙니다. 그게 싸인입니다. 손바닥만한 구름입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왕이시여 지금 내려가지 않으면 비로 인하여 길이 막히니 빨리 내려가십시오, 얼마나 큰 비죠? 병거가 지나갈 수 없을만큼, 우리로 말하면 큰 비가 와서 차량이 떠내려갈 정도입니다. 45절, 이미 하늘에 짙은 구름이 왔고 바람이 불면서 큰 비가 퍼부었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한번 야고보서 5장에 엘리야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데, 그가 기도했더니 3년반 비가 오지 않았다, 그가 비 오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큰 비를 내리셨다, 이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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