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5:1-11 어디로 갈 것인가? /강동수

미워도 고와도 2001년도와는 헤어져야 할 시점에 왔습니다. 2001년도는 참으로 많은 아픔과 아쉬움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자기 무게를 따라 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2002년도"라는 배를 타고 어디로 가야 합니까?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분명한 목표를 향하여 정해진 뱃길을 따라 전진할 것인가? 오늘 우리가 분명히 결정해야 할 시점 앞에 서 있습니다.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옛날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으로 갈 때 빈손으로 갔으나 돌아올 때는 큰 부자가 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형 에서도 무사히 만났습니다. 형 에서는 야곱에게 세일로 가자고 했으나 뒤따라갈 것이니 형이 먼저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세겜에 자리를 잡아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리를 만들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따라 벧엘로 가야 할 터이나 자신의 위기를 넘긴 후에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성경은 아담 때부터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는 것을 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죄로 인하여 야곱은 세겜에서 이방인과 더불어 디나의 사건으로 큰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이제 세겜을 떠나지 아니하면 안 되었습니다. 야곱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것은 마치 오늘 우리들이, 그리고 우리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가? 라고 하는 질문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야곱은 이러한 시점에서 그 옛날 하나님과의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잘못을 반성하고 하나님의 집 벧엘로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벧엘로 가자고 야곱은 일행을 독려했습니다. 벧엘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일로 가겠다는 에서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인가? 벧엘로 돌아가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세겜에서 안주했기 때문인가?)

1. 벧엘로 가는데 불필요한 것은 바꾸고, 버리고, 묻어 버려야 합니다.
야곱은 백성들에게 "자신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의복을 바꾸고(3절), 우상의 신상과 귀고리를 버리라(4절)"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것들은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었습니다(5절). 과거의 잘못과 세속적인 죄악된 것은 모두 버리고 역사 속에 묻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는 모르게 만드셨으나, 과거는 알고 생각나게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잘못과 허물진 것을 회개하고 좋았던 것에 대하여 감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과거를 기억나게 하심은 한편으로 잊어버리게 하심입니다. (???) 여러분! 2001년도 한 해 동안의 쓰린 가슴, 애통하는 마음, 상처 입은 인생의 고통과 원망과 질투와 전쟁과 죽음을 버리십시오. 그것들을 역사의 상수리나무 아래 묻어 버립시다.

불란서의 문호 "앙드레 지드"는 우리 기독교가 자기의 책임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버릴 것은 버렸더라면 세계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민주주의 미명 아래 행해져 온 독버섯과 같은 개인주의, 물질주의, 독선과 절대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인류의 생명을 좀먹는 질병인 부정과 부패, 욕심과 악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 평화를 해치는 민족우월주의, 국가우월주의, 교만과 절대주의 귀신을 모두 지구 밖으로 몰아내야 합니다. 2001년도는 우울한 한 해였습니다. 기대와 흥분 속에서 시작되었던 2001년도는 테러와 전쟁으로 수천 수만 명의 인명 피해를 냈습니다. 평화를 위한 전쟁, 이웃나라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입으로는 공의와 정의를 부르짖으나 실상은 부패와 뇌물공화국이란 오명을 남겼습니다.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옷으로 바꾸어 입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집, 벧엘로 가야 합니다.
벧엘로 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여러 기능적인 구조가 있습니다. 모든 지각활동의 기능을 가진 머리 부분이 있고, 느끼는 감정의 자리인 가슴 부분이 있으며, 행동을 결심하는 마음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르고 정상적인 기능을 할 때 온전한 인격자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온전한 인격자는 지, 정, 의가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 스스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며, 성령의 도움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필자가 샌안토니오 동굴 속에서 경험한 사실이 있습니다. 땅속 깊은 곳, 빛이 없는 곳에서는 희귀한 물체와 세계 각국의 의상들과 장식이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했습니다. 그것은 빛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결국 인생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이란 미래를 알 수 없게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은 미래를 알지 못하기에 마치 장님이 지팡이를 의지하듯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심입니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3. 벧엘로 가는 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돌아오매 복 주시고, 그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그들을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35:9-11)"고 하셨습니다. 인생을 산다는 것이 복입니다. 그리고 바르게 산다는 것은 더욱 고귀한 복입니다. 인간이 바르게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라는 작품에서 인간이 바르게 산다는 것은 자기 욕심과 개인주의가 아니라 서로가 이해와 용서와 평화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임을 교훈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 벧엘로 돌아왔을 때 복을 주셨습니다. 얍복강가에서 야곱이라는 전투와 경쟁의 인간적인 이름을 버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벧엘로 오기까지는 결코 "이스라엘"이라는 복된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을 번성케 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는 것은 단죄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미움도 슬픔도 괴로움도 그리고 갈등과 오해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수리나무 아래 묻어 버리고 벧엘로 갑시다. 우리가 2002년도에 힘차게 달려갈 길은 벧엘로 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번영과 기쁨과 하나님이 베푸시는 영원한 복이 있습니다.
창35:1-11 어디로 갈 것인가? /강동수 창35:1-11 어디로 갈 것인가? /강동수 Reviewed by □□□ on January 11, 2024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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