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는 나무를 베었을 때에 남은 밑동을 말합니다. 겨울에 다 죽은 나무 같아도 그루터기만 남아 있으면 봄에 다시 싹이 나서 여름에 무성해집니다. 삼림에서 병든 나무는 베어내게 되는데 그루터기만 남아 있어도 자생력 있는 나무는 다시 자라나 무성하게 됩니다. 그처럼 사람도 완전히 실패한 것 같아도 기초만 남아 있으면 다시 일어나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환난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 삶의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우릴 그런 환경에 두시는 것은 우리를 낮추고 연단시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환경을 허락하신 것은 우리를 아주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온전케 하려는 것입니다. 고난이 아니면 결코 끊어지지 않는 죄를 끊게 하고 고난이 아니면 결코 꺾어지지 않을 교만을 꺾고 고난이 아니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목적과 섭리와 역사를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목적 때문에 우리를 고난 가운데 두실 때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근거를 남겨 놓습니다. 하나님께서 힘 주시면 반드시 일어날 수 있는 근거를 남겨 놓습니다. 그것이 그루터기입니다.
1. 물질적인 그루터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경제적으로 심한 궁핍을 당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루터기는 남겨 놓습니다. 때를 기다리다가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에 남은 바 된 그것을 붙잡고 일어나면 회복됩니다.
창세기 25장부터 보면 이삭에게 에서와 야곱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삭이 나이 많아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안 야곱이 아버지에게 첫째 아들인 에서라고 속이고 형 에서가 받을 유산까지 다 받았습니다. 뒤에 형 에서가 그것을 알고 야곱을 죽이려 했습니다.
야곱은 그의 낯을 피해 외삼촌 댁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도망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유산은커녕 자기 집에서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고 알거지가 되어 도망한 것입니다. 홀로 도망하면서 외삼촌이 반갑게 맞아 줄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몰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밧단아람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외삼촌 라반의 양치는 일을 도우면서 살았습니다. 20년 후에 하나님의 도움으로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2. 정신적인 그루터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근심, 걱정, 우울, 분노로 살아가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그루터기는 남겨 놓습니다. 연단의 기간을 거쳐 하나님을 바라볼 때 총명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다니엘 4장에 보면 느부갓네살이 나옵니다. 그는 당시 세계 패권 제국이었던 바벨론 제국을 건설한 자로서 모든 것을 소유한 자였습니다. 바벨론 제국을 자신이 건설하고 자기 것이고 자기 영광을 나타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알게 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정하게 하려고 그를 쳤습니다.
그는 인간의 이성을 잃고 짐승 마음처럼 되었습니다. '리간드로피아'(lycanthropia)라는 정신병에 걸린 것입니다. 자신이 짐승인 줄 알고 야산으로 들어가 짐승처럼 사는 것입니다. 소처럼 풀을 먹고 머리털은 독수리털 같이 되고 발톱은 새 발톱처럼 되었습니다. 왕위에서 쫓겨나 모든 권세와 명예와 풍요를 잃었습니다.
그렇게 짐승처럼 지내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랄 때에 총명이 돌아와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전처럼 다시 왕위에 복귀되었습니다.
3. 영적인 그루터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침체되어 흑암을 만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더욱 연단시켜 하나님의 비밀한 섭리를 깨달아 선지장적, 제사장적 사명을 감당하게 하려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못 느끼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욥기 1장부터 보면 족장시대 이전에 욥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의로운 사람으로서 부족함이 없이 행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모든 소유를 잃었고 모든 자녀를 잃었습니다. 몸은 병들어 재 가운데서 헌데를 앓았습니다. 눈은 어두워지고 피부는 딱딱한 갑옷처럼 되었고 갈라진 틈에서 고름이 나왔고 구더기가 생겼고 개들이 핥았습니다.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버리라고 했습니다.
친구들은 위문 와서 위로해 주기는 커녕 인과응보의 논리를 내세우며 욥이 하나님 앞에 심각한 범죄를 해서 징계받은 것이라고 정죄했습니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탄식을 하면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그런 상황을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느낀다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자신에게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연단시키면서도 섭리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하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디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가도 없었고 뒤로 돌이켜도 없었고 좌로 가도 없었고 우로 돌이켜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도 하나님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것입니다. 마지막 붙잡을 수 있는 끄나풀도 잡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본래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정금같이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려고 연단시키고 계시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섭리하고 계시다는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고백하며 주장하며 선포하며 견뎌 냈습니다 (욥 23:10). 그 결과 마침내는 하나님이 영혼을 회복시켰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했고 병이 낫게 했고 자녀를 배로 낫게 했고 소유를 갑절로 많아지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환난과 고난과 고통 가운데 두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교만을 꺾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죄가 그쳐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연단시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영광과 칭찬과 상급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런 목적들 때문에 허락한 고난이기 때문에 감당할 시험만 주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6장 13절에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2절부터 13절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절에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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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환난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 삶의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우릴 그런 환경에 두시는 것은 우리를 낮추고 연단시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환경을 허락하신 것은 우리를 아주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온전케 하려는 것입니다. 고난이 아니면 결코 끊어지지 않는 죄를 끊게 하고 고난이 아니면 결코 꺾어지지 않을 교만을 꺾고 고난이 아니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목적과 섭리와 역사를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목적 때문에 우리를 고난 가운데 두실 때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근거를 남겨 놓습니다. 하나님께서 힘 주시면 반드시 일어날 수 있는 근거를 남겨 놓습니다. 그것이 그루터기입니다.
1. 물질적인 그루터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경제적으로 심한 궁핍을 당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루터기는 남겨 놓습니다. 때를 기다리다가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에 남은 바 된 그것을 붙잡고 일어나면 회복됩니다.
창세기 25장부터 보면 이삭에게 에서와 야곱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삭이 나이 많아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안 야곱이 아버지에게 첫째 아들인 에서라고 속이고 형 에서가 받을 유산까지 다 받았습니다. 뒤에 형 에서가 그것을 알고 야곱을 죽이려 했습니다.
야곱은 그의 낯을 피해 외삼촌 댁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도망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유산은커녕 자기 집에서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고 알거지가 되어 도망한 것입니다. 홀로 도망하면서 외삼촌이 반갑게 맞아 줄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몰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밧단아람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외삼촌 라반의 양치는 일을 도우면서 살았습니다. 20년 후에 하나님의 도움으로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2. 정신적인 그루터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근심, 걱정, 우울, 분노로 살아가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그루터기는 남겨 놓습니다. 연단의 기간을 거쳐 하나님을 바라볼 때 총명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다니엘 4장에 보면 느부갓네살이 나옵니다. 그는 당시 세계 패권 제국이었던 바벨론 제국을 건설한 자로서 모든 것을 소유한 자였습니다. 바벨론 제국을 자신이 건설하고 자기 것이고 자기 영광을 나타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알게 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정하게 하려고 그를 쳤습니다.
그는 인간의 이성을 잃고 짐승 마음처럼 되었습니다. '리간드로피아'(lycanthropia)라는 정신병에 걸린 것입니다. 자신이 짐승인 줄 알고 야산으로 들어가 짐승처럼 사는 것입니다. 소처럼 풀을 먹고 머리털은 독수리털 같이 되고 발톱은 새 발톱처럼 되었습니다. 왕위에서 쫓겨나 모든 권세와 명예와 풍요를 잃었습니다.
그렇게 짐승처럼 지내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랄 때에 총명이 돌아와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전처럼 다시 왕위에 복귀되었습니다.
3. 영적인 그루터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침체되어 흑암을 만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더욱 연단시켜 하나님의 비밀한 섭리를 깨달아 선지장적, 제사장적 사명을 감당하게 하려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못 느끼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욥기 1장부터 보면 족장시대 이전에 욥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의로운 사람으로서 부족함이 없이 행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모든 소유를 잃었고 모든 자녀를 잃었습니다. 몸은 병들어 재 가운데서 헌데를 앓았습니다. 눈은 어두워지고 피부는 딱딱한 갑옷처럼 되었고 갈라진 틈에서 고름이 나왔고 구더기가 생겼고 개들이 핥았습니다.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버리라고 했습니다.
친구들은 위문 와서 위로해 주기는 커녕 인과응보의 논리를 내세우며 욥이 하나님 앞에 심각한 범죄를 해서 징계받은 것이라고 정죄했습니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탄식을 하면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그런 상황을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느낀다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자신에게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연단시키면서도 섭리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하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디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가도 없었고 뒤로 돌이켜도 없었고 좌로 가도 없었고 우로 돌이켜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도 하나님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것입니다. 마지막 붙잡을 수 있는 끄나풀도 잡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본래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정금같이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려고 연단시키고 계시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섭리하고 계시다는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고백하며 주장하며 선포하며 견뎌 냈습니다 (욥 23:10). 그 결과 마침내는 하나님이 영혼을 회복시켰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했고 병이 낫게 했고 자녀를 배로 낫게 했고 소유를 갑절로 많아지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환난과 고난과 고통 가운데 두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교만을 꺾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죄가 그쳐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연단시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영광과 칭찬과 상급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런 목적들 때문에 허락한 고난이기 때문에 감당할 시험만 주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6장 13절에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2절부터 13절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절에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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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4:15 그루터기를 붙잡고 /차용철
Reviewed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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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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