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에스겔 42:1-20
찬송가 433장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성전-제사장의 방(1-14절)
에스겔의 마지막 부분인 40-48장은 새 성전과 새 제사(예배), 새 땅을 보여주심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40-43장은 새 성전에 관한 말씀입니다. 40장은 성전 외부에 있는 문들의 양식에 대해서 증거하고, 41장은 지성소를 비롯한 성전의 본 건물의 양식에 대해서 증거하며, 오늘 본문 42장은 성전의 부속 건물인, 제사장들의 방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14절은 새 성전 본체 건물의 남쪽과 북쪽에 있는 제사장들의 방의 양식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이 말씀을 받은 때가 40:1에 보면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라고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비롯하여 사람들이 바빌론으로 끌려온 것이 25년 전이고, 성전이 무너지고, 예루살렘이 함락된 것도 14년 전의 일입니다.
25년 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저는 25년 전에는 신학대학원 3학년이었습니다. 그 25년이 빨리 지나가기는 했지만, 그때와 지금은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또 14년 전이면 우리 교회가 시작된 때입니다. 14년 그 이전에는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때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와 함께 바빌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처음에는 혹 빨리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1년이 지났을 때 바빌로니아의 군대를 통해서 성전이 무너지고, 예루살렘이 완전히 초토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의 마음도 함께 무너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고 나서도 14년이 지난 때입니다. 사람들은 희망도 없이, 오늘은 어제와 같고, 내일은 오늘과 같을 것이라는 체념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새 성전의 모습을 보여주심으로, 그들에게 소망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1-2) 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쪽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 그 두 방의 하나는 골방 앞 뜰을 향하였고 다른 하나는 북쪽 건물을 향하였는데 그 방들의 자리의 길이는 백 척이요 너비는 쉰 척이며 그 문은 북쪽을 향하였고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 선지자를 성전 밖, 북쪽 뜰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성전 북쪽에 있는 제사장들의 방은 2개로 되어있었는데, 길이가 100척(52m)이고, 너비가 50척(26m)입니다. 그 크기는 지성소와 성소가 있는 성전의 크기에 맞먹습니다. 이런 거대한 방이 북쪽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남쪽에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사(예배)를 제대로 수행하는 데에는 성전(예배당) 안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밖도 함께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배당에서 예배가 제대로 드려지려면, 음향을 담당하는 공간도 있어야 하고, 냉난방을 공급하는 기계실이 있어야 하며, 여러 물품을 보관하는 공간, 봉사자를 위한 공간, 설교자를 위한 공간 등이 다 필요합니다. 그런 공간이 함께 어우러져서 예배실에서 예배다운 예배가 드려지게 됩니다. 만약 냉난방을 공급하는 공간이 없다면, 무더운 여름이나 혹한의 겨울에 예배드리기가 정말 어려울 것입니다. 또 음향을 공급하는 공간이 없다면, 설교자가 소리를 아무리 힘껏 질러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고, 또 이내 설교자의 목이 쉬어서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어려울 것입니다.
이 제사장들의 방은 3층 구조로 되어있다고 하는데, 1층과 2층은 같은 크기의 높이이고, 3층은 크기가 작아서, 전체 외형은 계단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2층 옥상은 3층의 베란다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10-12) 남쪽 골방 뜰 맞은쪽과 남쪽 건물 맞은쪽에도 방 둘이 있는데 그 두 방 사이에 길이 있고 그 방들의 모양은 북쪽 방 같고 그 길이와 너비도 같으며 그 출입구와 문도 그와 같으며 이 남쪽 방에 출입하는 문이 있는데 담 동쪽 길 어귀에 있더라
북쪽에 있는 제사장들의 방이 남쪽에도 똑같이 있습니다. 성전을 중앙에 두고, 제사장들의 방이 날개처럼 북쪽과 남쪽에 펼쳐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양쪽에 있는 건물이 성전 본체와 맞먹는 규모로 펼쳐져 있습니다.
전체 구조를 다시 정리하면 이러합니다. 동쪽 문을 통해서 뜰로 들어가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제단이 있습니다. 그 제단 뒤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 성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양 옆으로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의 방이 있습니다. 이 구조는 성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제사를 강조합니다. 제단을 중앙에 두고, 그 제단의 주변을 디귿 자 형태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제사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하나님과 제사를 드리는 백성들 사이에 중보자의 역할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성전만큼이나 큰 공간이 제사장들을 위해서 제공되고 있습니다.
(13)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쪽과 남쪽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에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니 이는 거룩한 곳이라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성전 북쪽과 남쪽에 있는 방들을 보여주시고서, 그 방에 관해서 설명하셨습니다. 그 방들의 특징은 ‘거룩한 방_구별된 방’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이 머무는 장소는 크기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그것을 무엇으로 지었는지 재질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구별되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또 그래서 거기에서 제사장들이 ‘지성물_가장 거룩한 제물, 가장 구별된 제물’을 먹습니다. 그 제사장들은 ‘여호와를 가까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구별된 장소, 구별된 음식, 구별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만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있는 곳도 구별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당에서 구별되어야 함은 물론, 가정에서, 일터에서 등 우리가 있는 모든 곳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14.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
제사장들의 방의 중요한 두 가지 역할을 말하는데 13절에서는 구별된 음식을 먹는 곳이고, 14절에서는 구별된 옷을 보관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즉 제사장이 제사(예배)를 집전하고서, 그 옷을 그대로 입은 채로 바깥뜰로 나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나가려면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배의 옷과 일상의 옷이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에 예배를 드릴 때는 구별된 옷을 입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비싼 옷을 입는다든지, 새 옷을 입어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입을 옷을 고르면서 마음이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장례식장에 조문하러 가거나, 취업을 위해 면접하러 갈 때, 또 존경하는 분을 만나러 갈 때에 아무 옷이나 입고 가지 않습니다. 그 상황에 맞는 옷을 입고 갑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입는 옷을 따로 구별하는 것입니다.
제가 주일예배 설교를 할 때는 그때에만 입는 양복이 있습니다. 그 옷을 입고는 다른 곳을 다니지 않습니다. 그 양복과 주중에 입는 양복이 동일한 제품이지만, 그 양복은 주일 설교할 때만 입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날을 구별하고, 제 마음을 구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구별된 옷을 입으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배할 때 입는 옷과 일상의 옷이 구별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제사장들이고, 우리의 삶은 예배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늘 세상의 옷과 구별된 제사장의 의복을 입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성전-사면 담(15-20절)
15-20절은 성전의 사면 담의 규모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5) 그가 안에 있는 성전 측량하기를 마친 후에 나를 데리고 동쪽을 향한 문의 길로 나가서 사방 담을 측량하는데
(20) 그가 이같이 그 사방을 측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길이가 오백 척이며 너비가 오백 척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 선지자를 데리고 동쪽문으로 나가서 동서남북 사방 담 길이를 재었더니 각각, 500척(260m)이었습니다. 이 성전의 크기는 솔로몬이 세운 성전보다 50배보다도 더 큽니다. 그런데 이 담의 중요성은 그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20절 마지막 부분이 아주 또렷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이 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구별됨’입니다. 만약 구별됨이 없다면 거기는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건물에 학생과 교사가 있으면 학교가 되고, 의사와 간호사, 환자가 있으면 병원이 되고, 죄수와 교도관이 있으면 교도소가 됩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구별된 곳입니다. 우리의 삶을 성전으로 가꾸어 간다는 것과 구별된 삶을 산다는 것은 동의어입니다.
물론 구별된다는 것이 담 안에서만 살아야 하고, 밖에서는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또한 담 안에 있는 것은 가치가 있고, 밖에 있는 것은 무가치하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담 안에서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을 통해서 담 밖에서도 올바름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담 안에서의 새로워짐을 통해서 담 밖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40장부터 이어져 오는 성전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이미 14년 전에 무너진 상태입니다. 또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다고 해도 유다 백성들은 포로의 신분으로 바빌론에 있기 때문에 갈 수도 없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성전의 모습을 상세하게 보여주셨지만, 이런 성전이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지어진 일이 없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지어질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전은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장소로서의 성전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에는 붙박이 성전이 아니라 이동 성전인 ‘성막’을 짓고서, 움직일 때마다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어디든지 성막이 있으면, 거기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습니다.
에스겔의 마지막 부분은 새 성전과 새 제사, 새 땅(성읍)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인 48:35이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입니다. ‘여호와삼마’의 뜻이 ‘여호와(하나님)께서 거기 계시다.’ 또는 ‘거기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비록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어 고달플지라도 소망을 잃지 마라. 용기를 가져라. 내가 거기에 함께 하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우리 삶에 비록 고달픔이 있고, 힘듦이 있고, 외로움이 있을지라도 우리가 언제나 소망 가운데 거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삼마’,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자리에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새 성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40장부터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40:1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또 41:1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에 이르러”, 그리고 오늘 본문 42:1도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43장도, 44장도 동일하게 시작되고, 그 이후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 선지자를 데리고 다녔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았고, 자신이 본래 신분인 제사장의 길을 신실하게 걸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바빌론에서 호의호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동일하게 다른 사람들처럼 그발강 가에서 다른 포로들처럼 강제노역하며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제사장인 것을 잊지 않았고, 제사장으로서 걸어야 할 길을 걸었습니다. 그가 본 환상을 기록한 것이 성경이 되어 3500년이 지나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더 깊고, 더 넓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 가정이든 일터이든 어디이든지 간에 그곳에서 우리가 구별된 삶을 살면, 또 그곳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걷게 되면 그곳이 성전이 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여호와삼마’,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거기에 계시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구별된 삶을 살아, 우리의 삶이 주님 안에서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는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성전이 중요함은 크고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구별됨임을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우리의 삶이 구별되어 성전으로 가꾸어지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구별됨이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세속적인 가치관을 본받으려고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에스겔 선지자가 다른 유다 백성들과 동일하게 포로생활을 했을지라도, 언제나 하나님을 목적 삼고 살았던 것처럼, 우리 삶의 자리가 어떠하든지 간에, 비록 거기에 고난과 고통, 고달픔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초점 맞추고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매일매일의 삶의 자리가 ‘여호와삼마’,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고, 거기에 계시는 하나님을 목도하는 현장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오늘 하루도 우리가 가야 할 믿음의 길을 신실하게 걸어가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성전 중, 제사장들의 방은 ‘거룩한 방’이며,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지성물’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삶 가운데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있습니까?
2. 제사장들은 제사(예배)를 집례할 때에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서 바깥뜰로 나가지 않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서 나갔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구별되게 지키는 것 중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만약 없다면 구별되게 하기 위해서 앞으로 어떻게 행하시겠습니까?
3.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준 성전 담의 길이는 사방으로 500척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중요성은 길거나 큼에 있지 않고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데 있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세속적인 가치관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담의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4. 자신의 삶을 구별되게 하고, 가야 할 길을 걸으며,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