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42장 1~6절 (구 1120)
“이에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나아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야웨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당신의 하나님 야웨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야웨께 기도하고 무릇 야웨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말하리라.”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야웨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되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야웨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야웨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야웨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그럼 오늘 이 시간, 함께 봉독했던 말씀을 가지고서, ‘행할 길을 보이소서’라는 제목으로 성도님들과 귀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스 아테네 한 극장에서는 국경일을 기념하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좀 늦게 극장 안으로 들어섰는데, 그곳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때 두리번거리고 서 있는 노인을 본 아테네인들은 ‘저 노인 분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여기저기서 수군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누구 한 사람도 자기 자리를 양보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노인이 외국인 석으로 다가가자, 그곳에 있던 스파르타인들이 벌떡 일어나 서로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 노인이 말을 합니다.
“아테네인도 선이 무엇인지, 착한 일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파르타인은 그 선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네요.”
어린아이들도 그 아이의 행동을 보면, 그 아이의 성품과 성격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도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수요 저녁 시간에, 우리가 함께 봉독했던 말씀을 가지고서, “행할 길을 보이소서”라는 제목으로 성도님들과 함께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뜻과 지시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곤충 세계에는 개미귀신이라는 곤충이 있습니다. 이놈은 모래에 조그만 구멍을 파고 그곳에 몸을 완전히 감추고는 녹슨 바늘 모양의 촉수만을 모래에 남겨둡니다. 조그만 개미 한 마리가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먹이를 찾다가, 컵 모양의 모래가 움푹 패인 곳을 발견하고서 그 가장자리에 올라서서 주위를 살필 때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때 개미는 위험을 알아차리고서 도망가려 하지만, 개미가 서 있는 모래는 아래 부분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 바람에 결국 개미는 구멍 맨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이때, 개미귀신 곤충은 몸을 감춘 채로, 개미 다리를 하나, 둘씩 잘라서 올라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개미가 모든 것을 다 포기할 때 그때 비로소 몸을 드러내 놓고 잡아먹는데, 이것은 곧,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다리가 하나, 둘씩 잘리는 것과 같아서 결국 영적으로 어두운 구덩이 속에 완전히 빠져 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이라는 큰 나라의 보복이 두려워서, 그래서 어떤 누명이나 쓰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그들 자신들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 중에서 다 같이 2절 말씀을 함께 큰 목소리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야웨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그런데요, 이 말씀 구절 가운데 무엇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나요? 그것이 무엇인지를 한번 자세히 살펴보시겠어요?
그것은 바로, 그 백성들도 야웨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들 자신들의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당신의 하나님께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했던 그들의 삶을 스스로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그들의 인간적인 결심에만 함께 동의를 얻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 3절에서 백성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하나님 야웨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자신들의 하나님 되심을 온전히 믿거나 의지하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지시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 스스로가 기도하고 순종함으로써 온전히 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 모두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나아와 행할 길을 하나님께 대신 여쭙도록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먼저, 그리고 직접적으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후,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반드시 주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지시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 모두는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결단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 4절의 말씀인데요, 다 함께 큰 목소리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야웨께 기도하고 무릇 야웨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말하리라.”
유다 백성들이 외형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했다 할지라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중보 기도를 요구하였던 것은, 순전히 그들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아주 조심스럽게 유다 모든 백성들이 이미 자신들의 뜻을 결정하고서, 하나님의 동의만을, 즉, 하나님의 허락만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 모두가 이집트로 가겠다고 결정을 내린 이상, 하나님의 말씀도 사실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쉽사리 거부해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에 익숙해져 있었으며, 또한 이번에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혼자서 짐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이 모든 유다 백성들에게 순수히 받아들여지기만을 바라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들 자신들이 원하고 뜻하는 대로 기도하는 유다 백성들, 그리고 그들 자신들이 간절히 원하고 갈망하는 유다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유익이 된다면 무엇이든 숨기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그분의 말씀을 들려주겠다고 대답을 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유다 백성들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자신들의 안전 문제였습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려는 동기를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데 동의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하난 일행을 유다 땅에 머무르라고 하신 것은 그나마 이들을 보전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스스로가 모든 뜻을 다 정하고 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형식적으로만 물어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생각이 그들의 생각과는 분명 다르며, 또한, 그들의 생각이 감히 미치지 못하는 차원임을 온전히 믿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것을 알고 있었던 예레미야 선지자는 함께 기도해 보자는 덕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들 스스로의 한계성을 절실히 깨달아,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그 뜻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으로 바뀌는 역사가 나타나게 됨을 보여 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모두는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야웨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여서, 반드시 이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행하면서 나아가야만 하는 그 길, 바로, 주님께서 친히 보여주시는 그 길에 순종하며 나아가도록 간절히 기도하기를 결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는 나아가야 하는 길이 말씀을 통해 보일 때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따를 것을 약속해야만 합니다.”
오늘의 본문 5절과 6절인데요 함께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야웨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되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야웨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야웨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야웨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이 말씀은 곧 요하난과 백성들이 이미 이집트로 도망갈 것을 미리 다 정해놓은 상태에서,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따르겠다고 거짓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난 뒤, 유다에 남은 자들은 마땅히 그들의 이전 잘못들을 고백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둔감해져 버린 그들은 하나님 심판의 영적인 의도는 간파하지 못한 채, 하나님이 아닌 애굽인들, 즉 이집트인들에게만 의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는 선지자를 통해서 그들에게 하시는 모든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그대로 따르겠다고, 이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들의 참되고 진실하신 증인이 되신다고 거짓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 말씀이 좋든지 싫든지 순종하겠다고 거짓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들의 이러한 고백이 참되고 정직하여 그들의 진심 가운데 나왔다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행할 길로 온전히 순종하는 마음과 결단을 통해 나아갈 때마다 그들에게 참된 복을 안겨 주셨을 것입니다. 이 참된 복이 바로 “무슨 일에든지 형통하고 무슨 일이 있든지 참으로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이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리고서 자기들의 원래의 뜻대로 행하며 나아가려고만 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수요 저녁에 우리는 이렇게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바로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 하는 길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보일 때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따를 것을 약속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순종이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리는 참된 예배자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는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빈곤이 있을 뿐이다. 바로 기도의 빈곤이다.” 조지 뮬러 목사님께서는 가난함에도 처해보았고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과정 가운데도 있으셨지만, 그분이 끝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세상 유혹에도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기도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서 빈곤, 즉 가난이 된다고 이야기를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 세상에서 기도하지 않는 것만이 우리에게 빈곤, 우리에게 가난이 되지, 이 세상의 것은 어떠한 것도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기에 우리는 반드시 행할 길로 나아갈 수 있고, 순종할 수 있고, 그 끝에 서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수요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성도님들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르짖어 반드시 주님이 보여주시고 행할 그 길을 보셔서, 이 세상에서도 참으로 빛과 소금의 자녀들로서 살아가시는 귀한 축복의 통로가 다 되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에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나아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야웨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당신의 하나님 야웨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야웨께 기도하고 무릇 야웨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말하리라.”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야웨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되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야웨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야웨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야웨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그럼 오늘 이 시간, 함께 봉독했던 말씀을 가지고서, ‘행할 길을 보이소서’라는 제목으로 성도님들과 귀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스 아테네 한 극장에서는 국경일을 기념하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좀 늦게 극장 안으로 들어섰는데, 그곳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때 두리번거리고 서 있는 노인을 본 아테네인들은 ‘저 노인 분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여기저기서 수군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누구 한 사람도 자기 자리를 양보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노인이 외국인 석으로 다가가자, 그곳에 있던 스파르타인들이 벌떡 일어나 서로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 노인이 말을 합니다.
“아테네인도 선이 무엇인지, 착한 일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파르타인은 그 선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네요.”
어린아이들도 그 아이의 행동을 보면, 그 아이의 성품과 성격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도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수요 저녁 시간에, 우리가 함께 봉독했던 말씀을 가지고서, “행할 길을 보이소서”라는 제목으로 성도님들과 함께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뜻과 지시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곤충 세계에는 개미귀신이라는 곤충이 있습니다. 이놈은 모래에 조그만 구멍을 파고 그곳에 몸을 완전히 감추고는 녹슨 바늘 모양의 촉수만을 모래에 남겨둡니다. 조그만 개미 한 마리가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먹이를 찾다가, 컵 모양의 모래가 움푹 패인 곳을 발견하고서 그 가장자리에 올라서서 주위를 살필 때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때 개미는 위험을 알아차리고서 도망가려 하지만, 개미가 서 있는 모래는 아래 부분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 바람에 결국 개미는 구멍 맨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이때, 개미귀신 곤충은 몸을 감춘 채로, 개미 다리를 하나, 둘씩 잘라서 올라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개미가 모든 것을 다 포기할 때 그때 비로소 몸을 드러내 놓고 잡아먹는데, 이것은 곧,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다리가 하나, 둘씩 잘리는 것과 같아서 결국 영적으로 어두운 구덩이 속에 완전히 빠져 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이라는 큰 나라의 보복이 두려워서, 그래서 어떤 누명이나 쓰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그들 자신들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 중에서 다 같이 2절 말씀을 함께 큰 목소리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야웨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그런데요, 이 말씀 구절 가운데 무엇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나요? 그것이 무엇인지를 한번 자세히 살펴보시겠어요?
그것은 바로, 그 백성들도 야웨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들 자신들의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당신의 하나님께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했던 그들의 삶을 스스로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그들의 인간적인 결심에만 함께 동의를 얻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 3절에서 백성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하나님 야웨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자신들의 하나님 되심을 온전히 믿거나 의지하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지시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 스스로가 기도하고 순종함으로써 온전히 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 모두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나아와 행할 길을 하나님께 대신 여쭙도록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먼저, 그리고 직접적으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후,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반드시 주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지시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 모두는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결단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 4절의 말씀인데요, 다 함께 큰 목소리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야웨께 기도하고 무릇 야웨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말하리라.”
유다 백성들이 외형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했다 할지라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중보 기도를 요구하였던 것은, 순전히 그들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아주 조심스럽게 유다 모든 백성들이 이미 자신들의 뜻을 결정하고서, 하나님의 동의만을, 즉, 하나님의 허락만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 모두가 이집트로 가겠다고 결정을 내린 이상, 하나님의 말씀도 사실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쉽사리 거부해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에 익숙해져 있었으며, 또한 이번에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혼자서 짐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이 모든 유다 백성들에게 순수히 받아들여지기만을 바라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들 자신들이 원하고 뜻하는 대로 기도하는 유다 백성들, 그리고 그들 자신들이 간절히 원하고 갈망하는 유다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유익이 된다면 무엇이든 숨기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그분의 말씀을 들려주겠다고 대답을 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유다 백성들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자신들의 안전 문제였습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려는 동기를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데 동의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하난 일행을 유다 땅에 머무르라고 하신 것은 그나마 이들을 보전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스스로가 모든 뜻을 다 정하고 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형식적으로만 물어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생각이 그들의 생각과는 분명 다르며, 또한, 그들의 생각이 감히 미치지 못하는 차원임을 온전히 믿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것을 알고 있었던 예레미야 선지자는 함께 기도해 보자는 덕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들 스스로의 한계성을 절실히 깨달아,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그 뜻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으로 바뀌는 역사가 나타나게 됨을 보여 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모두는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야웨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여서, 반드시 이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행하면서 나아가야만 하는 그 길, 바로, 주님께서 친히 보여주시는 그 길에 순종하며 나아가도록 간절히 기도하기를 결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는 나아가야 하는 길이 말씀을 통해 보일 때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따를 것을 약속해야만 합니다.”
오늘의 본문 5절과 6절인데요 함께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야웨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되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야웨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야웨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야웨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이 말씀은 곧 요하난과 백성들이 이미 이집트로 도망갈 것을 미리 다 정해놓은 상태에서,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따르겠다고 거짓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난 뒤, 유다에 남은 자들은 마땅히 그들의 이전 잘못들을 고백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둔감해져 버린 그들은 하나님 심판의 영적인 의도는 간파하지 못한 채, 하나님이 아닌 애굽인들, 즉 이집트인들에게만 의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는 선지자를 통해서 그들에게 하시는 모든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그대로 따르겠다고, 이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들의 참되고 진실하신 증인이 되신다고 거짓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 말씀이 좋든지 싫든지 순종하겠다고 거짓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들의 이러한 고백이 참되고 정직하여 그들의 진심 가운데 나왔다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행할 길로 온전히 순종하는 마음과 결단을 통해 나아갈 때마다 그들에게 참된 복을 안겨 주셨을 것입니다. 이 참된 복이 바로 “무슨 일에든지 형통하고 무슨 일이 있든지 참으로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이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리고서 자기들의 원래의 뜻대로 행하며 나아가려고만 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수요 저녁에 우리는 이렇게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바로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 하는 길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보일 때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따를 것을 약속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순종이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리는 참된 예배자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는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빈곤이 있을 뿐이다. 바로 기도의 빈곤이다.” 조지 뮬러 목사님께서는 가난함에도 처해보았고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과정 가운데도 있으셨지만, 그분이 끝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세상 유혹에도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기도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서 빈곤, 즉 가난이 된다고 이야기를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 세상에서 기도하지 않는 것만이 우리에게 빈곤, 우리에게 가난이 되지, 이 세상의 것은 어떠한 것도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기에 우리는 반드시 행할 길로 나아갈 수 있고, 순종할 수 있고, 그 끝에 서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수요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성도님들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르짖어 반드시 주님이 보여주시고 행할 그 길을 보셔서, 이 세상에서도 참으로 빛과 소금의 자녀들로서 살아가시는 귀한 축복의 통로가 다 되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렘42:1-6 /최형준 /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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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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