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43:1-28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라 /요안나

1982년 어느 날 한 부부는 두 번째 임신을 하였습니다. 임신 4개월 째 되었을 무렵 성령님이 강력하게 아빠를 주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령님은 태아가 아들임을 마음에 확신을 주었고 이어서 아이의 이름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더니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받은 말씀이 오늘 본문 1절 말씀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그래서 아빠는 임신 4개월 된 태속에 아들 이름을 ‘부름’이라고 지었습니다. 그가 오늘 동문교회 김부름 전도사입니다.


본문 19절,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크게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지금 이 시간에도 새 일을 행하시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가정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도 역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간은 하나님의 몸 된 동문교회를 위해 어마어마한 새 일을 이루어 가시는 줄 믿으셔도 좋습니다. 

교회가 좋지 않는 모습으로 나뉘는 경우는 종종 있어도 특색 있는 두 교회가 하나를 이루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인구 8만 미만의 전형적인 농촌형 도시인 문경 같은 지역에서는 대단히 희귀한 역사이기에 하나님께서도 적극적으로 돕고 계시고 우리 주변 사람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동문교회에 행하실 새로운 일들을 응답 받은 건수가 여러 건 있지만 혹시라도 사람 자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소상하게 말씀 드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제가 드린 말씀을 귀넘어듣고 흘러 넘기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겪어 보신 것처럼 저는 주일 설교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성경 본문을 필요에 따라서 선택하지 않고 주일마다 성경을 차례대로 대언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사야 43장 본문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의 말씀은 저와 여러분 개인적으로나 우리 교회적으로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태백산을 분수령으로 해서 서쪽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정선과 영월을 거치면서 길이 482km의 한강을 굽이쳐 서해로 유입 되는 반면 태백산 남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안동을 중심으로 길이 525km,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강 낙동강 물이 되어 남해로 흐릅니다. 처음 떨어 질 때는 거기가 거기이었습니다만 그러나 그 끝은 서해와 남해입니다. 그게 분수령입니다. 

오늘 이사야 43장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인생과 믿음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받는 여하에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에 주연 배우로 스카우트되거나 아니면 그 주역들을 바라만 보는 단순 관객으로 살아 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새 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문제는 그 분 앞에 선 저와 여러분의 신앙적 태도가 새 역사의 주인공이거나 아니면 만년 구경꾼 역할로 분리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음을 자각하시면서 말씀을 말씀으로 만나시기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로운 일은 저와 여러분의 부르심 즉 구속하심인 줄 절대적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1절에서 7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천지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창조 된 줄 믿습니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요한복음 1:1-3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는 반드시 새 일을 행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브람은 원래 고향 땅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더니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브람은 자신을 찾아오신 하나님 때문에 놀랐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신 하나님으로 인해 두렵기 조차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복의 근원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새 일 앞에 감히 머리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아브라함의 이름을 불렀듯이 부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대로 우리 모두가 복의 근원으로 세우심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거룩한 의도에서 절대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하셔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손자 요셉 때에 애굽으로 이민을 가서 400년 넘게 그 곳에 살았습니다. 요셉의 영향력 아래서는 같은 시민의 대접을 받았으나 요셉의 이름이 퇴색해 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애굽의 노예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죽음마저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고된 노예의 생활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그들에게 새 일을 행하시기 위해서 이었습니다. 여러분, 노예로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실 수 있는 최대의 새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주인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종으로 사는 것은 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주인으로 살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지난 일일 부흥회 때 오셨던 김문훈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주전자 정신입니다. 주인과 종의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주인은 당당하지만 종은 불안합니다. 주인은 일을 해도 즐겁고 기쁘지만 종은 불만과 불평뿐입니다. 왜냐하면 죽도록 해 봐야 주인 좋은 일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할 일 다 하면서도 짜증과 원망을 입에 달고 삽니다. 주인은 꿈이 있고 미래가 있어서 땀을 흘려도 노래 하지만 종은 그늘 밑에 쉬면서도 그늘을 즐기지 못하고 땅이 꺼지도록 한 숨만 내 쉽니다. 왜냐하면 보장된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뼈 빠지게 일하고도 실망과 좌절의 허탈한 언어로 주신 복도 까불어 버립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희망도 꿈도 없이 하루하루를 지옥 같이 살고 있는 그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오늘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했습니까. 예! 새 일을 행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새 일은 애굽의 종들이었던 그들을 구속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시는 것인 줄 믿어지시면 ‘아멘’합시다.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신다는 말은 하나님처럼 주인으로 살게 하시겠다는 의미임을 반복하여 말씀드립니다. 

종이 주인이 되는 경우에 어울리는 표현은 천지가 개벽했다는 말일 것입니다. 노예가 주인이 되는 천지개벽은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변화가 무엇입니까. 익숙하고 길들여 진 지금까지의 삶을 봄날에 겨울 옷 벗어 던지듯 벗어 버리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하였으며 정확한 정보도 없는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변화는 엄청난 부담감과 공포심을 유발합니다. 개화기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상투를 자르니 죽겠다고 맞섰지 않습니까. 그게 변화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만일 그 때 변화를 거부하였더라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 것 같습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을 부르신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은 그들의 변화이었습니다. 그 부르심이 반갑기도 했지만 사실은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그나마 종은 신분 보장이라도 되는데 노예의 삶이 비록 고달프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잠자리와 최소한의 양식은 보장 되는데 주인이 되겠다고 광야로 나가면 누가 책임을 지느냐 말입니다. 

그들의 불안한 마음까지 꿰뚫어 보신 하나님께서 새로운 말씀을 주십니다. 1절 중간 부분입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무엇을 무서워 말라는 말씀입니까. 환경이나 사건 혹은 질병 등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일어 날 새로운 변화 즉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로운 일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주인으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종으로 오늘을 연명하고 있습니까. 주인의 삶은 당당합니다. 그 마음에는 젖과 꿀이 흐릅니다. 그래서 기쁨이 샘솟고 감사는 집중 호우 같이 쏟아지기에 뒤로 넘어져 코가 깨져도 감사합니다. 입술에는 축복과 사랑의 언어를 달고 삽니다. 사람이 사랑스럽고 그들의 관심이 봄날에 따사로움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리 보아도 내 사랑이고 저리 보아도 내 사랑입니다. 그러나 종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습니다. 앞으로 보면 원수요 뒤로 보면 대적입니다. 요즘 같은 장마철에 도랑에 빠졌는데 주머니에 메기가 들어가도 메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 아니라 도랑에 빠진 것 때문에 불평하고 신경질 박박 끓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새 일을 행하시기 위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지명하여 부르신 줄 분명히 믿으시기를 진심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러시다면 이제 종의 습성을 버리고 마음과 영혼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새 주인으로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몇 대에 걸쳐서 교회에 다녔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고 있으며 어떤 일을 하느냐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최대 관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인생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의 변화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보시기에 제가 어떻습니까. 보신대로 느낀 대로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과거에 삐지기 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절대로 밖에서는 삐지지 않았습니다. 이래 뵈도 제가 체면을 중시하는 뼈대 있는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집에 와서 삐졌습니다. 제가 한 번 삐지면 기본 삼 일 길면 일주일에서 열흘까지도 갔습니다. 저는 삐지면 아내에게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면서 아내를 괴롭혔습니다. 그럴 때면 아내가 사과를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못한 것도 없는 아내를 사과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십년간은 사과를 잘 하더니 그 이후로는 사과를 하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제가 삐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새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자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권면 드리건 데 저를 보고 배우시기 바랍니다. 저의 변화를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야기하잖아요. 저는 피해망상으로 인한 정신분열증 환자인 아버지와 아들에 포은이 맺혀 병적으로 집착하는 어머니 아래서 성장했습니다. 제 속에 하나님의 형상은 눈 씻고 찾아도 흔적조차 쉽지 않았을 만큼 제대로 병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하나님은 다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새 일을 행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 아내가 저 뒤에 있습니다. 물어 보십시오. 제가 옛날처럼 삐지는가. 그건 종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는 주인입니다. 

여러분은 저보다는 훨씬 낫지 않습니까. 저에게 새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 지금 이 시간 당신에게 위대한 새 일을 행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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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43:1-28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라 /요안나 사43:1-28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라 /요안나 Reviewed by □□□ on January 06, 2024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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