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광야의 하나님 시리즈를 종결하고자 합니다. 지난 설교들에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우리 인생은 광야와 같다고 하여 광야에서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나누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시면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나누었습니다. 그 마지막 완결편으로 오늘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전하고자 합니다.
광야에서의 하나님을 설교하기 위해 저는 출애굽기를 참 많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광야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발견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성경을 쭈욱 읽어가다가 이사야를 보다가 오늘 설교에 대한 영감을 받았고 몇 주가 지난 이번 주에 그 설교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의 내용을 차근 차근 생각해 보다가 이사야를 통해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광야에서의 하나님을 한 마디로 이야기한다면 ‘해결사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시면서 하나님은 기가 막힌 상황들을 기가 막히게 해결하십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신 방법들은 예전의 방법들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들이었고 창조적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난관과 어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대안과 해결책을 내시는 분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으로는 해결할 수도 없는 어떤 방법도 없을 때에 기가 막히게 그것을 해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예상치도 못했던 방법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혀 길이 없어 보이는 곳에 길을 만드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를 다시 읽으면서 늘 당연하게 읽었고 상상했던 것들이 새롭게 저에게 깨달아졌습니다. 제가 차근 차근 출애굽 역사의 현장을 이야기하면서 제가 깨달은 해결사 하나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보면, 그들도 역시 우리네 인생과 같이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이라는 나라에 노예생활을 400년 이상하였습니다. 갈수록 애굽 사람들은 그들을 너무 부려먹고 고역을 시키기에 종살이가 너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틈만 나면 탄식하였습니다. 얼마나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심한 노동으로 고생하며 탄식하였는지 그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셨다고 출애굽기 2:23,24절에 나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때 그들에게는 도무지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에 ‘노조’가 있어서 자기들의 권익을 보호하거나 대변할 기구도 없었습니다. 괜히 잘못 이야기하거나 불평하면 그 자리에서 맞아 죽든지 칼로 찔릴 분위기 입니다. 자기들 편에서 누구도 자신들의 괴로움을 왕에게 전달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왕자였던 모세도 벌써 튀고 도망가 버린 후였습니다. 노예였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당시 다른 것 보다 조금이라도 노동의 양이 줄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탄식하면서 그저 힘들어 할 뿐 다른 기대나 소망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문제와 괴로움이 해결 될 아무런 징조나 희망이 없었을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그것은 모세를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느 누가 이것을 기대나 생각인들 했었을까요? 한 때는 모세가 잘 나가는 왕자일 때 그렇게 하려고 한 번 객끼 부리고는 혼쭐이 나서 도망갔습니다. 그리고는 애굽에서 가장 천한 직업인 목축업자로 전락했습니다. 그것도 40년 동안 양이나 소를 쳤습니다. 모세 자신이 양을 친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애굽의 치하에서 해방시킬 생각이라도 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해결사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빼어내실 아이디어를 가지신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누구도 생각지 못한 놀라운 대안이고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애굽으로 돌려보내서 그 완악한 바로 왕 앞에서 당당하게 내 백성을 내보내라고 요청하게 하십니다.
바로가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애굽 군사 때려 죽이고는 자기 살자고 냅다 도망갔던 모세가 지팡이들고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들의 노동력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 내보내라는 것입니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애굽의 바로왕이 말을 안 듣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게기는 바로왕과 애굽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10가지 재앙을 내리십니다.
10번째 재앙은 애굽의 모든 첫 태생을 다 죽이는 것입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래서 바로가 견디다 못해서 모세의 부탁을 다 들어주고 더불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하는 은, 금, 패물, 의복을 바리 바리 싸서 보내게 됩니다. 요청하기만 하면 다 줘서 보냈습니다. 이 출애굽 사건은 인류역사에서 유래 없는 놀라운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생각하거나 기대하지 못했던 ‘출애굽’을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행하셨습니다. 고역에 대한 괴로움을 가지고 탄식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전혀 새로운 ‘출애굽’으로 해결하셨습니다.
그 후의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갖 재물과 가축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근데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합니다. 모세도 어디로 가야할 지 막막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3장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하시는 겁니다. 사막인 그곳에서 낮에는 엄청 더운데 구름기둥으로 하나님이 그늘을 만드시면서 인도하십니다. 사막이라 밤에는 무지 추운데 불 기둥으로 온기를 주시면서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구름기둥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불 기둥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들은 구름기둥이나 불 기둥을 본 적도 없고, 상상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사막에서 가장 완벽하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을 구름기둥이 불기둥이 길을 내면서 인도하셨습니다. 갈 길 몰라 하는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해결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출애굽기 14장에 가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자기 노예들이었던 이스라엘을 내보낸 바로왕이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변할 뿐만 아니라 화가 잔뜩 나서 죽이려고 쫓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잘 훈련되고 가장 용감한 군사들을 뽑아서 병거에 태워서 쫓아오는 것입니다. 다 죽여버리든지 다시 노예로 데려올 셈으로 쫓아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착한 곳은 바닷가였습니다. 등 뒤에는 바닷가가 있고, 앞에는 병거에 칼과 창을 든 애굽의 용사들이 달려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먹을 것과 의복과 금과 은은 챙겼지만 누구도 무기를 챙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400년간 종살이를 했기 때문에 모세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싸울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위기 중의 위기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기 14:13,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백성들이 이 말을 듣고 무엇을 상상했을 것 같습니까? 어떤 상상을 했을까요?
홍해를 가르는 상상을 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홍해를 가르고 애굽의 군사들을 수장시키는 것을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을 본 적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출 14:16을 보면,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하십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내밀었더니 하나님께서 바다를 가르고 바닥을 말리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는 바다를 갈라서 바다 위에 길을 내신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도 상상하거나 계획하지 못한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진 바다 사이로 마른 땅으로 온 백성이 걸어서 건너갔습니다. 완전히 공짜로 세계에서 가장 큰 수족관인 아쿠아리움을 보면서 간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길로 애굽 군사들이 뒤 쫓아 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느 정도 왔을 때 하나님은 그들이 온 부분만 물을 다시 흐르게 하셔서 수장을 시키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상상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바다에 빠지든지 칼에 죽든지 하는 진퇴양난의 위기를 하나님은 바다를 가르심으로 해결하셨습니다. 또한 뒤 쫓던 애굽의 무장한 군사들을 바다를 합치심으로 섬멸하시고 해결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신 것도 그렇습니다. 자기네들이 가져온 음식들이 다 떨어졌을 때 하나님은 아침마다 ‘만나’를 내리게 하셨습니다.
누가 그것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하늘에서 쌀이 떨어지는 겁니다. 아님 밀가루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가져다가 반죽해다가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누가 그것을 상상했겠습니까? 배고픔과 굶주림의 문제를 누구도 생각지 못한 맛나로 하나님이 해결하셨습니다.
고기도 그렇습니다. 수 백만을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한 방으로 고기를 먹게 하십니다. 메추라기 떼를 보내시는 겁니다. 가서 메추라기를 거두기만 해서 털 벗겨 구워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누가 그것을 상상이라도 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고기문제를 메추라기 떼로 해결하셨습니다.
물도 그렇습니다.
물이 없을 때 지팡이로 돌을 쳤더니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닦친 아주 어렵고 풀 수 없는 문제들을 기가 막힌 방법으로 풀어 해결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해결사 하나님’이십니다.
근데 여러분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출애굽기를 쓸 때였쟎아요? 그 때 뿐이죠?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출애굽 이후에도 하나님은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광야의 하나님은 해결사 하나님이신데 그것이 그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이 있은 지 한 참 후에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그 이야기를 하십니다. 출애굽기에서 한 참 뒤에 있는 이사야로 갑니다.
이사야는 미래에 대한 예언이 가득 찬 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게 되면, 이사야43:15에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친히 소개하시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라고 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이 하나님이 여전히 너희의 거룩한 창조자요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창조자요 왕이신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셨다고 하십니까?
그리고 16, 17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그 하나님께서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고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셨다고 하십니다. 바로 출애굽때 행하신 그 일을 이야기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사야 43장 18-2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과거에 바다에 길을 내신 하나님께서 이전 것을 기억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갇혀서 ‘추억거리’로만 있지 않으시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하나님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새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광야에 길을 내는 것”입니다. 또 그것은 “사막에 강을 내는 것”입니다.
(이전 일과 새 일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이전 일은 이스라일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출애굽에서 행하신 일인가? 43:18 You must not remember the former things After evoking strong memories of the exodus event in Isa 43:16–17, God instructs the exiles to stop dwelling on the past. The “former things” previously seemed to refer to the judgment against Israel predicted earlier in Isaiah, so the instruction may have two parts: stop dwelling on your punishment (exile) and don’t yearn for the former days of Israel’s power. Rather, attention should now be focused on God and His miraculous redemption. Faithlife Study Bible)
이 말씀은 출애굽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해결해 주셨듯이 이사야 때나 지금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20절에 보면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바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이사야 43장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 때에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모든 문제들을 기가 막히게 해결하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들을 내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그러한 새 일을 행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출애굽 때의 하나님이나 이사야 때의 하나님은 동일하게 나를 위해 모든 문제과 역경들을 기가 막힌 방법으로 해결하시는 해결사 하나님이시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이 바로 광야의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사막이고 돌들만 있고, 길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길을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모든 강들과 호수가 바짝 말라버린 사막이라도 거기에 강을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아무리 길이 없어 보이고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였어도 우리 하나님이 광야에 길을 내실 것입니다. 사막에 강을 내실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아프리카를 다녀 오다가 ‘두바이’에서 하루를 머문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저는 별 희한한 것들을 다 봤습니다. 정말 두바이는 기상천외한 곳입니다. 두바이에서는 운하인지 강 같은 곳이 있는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습니다. 해초나 비린내가 나지 않습니다. 왠지 보았더니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거기는 지금 섬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서 팔고 있습니다. 그래서 섬의 모양도 야자수 같이 합니다. 아니면 섬의 모양이 지구모양입니다. 각 대륙의 모양대로 섬을 만들어 분양하고 있습니다. 또 바다 속에 호텔을 짓는다고 난리입니다. 모래만 있는 곳이 원래의 두바이인데 거기서 휘황찬란한 푸른 도시로 되어 있습니다. 사막인데 거기에 실내 스키장을 만들어서 스키를 탑니다. 이 모든 개발 아이디어가 한 사람에서부터 나왔습니다. 사람도 사막에 강을 만들고 광야의 길을 내는 시대입니다. 하물며 지혜의 근원이시고 전능하신 해결사 하나님이 그것을 못하실까요?
우리 하나님은 광야의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좁아터진 머리로 낼 수 없는 창조적인 해결책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늘 여러 가지 문제로 낙망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새 일을 행하겠다고 하십니다.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광야 같은 인생을 사는 우리들에게 하실까요?
그것은 이사야 43:21때문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지금도 광야 같은 인생을 사는 우리들을 위하여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명심하세요! 내 삶이 하나님의 찬송이 되도록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대라도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실 일이 없는 해결사 하나님이십니다. 청년 때에 많은 고민과 문제들이 있습니다. 인생 살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합니다. 돈 벌고 먹고 살기가 쉽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광야에 길을 내실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치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한 기회와 역사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공부를 하시는 대학생들은 고민이 많으시죠? 날로 치솟는 등록금에 아르바이트 자리도 만만치 않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문제가 많으시죠? 아이디어도 딸리고 기회들이 별로 없는 것 같죠?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광야에 길을 내실 것입니다. 사막에 강을 만드실 것입니다.
왜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것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께 내 미래와 내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에도 내 미래와 삶을 드리지 말고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니께 내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내 인생을 영원을 보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내 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식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하시는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여기 계신 분들에게 들려지길 원합니다.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교회적으로도 그렇게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이 예배에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더 부흥시키실 것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이 일에 우리가 우리를 헌신합시다.
새 일을 하나님이 행하시는 첫 걸음으로 우리가 헌신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교회에 다 많은 친구들을 초청합시다. 0330이 그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이 번 한 달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새 일을 행하시고 내 삶에 새 일을 행하시도록 내 주변의 사람들을 초청합시다. 김동호목사님이 안 계셔도 우리 그 하나님께 내 주변의 사람들을 초청하여 데려옵시다.
그 하나님이 다시 한 번 이사야 49:11-13에 이렇게 약속하신다고 믿습니다.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