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해가 되어서 맞는 첫 번째 주일입니다. 새해 첫 주일을 맞아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충만히 임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다 새해에 바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소망을 갖는다고 해서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는 소망을 이루려면 그것을 이루는데 필요한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능력이 없으면 그 소망은 소망으로 끝나고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새해를 시작하면서 금년에는 다른 해보다 의미 있게 시작하고 싶다고 31일 밤 가족들과 함께 동해안 정동진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1일 새벽 동해에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담배 한개피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그 담배를 두 쪽으로 뚝 분질렀습니다. “이제부터 담배를 끊는다.” 그리고 기분 좋게 가족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통체증이 얼마나 심한지 차가 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성질이 나니까 어떻게 한 줄 아십니까?
차를 멈추더니 앞차에 가서 운전석 창문을 두드립니다.
“똑 똑”
앞 차에 있는 사람, 창문을 내리면서 “무슨 일입니까?”
“저 담배 한대만 빌릴 수 있을까요?”
새벽에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담배를 부러뜨리면서 한 결심인데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그 날 저녁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라는 소망을 이루려면 그 것을 이루는데 필요한 내적인 능력과 외적인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에 소망조차도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 “난 안돼”하면서 포기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자기의 분수를 알고 쓸데없는 욕심을 갖지 않는 것이라면 참으로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좀 더 힘쓰고 노력한다면 능히 이루어 낼 수 있고, 자신의 삶을 한 단계 더 나은 삶으로 up grade 시킬 수 있는데도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쉽게 포기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쉽게 포기해버리는 사람은 결코 소망을 품고 살며 그 소망을 이루어가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으로 향상시켜 나갈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으로 향상시켜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라고 부르짖으면서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시련이 오고 어려움이 닥쳐도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소망을 붙잡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결국 이런 사람들이 소망을 이루어내고, 자신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향상시켜 나갔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도 발전시켜 나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항상 미래에 대한 밝은 소망을 품고 노력함으로서 자신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향상시켜 나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켜 나가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밝은 소망을 품고 도전하고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봉독한 말씀에서도 그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바벨론에게 나라가 망하고 포로의 몸이 되어서 바벨론 나라에 끌려가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낮선 나라에 포로로 끌려와서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입니까?
그리고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나라는 망하고 자신들은 포로가 되었으니 지난날을 생각하면 자신들의 어리석은 행동이 얼마나 후회가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길 이미 지나가버린 옛날 일은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옛날 일을 생각하면 후회와 아픔만 있지 이미 지나간 일인데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일일랑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기적 같은 일들을 행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나라는 망해 없어졌고, 몸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와 있는 비참한 상황에 대해서 절대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소망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과거지향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은 과거에 있지 않고 미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이미 정해져버렸기 때문에 아무리 사람이 노력한다 해도 결코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래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무한한 일들을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슬픈 과거도 기쁨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 지향적인 사람에게서는 별로 기대할 것이 없지만 미래 지향적인 사람에게는 기대할 것이 무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과거에 매이는 과거지향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과거를 딛고 일어서서 미래를 바라보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남들처럼 공부를 할 수가 없었고, 결국 길거리에서 구걸해먹고 사는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를 보고 사람들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본인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이렇게 묻는 사람들의 질문은 과거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캐고, 과거를 분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러한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요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장차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과거를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의 눈을 돌려 그 사람의 미래를 보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있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그 소경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구걸이나 해서 먹고 살고 있는 소경이 무슨 존재의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저 불쌍한 사람에 불과하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그 다음부터 그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실 일이 있다고? 도데체 하나님께서는 이런 소경을 통해서 무슨 일을 나타내시려고 하실까?” 하면서 그 사람의 미래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께 질문한 사람들도 그 소경에 대한 미래가 궁금했겠지만 가장 궁금해 한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당연히 그 소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경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면 그는 그날 이후부터는 절대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비관하고 소망 없이 살아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장차 자신을 통해서 나타내실 일을 기대하면서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았을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소경에 대해서 하신 말씀을 듣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장차 자신을 통해서 나타내실 일을 기대하면서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아감으로서 눈먼 소경의 장애를 극복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사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강영우 박사입니다.
강영우 박사에 대해서는 이미 몇 번 말씀을 드려서 아시는 분은 잘 아시겠지만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한 번 더 간단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분은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중학생 때 운동장에서 놀다가 날아온 축구공에 눈을 다쳐서 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잃고 아들을 의지하며 살던 어머니가 아들이 여러 번의 수술에도 불구하고 끝내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하자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더니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누나를 의지하고 살았는데 누나마저 몇 년 뒤에 과로를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불행이 계속될 때 이분도 죽고 싶었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게 자신은 하루아침에 앞을 볼 수 없게 되고, 그로 인해 어머니 죽지, 누나 죽지 하는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겠습니까? 정말 죽지 못해 사는 것이지요. 날마다 죽음의 그림자가 자기의 마음을 덮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절망 중에 있을 때 우연히 라디오 방송을 들었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에게 하신 말씀을 본문으로 하는 설교였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소경이 된 자신에게도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을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소경이라는 장애를 극복하고 대학을 마치고 미국에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받아 미국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최근에는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행정부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고위 공직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않았습니다.
정말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나타내는 간증이 되었습니다.
그의 신앙간증집은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사회에서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신앙간증집을 읽고 위로와 용기를 얻은 사람, 하나님께서 참으로 살아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이 셀 수도 없이 많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들도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과거지향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지금 처한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절망적일지라도 그 상황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미래,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가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능력이 아무리 부족하고, 미련하고, 연약하다 할지라도 우리의 소망하는 바를 이루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과거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밝은 미래, 더 나은 미래를 소망하면서 도전하고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밝은 미래, 더 나은 미래를 소망하면서 도전하고 전진하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간다는 소리를 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간다는 소리를 들은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무슨 말씀입니까?
나사로가 불치의 병에 걸려 죽어간다는 소리를 듣고 왜 건강관리를 소홀히 했느냐는, 왜 평상시에 종합검진을 받지 않았느냐는 등 지난 일을 가지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일을 말하지 않으시고 미래의 일을 말씀하십니다.
“나사로가 앞으로 이 병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사로가 하나님께 영광 돌릴 밝은 미래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소망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시니 그 소망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나사로가 그 죽을병으로 말미암아 죽었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살아남으로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미래는 반드시 밝은 소망이 있는 미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우리의 지금 처지나 자신의 능력이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도록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파스칼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파스칼은 항상 결핵과 고질적인 두통으로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병의 고통을 이겨내고 “팡세”라는 위대한 작품을 썼는데요,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그의 기도 중에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지금 제가 찾고 구하는 것은 하나님 당신뿐입니다. 제 육신의 고통이 영혼을 위한 묘약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당신을 따르는 것이 선이요, 당신을 거스르는 것이 악임을 믿습니다. 제 육신과 영혼이 오직 주님께 순종하게 하소서…”
파스칼이 이렇게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질병의 고통을 이겨내고 불멸의 책을 쓸 수 있었던 힘이었습니다.
소망을 품었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소망을 품으면 그 소망을 빼앗아가려는 일들이 꼭 생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담배를 끊으려했던 사람이 심한 교통체증 때문에 담배를 끊으려고 했던 것을 포기하고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듯이 이런 저런 일들이 우리가 소망을 빼앗아가고 우리의 마음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그럴 때 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다시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도우시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도우시면 능치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위대한 신학자인 몰트만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오늘날 인류를 비참한 상태로 몰아넣는 것은 그들이 절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절망은 가장 나쁜 죄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습니다.
"절망은 재앙을 부르는 가장 나쁜 죄다."
예수님이 말씀이 생각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우리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패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실패 앞에서 절망하고 포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실패는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가 되고 하나님의 하실 일을 나타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바라보지 마시고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자꾸 넘어지고, 자꾸 실패해도 궁극적으로 소망하는 것을 이루어주실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포기하지 말고 또 일어나서 도전하시고, 또 일어나서 도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받는 사람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능력이 나타나고 절망적인 상황을 변화시키는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도우시면 나의 능력이 아무리 부족하고, 내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능히 바라는 소망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은 하나님 안에서 항상 미래에 대한 밝은 소망을 가지시고 도전하시고 전진하시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심으로 소망을 이루시는 행복한 인생, 자신의 삶을 향상시켜나가는 인생, 인류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인생을 사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