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6:9-13 주기도문 강해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 주기도문 6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주기도문에는 7가지의 간구가 들어 있습니다. 그 중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세 가지 간구는 하나님을 위한 간구이며 오늘부터 공부할 네 가지의 간구는 우리 자신을 위한 간구입니다. 오늘은 이 네가지 간구 가운데 가장 먼저 기도해야 할 간구인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종종 잘못된 착각에 빠지는데 신앙이 깊어지고 성숙해 질수록 인간의 모든 욕구와 욕심, 본능자체를 철저히 포기하고 버려야 하며 세상과는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종종 많은 사람들이 금욕주의를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며 육적인 모든 것을 멀리할수록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임 템플은 "기독교는 모든 종교 중에서 가장 물질적인 종교다"라고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기독교는 물질을 부정적이거나 신앙과 위배되는 것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물론 정신적인 차원이나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것, 즉 신령한 것을 중하게 여기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계와 인간의 육체도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위한 양식도 구하라고 주님은 가르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노력하고 그 안에서 거룩히 구별되어야 하는 존재이지 결코 이 세상을 외면하거나 인간의 모든 속성 그 자체를 부정하면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한 때 금욕주의가 번성하여 자기의 육체를 학대하고 육신을 악한 것으로 정죄하며 인간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하나님만 생각하고 철저히 단절된 삶을 살려고 하는 금욕주의와 신비주의 은둔주의가 성행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사조가 성행할수록 기독교는 그 힘을 잃고 약화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그 스스로 자신의 빛을 가리우고 어둠 속으로 숨어 버렸기에 역사는 암흑의 시기를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숙한 신앙, 올바른 영성은 육신과 세상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의 삶, 육신의 삶을 귀하게 여기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영성이며 성숙한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인간 자신에게 필요한 네가지 간구 중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간구를 그 첫 번째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양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 ‘양식’이라는 말의 헬라어 원어는 ‘알톤’인데, 이는 유대인의 주식이었던 빵을 나타낼 뿐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에서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일련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양식’은 단지 먹을 ‘쌀’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하는 것으로 오늘 본문의 기도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이라는 말은 그날에 반드시 필요한 만큼, 없어서는 안 될 최소한의 양을 의미합니다. 즉 이 기도는 필요 이상의 욕심과 탐욕에 의한 기도와 간구에 대한 간구가 아니라 우리가 사용해야 할 만큼의 풍성한 것들로 채우시고 입히시기를 간구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먹지 않고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돈이 없으면 비참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제약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의 의미를 보다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공급자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밥 콕이라는 사람은 “이 떡의 배후에는 방앗간이 있고, 방앗간의 배후에는 농부의 수고가 있고, 그 배후에는 미풍과 비와 해가 있고 그 배후에는 이 땅의 아름다움이 있고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의지가 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을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 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밥상에 앉아서 반찬의 가지 수를 가지고 불평하는 사람은 그 밥상이 자기 앞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땀이 있었는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양식의 주권자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 앞에서 구하라고 요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먹고 마실 때마다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명하고 계십니다. 밥을 먹으면서 밥만 생각하지 말고 밥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스위스(영국??)에서 수 천 명의 고아들을 길러낸 고아들의 아버지, 조지 뮬러는 기도의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일생동안 기도의 응답을 5만 번이나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어느 날, 고아들과 먹을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고아원은 2차 대전 이후의 어려운 여건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늘 그런 어려움에 처할 때가 무척 많았습니다. 그는 이 어려움 속에서 당황하지 않고 모든 원생들을 식당으로 모았습니다. 빈 접시를 식탁에 차려놓고, 포크와 수저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이들과 함께 눈을 감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루를 살게 하시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끝났을 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아십니까? 마을의 빵장사가 빵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아침부터 빵을 굽는데, 자꾸만 ‘고아들에게 한 번쯤은 빵을 가지고 가야 할텐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아서 견딜 수 없어 그 아침에 구운 빵을 모두 가지고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우유배달부가 들어왔습니다. 우유를 가득 싣고 이웃마을로 배달을 가다가 마침 고아원 앞에서 차가 고장이 났는데, 쉽게 차를 고치지는 못하겠고 시간을 더 허비하면 우유가 다 상해서 못 먹을 것 같아서 이왕이면 고아원에 기부나 하려고 들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아들은 감사의 기도대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시며 유일한 공급자 되심을 믿고 항상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성도는 나만의 양식이 아닌 ‘우리’의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만의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나만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구하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인간을 위한 4가지 간구에 대한 수혜자가 모두 ‘내’가 아닌 ‘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독단적이며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함께 화목하며 더불어함께 누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전 세계에서 한해에 거두어들이는 양식을 모두 합하면 전 인류가 모두 먹고도 남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한해에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양식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 쪽에서는 한 나라 인구를 먹일 만큼의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지고 있는데 한 쪽에서는 먹을 쓰레기조차 없어 굶어 죽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죄입니다. 우리가 아닌 나만을 위한 양식을 구하고, 나만을 위한 재물을 구하고 나만을 위한 안락과 부귀와 영화를 구하는 이기적이며 탐욕적인 신앙과 가치관이 이러한 결과를 낳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는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양식이 그득하다고 만족하며 웃을 것이 아니라, 우리 중에 누군가의 양식이 핍절하지 않았는지 살피는 겸손과 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보다 직접적으로 “너희가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일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히 10:24)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오늘 주께서 가르치신 이 기도를 드릴 자격이 있습니다.

 

셋째, 날마다 하나님께 필요를 따라 구하고 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왜 예수님은 ‘우리의 평생 먹을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지 않으셨을까요? 일생에 한 번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인데, 이왕이면 제자들과 그 이후에 믿어 이 기도문을 대하는 우리들을 위하여 ‘평생’을 보장하는 기도를 해주시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셨고 하나님과 긴밀한 영적 관계를 가지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을 보십시오. 여기에는 광야에서 만나가 처음 내려온 사건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만나는 매일매일 하늘로부터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말씀에 순종치 못하고 내일 몫까지 걷어 놓았더니 다 썩어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내려서 매일매일 걷어 먹는 것이 만나입니다. 오늘 주신 양식은 오늘 먹고 다음 날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만나를 구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매일 계속적으로 하나님께 구하고 그분을 의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8남매를 둔 가정에서 어머니가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 식구를 이끌기에 아버지 혼자 너무 힘이 들어 새 아내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새 어머니를 어머니로 인정하려 하지를 않고 어머니라고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긴 고민 끝에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새엄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 건 너희 자유다. 그러나 새어머니를 향해 ’어머니 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으면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새 어머니는 옷을 빨아서도 자기 방에 모두 정리해 놓고 아이들이 ‘어머니’라고 불러야만 주었더니 최소한 하루에 한 번은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만족케 하시며 채우시는 아버지심을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의 네 번째 간구인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아시는 분이시며 그것을 채우실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육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계속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며 나만의 유익이 아닌 우리 모두의 양식을 구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기도가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도 그대로 이루어져서 항상 주님께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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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6:9-13 주기도문 강해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6:9-13 주기도문 강해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Reviewed by □□□ on January 18, 2024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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