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3:12-21 행복한 가정의 조건 /조용기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행복한 가정의 조건"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의 오아시스는 가정입니다. 그곳에 와서는 참으로 마음놓고 모든 긴장을 풀고 푸근한 마음으로 안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는 첫 가정인 아담과 하와의 에덴을 분쟁과 정죄와 파탄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도 마귀는 우리의 가정의 행복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최근 일본의 통계를 보니 자살자의 수가 매년 3만명이 넘는데 그도 대다수가 50대 이상의 남녀라고 말합니다. 우리 나라 98년 자살자 수는 총 8569명인데 남자가 6200명, 여자가 2369명인데 97년에 비해 42%가 증가, 10년전보다 2003명이 증가했다고 통계에 나와있습니다. 이것은 가정이 반드시 삶의 오아시스나 행복의 복음자리 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은 서로 믿고 의지하고 용서하며 사랑하고 위로와 힘을 얻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가정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노력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이 조건이 충족될 때 행복이 가정에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조건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가정이어야만 합니다.

모든 만물에는 조화와 질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 삶의 진정한 조화와 질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섬기는데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인생을 지어 놓으셨을 때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받들어 모시며 함께 살도록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에덴에서 마귀는 이 질서를 뒤엎어 놓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이라고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으신 에덴 가정의 질서를 파괴해 버리고 화목을 짓밟아 버렸습니다. 오늘날 가정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내가 남편의 권위를 짓밟아 버리고 자식이 부모의 권위를 짓밟아 버리고 뭔가 동등되려하고 다 큰 소리만 한다면 가정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러므로 모든 만물에는 조화와 질서가 있는데 그 삶의 참 조화와 질서를 깨뜨려 버리면 가정에 행복이란 물질만 가지고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가 원래 하나님이 지으신 그 원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받들어 모시는 그 삶의 질서를 가져와야 비로소 가정에 행복이라는 것이 머물 수가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말씀과 성령충만과 기도의 제단에서 기쁨이 생겨납니다. 가정에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 있을 때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님이 예수님께 나와서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하매 잠시 후에 예수님께서 그 가정에 큰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그 가정에 결레통이 여섯 개 있는데 그 결레통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했습니다. 물을 채우매 주님이 떠다 주라고 하니까 떠다 주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결레통과 같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자복하고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하고 말씀과 성령으로 채워 놓으면 주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채운 우리들 속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쁨의 포도주가 넘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충만히 채우고 성령을 충만히 채워야 그것으로 주님께서 기쁨의 포도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가정에는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끊이지 말아야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가정이 암울하고 서로 원망하고 서로 미워하며 불평하면 가정에 행복은 없고 오직 그 가정에는 물고 찢고 싸우는 불뱀만 득실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했었습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에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남편의 얼굴에 기쁨이 사라지지 말아야 하고 아내의 가슴에 기쁨이 늘 있어야 되고 자녀들에게도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가정이 행복해집니다. 분노하고 미워하고 암울하면 절대로 행복이 없습니다. 그런 진실한 기쁨은 우리의 가슴속에 회개하고 말씀과 성령이 충만할 때에 하나님이 기쁨의 포도주로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둘째로, 가정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가정에 삶의 규범이 분명해야 합니다.

죄와 부패가 가정에 들어와서 가정을 찢어 놓으면 그 가정에 행복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도덕의 파괴와 혼돈은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남편이 외도하고 허랑방탕하고 그렇지만 아내가 치마바람을 날리며 친구들과 몰려 돌아다니며 부패하고 자녀들이 세상에 떠내려 간다면 그런 가정에는 행복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기도문과 십계명을 버린 미국의 학교와 오늘날의 미국의 실상을 살펴보면 처참합니다. 학교가 마약, 섹스, 폭력, 총기 난사로 얼룩짐을 알 수가 있습니다.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1963년 6월 17일 케네디 대통령 때에 대부분이 공립학교에서 성경교육을 할 수 없다고 판결한 후 현재까지 조지아주 고등학교를 제외하고 성경교육을 하는 공립학교는 없는 사실이 현실입니다.

교육학자 데이빗 바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공립학교에서 수업 시작 전에 하던 기도를 폐지했습니다. 옛날에는 반드시 공립학교에서 수업하기 전에 미국에서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여,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오니 우리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우리 부모와 우리 선생들과 우리 나라에 복을 주옵소서" 이 기도를 반드시 하고 학교 수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미국의 불신자 연합회에서 철폐시켰습니다. 그 결과로 청소년들 대학 진학적성 검사가 성적이 급격히 떨어졌고 혼전 성 관계가 편만하게 되었습니다. 마약, 총기사고, 가출 등이 8배에서 13배로 늘었습니다. 요사이 미국 학교에서 총기 난사로 말미암아 많은 학생들이 죽었습니다. 그 결과로 미국의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최근 기독교인들이 조직한 공립학교 성경교육을 위한 전국 회의는 미국 50개 주 전체에서 성경 교육을 부활해야 한다고 운동을 전개하고 있고 그 영향으로 현재 29개 주 100여 개 학교에서 성경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 교육 반대자들의 반발도 대단하나 날로 황폐해 가는 미국 청소년들의 도덕성과 인생 회복 위에 성경 교육 필수, 그리고 공립학교의 기독인들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학교에서 주기도문과 십계명을 제켜 버리고 난 다음 미국의 공립학교는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도 그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고 가정을 무시하는 청소년들 때문에 오늘 미국 가정은 혼란 속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 자녀의 교육에 주기도문과 십계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은 가정에 도덕을 세우기 위해서 확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목표를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세계에서 확실히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살아야 될지를 모릅니다. 너무 이 세상에 물질적인 유혹이 많고 세속이 팽배한 데 무엇을 기준을 해서 삽니까?

어른들도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 기준이 있어야 하고 자녀들도 기준이 있고 가정에 살아갈 도덕과 윤리의 기준이 분명히 서야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애들을 애들대로 멋대로 세속을 따라 산다면 가정의 행복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사람들이 모여 집단 생활을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어느 홀로 사는 자매님이 오누이를 기르는데 심방을 가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애들 침대 앞에 십계명을 기록해서 달아 놓았습니다. 반드시 아침에 깨어나서는 크게 읽고 세수하고 그 다음 세수하고 준비해서 학교가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소리내어 그십계명을 읽고서 잠자리에 들어가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이 아직까지도 독립하기 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떴습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은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만히 살펴보니까 정말로 바르고 착하고 성실하게 인생을 살면서 애들이 서로 협조하고 도와주면서 직장도 구하고 아름답게 생활을 꾸려나가고 우리 교회도 열심히 나와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원래부터 어린아이들에게 살아갈 길을 보여주면 그들이 장성해도 그 길을 버리지 않습니다. 원래 살아갈 길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 자매님은 비록 세상을 떠나 먼저 천국 갔지만 자녀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올바르게 보여준 것입니다.

시편 127편 3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기 때문에 자녀를 잘 길러야 합니다.

잠언 3장 5절에서 6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하셨으니 범사에 주님을 경배하고 섬기며 두려워하고 주님을 따라가는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분노나 하고 채찍이나 때리고 흥분만 하지 말고 온전히 주님의 뜻을 따라갈 수 있는 그러한 길을 보여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녀들에게 주기도문을 반드시 외우게 하고 십계명을 반드시 외우게 하는 것은 그 자녀들이 앞으로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을 밝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교통을 가르치고 십계명을 통해서 이 혼돈된 세계 속에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삶의 규범을 분명히 알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부패하고 혼돈된 세속 문화속에 끝없는 육체의 향락과 타락을 이겨나가고 거룩하고 온전한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린아이들 뿐 아닙니다. 우리 장성한 어른들도 가슴속에 십계명을 꼭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매일 같이 십계명을 외워야 합니다. 마음에 십계명을 따라 살겠다고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발걸음이 흩어지지 않습니다.

시편 119편 9절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서 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에베소서 4장 24절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렇게 사는 가장 근원적인 가르침이 주기도문과 십계명에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극단적인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를 버리고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삶이 있어야 가정에 행복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족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내 고집대로만 살고 나 주장대로만 살면 찢겨지고 마는 것입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동정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자연적으로는 안됩니다. 애를 써야 합니다. 상대편에 서서 생각해 보기를 늘 노력해야 하고 자기주장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기주의적인 세계에 그 교육 자체가 전부 개인적인 교육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개인주의나 이기주의가 되어 갑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개인 행복만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행복한 가정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가족 서로간에 이해하려는 절실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작년말 기준 통계를 보니까 인구 1천만 서울시에 하루에 200쌍 이상이 결혼해서 이혼이 하루에 61쌍입니다. 그러므로 3쌍 결혼하면 1쌍이 이혼을 합니다. 통계에 보면 이혼하면 8년 내지 10년 수명이 단축된다고 학술지에 발표하고 있습니다. 결혼하고 한번 이혼하는데 그 당하는 마음의 충격이 어느 정도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이혼하는 남자는 40대 초반, 여자는 30대 후반 이혼률이 가장 높은데 그 원인은 불성실, 무책임, 외도 등 불화가 60%이고 그 다음이 약 25% 경제문제로 이혼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부부 갈등의 근원적인 사유는 대화 불통에 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대개 남편이 들어줄 생각도 안한다며 끊어진 대화의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행복하면 되고 자기 뜻대로만 살고 다른 사람은 무시해 버리고 대화가 불통되는 이러한 삶을 살면 가정은 행복이 있을수가 없습니다.

서로 동정하고 긍휼이 여겨야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율법적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에 들어오면 율법적으로 보면 남편은 흠이 많고 아내도 결점 투성이고 부모를 율법적으로 보면 못나기 짝이 없고 자식을 율법적으로 보면 아주 망나니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족들 간에 만이라도 율법을 제켜 버리고 동정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봐야지 율법의 자로써 보면 하나도 온전한 사람이 없고 그러면 서로 비평하고 평론하게 되면 물고 찢고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들 간에는 용서하되 눈물이 나도록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마음의 결단이요 용서하기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눈물이 펑펑 쏟아질지라도 용서해야 가정은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판단해서는 결코 화목하게 되지 않습니다. 판단 받는 사람이 오히려 돌이켜서 판단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물고 찢고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를 흘리기까지 하면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눈물을 흘리기까지라도 용서하되 특별히 가족들간에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장 4절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용서가 배경이 되지 아니하고는 참된 화해와 사랑의 역사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가족들간에는 사랑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랑은 섬긴다는 수고가 따릅니다. 섬기지 아니한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자꾸 사랑해 달라고만 하면 안됩니다. 내가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서 내가 수고를 하게 되고 내게 희생이 다가와야 합니다. 그러한 희생을 감당하는 사랑을 하려고 노력해야 가정의 행복을 도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에서 25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남편에게 복종하려면 희생이 필요합니다. 복종할 마음이 안 생기고 기분이 안 생길지라도 자기 스스로를 희생하고 남편에게 복종하도록 노력해야 가정이 질서가 섭니다. 남편보다 아내가 훨씬 똑똑하고 잘났을지라도 가정이라는 한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는 아내가 남편을 복종하고 세워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에 질서가 생깁니다. 아내가 남편을 짓밟아 버리고 권위를 무시해 버리면 자녀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아니하면 가정은 엉망이 됩니다.

왜냐 원래 자녀들은 어머니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채찍을 들어도 하나도 겁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채찍을 들어야 겁이 나지.. 제가 지금도 기억나는데 아버지 가 무슨 말씀을 하면 겁이 나서 움추리는데 어머니가 고함을 치면 자꾸 웃었다고요. 어머니가 이놈이 어머니가 말을 하는데 웃는다고 부지깽이를 들고 따라나오면 달아나면서도 깔깔 웃었다고요.. 왜? 어떻게 해도 어머니는 권위가 안섭니다. 어머니는 자비의 상징이기 때문에 권위가 안 섭니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주어야 가정에 질서가 섭니다.

에베소서 5장 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자녀들도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보고 막말을 하고 무시해 버리고 욕을 하고 하면 자녀들이 어머니를 볼 때 인간으로 봅니까? 그러면 어머니는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애들 보는 앞에서 아내를 포옹도 해주고 애들 보는 앞에서 내가 네 엄마를 사랑한다 그런 말을 해 주면 아버지가 정말 엄마를 귀중히 여기는구나 그러면 애들도 엄마를 귀중히 여겨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이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희 생이 필요합니다.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연적으로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하고 그렇게 기분이 안 생기면 안 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할 도리가 없어요. 기분이 늘 그렇게 생길 리가 어디에 있겠어요? 아내가 늘 남편에게 복종할 기분도 안 생길 것이고 남편이 늘 아내를 사랑할 기분이 안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노력해야 합니다. 인생이란 끊임없이 노력하는데 대가가 오지 노력하지 않는데 대가가 옵니까?

그리고 상대로 인하여 하나님께 많이 감사를 드려야 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겠다고 했으므로 좋은 일에만 감사하지 말고 못난 남편 주셔서 고맙습니다. 바가지 긁는 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괴로움 주는 자식들 때문에 감사합니다. 감사를 많이 해요. 불평을 하지 말고 상대가 못나고 고통을 갖다 줄수록 더 감사를 해요. 그래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감사를 안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겠습니까?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올수록 그것을 가지고 원망 불평하지 말고 가정에서는 모든 것을 감사의 재료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둡고 괴로운 것을 감사의 제목으로 삼으면 하나님이 밝고 환한 날을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0절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가정 예배와 대화의 장소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바쁜 스케줄에 가정 전체가 다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모일 수 있는 수 만큼 모여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예배 드리면 두 세사람이 모인 곳에는 주님이 직접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그냥 오시겠습니까? 반드시 복을 가지고 오시지요.

시편 128편 1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고 했는데 우리가 가족 예배로 모여서 여호와를 경배하고 그 도를 다시 묵상하고 기억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면 주님께서 그 다음 모든 일은 기도하면 응답해서 축복해 주고 주님을 먼저 경배하고 우리 모든 필요를 주님께 아뢰면 주님이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에서 20절에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주님이 모이기를 이렇게 기뻐하시고 소원하시는 것입니다. 두 세사람만 모여서 기도하면 내가 같이 있고 그 기도를 응답해 주겠다 혼자서 나는 예수 믿고 혼자만 올바른 신앙을 가지겠다는 그런 태도는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가정 두 세사람이 모여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그들의 간구를 들어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 응답 받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두 세사람이 모여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의 최대의 공통점은 신앙관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서로 함께 모여 말씀 읽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면 항상 같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떻게 하든지 대화의 시간을 만들도록 해야 합니다. 가정 예배는 서로 대화의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데 어찌하든지 대화를 해야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화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7절에 보면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라고 하셨으니 대화할 때에 결코 상대방을 비웃거나 비난하지 마십시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너는 언제나 말해도 아직 씨가 맺히지 못했다 그런 소리하면 대화가 아니라 감정이 격화되고 싸움을 일어나는 것입니다. 대화 때는 여러분 결코 상대를 비웃거나 비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라고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부모 자식간에 대화가 없는 현실이 큰 문제가 되어서 오늘날 많은 자식들이 바깥에 돌고 방탕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가정>이라는 월간 잡지에 보니까 어떤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냐의 설문조사에 중학생들은 90.7%가 친구 같은 아버지가 좋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좀 친구가 되어서 서로 대화하고 서로 놀아주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이런 아버지가 있으면 좋겠다. 여러분 만일 이렇게 아버지가 시간을 내어서 자녀와 친구가 되었더라면 오늘날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저번 주간에 일본에 갔었는데 일본에 굉장한 사건이 퍼졌습니다. 아주 성적도 좋고 성격도 좋고 훌륭한 학생인데 60세 먹은 노인을 학교 가는 길에 머리를 때려서 실신시키고 40군데를 칼로 찔려 죽였습니다. 그런데 경찰에 자수해서 하는 말이 왜 죽였나고 하니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시험해 보려고 했다고 합니다. 왜 젊은이를 안 죽이고 늙은이를 죽이냐고 했더니 젊은이는 청춘이 구만리 같기 때문에 죽이기가 아까워서 늙은이를 죽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애가 왜 그랬느냐! 그것 보니까 어릴 때에 부모가 이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삭막한데 아버지가 그 아이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습니다. 이러므로 그는 비뚤어진 아이가 되어서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 하는데 이런 일을 했습니다. 일본 열도를 뒤흔든 사건이 또 하나 생겼는데 17살 먹은 사람이 버스를 납치해서 운전수를 칼로 목을 거누고 납치해서 수 백리 밖으로 자동차를 몰고 갔습니다. 그래서 한 여인은 찔려죽이고 많은 여성들을 칼로 찌르고 결국에 이틀 뒤에 잡혔는데 이런 청소년들의 탈선이 왜 생겼느냐? 이것은 가정에서 대화가 없이 삭막한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반발로 사회에 나가서 적대감을 가진 것입니다.

요새 남의 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 가정에 우리가 자녀를 키우면 이 자녀가 부모와 대화가 없을 때 이런 문제가 생겨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화의 상대가 되어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문화일보 99년도 9월 부부대화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니까 한 사람의 고민도 공동문제라는 포용적 자세로 서로 모여서 함께 고민하면 문제가 해결되고 가정이 따뜻해진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파헤쳐서 무엇을 잘 했다 못했다 하지 말고 현재의 문제를 가지고 서로 가족들간에 의논하라 자기와 생각이 달라도 반박 말고 끝까지 귀를 기울여 주는 데에서 마음을 놓고 가족의 훈훈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잘 선택하여 여유 있는 시간에 대화를 해야지 시간이 없는데 순식간에 "나 바쁘다 빨리 말해라 듣기싫다" 그리고 일어나면 대화가 안됩니다. 시간의 여유를 두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해결된다는 희망을 갖고 긍정적으로 진행하라고 하는 그런 기사를 기록한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족들이 모이면 서로 칭찬하고 고맙게 여겨야 가정이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 부부사이 대인관계에 진실한 칭찬 격려는 인간을 기쁘게 할 수 있는 특효약이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이 뭔 줄 압니까? 역시 당신이야!! 남편을 돈 주머니로 여기지 말고 미소와 칭찬으로 남편을 왕으로 대하면 아내를 저절로 왕비로 대우를 받게 됩니다. 남편의 욕구를 지혜롭게 파악해서 취미를 같이 하고 친정보다도 시댁를 좋아해야 합니다. 자꾸 친정 친정하면 남편이 소외됩니다. 싫더라도 시댁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시댁을 돌보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에 유명한 시인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부인이 아무리 돈을 벌어와도 친정에 다 갔다 주고 친정만 돌보고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완전히 실망해서 휘발유통을 집에 가져와서 온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죽었습니다. 너무나 아까운 사람입니다. 훌륭한 시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아내가 매일 듣고 싶어하는 말이 뭔 줄 압니까? 나 당신만 사랑해!! 아내에게 있어서 남편이 주는 돈은 애정의 척도입니다. 남편이 돈을 안 주면 아내는 절대로 남편이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돈을 주어야 아내가 그 돈을 받을 때에 나를 사랑하는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돈을 맡긴다는 것은 아내를 믿는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내를 믿어주고 밀어주어서 목표를 같이 나누어주면 아내가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칭찬하고 서로를 고맙게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자꾸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행복한 가정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행복이 오지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서 18절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했는데 우리가 항상 하나님께 기도해서 가정이 기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가정으로 만들어 달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에 최근 행복 지수를 보니까 IMF 이전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행복 지수가 65%입니다. 행복의 요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가정 화목이 제 1위입니다. 그 다음 건강이나 긍정적 사고나 친구, 대인관계 등 사회적 성공은 2.2%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의 화목이 행복의 절대적인 것입니다. 화목이 깨어지면 그 다음에는 아무리 사회적인 성공을 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2.2%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정이 행복하면 만사가 형통합니다. 가정에 활기가 차고 생활에 능력이 따릅니다. 가정에서 기쁨과 행복을 얻지 못하면 다른 곳에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불행한 가정에서 자라난 청소년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행복한 가정을 만들겠다는 마음의 결심과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래야 나도 행복하고 가족들도 행복하고 삶의 의미와 가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가정 주간을 맞이해서 우리의 가정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옵소서. 가정은 내버려두어서 행복이 굴러오지는 않습니다. 정원사가 정원을 다스려서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게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부부간에 부모 자식간에 노력해야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압니다. 도와주셔서 우리 모두가 이 지상에 사는 동안에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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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3:12-21 행복한 가정의 조건 /조용기 골3:12-21 행복한 가정의 조건 /조용기 Reviewed by □□□ on February 03, 2024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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