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8:1-3,요1:10-13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라 /한태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게선 본받을 점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두드러지는 한 가지 공통점은 바로 선한 마음으로 대접하는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그의 조카 롯도 그랬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절 이하의 삭개오도 그랬습니다. 사도행전 10장 25절 이하에 보면 백부장 고넬료도 사도 베드로를 정중히 대접한 것을 봅니다. 모두가 사람을 대접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대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습이 한결 같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사순절은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영접의 모습을 가르쳐 주시던 때입니다. 우리도 이 기간에 우리들 자신의 메마름을 회개하고 영접하는 자가 됩시다. 성도와 이웃을 영접할 줄 모르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겠는가?

성경은 말씀합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13; 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 12)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 13)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참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예수님을 치안소란 및 체제반동자로 죽이려 하였고 교권을 가진 자들은 예수님을 정통신앙을 반대하는 신성모독자로 제거하려 하였으며 부자들은 자기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예수님을 말씀을 거부하였습니다. 다만 가난하고 마음이 열린 민중들만 예수님을 환영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진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다고 하는 자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영접한 것인가요? 예수님을 영접한다는(receive)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상상하면서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것인가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마음속에 모셨다고 믿고 생각하는 것인가요?

영접하는 것은 receive입니다. 나는 receive를 풀어 three re-로써 영접하는 자들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삶을 되새기는 것(remind)입니다.

구원은 순간적으로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구원은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마음속에서 잃어버리는 순간, 십 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 있습니다. 구원을 완전히 보장된 것으로 보는 자들이 구원파들입니다. 그들은 한번 구원받았기 때문에 회개도 기도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고 세례 받고 직분을 받았다고 해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을 마음의 지성소에 모셔야 합니다. receive하는 것은 remind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삶을 되새기며 마음 속에 기억해야 합니다.


2.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세상의 헛된 욕심을 끊는 회개를 하는 것(repent)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의 지성소에 영접한 자들은 세상의 헛된 욕심을 끊게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하면서도 세상 욕심에 가득 차 있으면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욕심을 영접한 것이고, 우상을 믿는 것이고, 돈을 모신 것입니다. receive하면 repent하게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집으로 영접하고 모든 토색한 것을 4배로 갚고 재산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욕심과 정욕은 끈질기게 붙어 다닙니다. 진리를 알면 자유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어느 날 훌쩍 하나님께로 가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욕망은 땅따먹기놀이 하는 것입니다. 저녁에 부모님이 부르시면 손을 훌훌 털고 집으로 가야 합니다. 이렇게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면 우리도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하늘로 떠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믿음의 부요, 하늘과 진리의 세계를 보게 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세상의 것들은 잠깐 빌려 쓰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처럼 세상을 대신하여 구원하는 것(relief)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은 내가 죽고 주님이 사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의 짐을 지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대신 내가 십자가에 달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구원시켜 드리자. 세상의 구원투수가 됩시다. 친절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어린 격려 한마디가 상처받고 절망한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뒤에서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박수치며 성원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외롭고 힘든 사람을 구원시켜 주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홈페이지 찾아와서 따뜻한 사랑의 말 한마디를 주는 사람에 의해 힘을 얻습니다. 이렇게 서로 간에 따뜻한 말 한마디가 구원과 해방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대는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까? 물론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접을 말로만 생각으로만 상상으로만 하지 말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생각하고(remind) 세상의 헛된 욕심을 끊어버리고(repent) 세상을 구원하는(relief) 작은 예수들이(little Jesus)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들에게서 예수님처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나 가정에 하나님을 영접하고 일생동안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성령님을 의지 하며 살아가는 생활이 예수님을 영접한 생활입니다.

“영접 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본문에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3:20에는 “볼찌어다 내가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과 더불어 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님을 왜 영접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19:10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죄 값으로 죽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 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이 우리가 주님을 영접할 이유가 됩니다.

다음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0:10에 내가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죄 값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우리는 보다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해야합니다.

다음은 우리와 함께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한계시록3:20에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주의 성령께서 평생을 우리와 동업하여 주시고 우리와 동업하여 주실 때 우리는 승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나의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들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해야할 이유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요한복음1:12절에 “영접하는지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권세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처녀가 결혼하면 호적이 남편 집으로 옮겨져 성씨까지도 남편 성을 따라가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세상의 마귀와 죄악의 호적에서 옮겨져 천국의 생명책에 하나님의 아들딸로 입적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상 천하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천지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러면 예수님을 어떻게 영접해야 될까요?

성경말씀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아멘으로 받아 들일 때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16:31에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는데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아멘으로 화답하며 그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 들일때 구원의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마가복음9:23에 “할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 들에게는 능치 못 할일이 없느니라”고 말했으며 이사야41:10에는 “두려워 말라 내가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귀한 말씀을 들을 때 “아멘”으로 화답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읽을 때나 들을 때 아멘하지 않고 입을 꼭 다물고 있으면 그 말씀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말씀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말씀도 놓치지 말고 아멘으로 받아 들일 때 그 말씀을 듣고 잊어버려도 콩나물이자라는 것을 우리가 볼수는 없어도 자라듯이 우리의 신앙이 조금씩 조금씩 자라게 됩니다. 콩 나물을 기르는 것을 보면 물을 붓고 그물이 빠지면 또같은 물을 반복하여 주는데 그렇게 물을 먹으며 콩나물은 쑥쑥 자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들을때 듣고 교회 문을 나가자마자 설교의 내용은커녕 본문말씀이나 제목도 다 잊어 버린 것 같지만 그것이 반복되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을 기쁘게 아멘으로 받아 들임으로 주님을 영접할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 들일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문밖에서 두드리신다고 했습니다. 내가 너에게로 들어가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마시며 일생동안 함께 살고 싶으니 문을 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때로는 축복으로 때로는 책망으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십니다. 가정의 환난이나 실패로. 혹은 내게 있는 제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사건을 통해 내가너와 더불어 문제를 해결해 주겠으니 마음의 문을 열라고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럴 때 교만과 불신앙으로 마음의 빗장을 걸고 있으면 주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돌 감람나무는 아무리 정성을 들여 길러도 아름다운 꽂을 맺을 수도 없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돌 감람나무를 끊어버리고 참 감람나무를 접 붙일때 참 감람나무의 진액과 수액이 올라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죄성. 악성. 인간성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할 때 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참된 구주로 영접을 해야 합니다.

마치 종이 상전을 영접하듯이 그리고 제자가 스승을 영접 하듯이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종이 되고 제자가 되며 주님은 우리의 상전이요 스승인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 유명 의사를 영접하듯이 그리고 죽을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살려줄 사람을 영접하듯이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주님이야말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해주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태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죄악된 과거는 몽땅 고백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나의 마음속에 구주로 영접했으면 지난날의 죄와 허물을 주님앞에 다 고백해야 합니다. 죄를 숨겨둔채 예수님을 영접할 수는 없습니다. 죄를 낱낱이 토설하고 주님을 영접하므로 우리는 용서함을 받고 용서받은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마귀의 자식들로서 마귀를 주인으로 삼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마귀에게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한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 예수님으로 바뀌었으니 이제는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예수님만 따라야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의 태도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마음속 왕좌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의자가 하나있는데 대개는 그 의자에 “나”라고 하는 존재가 앉아있습니다. 언제나 내가 마음의 주인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고 충돌하고 하는 것은 결국 자기를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든지. 직장에서든지. 교회에서든지. 사회에서든지 “나”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으면 불화가 생기고 분열이 일어나 갈라서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사람은 마음속 의자에서 “나”는 내려앉고 대신 그 자리에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내가 아니라 주님이 모든 범사를 주장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시면 병마도 물러나고 더러운 죄악도 물러가고 마귀의 역사도 떠나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죽음은 부활의 역사로 일어나고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기적과 영광과 축복과 승리만이 계속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나의 마음속의 왕좌에 모실 때 저주는 물러나고 질병과 문제는 떠나가고 날마다 승리한 삶을 살게 됩니다.


넷째로: 그러면 예수님을 영접한 결과는 무엇일까요?

먼저 과거를 청산 받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지난날에 어떤 죄를 지었던지 모든 죄를 청산 받게 됩니다.

기생 라합은 뭇 남성들에게 술 팔고 웃음 팔고 몸 팔았던 여자였지만 주님을 영접한 뒤로 그의 과거는 묻혀지고 예수님의 족보에 올려지고 그의 후손 중에서 메시야가 탄생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하면 낡은 집을 헐고 새집을 짓는 것과 같이 과거는 청산됩니다. 실패하고 병들은 주인은 물러가고 권세 있고 힘 있는 새 주인을 모시는 것과 같이 과거가 깨끗이 청산되는 것입니다. 이는 간음하다 잡힌 여자나 다섯 남편을 데리고 살던 여자라도 주님을 만났을때 그의 과거가 청산 되었던 것과 같습니다.

또한 우편 강도가 십자가위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자신의죄를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 그의 과거를 묻지 않고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결과 우리는 속죄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1)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면 우리의 죄를 덮어주십니다.

시편85:2에“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여 주시고 저희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를 일일이 들추어내고 손가락질 하고 비난한다 해도 주님은 모든 죄를 덮어주십니다. 주님을 영접한 사람에 대하여 주님은 크고 작은 모든 죄를 다 덮어주시어 죄가 나타나지 않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2) 우리 죄를 주님의 등뒤로 던지셨습니다.

이사야38:17에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뒤에 던지셨 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죄를 등뒤로 던지셨다는 말은 더 이상 죄를 보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양심과 마귀와 율법주의자는 나의 죄를 보지만 주님을 영접하면 최후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은 나의 죄를 등뒤로 던져버리시고 보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난날의 죄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고 회개하면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3) 우리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십니다.

미가서7:19에“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다”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 가운데 던져 버리십니다. 설마 이런 죄까지 주님이 용서해 주실까 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므로 우리의 모든 죄를 바다 가운데 던져 지는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우리 죄는 안개같이 사라집니다

이사야44:22에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안개가 자욱이 끼어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안개는 태양이 솟아오르면 자취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의 허다한 죄는 주님을 영접함에 따라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5) 우리 죄를 기억지도 않으십니다.

이사야43:25에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양심은 내 죄를 기억하고 마귀도 율법도 사람도 내 죄를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에 대해서는 죄를 기억지도 않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 시편103:12에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고 했습니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은 먼 거리입니다. 이렇듯 멀리 옮겨버린 죄를 다시 찾아 우리를 정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멀리 옮겨 버린 죄악을 다시 찾거나 버린 죄악을 가져다가 우리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의 자격이 변화 됩니다. 마귀의 백성이었던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생 보호해 주시며 하늘나라의 상속을 받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가 고맙고 감사하여 헌신 충성하며 언제 어디서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자가 됩니다. 또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을 자랑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갈 때 까지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생명을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구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로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해야 하는데 영접하기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죄악 된 과거를 모두 토설하여 회개를 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을 마음속에 왕좌에 앉혀드리고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합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과거의 죄는 깨끗이 청산되고 하나님의 아들딸로 자격이변화가 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속에 영접함으로 구원받고 생활이 변화되며 축복받는 여러분들이 다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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