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환목사/이슬같은 은혜 (창 27:26-29)
가을은 이슬의 계절입니다. 이른 밤 부터 새벽까지 이슬은 우리의 옷을 적시고 얼굴을 적시고 머리를 적시는 것을 우리가 많이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도 일 년 내내 이슬이 많이 맺히는 나라입니다.
260일 동안 이슬이 내리는 나라입니다. 일 년에 비는 며칠 내리지 않습니다. 몇 달 내리지 않습니다. 강우량도 심히 적습니다. 수많은 동물과 식물과 곤충들 그리고 뱀이나 개구리들이 어떻게 사는 줄 아십니까? 그 광야에서 살아가는 것은 모두 이슬 때문에 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은 축복의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에 이슬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이슬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이지 않게 이슬처럼 내리시는 은혜, 성령의 은혜가 이슬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이슬과 같이 우리에게 늘 임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항상 이슬이 내리는 아침에 만나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양식, 우리 영혼의 양식, 하나님은 이슬처럼 어느 한 순간 할 것 없이 쉬지 않고 우리를 지켜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이슬 같은 은혜를 받기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항상 이슬 같은 은혜를 주셔서 내 영혼을 하나님께서 정결하게 하시고 깨끗하게 하시고 내 속 사람을 주의 생명으로 소생시켜 주시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항상 같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슬 같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모두의 은혜의 이슬이 되시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항상 말씀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주의 영이 오늘 예배시간에 우리 모두에게 은혜로 임하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새벽에 주님 앞에 나오면 이슬 같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주의 이슬이 내 마음, 내 영
혼에 내리는 것입니다. 항상 내리는 것입니다. 소나기는 몇 번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이나 세상이 주는 번영은 소나기처럼 지나갑니다. 다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는 내리고 누구에게는 안 내리는, 그래서 옛 어른들이 말하기를 소나기는 소 등을 타고 이쪽은 내리고 이쪽은 안 내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전국에 차를 타고 다닐 일이 많은데 여기서 소나기가 오는데 공항에 가 보면 소나기가 안 옵니다. 명일동은 내리는데 강남에 가도 안 내리는 일이 많습니다. 천호동에는 내리는데 명일동에는 안 내리는 일이 많습니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이천에는 내리는데 여주에는 안 내립니다. 그러나 이슬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지식이나 물질이나 권력이나 세상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은 내 속에 이슬이 내릴 수는 없습니다. 내 마음은 항상 공허하고 메마르고 사막같이 답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 영혼 깊은 곳에 내립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도 내립니다. 내 모든 속사람, 내 모든 생각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은 안 내리는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모두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슬과 같이 아무 부담 없이 우리를 촉촉하게 해 주십니다. 소나기는 우리가 보는 대로 내릴 때는 엄청나게 내립니다. 그러나 안에 깊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도시의 시멘트 문화 속에서 사니까 그런 것을 몰라서 그러는데 소나기가 막 한 시간을 쏟아 부으면 엄청나게 많이 오는 것 같지요? 그러나 땅을 파 보면 5센티도 안 들어갑니다. 겉에만 싹 쓸어가 버리고 소나기가 와서 진 홍수는 몇 시간만 지나면 싹없어져 버립니다. 다 흘러가버립니다.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이나 지식이나 과학이나 세상에 있는 행
복은 잠간 한 순간에 왔다가 지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행복은 잠간 소나기처럼 왔다가 지나가 버리고 다 그 사랑을 잃어버리고 답답해하고 허무해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일 년 내내 어느 날 하루도 남김없이 항상 내리는 것입니다. 나의 평생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우리는 은혜 안에 살 수가 있습니다.
그저께 신문에 보니까 노인들이 너무 자살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금년에 와서 노인들의 자살이 OECD국가 중 최고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외롭습니다. 허전합니다. 갈 곳도 없습니다. 자녀들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아들은 장가를 보내면 하나의 남편이 되는 것이지 자식으로는 끝난답니다. 그러니까 모두 허전해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때 남편이나 아내가 죽으면 그만 따라서 죽는 일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 오늘 젊은 사람도 이렇게 허전해 하는데 노인들이 얼마나 허전해 하겠습니까? 물질문명 속에 갈 곳이 없습니다. 허전해 하는 것입니다. 낙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고 주의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 앞에 기도하는 성도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에녹과 같이 하나님은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인도해 주시고 내 머리가 백수가 될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은 계속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끝날 까지 우리는 감사하며 살 수 있고 기쁨으로 살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이슬처럼 내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부작용이 없습니다. 홍수는 부작용이 많습니다. 와서 좋은 것도 있지만 쓸어 가버리는 것입니다. 홍수에 휩쓸려서 재산을 잃고 집을 날려 보내고 홍수 때문에 생명을 잃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이슬에 빠져서 죽었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슬은 절대로 부작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모두에게 유익이 되고 전체에 다 골고루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폭포수와 같이 막 쏟아지는 것 좋지요. 도박을 해서 돈 벌 때는 좋지요.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계속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한 번 소나기가 왔다고 해서 계속 소나기가 오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도박판에 가는 사람이 다 망하는 이유가 한 번 쏟아지는 것을 생각하고 갔다가 다 망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이나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
은 한 번 확 쏟아지지 그 다음에는 뚝 끊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 임하고 모두에게 임하고 변함없이 임하고 조용히 임하고 영원히 임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어느 것은 잘 되고 어느 것은 못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가 이슬과 같이 임하는 줄로 믿습니다. 세상은, 권력은 어마어마하게 있어도 건강이 없든지 건강은 아무리 좋아도 물질이 없든지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이 모든 건 있는데 행복은 없듯이 뭔가 이 세상은 있는 것 같지만 없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특별한 건 없지만 이슬과 같이 모든 것이 채워져서 항상 감사하게 되고 항상 내 잔이 넘쳐서 행복하게 사는 줄로 믿습니다.
이슬은 우리를 자라나게 합니다. 우리를 매일 매일 생활에 부족함이 없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늘 기도해야 됩니다. 주님을 가까이 해야 됩니다. 우리 이슬 되시는 예수님을 늘 품고 살아야 이슬 같은 은혜를 주님은 늘 내려주십니다. 이슬은 낮에 내리지 않습니다. 주로 밤에 내리고 새벽에 내립니다. 대낮같이 밝고 좋을 때 이슬이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캄캄하고 어둡고 절망적일 때 하나님의 은혜는 찾아오는 것입니다. 세상은 모두 다 잘 될 때는 모두 찾아오고 이 세상 혼자서 행복할 수 있지만 그러나 밤이 오면 다 떠나가고 맙니다. 캄캄한 밤, 어두운 밤에 나를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외로운 밤입니다. 슬프고 고독한 밤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는 그 때에 오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잠을 못 자는 사람이 5천
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밤이 무섭다고 합니다. 밤이 너무 싫다고 합니다. 한 잠도 못 자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저도 어떤 분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10년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는 분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세상이 지옥 같다고 합니다. 잠을 못 자니까 밤이 싫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밤에 이슬이 내리는 것입니다. 절망적일 때 이슬이 오는 것입니다. 환난 당할 때 이슬이 오는 것입니다. 눈물 흘릴 때 이슬이 내리는 것입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이슬이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의 밤은 주님을 만나는 밤입니다. 이슬이 내리면서 우리는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환난 때문에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새 생명이 탄생합니다. 하나님은 밤에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
를 위로해주시고 용기를 주십니다.
일본의 유명한 작가 미우라 아야꼬 라고 하는 ‘빙점’ 을 쓴 작가가 있습니다. 이 분은 온갖 병에 다 걸려서 종합병원과 같았습니다. 결핵과 파킨슨병에 걸려 있고 피부질환에 걸려 있고 암에도 걸렸습니다. 모든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14년 동안 병원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병석에서 온갖 질병과 사투를 하면서 고난당하면서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애인이 이 절망과 위기에 있는 이 사람을 찾아왔는데 그 남자가 미우라 미찌요라고 하는 남자였습니다. 이 분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은 은혜의 이슬이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이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권고하면서 미우라 아야꼬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게 했습니다. 감사의 마음이, 주님의 은혜의 이슬이 이 여인에 임한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이슬 같은 은혜가 미우라에 임했습니다. 아야꼬의 가슴에 이슬이 임했습니다.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무 소망 없던 이 여인이 움직이게 되었고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건강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42세에 드디어 병원에서 일어나 빙점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이 분이 쓴 책만 240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80세가 되어도 강하게 주님을 의지하며 살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녀의 책은 16개국의 외국어로 번역이 되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아야꼬를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캄캄한 절망과 위기 속에서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대낮에 만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웃고 즐거울 때 주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조명을 받을 때 주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다 밤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밤이 안 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밤에 우리 주님의 이슬의 은혜를 받는 사람은 소생하게 되는 것이고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젊은이나 노인이나 할 것 없이 인생을 포기하고 자살하게 됩니다. 오늘 주님은 밤에 이슬처럼 내립니다. 사랑의 은혜가 온갖 위로의 은혜가 주님으로부터 하늘로부터 임하는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미우라 아야꼬가 지은 책가 운데 이런 글이 나옵니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습니다. 아프지 않았더라면 접근하지 못할 장소가 있습
니다. 아프지 않았더라면 우러러 뵈지 못할 거룩한 얼굴이 있습니다.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나는 인간일 수조차 없었습니다. 아팠기 때문에 기도했고 아팠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아팠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고 아팠기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볼 수가 있었고 아팠기 때문에 신앙인이 되어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분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주님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캄캄한 밤, 어두운 밤, 이 절망의 밤에 주님은 아야꼬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 은혜가 소생하게 하고 글을 쓰게 해서 수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주게 될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태어날 때 한 번 우는 것입니다. 엄청난 그
고통을 가지고 애가 소리소리 지르며 웁니다. 두 번째 태어날 때도 웁니다. 캄캄한 밤을 만나 환난이나 사고나 재난이나 엄청난 위기 앞에서 눈물 흘릴 때 우리 주님을 만나면 그 영혼은 다시 살아서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이슬과 같은 은혜를 받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굉장한 돈을 벌고 어마하게 소나기같이 행복해서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와 함께 할 때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을 만나는 밤이 되고 기도의 밤이 되고 신앙의 눈을 뜨는 밤이 되고 주님의 손을 경험하는 밤이 될 줄로 믿습니다. 저에게 해마다 꿀을 한 말씩 보내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저는 이 분이 한 해 두 해 보내고 안 보낼 줄 알았는데 계속 보냅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고마워서 금년에 이 분에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왜 보내시느냐고, 저는 꿀이 없어도 된다고, 목사님이 잡수시라고,’ 그랬는데 그 분에게 편지가 왔습니다. 이 분은 지금부터 15년 전에 명일동에서 장로회 신학대학을 다녔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두 평 되는 방에 모든 걸 놓고 거기서 음식을 먹고 거기서 살면서 아내는 매일 직장을 나가고 이 분은 그걸 가지고 신학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에 나와서 늘 앞자리에 앉아서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그 분이 집사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신학교 학생이었습니다. 늘 여기에 와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후로 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서 지금 귀한 교회에 목회를 하지만 여기서 캄캄한 밤에 은혜를 받았던 때를 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때 그 분이 받은 은혜를 생각할 때 목사님을 잊을 수가 없어서 꿀을 보낸다는 겁니다. 그 분은 좋을 때 주님을 만나는 게 아니었고 15년 전에 눈물 흘리고 심히 힘들고 생활도 어렵고 모든 것이 어려웠을 때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좋을 때는 사람을 만나지만 캄캄한 밤을 만나면 다 떠나갈 때 우리는 반대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어둡고 캄캄할 때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야곱은 고향을 떠나서 얼마나 외롭고 힘든 생활을 할 때, 집에서 언제 야곱이 잠을 잘 수 있었습니까? 들에서 잠자고 일하고 양을 먹일 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항상 이슬 같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어떤 일을 당할지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반드시 일으켜주시고 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때는 차가운 새벽이었소 주님 눈 속에 여명 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오 주여 주님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 이제 영원한 이 꿈속에서 깨이지 않게 하소서♬
어두운 밤, 캄캄한 밤, 실로암을 찾아다니는 이 장님이 주님을 만나면서 주님 품속에 여명이 있는 걸 느낀 것입니다. ‘주님은 내 눈을 뜨게 할 수 있다. 주님은 나에게 좋은 날을 주신다. 실로암을 주신다.’ 주님을 찾아 간 이 소경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로암에 가서 눈을 뜨고 새벽을 맞이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오늘 캄캄한 밤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분명히 새벽이 오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이슬 같은 은혜입니다.
이슬은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녀들에게 세상 사람들처럼 소나기 같은, 폭포수 같은, 태풍같은 은혜를 주지 않고 이슬 같은 은혜로 우리 모두를 축복하십니다. 오늘 창세기 27장 28절에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바로 이슬의 은혜를 주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야곱에게 하늘의 이슬을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이슬같이 옵니다. 신명기 33장 13절에는 “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하건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에 저장한 물로 복을 주리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보화가 하나님의 보물인 이슬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이, 요셉
과 요셉의 후손에게도 너희들에게는 하늘의 이슬 같은 복이 임하리라. 요셉이 감옥에 가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잖습니까? 우물 속에 빠졌을 때도 실로암의 하나님이 건져주시잖습니까? 늘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요셉에게 이슬 같이 임했던 것입니다. 시편 133편 3절에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그 속에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하나님은 헐몬산인 높은 산에서 그 이슬이 내려와서 골란고원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의 평야에 이슬 같이 내리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은혜가 헐몬산 같이 높은 곳에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이슬 같은 은혜가 임하는 줄로 믿습니다. 호세아 14장 5절에 “내가 이스라엘에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같이 피겠
고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슬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이슬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이슬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오늘도 이슬 같은 은혜로 인도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슬 같은 은혜를 받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늘 이슬의 은혜를 받는 길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이슬은 낮은 곳에 오니까 겸손해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도 겸손해야 되고 사람 앞에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서로 친구가 되려면 친구를 높이 보아야 그 친구가 오래 갈 수 있습니다. 친구를 자기보다 낮추면 오래 갈 수 없습니다. 부부간에도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아내를 자기보다 높이 보아야 그 행복이 오래 갈 수 있습니다. 자기가 남편보다 높아지고 내가 뭐 실수했다, 잘못 결혼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은혜의 이슬이 안 내립니다. 선생님을 높이 보면 학생에게 이슬의 은혜가 내립니다. 성도들을 높이 보면 내게 이슬이 옵니다. 목사님을 높이 보면 성도에게 은혜가 옵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국민을 높이 보는 그 지도자는 나라의 지도자에게 이슬이 내립니다. 우리 청와대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려면 청와대에 계시는 분이 온 국민을 귀히 여기고 감사히 생각하고 그러면 청와대 안에 은혜가 임합니다. 온 국민이 나라의 지도자를 귀히 보면 나라 전체에 이슬이 내립니다. 오늘 세계의 잘 사는 나라, 행복한 나라는 지도자를 다 귀히 생각합니다. 미국에는 국회의원 한 사람도 대통령을 보고 거짓말이라는 한마디 했다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짓말은 욕도 아닙니다. 우리는 막 합니다. 그러면 누가 손해겠습니까? 자기에게 손해입니다. 자기 아내도 이렇게 귀하게 높이 보고 좋은 말 하면 남편인 자기에게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막 아내를 보고 욕을 함부로 하고 무시하는 말을 하면 내게 이슬이 안 내립니다. 자녀도 귀히 보면 부모에게 은혜가 오는 것이고 부모를 귀히 보면 자식에게 은혜가 내립니다. 모두를 귀히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어느 목사님은 머리가 대머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사모님이 머리하는 걸 그렇게 싫어했습니다. 파마를 하거나 고대하는 걸 싫어하고 생머리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도 여자니까 머리를 너무 하고 싶은데 목사님이 그러니까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루는 결심하고 파마를 하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너무 화를 내시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냐고, 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파마를 했느냐고, 여자들은 여자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여자의 본성은 예뻐지고 싶은 것입니다. 꾸미고 싶어 합니다. 머리를 하고 싶어 합니다. 여자에게 소중한 게 머리입니다. 그래서 어디를 갈 때는 여자에게 충분히 다듬을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어디에 행사가 있을 때는 삼, 사일 전에 알려야 합니다. 그래야 다 준비를 합니다. 남자하고 다릅니다. 충분한 다듬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됩니다. 물론 자금까지 대 주어야 합니다. 여자는 예뻐지고 싶습니다. 남자하고 다릅니다. 자기 입장에서 뭐라고 하면서 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았느냐고 하니까 사모님이 내가 정말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되느냐고 당신은 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대머리가 되었냐고 막 쏘아 붙였습니다. 서로를 존경해야 합니다. 겸손하면 모든 것이 은혜가 됩니다. 집에서도 들에서도 은혜가 되고 식당에 가서 종업원을 높이 보면 내가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종업원을 절대로 낮추어 보면 안 됩니다. 어떤 분은 식당에 가 보면 종업원을 못 살게 합니다. 막 또 가져오라, 가져오라 하지 말고 자기가 갖다 먹으면 될 거 아닙니까? 높이 보십시오. 종업원도 높이 보십시오. 그러면 내게 이슬이 내립니다.
이슬은 풀숲에 내립니다. 시멘트나 콘크리트나 돌이나 바위에 내리지 않습니다. 참 신비합니다. 시골에서 보면 이슬은, 거기는 건조하고 딱딱합니다. 그러나 풀숲에는 이슬이 전부 또르르 맺혀서 떨어집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도 예루살렘에서 차를 대고 아침에 일어나면 자동차가 세차한 것 같다고 합니다. 이슬이 맺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풀잎에 이슬이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 얼굴에 이슬이 맺히고 기도할 때 눈물의 이슬이 맺히고 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내 가슴에 은혜가 임해서 이슬이 맺힐 때 우리가 행복한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우리 이슬이 눈에 내리지 않아서 너무 증오의 눈, 미움의 눈, 교만한 눈을 가지고 모두 눈에 살기가 등등합니다. 입술에도 이슬이 맺혀야 됩니다. 감사의 입이 되고 겸손한 입이 되고 사랑의 입이 되어야 합니다. 폭력을 휘두르고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장수의 비결, 행복의 비결은 적게 먹고 적게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을 보십시오. 백세 이상 된 사람이 제일 많은 나라가 일본인데 그 비결이 적게 먹는 데 있습니다. 일본에 가서 반찬을 주는 것 보면 한 숟가락에 다 먹을 수 있습니다. 너무 한심하게 줍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세계에 잘 삽니다. 얼마든지 많이 먹을 수 있는데 안 먹습니다. 많이 있다고 많이 먹는 게 아닙니다. 적게 먹습니다. 그것이 건강의 비결이요 장수의 비결이요 행복의 비결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입술에도 미움의 입이 되고 비판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우리의 입이 너무 폭력을 하는 입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입이 무섭습니다. 살벌한 입술이 되었습니다. 주의 이슬이 우리 입술에 내리면 사랑의 입술이 되고 감사의 입술이 되고 기도의 입술이 되고 찬송하는 입술이 될 줄로 믿습니다. 입술에 주의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얼굴에도 이슬이 내려야 합니다. 화장을 해 보면 얼굴이 촉촉해야 화장이 잘 받습니다. 얼굴이 탁탁하면 천하에 없는 화장도 안 됩니다. 화장품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만져보았을 때 촉촉해야 화장이 잘 받습니다. 오늘 우리 얼굴표정도 좀 사랑의 표정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이 좋은 나라가 오늘 우리 인격이 너무 콘크리트화가 되었습니다. 산업화로 옮겨지고 지식과 과학이 발달하고 물질우위의 시대에 물질만능을 앞세우고 살아가면서 우리는 정말 너무 삭막해졌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믿
고 다른 게 무엇입니까? 눈이 다르고 입이 달라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웃끼리 서로 사랑하며 사는 이슬 맺힌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새벽이슬 같은 청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10편 3절에 보면 하나님 앞에 나오는 청년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일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우리 교회의 모든 청년들, 대학생들 수 천 명이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하는지 모릅니다.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입니다.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새벽이슬 같은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이웃을 향해서 고소, 고발하는 게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통계를 들어보십시오. 2001년에 우리 고소가 507,107건입니다. 2002년에는 524,145건입니다. 2003년에는 584,225건입니다. 2004년에는 626,919건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물고 늘어지고 저놈을 죽여라 저놈을 잡아가라 저 집구석 저 사업 저 가정 넘어뜨리려고 옆집에서 생명 걸고 물고 늘어지는 것이 62만입니다. 2004년에 일본은 얼마인 줄 아십니까? 우리보다 일본이 인구가 얼마나 많습니까? 일본도 똑같은 산업사회, 우리보다 10배나 앞서가는 선진국입니다. 그런데 18,007건 밖에 없습니다. 1만 8천 건 밖에 없는데 우리는 62만 건이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에 비해서 30배나 됩니다. 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우리는 이웃이 너무 무섭습니다. 2001년에는 11,280건 밖에 없는데 우리는 50만 7천 건이니 여러분 제발 고소 고발하지 마십시오. 세요. 화해 좀 하십시오. 요사이는 목사, 장로들이 악해서 말도 못합니다. 교회에 송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총회 안에도 고소 고발하는 채널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제해놓고 일반 법정으로 가서 목사 장로가 새파란 30대 판사 앞에 앉아서 서로 죽여 달라고 하니 이게 말이 됩니까? 제발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부드러운 풀 같은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깨끗하고 순결한 사람에게 임합니다. 새벽입니다. 낮이 아닙니다. 하나님 은혜가 믿음으로 살고 순결하게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옵니다. 우리 모두 이 세상을 따라가지 말고 겸손하게 살고 부드럽게 살고, 기도하면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기도하고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면 순결하게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이슬처럼 내립니다. 오늘 나오신 우리 모든 성도의 가정에 주의 이슬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심령위에 주의 이슬이 가슴에 주의 이슬이 그래서 눈물이 나고 감사하고, 가정에 주의 이슬이 내려서 우리 가정 전체를 돌보시는 주의 은혜를 감사하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전체 위에 저 북한 동포위에 주여, 이슬을 내려주옵소서.
이 나라의 앞날 위에 우리의 이슬이 되시는 주의 은혜가 길이길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거룩한 주의 날 이슬 맞으러 주님께 나왔습니다. 너무 강퍅하고 더러운 우리 마음, 온전하지 못한 우리 마음, 미움과 증오로 가득한 우리 마음에 주여 이슬이 되어 주시옵소서. 이슬 같은 복을 주옵소서. 이슬 같은 은혜를 주옵소서.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가 오늘도 우리에게 한 영혼, 한 영혼, 모든 심령위에 내려주셔서 우리 마음이 깨끗하여져서 거룩하고 천사같이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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