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돌베개를 베고 (창 28:10-22)
(요약)
야곱이 아람으로 피하려는 목적은 에서의 보복을 피하고 또 동족과 결혼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우리는 철저히 죄에서 죽고 의에 사는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가 머문 루스는 방황의 장소이지만 하나님을 만난 곳이듯 우리의 고난은 신앙을 위한 은혜이다. 그가 가장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듯 하나님께서는 어려울 때 더욱 함께 하신다. 그에게 주신 축복은 조상에게 주신 것과 동일한 것으로 우리가 말씀에 견고히 서야 함을 시사해준다. 그리고 깨어난 후 제단을 쌓았듯 체험에 머물지 말고 신앙수립에 힘써야 할 것이다.
(강해)
본문은 야곱이 외가 밧단아람 땅으로 도피하는 도중, 벧엘 광야에 나타나신 하나님으로부터 위로와 약속을 받고 감격하여 단을 쌓고 서원하는 장면입니다. 이때가 야곱의 나이 77세, 향후 20여년에 걸친 길고도 험한 객지생활이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특히 벧엘에서의 이 환상 체험은 그의 일생의 분수령을 이루는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몇 가지 진리를 발견합니다.
1. 죄에 죽고 의에 사는 신앙의 모형입니다.
야곱이 아람으로 피신한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에서의 보복을 피해서, 다른 하나는 동족과 결혼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두 가지의 동시적인 모형은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사는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하나는 떠나고 하나는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죄를 원수 보듯 피해야 합니다. 죄에 잡히면 죽어요. 그러므로 야곱의 심정이 되어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죄를 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라”(딤전6:11) 했고, 딤후2:22에는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그랬고, 히6:18에는 성도를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를 떠날 정도가 아니라 미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사랑의 대상을 구하고 그 대상을 위하여 어떤 세월도 수고도 대가도 개의치 않았던 야곱의 심정처럼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의 진리를 사모하고 의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이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 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5:10) 하셨습니다. 본문의 이 야곱의 꼭 그 심정, 사력을 다해 피하고 죽기까지 사모하는 이것이 우리가 취할 영성의 귀한 자세입니다.
2. 우리 삶의 현주소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10-12절에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랬습니다.
이 구절에서 야곱이가 돌베개를 베고 잤던 장소에 대해서 ‘한 곳, 거기서, 그 곳, 거기’ 등등 번번이 강조합니다. 야곱도 잠 깨어 그 장소에 대해서 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이야기하죠. 야곱이 지나갔던 브엘세바에서 밧단아람까지는 약 800km나 떨어진 먼 길입니다. 거리로도 멀지만 이곳이 사막이란 점에서 대단히 위험한 길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도 광야에서 몇 번이나 죽을 뻔했습니까?
더구나 그 장소가 ‘루스’라고 했는데 ‘길을 잘못 들다’는 뜻입니다. 당시에 사막의 이 장소에 들어오면 방황하다 죽는 장소였습니다. 특히 오가는 길 지켜 주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시라고 한 야곱의 기도에서 그 길이 얼마나 험악했는가를 짐작하게 합니다. 그래서 내가 왜 이런 곳으로 빠져들었을까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장소가 잘못 들어온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신 곳임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에 귀한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고 방황할 때가 많지만 이것은 결코 잘못 걸려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시려고 인도하신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실망치 말고 회개하여 신앙생활 잘하면 야곱에게 나타났듯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에 사닥다리가 놓이고 천사들이 축복을 가지고 오르락내리락하고 우리의 삶은 천국으로 변화되어지게 됩니다. 이 삶의 주소를 잘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원망 말고 우리의 현실을 신앙의 훈련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3.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더욱 함께 하신다는 교훈입니다.
야곱이 형을 피하면서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창32:10에 “내 지팡이만 가지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또 언제 추격해 올지 모르는 도피자의 심정 그리고 자기를 받아 주리라는 기약도 없이 가야했던 외롭고 고달픈 광야 나그네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자기 조상에게 하신 그 약속을 다시 들려주시며 이삭의 계승자가 에서가 아닌 야곱임을 공식으로 선언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가장 외로울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함께 하십니다. 가장 취약할 때에 이적이 가장 많이 나타납니다. 사사기 보세요. 이적으로 가득하지요? 이스라엘 보세요. 광야시절 이적이 가장 많죠? 어떤 아이가 백혈병으로 죽어가면서 무수히 예수님을 만나고 천사를 만나고 천국을 보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 절망의 아이에게는 그런 은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울 때 더욱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완악한 악인일수록 혹은 연약하고 무식할수록 더욱 은사가 많이 주어집니다. 그래야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적이 있어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요 기적이 없어도 더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4. 말씀을 나에게 적용시켜야 합니다.
13-15절에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조상에게 하신 말씀과 동일한 말씀으로 야곱에게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실 때 예수 안에서 성경 안에서 복주십니다. 예수 떠나고 성경 떠난 어떤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항상 듣는 성경 말씀 끝까지 부여잡고 나가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고후1:20, 고전10:11).
5. 체험에 그치지 말고 신앙 수립에 힘써야 합니다.
16-19절에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체험을 하지만 거기 그치지 말고 참 신앙수립의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체험을 하면 야곱처럼 내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알고 죄짓는 일에 두려워해야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루스의 세상에서 방황하지 않고 하나님 섬기는 벧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돌기둥을 세우듯 무너진 신앙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적도 참 신앙 수립을 위한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는 것에 관심 없이 기적만 나타내려 하면 안 됩니다.
20-22절에 야곱의 서원 역시 그의 신앙적 다짐이 나타나 있습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이 야곱의 서원이 언 듯 보기에는 조건부처럼 보이나 오히려 여호와를 평생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의지가 더욱 강하게 표현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살이가 바로 야곱이 광야에서 잠시 고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의미를 모르면 방황의 루스이지만 의미를 알면 이곳이 오히려 하나님의 집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사랑하여 더 온전한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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