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5:1-5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자 /이한규

 이한규목사/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자! (창 35:1-5)



 

< 복된 개척자의 길 >


 

조선시대 후기에 사색당쟁이 심했습니다. 왕들은 그 당쟁을 없애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신하들이 반정을 일으켜 왕위를 폐위하든지 왕을 독살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왕은 신하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상대를 죽이려는 신하들의 계속된 주청에 반대당 사람들은 사약을 받고 죽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얼마나 왕도 괴롭겠습니까? 그래서 조선 왕의 평균수명은 34세밖에 되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심했고 나라의 국력은 점점 약해졌습니다.


 

그런 일들이 교회에서도 가끔 일어납니다. 큰 교회에 젊은 목사가 부임하면 젊은 담임목사는 주로 설교자 역할만 하고 많은 일은 장로들이 주관합니다. 그때 목회자가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장로들의 섭정에 목회자는 어느 것 하나 소신껏 하기 힘들고 자칫 잘못하면 반정으로 담임목사가 교회를 쫓겨납니다. 그래서 후임 젊은 목사는 아픈 가슴과 눈물의 나날을 보낼 때가 많습니다.


 

가끔 저에게도 담임목사 제의가 옵니다. 그러나 저는 천년 대업의 비전 때문에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물론 부임한 교회의 전 성도들이 저의 사역을 이해하면 되지만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번 형성된 전통의 틀을 깨려면 항상 갈등이 생깁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목사님이 왜 온라인 새벽기도를 하는가? 왜 문서선교를 하며 출판사를 하는가? 왜 네트영어를 하는가?”


 

결국 큰 교회로 부임해가면 그때부터 성경 66권 전체 파일을 만드는 비전과 네트영어 비전과 문서선교 및 선교사 후원사역의 비전은 지속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교회로 부임해갈 수 없습니다. 제가 지역교회 사역을 넘어 보다 폭넓은 사역을 하는 것을 이해하고 비전의 동역자가 되기로 처음부터 결심하고 등록한 교인들이 모인 분당 샛별교회만이 저에게는 최고 사역지입니다.


 

큰 교회로 가서 힘없는 고종처럼 지내기보다는 큰 시각과 비전을 가지고 큰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러면 후임자의 길보다는 개척자의 길이 낫습니다. 개척자의 길이 사람들 보기에는 좁고 힘든 길처럼 보여도 그 길은 어떤 길보다 복된 길입니다. 큰 곳에 가는 것보다 큰 비전을 가지고 큰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큰 비전을 가지고 나가면 어느 날 그 비전이 이뤄지고 크게 쓰임 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오래 전 어느 날, 한 목사님이 약 400명 정도 되는 교회로 부임했습니다. 부임하면서 눈물의 나날이 시작되었습니다.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목사님이 물래 당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당구에 빠져서 시간만 있으면 성도들 모르게 당구장을 찾았습니다. 점수가 200점을 돌파하고 300점을 돌파하니까 그때부터는 누웠다 하면 당구 생각이 났습니다.


 

기도할 때도 당구가 생각났고, 나중에는 중직들이 당구공처럼 여겨졌습니다. “이 장로를 여기서 딱 치면 저 집사를 맞고 그 후에 저 권사를 맞추고 이리로 가겠지.” 맨 날 그런 생각만 하다가 결국 그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후, 그 목사님은 직접 교회를 개척해서 당구를 끊고 최선을 다해서 성도들을 섬기면서 소신껏 목회를 잘했습니다.


 

보는 것에 따라 인생도 달라집니다. 목회자가 힘들다고 성도들을 당구공처럼 보면 목회가 되겠습니까? 항상 좋은 이미지를 그리며 사십시오. 다단계를 하다 보면 교우들이 돈으로 보이고, 어떻게 하면 그를 강남의 세미나장으로 데려갈까 틈만 노립니다.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복된 예배자가 되고 복된 교회생활이 되겠습니까? 예배를 어떻게 드리느냐에 따라 축복 여부가 거의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복된 인생이 되려면 무엇보다 참된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 벧엘로 올라가라는 말씀의 의미 >


 

창세기 33장을 보면 야곱은 형 에서와 화해한 후 세겜성에 거합니다. 거기서 세겜 성 추장의 아들에게 야곱의 딸 디나가 욕을 당하자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 성 사람들을 속여서 그들을 몰살시켰습니다. 이제 그 지역 사람들도 복수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 다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본문 1절에서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으라!”고 말씀했습니다.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으라(1절).”는 말은 말일까요?


 

1. 첫 사랑을 기억하라는 말


 

벧엘은 어떤 곳입니까? 벧엘은 에서를 피해 도망갈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과 야곱의 순수한 서원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벧엘은 야곱에게 있어서 생각만 해도 힘이 되는 첫 사랑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려움에 빠진 야곱에게 그곳으로 올라가 단을 쌓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때 야곱은 하란에서 돌아와서 세겜 땅에 머물면서 몸이 편하니까 예배를 잊었습니다. 사실 잘 다져진 세겜은 황량한 개척지인 벧엘보다 훨씬 살기 좋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살기는 힘들어도 하나님을 만난 체험과 약속이 있는 벧엘로 가서 그 황량한 개척지를 복된 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선택할 때도 내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교회를 선택하는 것이 더욱 복된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뜻과 같지 않습니다. 사람은 세겜에 거주하길 원하지만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가길 원하십니다. 왜 시험이 옵니까? 시험은 첫 사랑을 회복하고 사명을 회복하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명의 개척지로 가서 첫 사랑을 찾으십시오. 개척지에서 가난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예배의 단을 쌓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감동하겠습니까? 그처럼 개척지에서 첫 사랑을 가지고 사명을 따라 열심히 살면 환난과 상처는 봄눈 녹듯 사라질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가끔 말없이 집을 나갔다가 얼굴이 퉁퉁 부은 채 귀가했다고 합니다. 너무 이상해서 하루는 아내가 조용히 그의 뒤를 밟았습니다. 그러자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뽕나무로 가서 그 나무에 물을 준 후 눈물을 글썽이며 그 나무를 어루만지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처럼 주님과의 첫 사랑을 기억하며 계산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할 때 계산을 초월한 하나님의 축복이 넘칠 것입니다.


 

2. 주님 안에서 쉬라는 말


 

사람 생각으로는 쉬면 망할 것 같고, 뒤쳐질 것 같습니다. 물론 세겜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가라고 합니다. 쉬는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자녀들에게도 “공부하라!”는 말만 하지 말고 쉬는 시간을 가지게 배려하십시오. 쉬면 뒤쳐질 것 같지만 잘 쉬면 훨씬 유능해집니다. 오래 책상에 앉아 있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쉴 때는 화끈하게 쉬는 것이 좋습니다.


 

자녀들을 쉬지 않게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교회 여름수련회까지 학원을 가야 된다고 보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 공부 조금 더 한다고 더 좋은 대학을 가고, 더 좋은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믿음, 사랑, 예의, 사회성, 창조성, 인간성, 지도력 등도 공부만큼 중요합니다. 그런 덕목들은 사실상 부모의 배려로 안식을 배운 아이들에게 더 발달됩니다.


 

어떤 목사님은 고등학교 3학년 때 학생회 회장을 했습니다. 그때 학생회 임원 중 반 이상이 새벽기도회에 나왔고 가끔 철야도 했습니다. 고 3이 그렇게 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 같지만 지금 보면 그때 임원들 대부분이 사회를 이끄는 위치에 있다고 합니다.


 

놀 줄 모르면 정신이 황폐해집니다. 일할 때는 일하고 쉴 때는 쉬어야 합니다. 쉴 때 누군가 나를 앞설 것이라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걱정이 오히려 발전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막는 암적인 요소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쉬면 그 쉬는 시간에는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정신도 맑아집니다. 그처럼 가끔 모든 활동을 멈추고 하나님 안에 안식하면서 말씀의 의미를 되새길 때 삶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3. 예배를 회복하라는 말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으라!”는 말씀을 가장 핵심적인 의미는 “예배를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다급한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것처럼 위기에 빠졌을 때는 무엇보다 예배의 회복에 힘쓰십시오. 예배의 회복은 축복과 행복과 건강 회복의 기초입니다. 잠언 4장 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도 반드시 우리를 높여주시지만 예배를 가볍게 여기고 멀리하면 동시에 모든 축복도 사라집니다.


 

신앙생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예배의 회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어려움을 통해 다시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야곱은 다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가족과 모든 종들에게 단호한 조치를 취하게 합니다. 어떤 조치를 취합니까? 본문 2절에 보면 세 가지 조치가 나오는데 이것은 예배자가 가져야 할 3대 자세입니다.


 

첫째, 이방 신상을 버려야 합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면 야곱은 자기 아내를 비롯해서 모든 식솔들에게 이방 신상을 버리라고 하는데 이것은 ‘영적인 변화’를 상징합니다. 참된 예배를 드리려면 우상숭배와 미신을 버려야 합니다. 지금도 교회는 다니지만 점을 치러 다니고, 돼지 대가리 놓고 고사를 지내고, 사주팔자를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팔자는 생년월일로 지정되지 않고 예수님 믿으면 다 상팔자가 됩니다.


 

둘째,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본문 2절 말씀을 보면 “자신을 정결케 하라.”고 했는데 이것은 ‘마음의 변화’를 상징합니다. 즉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보고 자신을 성찰하라!”는 말씀입니다. 문제의 원인이 남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피해의식'을 가지면 원망만 생깁니다. 그러나 문제 속에서 “내가 가해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원망은 사라집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자기를 돌아보고 다듬는 모습을 기뻐하십니다.


 

셋째, 의복을 바꿔야 합니다. 본문 2절 말씀 마지막 부분에 있는 “의복을 바꾸라.”는 말씀은 ‘태도의 변화’를 상징합니다. 마음을 바꾸는 개심(改心)과 함께 겉모습을 바꾸는 개혁(改革)도 있어야 합니다. 특히 어려움을 당하면 생활과 습관과 태도 중에 바꿀 것이 없는지 살피십시오.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은 큰 실패가 아니라 작은 나쁜 습관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습관도 좋지 못한 것은 과감히 버리십시오.


 

그처럼 야곱이 결단하자 가족과 식솔들은 자기들의 이방 신상들을 야곱에게 주었고 야곱은 그 모든 이방적인 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벧엘로 떠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야곱 일행을 추격하는 자가 없게 하셨습니다(5절). 그처럼 참된 예배자가 되면 아무도 그를 대적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복된 삶을 사는 길은 예배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삶의 모든 얽힌 문제도 신기하게 해결될 것입니다.


 

< 예배자가 가져야 할 구체적 태도 >


 

성도의 삶에서 예배만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중요한 만큼 예배자의 태도도 매우 중요합니다. 예배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1) 시간을 잘 지키십시오


 

시간 잘 지키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입니다. 상대방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여기면 반드시 시간 전에 나와 먼저 맞이합니다. 그처럼 예배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은 예배를 중시하는 태도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성도는 예배가 시작 전에 먼저 교회에 도착해서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모습이 하나님이 정말 소중한 분이고, 예배가 정말 중요하다고 여기는 모습입니다. 그런 마음에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2) 정성스럽게 드리십시오


 

어떤 분은 헌금할 때 꼭 새 돈으로 합니다. 그런 자세 속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어떤 분은 예배를 드릴 때 최고의 복장을 하고 옵니다. 그 모습 속에서도 정성이 느껴집니다. 주님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7교회 중에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가장 칭찬하시면서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켰다.”고 그들의 정성을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많은 능력’이 아니라 바로 ‘정성’입니다.


 

빌라델피아 교회는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은 없었지만 정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정성을 받아주십니다. 예수님은 뱃세다 광야에서 어린아이가 정성스럽게 드린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진 것이 적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정성입니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그 능력 안에서 정성껏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정성을 받아주실 것입니다.


 

3) 예배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성경에 백성들의 불평이 많이 나오는 성경이 있습니다. 바로 말라기서입니다. 말라기서 곳곳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이 많이 나옵니다. 그 모든 불평을 요약하면 “정말 하나님은 정의로운 하나님이십니까? 그렇다면 왜 우리가 이렇게 어렵습니까?”하는 것입니다. 그 불평에 대해서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말라기서를 요약하면 “너희가 어렵다고 불평하지만 정말 정성을 다해 예배 드렸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불평이 생기면 “내가 정성을 다했나?”를 먼저 살펴보십시오.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길 때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하고 섬기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흉내만 내기보다 마음을 다해 하십시오. 억지로 일하는 모습도 민망한데 억지로 예배하는 모습은 얼마나 민망합니까? 참 예배란 내 뜻이 주님의 뜻에 완전히 몰입되어 기쁨이 나오는 예배를 뜻합니다.


 

이제 예배드릴 때 예배의 주인공처럼 최선을 다해 예배에 참여하십시오. 목사님의 설교, 대표 기도자의 기도, 성가대의 찬양을 들으며 그저 예배의 구경꾼으로 있지 마십시오. 기도 할 때도 ‘아멘’으로 화답하고 말씀을 들을 때도 ‘아멘’으로 화답하십시오. 가끔 예배드리는 것을 ‘예배 본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손님처럼 예배 보지 말고 주인공처럼 예배를 드리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시고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4) 계산적인 마음을 버리십시오


 

예배란 환경이나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드리고 하나님을 송축하고 감사하는 것이기에 계산적인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계산적인 모습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교회를 다닐 때도 계산하며 다니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많은 축복을 주시지만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계산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얻을 것을 계산하며 다니면 축복이 없지만 드릴 것만 생각하며 순수하게 다니면 축복도 따라옵니다.


 

요새 성도들이 왜 작은 교회를 멀리합니까? 부담이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러나 부담을 지면서 교회생활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부담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면 언제나 겉돌게 되고, 몇 십 년을 봉사해도 그 교회 초기 멤버들이 가진 보람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70이 넘어서 신앙을 회고하면 그때까지도 깊은 자기 교회 의식이 없게 됩니다. 얼마나 아쉬운 인생낭비와 시간낭비입니까?


 

교회생활에 기쁨과 보람이 넘치게 하고 천국 상급과 후대의 축복을 예비하려면 남이 이룬 터에 가서 더부살이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남이 이뤄놓은 교회에 뒤늦게 가서 정치투쟁을 하며 주인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얼마나 딱한 모습입니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직접 피땀을 흘리고 에너지를 쏟아 부어서 교회를 키워가는 것입니다. 그 축복이 너무 크기에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점차 인생이 넓어지지만 넓은 문으로 들어가면 점차 인생이 좁아집니다.


 

< 강소교인의 꿈을 가지십시오 >


 

다수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몇 년 전, 제가 미국에 갔다가 면도기를 도난당했는데 저는 아직도 그 면도기가 생각납니다. 그 면도기는 교회 28인치 TV를 살 때 덤으로 얻은 만 원짜리 싸구려 면도기였습니다. 모양도 투박해서 별로 성능도 좋지 않은 줄 알았지만 쓰다 보니까 충전도 잘 되고 성능은 어떤 비싼 면도기 못지않았습니다.


 

그 면도기를 잃어버린 후, 나중에 충전용 새 면도기를 사려고 했더니 최소한 20만원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20만 원 이상 주고 브랜드가 있는 회사제품을 샀는데 그 성능이 브랜드가 없는 만 원짜리 중소기업 제품 면도기보다 훨씬 못했습니다. 그처럼 작은 것이 다 무능한 것은 아닙니다. 요새 강소국이 있듯이, 회사도 강소회사가 있고, 교회도 강소교회가 있습니다. 숫자만 많은 교회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강소교회의 비전을 가지고 교회를 열심히 섬기면 내 헌신의 손길이 교회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기쁨과 보람이 크겠습니까?


 

이제 유행에 휩쓸려 살지 말고 참된 예배자로서 복된 삶을 누리기를 꿈꾸십시오. 예수 믿고 인물이 되십시오. 잘 베풀고 쓰는 것을 전제로 해서 물질적인 축복도 구하십시오. 때로는 물질이 마음에 여유를 줍니다. 자동차 딱지 한 장을 끊어도 물질이 없으면 속이 너무 상해서 딱지 끊는 공무원을 원수처럼 여기며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하지만 물질이 있으면 “구청도 사업을 하려면 재정이 필요하지! 세금 냈다고 생각하자!”고 여유가 생깁니다.


 

물질이 있으면 선심 쓰기도 쉽고 누군가 누리는 삶을 봐도 속상하지 않게 됩니다. 요새 목회자가 50평이 넘는 아파트에서 여유 있게 살면 가난한 교인들은 시험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에 시험이 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런 시험이 없도록 재화의 창출에 땀을 흘리고 더 나아가 그런 일로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사실 가난한 것보다 남이 누리는 것 때문에 시험에 드는 삶이 더 가난한 삶입니다.


 

육신적은 가난은 있어도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난은 없어야 합니다. 물질뿐만 아니라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이 배울수록 여러 상황을 이해하고 어떤 사물과 태도를 볼 때 “이해하자!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거야.”라고 합니다. 그러나 배움을 등한시하면 어느 한쪽만 생각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라고 하면서 불평하고 요구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자세히 보면 판단은 잘 아는 사람보다 잘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사람은 무언가 갖출수록 더 주님 닮은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제 더 갖추기를 힘쓰고 예수 믿고 인물이 되십시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쓸 것이라면 물질과 지위와 학력이 있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향력 있는 삶을 향한 비전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강소교회, 강소교인, 그리고 강소가정의 꿈을 가지십시오. 참된 예배자가 되면 그 길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예배자의 삶을 통해서 강소교인의 꿈을 이루는 복된 성도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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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5:1-5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자 /이한규 창35:1-5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자 /이한규 Reviewed by □□□ on December 29, 2024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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