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목사/야곱의 복 (창 35:9-15)
지난주에 이 본문으로 야곱의 허리에서 열왕이 나오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야곱에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복을 주시고 하시는 이 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동안 우리의 복의 개념이 성경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많은 혼동을 가져 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무엇이 복인지를 말씀을 자주 드렸습니다만 오늘은 야곱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하나님 앞에서의 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서 우리도 그러한 복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선 오늘 본분에서 무엇을 복이라고 하는지를 보고자 합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자 다시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전능한 하나님으로서 야곱에게 약속하시는 복은 후손과 땅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고 이삭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후손과 땅을 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복인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야곱이 부자냐 아니냐 그런 것은 하나님의 약속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봅니다. 창세기 12:1절에서 3절을 봅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하신 약속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을 복의 통로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복을 주시고 저주하면 저주를 하시겠다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루어 내신는지를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5:1-7절입니다.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15:16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땅의 약속.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신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어떤 복을 허락하시는가 하면 후손과 땅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후손과 땅 이것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이고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복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복이며 그 후손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복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후손이라고 하여 출세하는 그런 후손이 아니고, 땅이라고 하여 이 세상의 부동산이 늘어나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이미 후손과 땅의 약속을 하시면서 어떤 후손과 땅인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땅부터 봅니다. 창세기 15:16-21절입니다.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부동산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과의 싸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죄악이 관영하여지는 것과 그 죄악된 땅을 정복하는 차원에서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부동산의 확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감당할 자가 바로 아브라함의 약속의 후손인 것입니다. 이 후손이란 이미 창세기 3:15절에서 말씀하신 여인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치신다는 차원의 전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을 획득할 자는 죄악을 물리치는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 전쟁을 말하는 후손이란 창세기 22:17절입니다.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후손이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큰 복이란 아브라함의 후손이 전쟁을 하여 땅을 차지하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복을 언약하신 그 분위기를 보니 이미 전쟁을 선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을 이제 야곱에게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야곱을 하나님이 이미 복중에 있을 때 선택을 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어떠한 선한 행위가 없을 태중에 있을 때 하나님이 야곱을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식으로 말하자면 창세전에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것은 어떠한 사람의 전제적인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행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복이란 하나님의 선택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인생이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내는 일에 사용되어지는 도구입니다. 이러한 부르심을 받았기에 야곱은 하나님의 손길에서 벗어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아무리 자기의 수단과 꾀를 동원하여 자기의 뜻을 이루어 내고자 하여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하나님이 하시면서 야곱의 죄와 허물을 보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그러한 간사한 꾀와 속임수를 하나님이 한번도 책망을 하시는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이 태중에 있을 때 선택하시고 나서 야곱에게 직접 나타나신 것은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도망가는 때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권을 속임수로 받아내어도 하나님은 그냥 계셨습니다. 그런데 속일대로 속이고 도망가는 중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벧엘입니다. 창세기 28:13-15절입니다.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자주 본 말씀이라서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그런데 역시 이 언약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약속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땅과 후손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야곱에게는 처음 나타나시는 하나님께서 야곱의 허물을 책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 왜 약속을 믿지 못하고 그렇게 속였느냐고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네가 그런줄 알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결코 나의 언약을 이루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언약이란 야곱이 직접 받은 것이 아니니 지금부터 그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책망하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지요. 그런데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마다 비록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다른 곳에 있을 지라도 야곱에게 책망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언약만을 반복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고생을 하고 자기의 딸이 강간을 당하고 세겜성의 사람들에게서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러나 혼자의 두려움이고 오히려 세겜의 사람들이 두려워 한 것입니다.
31:3절입니다. “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라반에게서 20년이 지나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어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벧엘로 올라가라. 그런데 책망의 말씀이 있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32:29-30절입니다.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역시 여기서도 책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가 위골이 되었지만 오히려 야곱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짓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을 지으면서 야곱의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고서 살자가 없는데 자신은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의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만나고서도 죽지 않은 것이 바로 야곱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고서도 죽지 않은 이 복이 어떻게 주어졌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이란 하나님의 언약안에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고도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는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유대인들은 감히 여호와의 이름도 부르지를 못합니다. 여호와 또는 야훼라고 우리는 발음을 합니다만 유대인들은 감히 부르지 못하여 아도나이 즉 주님이라고 부르거나 거룩한 네 글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만나고서 살 자가 없음을 출애굽기를 통하여 시내산에 강림하신 모습을 통하여 더욱 각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고서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고도 살아난 몇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입니다. 하나님을 만났으니 죽으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의 천사를 보내어 만나게 하시는 것은 죽이시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드온같은 경우도 하나님을 만나고서는 죽지 않았다고 하여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여호와 평강입니다. 유대인의 인사말인데 우리식으로 하면 안녕하십니까 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안녕이란 하나님을 만나고서도 죽지 않은 것이 샬롬이며 평강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안에 있는 자의 받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이 허물이 없어서 하나님께 책망을 받지 않은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개인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면서 이스라엘 국가를 한 인격체로 보면 됩니다. 그러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많은 범죄를 행합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안에 들어 있으면 그 죄들을 하나님이 더 이상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 언약안에 있으면 허물을 보시지 않는다는 것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이란 결국 언약의 후손이 와서 그 땅을 차지하여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민수기 23장을 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언약하신 그 내용을 이제 때가 차매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언약하신 그 복을 후손과 땅에 대한 약속을 이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개념으로 보아도 되겠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여 가나안으로 진군을 하여 들어오는데 모압왕 발락이 겁이 나서 이들을 막아보려고 발람 선지자를 불러서 저주를 퍼붓게 합니다. 그러나 저주를 하려고 입을 열면 주의 신이 임하여서 저주 대신 축복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 축복의 내용을 봅니다. 민수기 23:7-8절입니다. “7. 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8.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하나님이 저주치 않은 자를 내 어찌 저주하리요 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23:19-24절입니다. “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20.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21.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22.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23. 야곱을 해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냐 하리로다 24. 이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고 수사자 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하매” 하나님이 언약하신 바를 이루어 내시고야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저주라도 통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야곱의 허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를 힘입고 이곳까지 온 것이기에 이들의 허물을 하나님이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의 복이며 이스라엘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민수기 24:9절입니다. “9. 꿇어 앉고 누움이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일으킬 자 누구이랴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누구에게 하신 언약입니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를 힘입고 있으면 어떠한 저주가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거룩하지 않은 백성을 치는 것입니다. 민수기 24:7절입니다. “7. 그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씨는 많은 물 가에 있으리로다 그의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 그의 나라가 흥왕하리로다” 야곱에게서 한 홀이 나와서 적을 다 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에게 하신 하나님의 복의 내용인 것입니다. 후손이 와서 적을 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하나님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복으로 다가 왔습니까? 그 후손이란 여럿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갈라디아서 3:1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후손에 대하여는 분명하여졌습니다. 야곱의 복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허물의 가리움을 받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땅의 약속은 어떻게 됩니까? 구약에서의 땅은 가나안땅입니다. 그러나 그 언약의 땅이 그 기능을 다하였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이 성지가 아닙니다. 성지순례라고 하는데 이스라엘은 성지가 아닙니다. 이미 그 기능이 끝난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의 땅이 하나님의 언약의 땅으로 자리잡고 있으려면 그 땅을 거룩하게 하는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냥 세월이 지나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성전을 헐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전이 없어진 이스라엘은 더 이상 약속의 땅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리라 하신 그 성전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할하실 자신을 가리켜 성전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후손도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 땅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그 후손의 복과 땅의 복을 다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새 언약안에 있는 자는 이제 어떤 복을 누리는 것입니까?
그 허물의 가리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 후손 즉 예수 그리스도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그를 사랑하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 바로 아들의 피로 세워진 아들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의 복입니다.
히브리서 11:8-12절을 봅니다.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후손과 땅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았다고 합니다. 그 후손이란 이미 말한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땅이란 가나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를 바라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이 완성이 된 상태에서의 복이 무엇인지를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 성도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허물과 죄사함을 알고 그의 지으실 터가 가나안땅이 아니라 영원한 주님의 나라임을 내다본 것이 복이라고 하는데 오늘 이 언약의 이루어짐을 보면서 아직도 이 세상의 없어질 것들을 복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야곱의 복이 무엇인지를 통하여 오늘 우리의 복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확인하시고 세상의 것들에 기죽지 마시고 담대하며 감사하며 기뻐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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