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29:18,창37:5-11 꿈이 있는 삶 /이익로

 이익로목사/꿈이 있는 삶! (잠 29:18/창 37:5-11)


 


신년 벽두인 오늘은“꿈이 있는 삶”이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인 잠언 29장 18절 말씀에“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KJV이라는 성경에는 이를 좀 더 알기 쉽게 표현했습니다.“비전 없는 백성은 망한다. 꿈이 없는 사람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방자히 행한다는 것은, 망할 짓을 골라서 한다는 뜻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될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망할 짓을 골라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은 꿈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적인 꿈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적인 꿈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적인 꿈이 있어야 합니다. 국가적인 꿈이 있어야 합니다. 계란을 품지 않는 닭이 병아리를 낳을 수 없듯, 꿈을 품지 않은 사람은 내일의 영광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합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삶에 활력이 있습니다. 생기가 있고 왕성한 삶의 의욕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삶은 아름답게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꿈이 있으면 꿈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꿈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가는 힘이 있습니다. 꿈은 사람이 꾸지만 그 꿈이 그 사람을 꿈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인 잠언 29장 18절 말씀에“비전 없는 백성은 망한다. 꿈이 없는 사람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제임스 어윈(1930~1991)은 어린 시절 늘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버지가 물었습니다.“넌 무얼 바라보니?” “예, 저는 달을 쳐다보고 있어요.” “왜 그렇게 매일 달을 쳐다보니?” “아빠 제가 언젠가는 달나라에 가보고 싶어요. 그래서 달을 쳐다보는 거예요. ”이 허황된 아들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무슨 그런 쓸데없는 소릴하니? ”하고 야단치지 않고 “그래, 넌 할 수 있어. 네가 믿고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실 거야.”라고 격려했습니다.

그 아들이 훗날 자라서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공군에 입대했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1973년 아폴로 15호를 타고 달나라에 가서 달 위를 걸었습니다. 그가 달나라를 다녀와서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이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내가 달나라에 도착하지마자 제일 처음 느낀 것은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였습니다.”이처럼 꿈은 이루어집니다.


1. 하나님은 꿈을 가진 사람을 도우십니다.

로마서 15장 13절 말씀에“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소망 즉 꿈을 지닌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어떤 경우의 어려움이라 할지라도 낙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낙심의 출처는 사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다면 낙심하고 포기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절대긍정, 절대소망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인 위르겐 몰트만 이라는 사람은“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이다.”는 것을 강조하면서“희망신학(Theology of Hope)”을 주장 했습니다. 그는 17세 때 세계대전에 독일군에 징집되어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포로가 된 그가 포로수용소에서 극심한 좌절과 모욕과 고통을 겪으며 절망 중에 처해 있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군 목사님 한분이 그에게 성경 한권을 주었습니다. 성경을 읽는 순간 그는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수많은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셨구나. 그리고 병든 자를 고쳐 주셨구나. 그런데 은혜 입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며 가장 가까이 가르쳤던 제자들이 모두 도망갔구나.”그렇게 그는 예수님 앞에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불구하고 철저히 외로웠던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결국은 버림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보는 순간 그는“아! 내가 저 예수님과 같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이었습니다. 사망의 음부를 이기시고 살아나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몰트만이 충격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예수님을 의지하면 반드시 나에게 희망이 생길 것이다. 그는 그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훗날 감옥에서 풀려나서 신학대학에 입학을 하고 결국은 나중에 교수가 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인생이 끝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는 부활의 시작인 것입니다. 부활이란 반드시 십자가를 거쳐야만 부활이 오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절망에서 꿈을 꾸어야 합니다. 꿈을 가지면 인생이 살아납니다. 꿈이 바꾸어지면 인생이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멋진 꿈을 가지면 멋진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꿈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녀의 꿈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에 말씀하시기를“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하셨습니다.


 


2. 인생의 크기는 꿈의 크기와 같습니다.

잠언 23장 7절에“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했습니다. 한 사람의 됨됨이는 그가 생각한 대로 즉 꿈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됨됨이는 꿈의 크기로 재어볼 수 있습니다. 꿈이 작은 사람은 앞날이 작습니다. 꿈이 큰 사람은 미래가 큽니다. 꿈을 가진 개인, 꿈을 가진 가정, 꿈을 가진 교회, 꿈을 가진 나라에 하나님은 반드시 그 꿈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루어진 꿈을 가리켜 우리는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많이 들어 잘 알고 있는 미국의 헬렌켈러는 태어 난지 얼마 되지 않아 열병을 앓고 난 후 눈은 실명되었고, 귀는 귀머거리가 되었고, 입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굳게 믿었던 그의 부모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그런 딸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설리반이라는 선생님을 붙여주었습니다. 7살짜리 이 어린아이에게 손으로 꽃잎을 만져 주게 합니다. 라디오 소리가 나면 라디오 울림을 손에 대어주며 라디오 소리의 울림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이올린을 할 때면 바이올린에 손을 얹게 합니다. 그 아름다운 선율을 바이올린을 통에서 우리는 것을 가지고 음악을 감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점자를 가르쳤습니다. 타자기의 타이프를 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말을 하게하는 훈련을 합니다. 물에 손을 집어넣고 물을 수없이 반복하는데, 결국 말을 할 줄 모르는 벙어리가 물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가 나중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고, 훗날 미국이 자랑하는 여류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다니며 꿈과 희망을 전하며 88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꿈이 주는 힘이었습니다. 그녀는 말하기를“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앞은 보지만 꿈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꿈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배우지 못한 형편없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그들에게 꿈을 심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하셨습니다. 나사렛 촌 동네에서 육대주를 향해서 복음을 전파하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변방 갈릴리 호숫가에서 오대양을 향해 복음을 전파하라 하셨습니다. 당시 상황으로는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그 황당한 것이 현실로 이루어 졌습니다. 황당한 꿈이지만 그 꿈을 이루시는 분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 말씀에“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약속하신 말씀같이 함께 하신 예수님이 그 꿈을 이루도록 지켜주셨습니다. 새힘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전 메이커(vision maker)이십니다. 예수님은 드림 메이커(dream maker)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절대소망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 꿈은 고난과 인내의 과정을 거친 후 성취됩니다.

누구나 꿈을 꿀 수는 있지만 누구나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꿈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의 경우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꿈의 사람 요셉은 그의 꿈대로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요셉의 꿈은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37장 6절~9절에 기록하기를“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꿈은 장차 형들을 다스릴 높은 권세와 영광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요셉은 이 꿈 때문에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갔고, 또 나중에는 죄수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그 모진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낙심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삶을 살펴보면 요셉은 돈 많은 아버지를 두었으나 아버지 덕을 보지 못했습니다. 형들이 열 명이나 있었지만 그 형들은 도리어 자신을 시기하고 미원하며 노예로 팔아넘겼습니다. 형제 덕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이웃 덕도 보지 못했습니다. 믿고 충성하며 섬겼던 주인의 음해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흔히 사람은 인복(人福)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셉의 생애에는 인복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느 곳 하나 의지할 언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가지가지의 연단의 시간이 끝나자 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종교개혁자인 존 칼빈의 좌우명이 히브리어로“코람데오”즉“하나님 면전에서”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사정 다 아시니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으므로 진실하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요셉의 삶이 곧“코람데오”였습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하여 고난이 없기를 기대하거나 기도해서는 아니 됩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 가운데“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대목이 있습니다.“시험이 없게 하옵시고”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것은 고난과 역경에 넘어져 하나님을 원망하며 낙심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은인인 맥아더 장군이 자기 자녀를 위한 기도문가운데 이러한 대목이 있습니다.“저의 자식을 이러한 인간이 되게 하소서.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곤란과 고통의 길에서 항거할 줄 알게 하시고, 폭풍우 속에서도 일어설 줄 알며...”라고 했습니다.


만사형통케 하시기를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참으로 지혜로운 기도를 드렸습니다. 순금은 반드시 용광로를 거친 후 순금이 됩니다. 운동선수들을 보십시오. 화려한 승리의 영광 뒤에는 피눈물나는 연습이 있었습니다. 그 연습이 곧 연단이요 고난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욥은 극심한 고난 중에 말하기를“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고 했습니다. 이처럼 꿈을 가진 사람들은 고난을 연단의 기회로 삼습니다. 군인이 전쟁에 이기려면 강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고난을 교육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를 깨우치고 훈련시키시는 기회로 알아야 합니다.


꿈을 지닌 사람은 어려움에 인내해야 합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며 낙심하여 방황하면 안 됩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꿈을 바라보며 고난에 인내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꿈대로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1장 12절에 말씀하시기를“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하셨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5장 7절~8절 말씀에는“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하셨습니다. 모든 꿈은 고난 뒤에 숨겨져 있습니다. 농부의 가슴에 품은 풍년의 꿈은 뜨거운 여름날 비지땀을 흘린 뒤에 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초고속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빨라지고 있습니다. 식탁에는 인스턴트식품이 75%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빨리빨리 문화”에서 살고 있기에 목사의 설교도 20분 이내에 끝내야 좋은 목사로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 시간 안에 예배를 끝내지 못하는 목사는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 입니다.


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은 조급하지 않습니다.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영적생활의 필수요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큰 복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다리기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아는 홍수 심판을 대비하여 방주를 예비하며 100년을 기다렸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얻기까지 25을 기다렸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 20년을 기다렸습니다. 본문의 요셉은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모진 고난을 겪으면서도 13년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 해방의 꿈을 안고 40년을 기다렸습니다. 이처럼 모두가 기다리는 일에 익숙했습니다. 만사에 때가 있고 이룰 기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한과 때에 대하여 전도서 3장 1절~8절에 말씀하시기를“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꿈을 가진 사람의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고보서 5장 7절~8절 말씀에“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하셨습니다. 농부가 가물어도 농사를 포기하지 않듯 농부의 모습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4. 꿈을 이루는 사람은 최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꿈을 갖되 막연히 기대하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그 꿈은 공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꿈을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요셉은 어디든 무엇이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 앞에서 자식의 도리에 최선을 다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가 애굽의 고관 보디발의 집안 노예가 되었을 때에도 종으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주인의 총애를 받아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노예의 신분이 변하여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또다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때에도 신세한탄만 한 것이 아니라 죄수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해 모범수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은 감옥내의 자유인으로 살았습니다. 감옥에서의 요셉의 삶을 창세기 39장 22절~23절에 기록하기를“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에게 교도소장이 열쇠를 다 맡기고 감옥을 돌보게 했습니다. 아마 이런 일은 세계 어디에도 없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이 한 일은 더 이상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맡은 일은 철저히 감당하는 요셉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요셉을 들어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총리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때에도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요셉은 공과 사를 철저히 구별하여 공무에 임했습니다. 창세기 43장 16절, 25절 말씀을 통해 성실한 요셉의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요셉이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오정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그들이 여기서 먹겠다 함을 들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오정에 오기를 기다리더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후 22년이 되는 때였습니다. 그 지역에 큰 흉년이 들어 각 나라마다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애굽에는 지혜로운 총리 요셉이 미리미리 양식을 준비했으므로 양식이 풍성했습니다. 애굽에 양식이 많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요셉의 형들도 양식을 구하고자 애굽으로 내려왔습니다. 열 명의 형들은 요셉의 배다른 형제로서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긴 원수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막내 동생인 베냐민은 요셉의 친동생이었습니다. 어머니 라헬이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긴 사람들이라면 어머니 없는 어린동생 베냐민을 얼마나 박대했겠습니까? 또한 요셉의 마음속에 그 동생에 대한 그리움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러한 동생이 지금 자기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양식을 구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는 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기막힌 상황에서 당장 달려가서“베냐민아 내가 너 형 요셉이다.”라고 말하며 그를 반기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그 정을 억제하고 정오에 만나겠다는 것입니다. 공무 시간을 피해 점심시간을 이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은 공과 사가 분명했습니다.


몇 년 전 미국의 일간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이러한 내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한국인의 1인당 연간 근로 시간은 미국, 일본보다 많지만 생산성은 미국에 비해 62%, 일본보다는 45%나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 신문은 국제노동기구의 자료를 인용하여 평균 근로시간은 한국이 2474시간, 미국이 1979시간, 일본이 1859시간이며, 시간당 생산성은 미국이 31.97달러, 캐나다가 25.73달러, 일본이 20,81달러인데 비해 한국은 11.78달러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한국인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와 관련해서 이 신문은“한국인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10시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평일 근무 시간에 자고, 먹고,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며, 인터넷 쇼핑이나 주식 거래, 카드 게임을 하는 일이 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모두 요셉의 삶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꿈을 꿈되 그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1937년 미시간 주의 앤아버라는 곳에서 태어난 톰 마네건(Tom Monaghan) 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톰 마네건에게는 짐이라는 형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두 아들을 다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나가서 일주일 내내 일을 해봐야 27불 50센트, 한주에 3만원밖에 벌지 못하니까 아들 둘을 키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 톰은 결국 고아원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톰은 고아원에서 자라며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항상 그의 마음속에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디트로으트 타이거즈라는 야구팀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언젠가는 내가 타이거즈 야구팀의 구단주가 되겠다.”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소망입니다. 고아 처지에 오르지 못할 높고 높은 나무입니다.


시간이 흘러 그가 23살 되었을 때에 형과 함께 조그마한 피자가게를 시작했습니다. 500불의 자본금에 400불을 대출받아서 900불로 가게를 인수하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피자가게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톰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음식을 배달해주는 문화가 없었습니다. 음식을 먹으려면 반드시 차를 타고 식당까지 가서 먹어야 하는데, 처음으로 집으로 배달해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또한 시켜 먹을 때에도 동일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뜨거운 음식을 30분 이내에 집으로 배달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30분이 지나면 음식 값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피자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여 전 세계적인 피자그룹으로 발전했습니다. 1970년대 200여 곳의 체인점을 냈고, 지금은 미국 전역에 5,300여 체인점에 11만 5천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회사가 바로 유명한 도미노 피자입니다. 1년 매출이 25억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2조 3천억 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900불로 시작한 도미노 피자가 세계적인 그룹이 된 것은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훗날 그는 말하기를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가 쓴“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그 책을 잃고, “나도 주님을 섬겨야 하겠다.”라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많은 자선 사업을 하며, 교회도 세웠습니다. 그리고 1983년에는 그가 어릴 적 꿈대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5천 300만 불에 인수했습니다. 그가 LA타임스지와 인터뷰를 할 때 이러한 이야기를 했습니다.“이 세상 모든 사람은 꿈을 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꿈은 마음속에 분명하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 나갈 때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꿈은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끝으로“꿈 넘어 꿈”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꿈 넘어 꿈”이란 내가 바라는 소망이 이루어 졌을 때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꿈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 넘어 꿈을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꿈 넘어 꿈을 말씀하시기를“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꿈의 목적은 육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임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자 우리들의 꿈을 이루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누구나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정결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성결한 사람을 사랑하시며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꿈의 실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그 꿈을 그리며, 기도하며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며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꿈을 가지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안에서 그 꿈을 성취하시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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