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만한 땅에 심은 상추를 주일 점심 애찬 때마다 함께 즐기는 기쁨이 쏠쏠합니다. 양은 얼마 되지 않아도 그 고소하고 상큼한 상추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별것 아닌 것 같은 상추 모종들이었는데요. 정성스럽게 주는 물을 머금더니, 또 몇 번 단비를 맞더니 말입니다. 요즈음 햇볕도 좋지요. 그래서 그런지 아주 튼튼하게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신 손길들에 화답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야, 농사가 이런 거구나. 뿌리면 거두게 되고, 심으면 즐길 수 있게 됨을 실감하게 됩니다. 생명의 신비와 풍성함을 느끼게 됩니다. 진작 옥상을 좀 가꾸어 볼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아예 내친 김에 틈틈이 일을 벌리고 있습니다. 옥상 화단에 두껍게 쌓아놓은 시멘트 조각들을 아예 흙이 나올 때까지 모조리 치우는 작업입니다.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무더기입니다. 그 제거작업이 제법 힘이 듭니다. 지난 주는 목장갑 손가락 끝이 다 뚫리고요, 시멘트 조각들을 쌓아 처리할 울타리를 만들다가 망치로 손톱을 치기도 하면서, 목수처럼 농부처럼 가벼운 부상도 입고 있습니다. 이 작업이 만만치 않음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시멘트 덩어리들을 덜어 내고 있노라면, 이런 느낌이 듭니다. 아, 나의 내면에 쌓여 있고 숨어 있는 죄악들도, 상처들도, 쓴 뿌리들도, 견고한 악의 진들도 하나님이 이렇게 들어내고 정결케 하고 계시겠구나.. 하는 깨달음입니다. 우리 공동체 지체들의 마음 속 깊이 숨어 있고 복병처럼 엎드려 있을 시멘트 파편들, 덩어리들, 가루들을, 이렇게 들어내기를 원하시겠구나.. 그렇다면 우리 편에서는 이 작업이 한 마디로 회개이겠구나. 온전한 회개이겠구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크고 작은 시멘트 덩어리들이 있을 것입니다. 시멘트 조각의 모양도 다 다를 것입니다. 상처와 충격의 시멘트 조각, 분노의 시멘트 조각, 증오의 시멘트 조각, 고독의 시멘트 조각, 두려움의 시멘트 조각, 염려와 근심의 시멘트 조각, 탐욕의 시멘트 조각, 욕정의 시멘트 조각, 피해망상의 시멘트 조각, 우울증의 시멘트 조각, 열등감의 시멘트 조각, 중독의 시멘트 조각, 수많은 작은 파편들 부스러기들이 덕지덕지 엉켜 있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 창세기 42장의 이야기에는 이집트 최고의 권세자가 된 요셉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의 친형 열 사람이 엎드려 절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요셉이 어린 시절 꾸었던 꿈, 하나님이 보여 주신 꿈, 역경과 환난 가운데 소망의 닻이 되었던 그 꿈이, 지금 실현되고 있는 장면이지요. 형들의 곡식 단들이 빙 둘러서서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하던 꿈 말입니다. 요셉은 당연히 형들을 알아봅니다. 그렇지만, 곡식 구하러 왔다가 졸지에 스파이로 몰려 버린 형들, 벌벌 떨며 엎드린 형들은, 앞에 버티고 있는 이집트 총리가 바로 요셉 동생인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 자기들이 미디안 상인들에게 매정하게 팔아버린 소년 동생이, 노예로 비참하게 살지 않고, 이렇게 온 천하를 호령하는 최고 권력자가 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겠지요. 그게 당연하겠지요. 눈 앞에서 입고 있는 옷도 재상의 화려하고 위엄 있는 옷이요, 그 어투도 이집트 말이요, 무엇보다 그 영광과 권세가 압도될 정도니 말입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우리가 범한 악과 죄, 우리가 경험한 상처와 충격이 없어질까요? 사라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점진적으로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 같아도 소멸되지 않는 것이 죄악입니다. 상처입니다. 내 안에 잠복되어 있을 뿐입니다. 혹 잊어버리고 바쁘게 산다 할지라도 그것은 무슨 충격을 받으면 용수철처럼 튀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이 어린 동생을, 아버지 야곱의 총애 때문에, 시기하고 질투하다가, 급기야 죽어도 좋다고 팔아버린 범죄자 형들입니다. 울며 불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그 피붙이 동생을 외면하던, 그토록 잔인한 형들입니다. 그 형들이, 이제는, 갑자기,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 앞에 놓이게 됩니다. 스파이로 억울하게 몰립니다. 그런 뜻밖의 위기가 저들을 덮습니다. 시련은 사람을 하나님의 거룩한 빛 앞으로 이끌고 가는 힘이 있습니다. 형들이 위기와 시련 앞에 서게 되자, 엉뚱하게도 20년전 일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갑니다. 큰 드럼통 속에 가라앉아 있던 콩나물 대가리 멸치 꽁다리 같은 기억들이 솟구쳐 올라옴을 느낍니다. 숨어 있던 죄의식과 죄책감이 고개를 들고 올라옴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이 회개의 삶을 살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회개란 무엇일까요? 죄를 인식하고 자각했으면, 그리고 죄책감 가운데서 그 죄를 뉘우쳤으면, 그 죄로 인한 결과를, 그 죄로 인한 사태를, 재대로 수습하고 완전히 회복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상처가 나고 문제가 생겼으면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형들이 정말 회개의 자리에 이르렀다면, 우선 시기하고 질투하던 자기들의 마음을 하나님 앞으로 들고 나가고, 서로가 큰 죄악을 범했음을 고백하면서 대책을 논의하고, 또한 늙으신 아버지 야곱 앞에 이실직고 하면서, 용서를 빌어야 했을 것입니다. 짐승의 공격을 받아 죽은 것 같다고 거짓말로 고했기 때문에 그런 줄로만 알고 있는 늙으신 아버지 야곱 앞에, 그 사실을 사실 그대로 자백하고 용서를 빌면서, 요셉의 행방을 급히 찾아 나섰어야 할 것입니다. 이집트 전역을 돌며, 동생을 찾아 나섰어야 했을 것입니다. 미디안 상인들에 수소문하는 노력을 했었어야 할 것입니다. 땅 끝까지라도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 나섰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형들 가운데는 그렇게 팔아버린 동생의 울며 애원하던 모습이, 잠자리 꿈자리를 힘들게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오직 잊어버리려고만 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죄 가운데 그대로 엎어져 있고 회개의 문을 열지 못하면, 누가 개입하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건드리기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이제 야곱의 아들들에게도, 회개의 처음과 끝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서서히 움직이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요셉을 먼저 이집트로 보내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때문이 아닌가.. 질문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 원래 그렇게 되기로 되어 있었다.. 누군가 악역은 맡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미화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여 형들의 죄악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요셉을 이집트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무궁무진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하심 때문에, 형들이 죄를 범한 게 아닙니다. 형들이 죄를 범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이 구원의 구도로 이 헝클어진 사태를 선하게 이끌어가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이 임하고 계실 뿐입니다. 나중에 요셉이 형들을 위로하면서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형들을 용서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사후적으로 그렇게 해석하는 장면일 뿐입니다.
오늘 장면은 회개의 첫 단계입니다. 죄를 깨닫게 되는 단계입니다. 내가 범한 일이 죄임을 인식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단계가, 회개의 첫 단계입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단계입니다. 직면이지요. 직면은 사태를 해결하는 첫째 관문입니다. 직면은 하늘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성령의 빛이 임하는 시간입니다. 그 어떤 병도 고치려면 환자 본인이 자기가 병에 걸렸음을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 어떤 중독도 그 중독에서 빠져 나오려면 당사자 본인이 자기가 중독 상태임을 직면하고 자각하고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치료와 회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분은 피해망상이 이제는 거의 완치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의 고백에 의하면 직면하는 데만 2-3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일단 직면이 되니까, 자발적으로 병원을 찾게 되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청하게 되었고, 그 치유하심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제 요셉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형들의 회개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것입니다. 어떤 드라마를 펼쳐 갈 것입니다. 진심의 회개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용서가 있고, 피해자의 상처가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까지 갈려면 우선 죄를 죄로 알고 직면하면서, 죄책감이 마음 속에 강하게 자리잡기 시작해야 합니다. 스파이인 것이 분명하다고 요셉이 강하게 푸시해 가자, 요셉이 듣고 있는 앞에서, 형들은 서로 말합니다. ”그렇다! 아우의 일로 벌을 받는 것이 분명하다! 아우가 우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때에, 그가 그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가 아우의 애원을 들어 주지 않은 것 때문에, 우리가 이제 이런 괴로움을 당하는구나.“(창 42:21)
예수님이 예화로 드셨던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는,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낭비하고 탕진하자, 설상가상으로 그 나라에 흉년이 들고 궁핍한 나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들에서 돼지 치는 직업이라도 감지덕지 하고 있는 차에, 너무 배가 고파서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면서, 이렇게 탄식합니다. 이것은 회개의 시작입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눅 15:13-19).
그렇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내가 한 행동이 죄악된 행동임을 솔직히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은혜입니다. 회개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천국문을 여는 작업입니다. 열린 천국문을 들어갈 수 있는 기본자세입니다. 믿음으로 천국을 간다고 하지만, 회개가 동반되지 않는 믿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믿음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일수록 참된 회개의 자리에 늘 나아갑니다. 그래서 요단 강가에서 세례를 주며 외치던 세례 요한의 광야의 소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의 수많은 말씀들, 특별히 산상수훈은 회개하는 자의 삶을 그려 주고 계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우리들의 주 여호와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십니다.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시 34:18). 하나님의 구하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는 멸시치 아니하십니다(시 51:17).
우리는 지금 위기 가운데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억울한 위기이든, 내가 자초한 고난이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치유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회복시키시기를 갈망하고 계십니다. 주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갑시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호 6:1).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누워 있으면 의인의 삶이 아니라 악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돌이키고 돌이켜야 합니다.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떠나지 않으면 죽습니다(겔 33:11). 천국은 용서받은 자들의 나라입니다.
믿음은 좋은 말인데 회개는 부담스런 말일 수 있습니다. 또 회개를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회개는, 하면 됩니다. 회개의 문을 열면 됩니다. 회개는 생애의 관점을 자기로부터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주목하던 눈을 하나님만을 주목하는 눈으로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 뜻대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일어서면 됩니다. 이러려면 물론, 우선 지난 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허물 많고 상처 많던 지난 날을 돌아보며 아파해야 됩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더러운 죄 우리들의 가슴 아픈 상처를 주의 보혈로 덮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가운데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지시에 따라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구리뱀)을 보았습니다. 구리뱀을 본 자들은 모두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하나님을 무시하고 믿음이 없이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구리뱀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불뱀의 독으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하나님의 백성이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는 모두 죄사함의 은총, 상처 회복의 은총을 입게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하면서 제대로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일생에 있는 단 한 번의 회개의 역사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눅 15:7)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는 우리들의 삶에 회복과 치유, 번창과 행복을 몰고 오게 됩니다(대하 7:14).
왜 그럴까요? 회개는 앞으로의 삶을 내다보면서, 내 생각 내 마음대로 살지 않고 주님 뜻대로 주님 인도하심대로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개만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입니다(행 3:19). 예수를 믿는 삶을 산다는 것은 회개의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믿는 자, 회개한 자 안에 오신 성령이, 이 모든 일을 도우시게 됩니다. 날마다 나를 살피며 성찰하는 고백의 삶을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렇게 함으로 처음 회개를 유지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회개의 삶을 살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자주 성령의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아 자기 고집대로 옛 생활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나의 믿음을 다시 새롭게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가 나에게 있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믿음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회개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삶을 살지 않으면 갑자기 패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갑작스런 패망은 아무도 피하지 못하게 됩니다(잠 29:1). 우리 가운데는 아무도 이런 분들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중에 시간을 내실 수 있는지요? 혹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시간을 내어 교회로 오시면, 옥상 시멘트 솎아내는 작업을 저와 함께 계속할 수 있습니다. 쓴뿌리, 견고한 진들을, 부수며 솎아내는 것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회개의 상징적인 작업을 계속하는 시간을 가져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다같이 눈을 감으시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회개의 문을 열어 보십시오. 내 안에는 어떤 시멘트 파편들이 덩어리들이 숨어 있는지 하나님의 거룩한 빛으로 비추어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을 의지하여 이 작업을 하시면 됩니다. 믿음과 회개는 천국 수레의 양 수레바퀴입니다. 천국 수레를 타고 날마다 승리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하여는, 언제나 회개와 믿음이 하나되어, 우리 가운데 역사해야 합니다. 한 2분간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모든 죄를 주님 앞에 올려 드리며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우선 무엇이 나의 죄인지 밝히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의 빛으로 성령의 조명으로 내 안에 숨어 있는 죄악들, 상처들, 쓴 뿌리들, 견고한 악한 진들이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죄악들 그 허물들 그 시멘트 덩어리들이 제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죄인 됨 나의 죄악을 덮어버리거나 피하지 않고 직면함으로써, 회개의 여정을 시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설교 묵상 질문(소그룹 모임의 나눔으로 활용하세요)
1. 당신은 혹 지금 삶의 어떤 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그 위기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계십니까? 하나님 앞으로 나가, 있는 그대로의 삶을 드러내고 아뢰며, 깊이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계십니까?
2. 당신이 처한 환경적인 위기나 고난이 사실은 나의 죄악이나 허물 때문이었음을 인정하고 나의 죄인 됨과 나의 죄악된 행위를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고백할 수 있습니까?
3. 내가 내 안에 있는 죄악된 본성이나 허물과 약점, 상처들이나 그로 인한 쓴뿌리, 이것들이 오래 됨으로 인하여 내 무의식 속에 형성된 견고한 악한 진들이 무엇인지 직면하기를 원하십니까? 이것들을 제거하기 위한 회개의 작업을 시작하시겠습니까?
http://churchinajoy.net/ch/sun_sermon/30938?ckattempt=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