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선택'(Sophie's Choice)이라는 영화는, 2차 대전 중에 소피라는 폴란드 여인이 전쟁으로 인하여 겪는 비극을 그려내고 있는 영화입니다. 그녀의 아버지와 남편은 독일 나치에 의하여 학살당하고 그녀 자신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어지는데, 수용소로 가던 도중에 그녀의 미모에 반한 독일장교가 그녀의 두 아이들 중에 한 명만 살려 주겠다고 제의를 합니다. 어린 아들딸 둘 다 독가스실로 보내어지는 상황에서 한 명만을 택해서 살려내고 한 명은 죽음의 길로 보내어야 하는 끔찍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소피는, 결국 더 어린 아들 쪽을 택하여 살려내는데, '소피의 선택'이라는 영화 제목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딸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던 자책감에 괴로워하면서 소피는 어린이 수용소로 보내어진 남은 아들이나마 살려내고자 수용소에 가서도 백방으로 노력해 보지만 결국 아들을 찾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전쟁은 끝나고 소피도 새로운 연인을 만나게는 등 새 삶을 시작하게는 되었지만 그렇게 자녀들을 잃어버린 충격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한다는 비극적인 스토리인 것입니다.
메릴 스트립이라는 유명한 여배우가 소피 역을 맡았는데, 그녀는 역을 맡을 때 일단 대본을 철저히 읽고 나서 결정하기 때문에 그렇게 신중을 기하는 동안에 다른 배우에게 그 배역이 넘어가 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본을 다 읽고 나서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메릴 스트립은 감독에게 무릎을 꿇기까지 하면서 사정을 하여 그 배역을 다시 맡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으며, 결국 이 영화가 그녀로 하여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받게 만들어준 명화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영화에서 나오는 대로 부모가 자기 자식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은 세상의 그 어느 부모도 당하고 싶지 않으며 또한 사실상 결정을 내릴 수도 없는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의 생명이라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며, 아니 자기의 생명보다도 오히려 더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영화의 여주인공 소피 역시 그렇게 자식을 읽은 후에 자기 혼자만 살아남은 목숨이라는 것은 사실상 차라리 죽느니보다 더 못한 삶이 아니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그처럼 자기 자식의 생명을 바로 자기 자신의 생명처럼 여기는 부모의 심정이 잘 나타나고 있는데, 바로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결탁되었거늘'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사건은 우여곡절 끝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이 처음에 자기를 종으로 팔아 버렸던 그 열 명의 형들이 곡식을 사기 위해서 애굽으로 찾아와서 자기 앞에 섰을 때, 아직 그 형들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이 진심으로 회개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몇 가지 테스트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요셉은 형들의 일차 방문 때에는 곡식을 주면서 다음 번에 올 때에는 막내 동생 베냐민을 꼭 데리고 와야 곡식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 곡식이 바닥이 나고 요셉의 형들이 다시 애굽으로 곡식 사러 가려고 하면서 베냐민을 데려가야만 한다고 아버지 야곱에게 말하자, 이미 요셉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고 그래서 말째 아들 베냐민을 더욱 아끼고 있던 야곱은 물론 펄펄 뛰면서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베냐민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그때 유다는 자기 목숨을 걸고 베냐민을 무사히 다시 데려오겠다고 야곱에게 철석같이 약속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요셉의 형들이 이차로 애굽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요셉은 처음에는 융숭하게 잘 대접해 주었다가 그들이 돌아갈 때에 베냐민의 곡식 자루 속에 자기의 은잔을 몰래 집어넣습니다. 그리고는 일이 다 잘 된 줄로만 알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그들을 뒤쫓아 가서 베냐민이 총리의 은잔을 훔쳤다고 누명을 덮어씌워 다시 잡아오는 것입니다. 그런 후 요셉은 자기는 베냐민만 잡아두면 되니까 형들은 돌아가도 좋다고 일부러 그들을 테스트합니다. 이전에 자기를 시기하여 팔아넘겼던 형들이 지금 베냐민도 그와 꼭 같이 대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았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유다가 대표로 나서서 그 베냐민을 구출하기 위하여 눈물 어린 간청을 요셉에게 하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그는 자기의 동생 베냐민을 붙잡아 두려고 하는 애굽의 총리대신, 물론 자기도 아직 알아보지 못하고 있던 요셉에게 자기 몸을 대신 잡아 가두더라도 제발 베냐민만은 돌려보내어 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 베냐민의 아버지, 또 자기 자신의 아버지이기도 한 야곱의 심정을 그 애굽의 총리대신에게 마치 자기가 아버지가 된 것처럼 간절하게 대신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는 아버지 야곱이 일전에 이 베냐민 말고도 또 사랑하던 한 아들 요셉을 이미 잃었고 이제 이 막내 하나를 더욱 애지중지하면서 키우고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라는 것은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하나의 생명처럼 결합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두 사람이지만 그 생명은 사실상 하나와 같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들 베냐민이 없어지면 혼자 남게 될 아버지 야곱 역시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가 된다는 말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유다의 탄원에서 "아비의 흰 머리가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될 것이라."는 말이나 "재해가 내 아비에게 미치리이다."라는 말이 바로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 비단 야곱에게만 그렇겠습니까? 사실상 세상의 그 어느 부모라 할지라도 그 자식을 향한 심정은 이 야곱의 마음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자식을 읽은 부모란 사실상 더 이상 '부모'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조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라는 이름은 자식이 있음으로 해서 얻게 되는 명칭이기 때문입니다. 즉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이란 것은 바로 부모가 부모 되게 만드는 원인이요 부모로서의 삶에 의의를 주는 근원이요 부모가 된 기쁨과 행복을 주는 이유 전부인 것입니다.
아까 영화에서는 두 자식들 중에 한 명을 포기해야 하는 괴로운 선택이 나왔지만, 아주 오래 전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만약 공산군이 쳐내려 와서 배우자와 자식 중에 한 쪽만 살려 주고 한 쪽은 죽이겠다고 꼭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말이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선택 역시 정말 당하고 싶지 않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과연 세상의 남편과 아내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간단히 말해서 자식을 내어 주느냐, 배우자를 내어 주느냐 하는 양자택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한다면 과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왔던 그 자리에 마침 제 어머니께서 계셨는데, 그때 어머니께서는 "정 그렇게 해야 한다면 아마도 남편을 포기하고 자식을 살릴 것 같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남편은 자식에 비해서는 이미 오래 살았고 자식은 아직도 남아 있는 생애가 창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의 남편, 즉 제 아버지께서도 그런 선택을 충분히 동의하시고 적극 지지하실 것이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제 어머니께서 특별히 당신 아들딸들을 다른 부모들이 자식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셔서 그러셨겠습니까?
아마도 저는 세상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그런 선택에 피할 길 없이 몰리게 된다면 다 그렇게 배우자를 포기하더라도 자식을 살리려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한 그런 경우에 포기를 당하는 아버지나 어머니 쪽 역시 조금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기꺼이 자식 대신에 희생을 당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의 생명이란 바로 자기 자신의 생명과 마찬가지이며, 아니 자기 자신의 생명보다 오히려 훨씬 더 귀중한 생명이며, 정말 세상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라도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며 세상 다른 모든 것을 다 대신 포기하더라도 결코 빼앗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부모와 자식이라는 것을 그처럼 '생명이 결탁된 관계'로 창조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 경향어린이선교원은 바로 이처럼 결탁되어 있는 부모와 자식의 생명을 함께 구원 받도록 만들기 위하여 세워진 학교입니다. 여러분들께서 그토록 아끼시는 자녀들을 바로 이 경향어린이선교원에 보내심으로 해서 이들은 어릴 때부터 예수 이름을 듣고 하나님 사랑을 느끼고 성령 감동의 지혜를 배우면서 자라게 됩니다. 즉 이 경향어린이선교원에서의 교육은 이 자녀들의 영혼을 어릴 때부터 곁길로 가지 아니하고 똑바로 구원의 길에 이르도록 그 첫 방향을 잡아주는 실로 귀중한 과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혹시 그저 유치원 교육 과정으로만 생각하고 자녀를 선교원에 보내실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보다 훨씬 더 크고 중요한 일이 바로 이 선교원을 통하여 여러분 자녀들에게, 그리고 또한 여러 부모님들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 부모님들께서 이미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영생을 얻으신 것처럼 이 자녀들 역시 구원 받는 생명이 됨으로써, 그 생명이 단지 이 세상에서의 부모자녀로서만이 아니라 저 천국에서의 영원한 생명으로도 결탁이 되는 놀라운 축복인 것입니다.
아직까지 부모님은 믿지 않지만 자녀들만은 이 경향어린이선교원에 보내어 주시는 여러분들에게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어린이선교원은 여러분의 자녀들만 예수 믿게 하자는 뜻에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어린이들을 통하여 이들과 육신의 생명이 결탁되어 있는 여러 부모님들에게까지 구원의 복음을 전하자는 것 역시 이 선교원의 취지요 방침이요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자녀가 선교원에 입학하게 되면 부모도 교회에 꼭 나와야 한다고 약속시키는 것이나, 오늘 밤에 예배가 다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선교원의 자기 자녀들만 데리고 먼저 떠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무슨 '치사한 일'처럼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진심으로 여러분의 자녀들과 동시에 여러분 부모님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고 귀히 여겨서 그렇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다 이 자녀들 사랑하시지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잘 키워보겠다고 선교원에 보내시는 것 아닙니까? 정말 잘 하신 일입니다. 하지만 더 잘 하셔야 할 일,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이 자녀들과 함께 교회에 다니시고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심으로써, 여러분의 자녀들과 이 지상에서의 혈육으로만 결탁된 부모자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새롭게 결탁된 신앙의 가족을 이루고 저 천국의 영생 안에서 영원히 결탁되는 부모가 되셔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내세에서 가장 멀어져 버리는 사이가 된다면 그 얼마나 큰 불행이겠습니까? 세상에서는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지내던 부모자녀가 죽은 후에는 한쪽은 천당구원을 얻게 되었지만 다른 한쪽은 영원한 지옥저주에 떨어지게 된다면 그 얼마나 비참한 비극이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정말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이며 절대로 일어나서는 아니 될 가정(假定)입니다.
믿는 부모님들은 이 경향어린이선교원을 통하여 그 자녀들 역시 믿고 구원 받게 만들고, 믿지 않는 부모님들은 이 선교원을 통하여 먼저 믿게 되는 자녀들과 함께 또한 구원의 신앙을 나누게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나누게 하신 이 하나의 생명처럼 결탁된 부모자녀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게 해 주시는 영원한 구원생명 안에서도 하나가 되는 진짜 큰 축복을 꼭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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