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의 삶의 여정에는 시험을 보아야 할 많은 기회를 갖는다. 대입 등 학교 입학과 관련된 입시 시험들, 직장의 입사와 관련된 시험들 그리고 여러 가지 자격시험 등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통과해야 할 시험들 가운데는 이런 시험들 외에도 영적 시험이 있다. 이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다 더 온전함으로 세워 주시기 위하여 허락하시는 시험이다. 본문은 영적 시험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다.
2. 하나님은 요셉을 통하여 그의 형제들을 시험하셨다. 만일 그들이 이 시험에 통과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가지고 계신 계획들을 이루실 수 있지만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 계획은 시험을 통과할 때까지 유보될 것이다. 요셉의 형들이 통과해야 할 시험은 그들이 전에 실패했던 삶의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약속의 자녀들로서 그리고 형제들로서 서로 사랑하며 살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질투심에 이끌려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림 죄를 범했다. 그들이 범한 죄는 약속의 자녀로서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게 하는 큰 죄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이 죄로 인하여 직면하게 된 삶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신 계획들을 유보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예비해 주셨다. 그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린 후부터 애굽에서 요셉을 재회하기까지 십칠 년은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실패의 삶을 회복하도록 허락해 주신 기간이었다.
이제 시험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기근을 통하여 형들로 하여금 애굽으로 내려가서 요셉을 만나게 해 주셨고 또한 요셉으로 하여금 그들을 시험하도록 하셨다. 요셉은 형들인 줄 알았지만 자신을 그들에게 숨기고 그들을 시험했다. 첫 번째 시험은 그들을 애굽을 정탐하기 위해 온 정탐꾼으로 죄를 뒤집어 씌우고 형제들 가운데 한명을 인질로 잡아 둔 후 나머지 형제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다시 애굽으로 내려올 때 집에 머물고 있는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한 것이다. 요셉은 이와 같은 시험을 통하여 동생과 아버지의 안부를 확인하고자 했다. 만일 아버지와 동생 베냐민의 평안하다면 그것은 형들이 과거 자신에게 행했던 것과 같은 죄로부터 떠났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요셉의 형들은 동생 베냐민과 함께 애굽에 내려옴으로 이 시험을 통과했다.
그러나 이 시험으로는 그들이 언약의 자손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살기에 부족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통하여 두 번째 시험을 허락해 주셨다. 두 번째 시험은 베냐민을 통한 시험이었다. 요셉은 두 번째 애굽에 온 형제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때 청지기로 하여금 베냐민의 곡식 자루에 은잔을 넣어 두도록 했다. 그들은 양식을 사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그들이 성에서 멀리 가지 않았을 때 요셉은 청지기에게 그들의 뒤를 좇으라고 했다. 청지기는 요셉의 명대로 그들에게 이르러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데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44:4,5)” 요셉의 형제들은 청지기의 말을 듣고 당황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정직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당신의 종들이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44:7-9)” 냈다. 그들은 결코 이런 일을 행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에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요셉이 계획적으로 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인과 관계로 일어난다고 생각지만 실제로는 만유의 주재 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어나고 있다.
요셉의 형제들이 이처럼 뜻밖의 일을 만났을 때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44:13)” 그들은 모두 자신의 옷을 찢었다. 이것은 그들 모두가 형제의 고통에 함께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베냐민이 노예가 될 위기에 처해 있었을 때 한 사람도 집으로 향하지 않았고 돌이켜 베냐민과 함께 애굽의 총리의 집으로 갔다. 형제들의 이와 같은 모습은 자신들을 더 이상 개인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하나라는 일체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특별히 하나님은 야곱의 가족들을 통하여 세상에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구별된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셨기 때문에 이들 가운데 일체감을 요청하셨다. 이 일체감의 필요성은 신약의 교회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1,22)”
형제들은 요셉의 집에 이르러 그의 앞에 엎드렸다. 그러나 요셉은 그들에게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라고 말하며 은잔을 훔친 베냐민만 노예로 삼을 것이라고 말하고 다른 형제들에게는 평안히 올라가라고 말했다. 요셉의 말을 듣고 유다는 자신들의 정직함을 증명할 수 없음을 탄식하며 자신들도 베냐민과 함께 노예가 되게 해 달라고 했다. 유다의 탄식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이 된다.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44:16)” 요셉의 형제들은 잔을 훔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 앞에서 자신들의 정직을 증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현실을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죄를 찾으시고 그 죄를 심판하시는 것으로 믿었다. 이처럼 그들은 현재 자신들이 직면한 현실을 이렇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셉을 설득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이 위기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직면하는 일들 가운데는 사람들의 이해를 구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요셉의 형제들이 지금 직면하고 있는 현실들이 모두 요셉으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그들이 설명하지 않아도 요셉은 그 일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허용하심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신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따면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사람들의 이해를 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형제들은 이처럼 베냐민에게 일어난 불행이 자신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책임을 베냐민에게만 돌리지 않고 자신들 모두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베냐민과 함께 요셉의 종이 되기를 구한 것이다. 요셉은 형제들의 간청을 거절했다.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44:17)” 요셉이 이처럼 자신들의 청을 거절했을 때 유다는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하여 종이 되겠다고 말하며 베냐민을 다른 형제들과 함께 집으로 돌려보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리고 유다는 계속하여 자신이 이처럼 간청하는 이유들을 말했다. 그 이유란 아버지의 안위를 위한 것이었다. 유다는 요셉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들 가운데 특별히 한 여인을 통하여 얻은 한 아들을 사랑하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그를 잃었고 말하며 그 후 아버지는 그를 대신하여 그의 동생인 베냐민을 위로로 삼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또 다시 베냐민조차 잃는다면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모습이야말로 요셉이 바라던 것이었다. 이로서 그들은 두 번째 시험도 통과했다. 특별히 두 번째 시험은 형제들의 하나됨과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시험하실 때 그들이 통과해야 할 최종적인 시험은 바로 하나됨과 사랑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세상에 세우고자 하신 구별된 공동체(이스라엘 민족 또는 교회)는 그들의 하나됨과 사랑으로만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시험에 통과한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세워진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기초가 된 열두지파의 조상들이 되었다.
요셉의 형들이 모든 시험을 통과하기까지의 과정들을 살펴 볼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험들을 통과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첫째 믿음이다. 하나님은 요셉의 형들을 시험하실 때 요셉을 자신의 대역으로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끝까지 신뢰함으로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요셉이 형들에게 행한 일들과 요구한 것들을 보면 때로는 납득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고 때로는 무리한 요구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요셉을 신뢰하고 그가 자신들에게 요구하는대로 행할 때 현재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실제로 요셉의 형들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길은 오직 한 길 뿐이었다. 그것은 요셉을 신뢰하고 그의 말에 따라 행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시험들을 통과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그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것임을 말해 준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시험을 통과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요청 되는 것들 가운데 다른 하나는 사랑이다. 형제들이 아버지와 동생 베냐민을 사랑하지 못했다면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베냐민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들은 베냐민과 함께 그 짐을 나누어 졌다. 특별히 형제들 가운데 유다는 아버지의 안위를 생각하여 베냐민을 대신하여 자신이 노예가 되고자 했다. 결국 이와 같은 사랑이 요셉으로 하여금 자신을 노예로 팔았던 형들에 대하여 신뢰하도록 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시험을 통과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요청 되는 것들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회개다. 형들은 애굽에서 예상치 못한 고난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을 때 환경을 탓하거나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회개했다. 그들은 현재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시련들을 자신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현재 자신들이 직면하고 있는 시련들로부터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도 하나님뿐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처럼 참된 회개는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이 믿음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조차 이길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이처럼 시험은 고통스런 것이지만 그것을 통과할 때 영광에 이르게 된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시험에 직면했지만 이 시험을 통과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고, 다윗은 십여 년 동안 사울에게 쫓기는 삶을 살았지만 믿음의 원칙에 따라 삶으로 시험을 통과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주님은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단으로부터 시험을 받았지만 승리하심으로 큰 권능을 받고 공적 사역을 완성하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믿음의 사람들 중에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온전함에 이를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그 시험으로 인하여 넘어진 자들도 있다. 특별히 출애굽 일 세대는 광야라는 시험에 통과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약속의 땅에 이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넘어졌다. 이처럼 시험은 우리를 영광스럽게 해 주는 기회도 되지만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도 된다. 오늘 주신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모든 시험은 우리를 보다 더 온전함으로 이끌어 주시기 위한 것이라는 것과 또한 시험을 통과하는 길은 믿음과 사랑과 회개라는 것을 기억하고 이와 같은 영적 원리에 따라 행함으로 모든 시험을 온전함에 이르는 은혜의 기회로 창조해 가기 원한다.
3. 하나님!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모든 시험을 주께서 가르쳐 주신 영적 원리에 따라 행함으로 통과하게 해 주시고 이로 인하여 온전함에 이르게 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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