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4 창세기 주석 /양인국

본문은 요셉이 형들로부터 진정한 회개의 증거를 얻고자 시도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은 요셉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죄를 묵인치 않으시고 끝까지 추적하여 참된 회개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요셉은 그들이 형제들이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이 범죄 한 죄를 참으로 회개하였는지 확인하고자 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셉은 여러 과정을 통하여 형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을 때 그들에게 자신이 요셉이라는 것을 밝히고 그들에 대한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울었던 것이다. 이 순간이야말로 요셉과 형들 사이에 막혔던 담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온전한 회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또는 우리와 이웃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모든 담들을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회개란 무엇인지 교훈을 받는다.


44:1-13. “1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2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3 아침이 밝을 때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 4 그들이 성읍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가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5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 6 청지기가 그들에게 따라 가서 그대로 말하니 7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당신의 종들이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8 우리 자루에 있던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의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둑질하리이까 9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10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11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자루를 각기 푸니 12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13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


요셉은 청지기에게 명하여 형제들이 가지고 온 돈을 각 사람의 자루에 넣도록 하고 또 자신이 사용하는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넣도록 했다. 형제들은 양식을 사가지고 집으로 출발하였다. 그들이 성에서 멀리 가지 않았을 때 요셉은 청지기에게 명하여 그들의 뒤를 쫓으라고 말했다. 청지기는 요셉의 명대로 그들에게 이르러 “너희가 어찌하여 악을 선으로 갚느냐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데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44:4,5)”라고 했다. 요셉의 형제들은 청지기의 말을 듣고 당황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정직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요셉의 청지기에게 “내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당신의 종들이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44:7-9)” 청지기는 이들의 말대로 각 사람의 자루를 검사한 후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을 찾아내었다. 그들의 생각에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일은 요셉이 계획적으로 한 일이기 때문에 그들의 정직과 관계없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일은 인과 관계로 일어난다고 생각지만 실제로는 만유의 주재 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요셉의 형제들이 이와 같은 뜻밖의 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행하였는지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44:13)” 그들이 모두 옷을 찢었다. 이것은 그들 모두가 형제의 아픔을 함께 아파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베냐민이 붙잡혀 노예가 될 위기에 처해 있었을 때 그들은 한 사람도 집으로 향하지 않았고 돌이켜 베냐민과 함께 애굽의 총리의 집으로 갔다. 이것은 그들이 더 이상 개인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44:14-34. “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15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17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19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22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23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24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25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26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27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28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29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32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형제들은 요셉의 집에 이르러 그 앞에 엎드렸다. 요셉은 이들에게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고 묻고 은잔을 훔친 베냐민만 노예로 삼을 것이라고 말하고 다른 형제들에게는 평안히 올라가라고 말했다. 요셉의 말에 대하여 유다는 자신들의 정직함을 증명할 수 없음을 탄식하며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하여 노예가 되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유다의 탄식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이 된다.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44:16)” 요셉의 형제들은 잔을 훔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 앞에서 자신들의 정직을 증명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런 시련을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죄를 심판하시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인 유다는 요셉에게 자신들 가운데 일어난 이 일은 자신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한 것이다. 유다는 현재 자신들이 직면한 현실을 바르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 일어난 일은 자신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면 요셉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왜냐하면 이런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이 위기로부터 구원해 주실 분도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의 여정 가운데 당하는 애매한 일들 가운데는 사람들의 이해를 구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애매하게 당하는 일들 가운데는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해도 소용없는 일이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요셉의 형제들이 당하고 있는 일들이 요셉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또한 그들이 설명하지 않을지라도 요셉은 그 일에 대하여 그들보다 더 잘 알고 있듯이 우리가 당하고 있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허용하심이 없이는 단 하나도 일어날 수 없으므로 결국 우리가 이해를 구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정확히 알고 계신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말할 필요도 또한 그들의 이해도 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형제들은 베냐민에게 일어난 불행이 자신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현재의 재난에 대한 책임을 베냐민에게만 돌리지 않고 자신들 모두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베냐민과 함께 요셉의 종이 되기를 구한 것이다. 요셉은 유다의 간청에 대하여 단호히 거절했다.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44:17)” 요셉의 거절에 대하여 유다는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하여 종이 되겠다고 말하며 베냐민을 다른 형제들과 함께 집으로 돌려보내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리고 유다는 계속하여 자신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말했다. 그 이유란 단순히 아버지의 안위를 위한 것이었다. 유다는 요셉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들 가운데 특별히 한 여인을 통하여 얻은 한 아들을 사랑하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그를 잃었다. 그 후, 그를 대신하여 그의 동생을 위로로 삼고 살았는데 그가 바로 베냐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또 다시 베냐민조차 잃는다면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의 모습이야말로 요셉이 바라던 모습이었다.


우리는 요셉이 악을 행하였던 형들로부터 보기를 원했던 바로 그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범죄 한 우리로부터 받으시기 원하시는 참된 회개란 어떤 것인지 교훈 받는다. 먼저 참된 회개란 단순히 잘못이나 죄를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죄를 범한 일에 대하여 후회하는 것 정도로 알고 있다. 물론 회개는 범죄 한 사실에 대하여 후회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우리의 회계가 여기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을 참된 회개가 될 수 없다. 참된 회개는 죄를 범한 일에 대한 후회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회개가 단순히 죄에 대한 후회라고 한다면 어째서 가롯유다는 그렇게 죽을 수 있었겠는가? 또한 애굽의 바로도 하나님의 능하신 일을 목격할 때마다 “이번은 내가 범죄 하였도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였는데 어째서 망할 수 있었겠는가(출9:29)? 이처럼 이들이 자신의 그릇된 행위에 대하여 후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회가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그릇된 관계를 바르게 해 주지 못했다면 그것은 참된 회개라고 할 수 없다. 요셉의 형들도 애굽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에 과거에 자신들이 요셉에게 행했던 일을 기억하고 그 일을 후회하였다(창42:21). 그러나 요셉은 형들의 후회를 참된 회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요셉은 형들이 참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돌이켰는지 알기 위하여 후회 이상의 사실을 확인하기 원했다. 그래서 형들 가운데 한 명을 애굽에 인질로 잡아 두고 나머지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가서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한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회개를 단순히 ‘범죄한 사실에 대한 후회’ 정도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회개를 통하여 오는 복된 열매를 거두기보다는 오히려 가롯유다나 바로가 거둔 저주의 열매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참된 회개란 무엇인가? 참된 회개란 범죄의 사실을 후회할 뿐만 아니라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참되 회개가 이루어 진 곳에는 반드시 삶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바울을 통하여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그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의 삶 가운데 이전과 이후를 구분 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주님을 만났고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삶에 전환점이 되어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과 후를 구분할 수 있었다. 즉 바울에게 이 구분은 삶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자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 후 그는 자신이 반대하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가 되었다. 이처럼 진정한 회개는 회개한 그 순간부터 삶 가운데 전과 후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회개는 의지적 결단만으로는 이루어 질 수 없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범죄 한 다윗은 자신에게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이다(시51:10).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의 심령을 조명해 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고 더 이상 죄 가운데 거하기를 원치 않는다. 이들은 죄 가운데서 자유를 누리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더욱 주님께 예속되어 스스로 종 됨의 자유를 누리기 원한다. 이와 같이 죄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통제 받는 삶을 축복으로 알기 때문에 무엇을 행하든지 자신의 기분에 따라 또는 좋아하는 것에 따라 행하지 않고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 가운데 행해지는 진정한 회개는 반드시 삶의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셉의 형들로 하여금 참된 회개에 이르도록 섭리적으로 인도하시고 그들을 도우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을 섭리적으로 인도하심으로 그들이 속였던 아버지와 그들이 미워했던 동생에게 자신들이 행한 일을 고백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회개의 증거를 보이도록 기회를 주셨다. 이 기회는 그들에게 고통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죄책에 대한 무거운 짐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복된 기회였다.


유다가 베냐민을 대신하여 애굽에 남아서 노예가 되겠다고 한 것은 아버지와 동생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거에 스스로 자유하기 위하여 미워하던 동생을 노예로 팔았고 아버지를 속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후의 삶을 통하여 그것이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죄 가운데 자유를 누리는 것보다 사랑 안에서 스스로 종노릇함으로 누리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아버지와 동생 베냐민을 위하여 애굽에 남아서 스스로 종이 되려고 한 것이다. 우리는 요셉의 형들로부터 전과 후의 변화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변화야말로 요셉이 형들의 회개를 확신할 수 있는 증거로 보기 원했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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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4 창세기 주석 /양인국 창44 창세기 주석 /양인국 Reviewed by □□□ on March 19, 2025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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