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목사/애굽으로 간 야곱 (창 46:1-7)
요셉이 자신을 알리고 자신의 가족들을 애굽으로 내려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모시고 올 수 있도록 수레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식을 들은 야곱이 기절을 할 정도입니다. 45:26절입니다. ‘어리둥절하더니’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보낸 수레를 보고서는 기운이 소생하여 내가 죽기 전에 가서 보리라고 합니다. 야곱은 요셉을 어떤 자로 알고 있었습니까? 죽은 자로 알고 있었지요? 형들이 요셉의 옷에 짐승의 피를 묻혀 왔을 때 죽은 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브엘세바에 이릅니다. 브엘세바는 가나안의 끝 지역입니다. 이곳을 지나면 사막이 시작되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이 됩니다. 그리고 이 브엘세바는 이삭이 주로 살았던 지역입니다. 야곱이 이곳에 이르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립니다. 희생을 드리면서 그의 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십니다. ‘야곱아 야곱아’ 하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야곱이 대답하자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삭에게 언약하신 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무어라고 하십니까?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야곱이 형을 피하여 외삼촌집으로 갈 때에 역시 밤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서 무어라고 하신 것입니까? 창세기 28:10-15절을 봅니다.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도망을 가다가 누워 잘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무어라고 하십니까?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네가 누운 이곳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을 이루시기까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20년이 지나서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가나안을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나 그 약속도 역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네 후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4대만에 돌아오리라는 것을 이미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야곱이 하란으로 갈 때와 지금 애굽으로 갈 때에 달라진 점이 무엇입니까?
하란으로 갈 때는 희생제사가 없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배나 기도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희생을 드림은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란으로 도망갈 때에 약 70세로 보았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바로왕 앞에 설 때에 130세라고 하였으니 그때로부터 60년이 지난 것입니다.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 물어 보는 것입니다. 지금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브엘세바에 이르렀지만 어찌할지 망설여지고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의 뜻을 묻는 것이라고 봅니다. 60년 전에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묻는 것입니다.
우리가 야곱의 절반을 산다고 본다면 예수 믿은 지 30년쯤 되었다면 이제 주님의 뜻을 물어도 보고 분별도 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저 내 고집대로 밀어 붙여 놓고서는 ‘하나님 이것 이루어 주옵소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하여 나에게 무엇을 하시렵니까? 하고서 묻는 것이 기도입니다. 주보의 복음묵상이라는 란에 지금 기도에 대하여 계속 싣고 있습니다. 주보를 순서지로만 한번 보고 예배당에 그냥 버리고 가시지 마시고 한번씩 더 보시고 버리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고 하시면서 또 다시 하나님의 언약을 주시는 것입니다. 3-4절입니다.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1,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계속 주어진 약속입니다.
2, 나도 너와 함께 내려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동행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과거에 약속 하신 바가 있는 내용입니다. 하란으로 갈 때에 네게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3,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라고 하십니다. 야곱 자신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도 하나님이 일하심이고 지금 애굽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죽어서 가나안으로 오지만 그 후손이 430년 후에 가나안으로 나오게 되는 것을 보면 역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시고야 마시는 것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4, 요셉이 너의 눈을 직접 감길 것이라고 합니다. 죽었다고 생각한 그 요셉이 자신의 임종을 지킬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이미 성경을 통하여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몇 년이 걸리든지 상관없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세계 최고의 강대국 이집트라도 아무른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도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서 야곱의 일행이 드디어 애굽으로 갑니다. 요셉이 보낸 수레를 타고서 자신의 처자식을 거느리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가나안에서 얻은 재물도 가지고 갑니다. 그 당시의 재물이라면 주로 가축떼입니다. 그런데 이 이사하는 행렬을 보면서 우리도 이사할 준비를 하고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지금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들어가지만 또다시 가나안으로 나올 것입니다. 그러니 계속 떠남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떠날 때 그냥 떠납니까? 필요 없는 것들은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요셉이 무어라고 하였습니까? 45:20절에서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가나안의 살림살이들을 아깝다고 보따리 보따리 싸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곳의 모든 것이 너희 것이라고 합니다. 요셉의 것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것들이 이러하지 않을까요? 아끼지 말고 버려두고 가자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살 때는 귀하고 없어서 안 될 것 같지만 하늘나라에 필요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소풍 이야기이고 하나는 이사 이야기입니다. 인애가 소풍을 갔다 오는 것을 보고서 과자 남겨온 것이 있느냐고 물었지요? 동생 좀 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집사람이 아주 구질구질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얼 남겨오는가 이런 표정입니다. 이게 문화차이인가 봅니다. 저희가 어릴 때는 먹을 것은 일년에 소풍갈 때나 먹어보는 김밥에 돈 몇 십 원 들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풍에 따라온 장사하는 사람들에게서 사먹는 것인데, 도시 사람들은 먹을 것을 사서 들려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나들이 소풍 갔다 오면 꼭 동생 먹을 것을 사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시는 먹을 것이 많은데 무얼 남겨 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서 생각하기를 그래 남겨오지 말자 냉장고를 열면 먹을 것 있고 가게에 가면 많은데 무얼 먹다가 남겨오는가 그냥 먹고 나누어 주고 그렇게 오자 라는 생각이 든 것은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를 보면서 그래 소풍 나왔으니 그냥 주고 함께 나누고 가자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또 하나는 저희 집이 밀양에서 부산으로 이사 올 때입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오면 시골의 농사짓는 모든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지간한 것들은 다 그저 주고 어떤 것들은 돈을 조금씩 받고 팔기도 하고 그렇게 정리를 하고 온 것입니다. 농사짓고 살 때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도시로 이사를 오니 아무른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다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에 없어서 안되는 것 같지만 하늘나라로 갈 때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애굽으로 가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이사하는 모습을 통하여 이렇게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믿음으로 산다면 늘 이사할 준비를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조상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히브리서 11:13-16절입니다.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이 땅에서 나그네라 외국인이라 하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이사할 준비를 하면서 사는 이 사람들의 하나님이라 칭함 받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느뇨 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여자가 더 세상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애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로 이사할 준비를 하면서 산다면 무엇을 버리고 가야 할지를 늘 생각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의 말을 기억합시다. 기구들을 아끼지 마시고 오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것이 모두 여러분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어라고 하실까요? 너희들은 땅의 것들을 다 버리고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준 용서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오너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것들이 다 너희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생명수 강가에서 생명나무의 열매가 공짜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지고 갈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의 것들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야곱의 가족이 47절에 보시면 70명입니다. 출애굽기 1:5절과 신명기 10:22절에서도 70명으로 되어 있는데 사도행전 7:14절에 보면 75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아내와 네 명의 며느리를 포함하고 안하고 하는 차이라고 봅니다. 이런 숫자의 차이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야곱의 언약 안에 포함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혈속, 야곱의 허리, 그 부러진 허리로부터 나온 70명이 애굽에서 커다란 민족으로 이스라엘 국가로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애굽으로 내려 보내시는 것입니다.
이들이 드디어 애굽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요셉과 바로를 만나게 됩니다. 요셉과 야곱의 뜨거운 상봉을 합니다. 목을 어긋 맞겨 울면서 이제야 내가 죽어도 여한이 없다 라고 합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을 뿐 아니라 애굽의 주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미 하나님이 야곱에게 형제들의 주가 되리라는 말씀의 성취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을 다시 만남으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다가 다시 받은 것과 같은 마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경험하는 언약의 조상들입니다. 이삭은 어떻게 경험을 하는가 하면 에서인줄 알고 축복하고 보니 야곱이었고, 야곱은 형이 죽이려는 것을 피하여 도망간 사건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봅니다. 모두가 같은 경험들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것과 같으며, 이삭은 야곱을 20년이나 지나서 만났으니 죽었던 것 같은 자가 살아 온 것이며, 야곱 또한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하였던 아들 요셉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들을 버리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잃어버림의 아픔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늘 기억하여야 할 것은 나의 잃어버린 아픔보다도 하나님께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아픔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서 바로를 만나고 바로를 축복합니다. 이 내용은 지난주에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야곱이 애굽에 들어 온 것은 주로 들어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을 한 번 더 보고자 합니다.
창세기 47:9절입니다.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자신의 생애를 험악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애를 나그네라고 합니다. 두 번이나 나그네 사람이라고 합니다. 성도는 이 땅의 나그네입니다.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편지 하기를 흩어진 나그네들이라고 합니다.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한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도란 나그네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나그네임을 확인하는 것이 야곱이 가나안에서 하란으로, 다시 애굽으로, 다시 가나안으로 가는 것입니다. 결국 죽어서 가나안에 매장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묻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야곱의 나그네의 세월, 그 험악한 세월을 보시면서 무엇을 마음에 느낍니까? 우리도 결국 떠나야 할 나그네 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도저히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삽니다. 그저 이 땅에 천년만년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택한 자들은 그러면 그럴수록 고난이 많은 것입니다. 야곱이 그러합니다. 얼마나 악착같았습니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험악한 세월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보면서 결국 누구의 고집이 센가를 보게 됩니다. 아무리 야곱이 발버둥을 치더라도 결국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에 신실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신실한 하나님을 우리가 믿을진대 너무 염려 마시고 세상에 눌러 붙어 있으려 마시고 오늘도 떠나는 준비를 하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하면서 하루하루를 사시기 바랍니다. 이런 나그네는 짐이 가벼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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