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인줄 믿습니다. 사물을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과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이 역사 이후 계속 대립되어왔습니다. 어떤 시대는 사물이 사람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었고 그래서 사람이 죽는 것보다 물건이 손상되는 것을 더 아까워하는 그런 시대도 우리는 역사의 경험을 통해서 보아왔습니다.
얼마 전에 조지아주에 있는 한 신문사가 사과의 광고를 내었는데 약 200년전에 자사 광고란에 "건강하고 힘센 노예를 팝니다"라는 광고를 내었던 것을 이제 와서 그같은 행위가 잘못된 광고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금과 은이 중요했지 몇 십불 정도면 건강하고 일 잘하는, 흑인 노예들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볼 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사람'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중의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그 가치는 세상에 있는 다른 어떠한 피조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알려주신 후, 유다 지파 중에서 브사렐이라는 한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오늘 성경이 말씀하는 깊은 의미 중의 하나는 유다 지파 중에서 브사렐을 선택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결혼에 앞서 친구들을 사귈 때 처음부터 애인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 집에 한번 데리고 와 보아라" 사귀는 친구가 어떤 아이인지를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때 부모된 우리가 제일 먼저 물어야 할 관심사가 무엇이어야 합니까? "부모님은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니?"
하나님께서 브사렐을 지명해 부르셨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유다 지파로부터 시작을 해서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이라고 하시는 의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지요. 계속해서 오홀리압을 부르실 때도 단 지파의 누구의 손자 누구의 아들 오홀리압을 부르셨다고 똑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동역자들에게서 부러움을 사는 것 중의 하나는 부모님이 목회를 하셨고, 그리고 이제는 명예롭게 은퇴하신 분이라는 그래서 영적으로 가장 철저하게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하는 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실 지금도 저는 제 목회를 한다기 보다 약 42년간 목회하셨던 아버님의 목회를 어릴 때부터 보면서 교인을 대하는 모습,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 등을 생활 속에서 배웠고 이제 실천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예를 들면, 눈이 무릎에 찰 정도로 많이 왔을 때, 여 집사의 남편이 술을 먹고 와서 교회 문을 부수고, 주택 문을 발로 차면서 목사 나오라고 소리를 쳤을 때 아버님이 밤중에 나가서 술주정을 받아주시는 모습, 아버님이 운동을 하신 분이라 건강한 사람도 힘들이지 않고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술취한 사람에게 멱살을 잡혀 교회 마당을 수없이 끌려 다니는 것을 보면서 청년기의 제 심장은 피가 끌어오르는데, 이제는 제 멱살까지 잡고 또 끌고 다닐 때 아버님께서 저를 쫓아오시면서 하신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요한아,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그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목회를 하는 지금,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대하는 자세의 중요함을 이미 부모님을 통해서 배웠던 것입니다. 여기 우리 장로님이 앉아계시지만 17년 전에 전도사로 목회를 처음 시작할 때, 새로 오신 분들이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처음 목회하는 전도사님 같지 않아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아마 그런데서 인연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명자들이 목회를 똑같이 시작하지만 가정에 영적인 배경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실패를 경험합니다. 부모님조차 믿지 않거나 혹은 핍박받는 입장에 서있는 목회자들이 그들의 부모로부터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는다고 호소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성막이라는 귀하고 복된 사명을 감당할 자로 유다 지파에서 브사렐을, 단 지파에서 오홀리압을 부르신 의도가 얼마나 깊은 배려에서 나온 것인가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위해 사람을 선택한 후 하신 첫 번째 일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신이 충만케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성령충만케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을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교사로, 성가대원으로 뽑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명되어 부름을 받았으면 무엇보다도 성령충만함을 위해서 우리의 수고와 희생을 아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두 번째가 아니라 사역을 위한 첫 번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목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은 목사는 성령충만하지 않은 성도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합니다. 브사렐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그에게 하나님의 신을 충만케 하신 의미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 하신 일은, 지혜로운 브사렐과 오홀리압을 불러 그들을 더욱 더 지혜롭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을 부를 때 아무나 부르신 것이 아니라 백성 중에 지혜로움을 가진 이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적 지혜로움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었기에 그들이 가진 지혜 위에 하늘의 지혜를 더하여 주신 줄 믿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의 지혜가 부족하면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내 것만 가지고 무엇을 해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힘입어서 그것을 감당하려고 하는, 그래서 하나님이 끊임없이 내게 말씀하시고 내게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겸손함을 가져야 합니다.
지혜의 지혜를 더하여 주신 하나님께서 이제 브사렐과 오홀리압에게 성막과 성막에 필요한 모든 기구들을 다 만들도록 맡기셨습니다. 이제는 위임하시는 거예요. 철저하게 맡기는 것입니다.
앞서가는 회사들이 팀제도를 만들어서 팀장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결제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니까 부서마다 창조적으로 자율적으로 잘 돌아가는 그런 모습들을 볼 수 있어요.
이랜드 그룹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설악산 켄싱턴호텔에 가면 30대 젊은이가 사장입니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어요. 기존 회사 같으면 과장 정도밖에 안될 나이인데 사장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진 젊고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호텔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그만큼 책임과 권한을 위임해 준 것에 대한 자신의 달란트를 100% 활용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브사렐과 오홀리압을 불러 그들에게 일을 맡기실 때 먼저 성령충만케 하셨고, 그들의 지혜 위에 하늘의 지혜를 더하여 주셔서 성막을 다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그 성막이 어떤 성막입니까? 광야에서 지어야 할 성막이요, 이동식 성막입니다. 때로는 하루만에, 때로는 몇 달만에 성막을 뜯어서 다른 광야로 옮겨간 후에 다시 성막을 세우고 각 지파마다 텐트를 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 성막은 고정식보다 더 정교하고 과학적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고정식이라면 속에 있는 기초가 혹시 잘못되어도 겉을 예쁘게 마감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이동식은 모두 뜯었다가 다시 조립해야 하기 때문에 안팎의 모든 기구가 정확한 치수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막은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치수를 맞추어야 했습니다. 대강 대강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성막은 예술성이 있어요. 촛대 하나를 만들어도 가지 가지마다 꽃잎 모양으로 아름답게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정성을 다해 그들의 공교한 기술을 사용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과학적인 측면과 예술적인 측면을 우리 주님께서 요구하신 것입니다.
제가 처음 개척할 때 전기료가 부담이 되어서 형광등 중에 일부를 끄고 강단 앞에 있는 등만 켜고 새벽 기도회를 드렸던 때가 있었어요. 교인이라고는 저희 집사람 혼자였으니까 뭐 어두워도 소리는 들릴테니까 하고 그렇게 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어느 세미나에 참석하여 큰 충격을 받았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예배실에 전기료 아끼려고 등을 다 끄다니" 제가 얼마나 부끄럽고 한심했는지 몰라요.
사실 생각의 차이예요. 절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배에서 은혜 받게 하는 환경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때 다 해봐야 한 달 전기료가 5,000원도 안나올 때인데, 한 사람이 말씀에 은혜를 받고 10,000원을 헌금하면 두 달치 전기료가 해결되는 거 아니예요.
제가 아버님을 존경하는 것도 그런 적극적인 목회 의지에 있습니다. 새로운 교회를 갈 때 "성미를 몇 말 줍니까? 우리는 식구가 7명인데.." "우리 교회는 성미를 두 말 밖에 못 드리는데요" "그러면 안되겠네요" 그리고 성미 네말 주는 교회를 찾아다녀요. 그런데 아버님의 생각은 달라요. "두말 주는데 가서 두 가마 나오는 교회로 부흥시키면 될 것 아니냐?" 할렐루야! 생각이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을 쓰시는 줄 믿습니다. 다 되어있는 것 찾아 다니는 사람을 원하지 않아요. 창조적이고 일을 하겠다는 개척자의 정신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제 그 성막의 마지막 의미를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사신 교회, 그 분을 믿고 신앙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를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보냄을 받은 사람들' 그들이 모인 장소를 '교회'라 그럽니다. 과거에는 광야의 성막을 그들의 이동에 따라서 옮겼지만 솔로몬 시대에는 시온산 정상에 움직이지 않는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예루살렘 성전조차도 세 번에 걸쳐서 새롭게 건축이 되어졌습니다. 한번은 솔로몬에 의해서, 한번은 바벨론 포로 이후 스룹바벨과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통해서, 그리고 또 한번은 전혀 믿음은 없지만 정치적으로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헤롯 대왕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가장 크고 화려하게 지어주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도들의 수고와 땀이 들어가 있지 않은 성전은 건물일 뿐 성전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교회의 중요한 의미는 이런 보이는 건물에 의해서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공동체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교회로서의 의미가 더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성도들의 공동체가 이동하면 그곳에 또 교회가 생깁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을 교회화해야 합니다. 아내와 남편이 믿으면 이미 그곳은 교회입니다. 자식들까지 믿고 부모까지 믿으면 완벽한 교회입니다. 그 가정 교회에서 초대교회처럼 예배가 이루어져야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이루어져야 되고 기도하는 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회는 오늘날 까지도 계속 이동식입니다. 천국에 가면 교회가 필요할까요? 천국에서는 더 이상 교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필요한 성막을 짓기 위해 부르신 이 시대의 브사렐과 오홀리압이 되어야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지혜 위에 하나님의 지혜를 더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믿고 위임하신 일꾼들로서 공교하게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도행전적인 교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2장 47절이나 4장에 보면 "날마다 주께서 그 수를 더하시는" 살아있는 교회가 사도행전적인 교회입니다.
중요한 것은 보이는 건물을 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교회 즉 하나님의 사람들이 날마다 그 수를 더함으로 보이지 않는 교회가 날마다 증축되는, 살아있고 건강한 주님의 교회를 지어가는 이 시대의 브사렐과 오홀리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주님, 우리의 연약함과 잘못됨을 철저하게 주님 앞에 고백하며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인지, 어떠한 모습을 더 기뻐하시는지를 깨닫기 원합니다. 평안의교회가 날마다 그 수를 더해가는 살아있는 교회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살아있는 교회를 날마다 새롭게 증축해 나가는 이 시대의 필요한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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