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31:12-18 큰 안식(安息)의 정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중에 좀 중요하고 강조해야 되겠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은 몇 번씩 반복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을 봅니다. 말씀을 좀 더 귀 기울여 듣기를 원하실 때에는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듣는 사람에게 대단히 모욕적인 것이지요. 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은 그 귀를 열어 듣기를 원하시고 그래서 자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도전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안식'에 대한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기에만 무려 4번이나 반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4번씩 반복하셨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성도들이 안식에 관한 삶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주님께서 말씀하신 안식일에 관한 언급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얻을 때였습니? 만나는 그대로 먹는 양식입니다. 아침마다 나가면 새벽 이슬 같이 하얀 가루가 그들 진영에 쌓였고 그것을 가족 식구만큼 떠오면 되었습니다. 매일 매일 주셨기에 일용할 양식입니다. '만나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많이 가져간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가져간 사람도 모자라지 않는 은혜의 법칙입니다.

"누구든지 안식일에 거두어서는 안된다"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혹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기 위해서 헛수고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나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육신의 양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월요일부터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는 영의 양식을 위해 일하고 육의 양식을 위해서는 땀흘리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대도' 큰 도둑은 부잣집들만 텁니다. 한번 털면 수백만원, 수천만원씩 귀금속이 나오고 현금이 나오지요. 여러분, 그런데 도둑질을 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사람 보셨습니까? 화투판에서 번 돈은 화투판에서 쓴다고, 도둑질해서 번 돈은 불의하게 벌었기 때문에 그것이 재산이 되지 못하고 축복이 되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또 훔쳐야 하고, 남의 것을 빼앗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식일에 육신의 양식을 주시지 않고 이날 만큼은 영의 양식을 주신다고 하는 주님의 그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달으시고 그렇게 생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학생들 중에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하는 이들이 있지요. 우스개 말로 서울대 학생들은 1년만 과외를 하면 집을 살 수가 있고, 연고대생은 자가용을 살 수 있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주일에 아르바이트하는 것은 안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져 있는 거예요. 학생이든지 어른이든지 주일에는 육신의 양식을 위해서 시간과 정성을 쏟으면 안되는 겁니다. 안식일에 거두기 위해서 나간 사람은 언제나 헛수고만 경험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립니다. 그리고 또 안식일에 돈을 벌러 나갑니다. 안식일에 돈을 벌었으면 부자가 되었어야 하잖아요. 마치 도둑이 도둑질을 했으면 부자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또 훔쳐야 되는 가난을 갖는 것처럼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치고 정상적으로 경제생활이 넉넉한 분 보셨습니까? 왜 그런 어리석은 생활을 작년도 그렇고 올해도 반복하느냐 말이예요. 이제 어리석은 생활은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두 번째 안식일에 대한 말씀은 십계명을 주시면서였습니다. 십계명의 네 번째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에는 안식일의 쉼의 대상이 어디까지냐를 말씀해 주셨는데 "너 자신과 너의 가족과 인간 대우도 받지 못했던 노예, 남종이나 여종들까지 쉬게 하고 심지어는 짐승들도 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인인 자신만 혼자 나와서 예배 드리고 종업원들은 일을 시키면 안됩니다. 아마 요즘은 그렇게 해서 회사가 돌아갈 리가 없지요.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세계적인 이벤트가 열려도 롯데호텔 노조원들은 데모를 했습니다. 옛날 우리 생각 같으면 "큰 일이니까 좀 참자" 했을텐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한 성도님이 그럽니다. "목사님, 요즘은 많이 달라졌어요. 어떤 설문조사의 내용이 3박4일 동안 쉬겠느냐, 아니면 쉬지않고 일하는 대신 50만원의 현금을 받겠느냐 조사를 했더니 ⅔가 넘는 사람들이 50만원을 받지않고 3박4일 휴가를 가겠다고 대답했답니다"

2000년의 한국인들의 생각입니다. 혹시 여기 중에 "어휴, 나 같으면 50만원 받고 일을 하지"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19세기 생각입니다. 백년은 뒤떨어진 가치관이 되는거예요. 그만큼 지금 세상은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돈보다 쉼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야 쉼의 중요성을 알지만 우리 주님은 3500년 전에 이미 너희와 가족과 그리고 일하는 짐승까지도 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주일에 쉬니까 우리도 마지못해 따라서 쉬는 부끄러운 모습들을 이제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이끌어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리챠드 리버'는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주님께서 세상을 변혁시키러 오신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을 이끌어가는 영향력을 가진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옆집 앞집 다 문을 닫는데 내가 열어서야 이거 체면이 서나" 그래서 할 수 없이 "주일은 쉽니다" 이렇게 생색내지 말고 남들 다 문을 열 때에도 하나님의 사람의 자존심을 가지고 "주일은 쉽니다" 이렇게 살아야 되지 않느냐 그 말이예요.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의 멋있는 모습을 따라 "우리도 쉬자" 이렇게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세 번째로 안식에 대한 말씀은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주셨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브사렐과 오홀리압을 부르셔서 성막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위임해 주시고 나서 그들에게 정성을 다해 공교한 기술을 가지고 짓도록 하셨습니다. 성막을 짓다가 보면 거기에 몰두하게 되고 안식을 포기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고 말 하지만 주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전 보수공사가 지난 2주간 동안 계속되고 있습니다. 2주 동안이나 자기 업무 전폐하고 수고하신 분들이 너무나 많은데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했으면 하루 일당 30만원을 드려도 적은 것인데, 그분들에게 수고비를 드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책임 맡은 장로님에게 말씀드렸더니 "제가 다 물어보았는데요, 목사님, 그 분들 말씀이 일당받고 일하려했다면 왜 새벽 6시에 나와서 밤 12시까지 합니까? 오전 9시에 나와서 오후 5시까지만 하지요"

저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몰라요.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은 오전 9시에 와서 오후 5시에 가지만, 전심으로 사랑하고 자원하는 사람은 새벽에 와도 불평이 없고 밤 12시에 끝나도 불평이 없다는 말이예요.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어려운 줄 모르는 거예요. 수고하신 모든 분들에게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공사기간 중 수요예배 시간이 다가왔어요. 어떤 분이 그래요. "목사님, 한 두시간만 더 일하면 작업을 마무리하겠는데 예배는 따로 드리라 하고, 우리는 여기서 그냥 계속 일하면 어떨까요?" 제가 아니라고 그랬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성전을 이렇게 아름답게 중수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배하기 위해서지요.

성막을 지으라고 브사렐과 오홀리압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성도들이 성막에 필요한 물품을 너무나도 많이 가져올 정도로 풍성한 은혜의 자리에서 헌신하다가 보면 혹 성막을 짓다가 안식일을 잊을까 염려하신 주님은 성막을 짓는 그 순간에도 안식일에 대한 말씀을 다시한번 강조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성막이 중요해도 안식일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건축하는 교회 가운데는 "건축하는 동안은 선교비도 중단합니다. 교육비도 50%로 줄입니다"라는 광고를 스스럼없이 하게되고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는 교인들도 당연한듯 생각해왔는데 사실 그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평안의교회는 17년동안 성경에서 말씀하는 그 기준에 따라서 지금까지 변함없이 교회의 사명을 감당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건축을 하는 동안 견디기 어려운 경제적인 여건 속에서도 국내외의 50여 교회에 선교비를 보내는 일과 파송한 선교사를 줄이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교육도 봉사도 똑같이 했습니다. 그것이 기적입니다. 건축비를 매달 정확한 날짜에 지불한 것도 기적이지만 더 큰 기적은 마땅히 하나님의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손상 입히지 않으면서 건축을 한 것이 더 큰 기적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종종 안타까운 일들이 뭔지 아세요? 예를 들면, 교사대학이나 베델성서대학이나 성가대 연습이 수요예배후에 있는 경우, 정작 예배는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그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와 그 예배를 위해 준비하는 모임을 제대로 구별 못하는 것은 아닌가?" 답답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정신차려야 합니다.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더디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지 못해 결국은 아론을 중심해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춤을 추면서 제사를 지내는 그들을 보시고 분노하시면서 다시한번 안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애굽에서는 눈 뜨면 보는 것이 우상숭배였기에 그들이 삶의 위기에 준비할 수 있는 행위는 바로 우상숭배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성장하는 바탕이 중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등에 업혀 성전을 출입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속회예배 드릴 때, 심방예배 드릴 때, 아이들 용돈 집어주고 내보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사탕을 사오고, 먹을 것을 사오게 해서 어머니 곁에서 예배를 드리게 해야지, 시끄럽다고 쫓아내면 그 짧은 시간은 조용할지 모르나 기독교 교육은 실패하는 곳입니다. 사실 아이들은 떠들면서도 들을 것은 다 듣습니다.

지난 여름 성경학교 개회예배 때 제가 유치부 아이들에게 설교를 하면서 그랬어요. "목사님 멋있어 보여요?" "네!!" 그래서 "목사님이 유승준보다 낫지요?" 그랬더니 모두들 "예!!" 그랬어요. 그런데 유치부 한 어린이가 집에 가서는 할머니, 엄마, 아빠 다 불러들이더니 "목사님이 그러는데 목사님이 유승준을 낳았대 !!"라고 해서 온 집안 식구가 한바탕 웃었다고 아이의 할머니 되시는 권사님이 전해주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놀아도 노래 다 배우고 선생님 말씀 다 듣습니다. 어릴 때 어린아이들의 노는 환경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보고 듣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제 목회의 대부분도 42년 아버님 목회를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 것 지금 따라하는 것 뿐이예요. 그분의 목회를 따라만 하는 데도 다른 동역자들이 볼 때는 목회를 잘한다고 격려해주곤 합니다. 따라만 해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보고 배우는 것이 중요한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라고 하는 영적 지도자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옛날에 보고 배운 것, 즉 금송아지를 만들어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탓하기 이전에 그들의 배경이 그럴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자녀들의 배우자를 정할 때에도 "부모님은 신앙생활하시느냐?" 그것이 첫 번째 질문이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말이예요. 그것은 고리타분한 질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녀들의 영적 생명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만나를 주시면서, 십계명을 주시면서, 성막을 지으면서, 그리고 우상숭배에 빠진 자들을 책망하시면서 중요한 장면마다 안식에 대한 말씀을 결부시키고 게십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안식에 대한 올바른 삶을 얼마나 원하는가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말씀에 의지하여 어떤 상황 속에서나 안식의 정신이 살아있는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얼마나 주님께서 안식을 귀하게 여기셨는지 중요한 일마다 그 말씀을 연계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의 생활 속에서 큰 안식의 정신을 실천하는 일을 위해 다시한번 다짐하기를 원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는 것처럼, 안식을 통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은혜를 확인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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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31:12-18 큰 안식(安息)의 정신 출31:12-18 큰 안식(安息)의 정신 Reviewed by □□□ on December 13, 2025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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