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5:1-15 화해의 사람 /전병금

 1960~70년대 군산 앞 바다에 있는 개야도를 비롯해 선유도, 연도에서는 서해안에 형성되는 조기떼를 따라 북방군사한계선(NLL) 부근에서 조업을 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강제로 피랍돼 북한에서 수일에서 수개월간 억류됐다가 귀환한 주민들이 간첩으로 조작돼 처벌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당시 수사기관은 어부들의 간첩혐의를 입증할 단서가 여의치 않자 마을 주민들에게 구타 등 가혹행위를 가해 이웃이 간첩이라는 허위 진술을 강요했습니다.

이로 인해 납북귀환어부들은 간첩으로 몰려 처벌됐고 이들이 국가기밀을 탐지하거나 북한을 찬양?고무했다고 허위 진술한 주민들에게는 ‘밀고자’란 멍에가 씌워졌습니다. 납북어부들은 수십여년 동안 간첩이라는 오명과 주민들의 기피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이번 달 9일 오후 이곳에서는 주민 등 150명이 모인 가운데 뜻깊은 화해의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이 날의 자리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 4월 20일 납북귀환어부 간첩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뒤 주민들이 직접 화해와 용서를 통해 지난 아픔과 불신의 골을 털어 내기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지난 1968년 5월 연평도 근해에서 조기잡이를 하다 납북 귀환한 뒤 간첩으로 조작돼 처벌받은 어부 박춘환(64?충남 연기군 조치원읍)씨와 수사기관의 가혹행위 탓에 허위로 증언을 한 주민 임봉택(64?군산시 옥도면 개야도리)씨가 만나 지난 날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풀기 위한 화해의 자리가 마련된 것입니다.

박씨가 지난 72년 1월 간첩혐의로 군산경찰서에 연행돼 월북기도와 국가기밀탐지, 고무찬양 등의 혐의로 형을 선고 받은 뒤 37년 만에 이뤄졌습니다.

평소 동갑내기 친구였던 박씨와 임씨는 이날 서로 부둥켜안은 채 소리없이 한참을 흐느껴 울었습니다. 임씨는 “지난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다”며 “당시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 각종 고문으로 보지도 못한 북한 서적을 친구에게 전해 주고 북한의 이야기를 나눴다고 허위로 말한 것이 화근이 돼 피해를 주게 됐다”고 미안함을 전했습니다.

박씨는 “당시 고문으로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책을 받았다고 진술했다”며 “그 때만 해도 봉택이를 당장 죽이고 싶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모두 이해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갈등과 반목과 대립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정치적으로는 6?25를 통해 남북한이 지금까지 통일되지 못하고 대립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경상도에 치우친 경제개발정책으로 인해 발전에서 소외된 전라도와의 지역갈등이 지금까지 여전히 존재하고, 단순히 한강 이남과 한강 이북을 가리키는 편의상의 행정구역인 강남과 강북은 이미 계급적인 성격을 가진지 오래입니다.

이러한 갈등과 반목과 대립의 역사를 치유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화해(和解)의 정신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미래의 발전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화해의 종교입니다. 성육신은 바로 이러한 화해의 정신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성스러운 하나님은 죄악된 인간과 화해하기 위해서 스스로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간을 사랑한 철저한 자기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화해하시고자 먼저 자신이 스스로를 낮추셨고 아무 댓가없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2:2).

구약에서 이런 성육신적 화해의 본을 보인 사람은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팔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세계가 흉년이 들어 굶주릴 때 노예로 팔아 그 많은 세월 동안 노예 생활과 감옥 생활로 말할 수 없는 고생을 시켰던 형들이었습니다. 복수를 하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최정상에 올라있는 권력자가 된 요셉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와 함께 다시 긴장과 갈등과 대결의 국면의 수위가 높아지려는 이 때 요셉의 화해의 정신을 본받아 다시 성육신의 신앙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1. 우리는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밀어야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깔려 있으면 갈등과 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부부지간에도 갈등으로 헤어지는 이들이 많고 형제들끼리, 친구들끼리의 다툼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야곱과 야곱의 외삼촌간의 갈등이 나옵니다. 특히 우리에게는 같은 민족인 남북간의 갈등으로 헤어진지 어언 60년이 넘어섰습니다.

북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줄곧 보여온 현정부가 들어서서는 남북 정상이 만나 합의한 6.15 공동선언으로 이루어진 화합적인 분위기가 다 가시고 과거의 극단적인 반목의 시절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남북 간에는 1950년에 있었던 동족 상잔의 비극을 겪었기 때문에 화합이란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애굽의 최고 권력자인 요셉은 곡물을 사러온 초라한 형들에게 그 어떤 벌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나는 요셉이라”(3절)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4절)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내가 당신들과 한 형제라는 말입니다. 요셉은 초라한 형들과 크게 성공한 자신이 한 형제임을 알렸습니다. 비록 시기심으로 인해 자신을 판 형들이라도, 그래서 죽이도록 미워하고 싶어도 요셉은 그들이 자신의 형임을 알렸습니다. 이렇게 한 형제라는 형제 의식이 중요합니다.

우리 남북한은 같은 민족입니다. 같은 할아버지의 자손들입니다. 60년 동안 분단되어 있었고, 체제는 다르지만 우리는 같은 민족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언젠가 통일되어 같이 살 것입니다. 이렇게 형제의식을 우리는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남한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계 경제 10대 대국이 되었고 북한은 지금도 굶주림에 살고 있습니다. 북한은 남한의 경제의 36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북한은 지금도 굶어서 죽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형제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우리는 그냥 우리만 잘 먹고 살쪄서 되겠습니까?

우리는 요셉처럼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들이 하는 대로 우리도 하는 것은 안 됩니다. 화해를 하시고자 하나님이 먼저 손을 내밀어 성육신하신 것처럼 믿음 안에서 우리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베트남전의 깊은 상처를 뒤로 하고 오늘날 유네스코 친선대사로 뛰고 있는 킴 푹(Kim Phuc)씨는 오늘날 전세계에는 아직도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런 비극을 치유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서로 용서하는 일”밖에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킴 푹씨는 자신도 네이팜탄 때문에 14개월간이나 병원생활을 하며 17번이나 수술을 받으면서 한때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가득찬 적도 있었지만 바로 화해와 용서의 미덕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곤 합니다.

실제로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72년 6월 당시 9살 어린 소녀였던 킴 푹씨는 동네 근처의 한 사찰에서 가족, 친척과 함께 숨어있다가 월남군 전투기의 네이팜탄 공격을 받고 길거리로 뛰어나갔습니다.

당시 온 몸의 65%에 화상을 입은 킴 푹은 겁에 잔뜩 질린 모습으로 울부짓으며 거리를 내달렸고, 바로 이 극적인 모습을 AP통신 사진기자가 찍었습니다.

‘네이팜 소녀’ 로 알려진 이 사진을 계기로 베트남전의 추한 모습은 전세계에 널리 알려졌고,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졌습니다. 중상을 입은 킴푹씨는 AP사진 기자 덕분에 인근 병원으로 후송돼 집중적인 치료를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킴 푹씨는 병원에서 퇴원한 뒤 화상으로 점철된 몸 때문에 너무도 고통스러워 한동안 자신의 적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킴 푹씨는 그러나 기독교인이 된 뒤부터 종전의 증오와 불평이 용서와 사랑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킴 푹씨는 한때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전쟁의 아픈 기억, 신체적 고통 덕분에 인생의 귀중한 가치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즉 전쟁을 겪은 덕분에 평화의 가치를 알게 됐고, 공산정부의 통제 밑에서 살아본 덕분에 자유의 가치를 알게 됐고, 고통의 아픔 덕에 사랑이란 치유의 힘을 알게 되었습니다. 킴 푹씨는 네이팜은 아주 강력하지만 예수의 십자가에 나타난 용서는 그 어떤 네이팜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킴 푹씨는 바로 이런 믿음 덕분에 훗날 만난 네이팜탄 미군 조종사는 물론 네이팜탄 공격 조언자였던 미국 자문관을 더 이상 증오하지 않으며,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강남교회 성도들이 요셉의 성육신적 신앙을 본받아 갈등과 반목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앞장서기를 바랍니다.



2. 모든 일을 신앙적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요셉은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5절).

이미 죽은 것으로 알았던 요셉이 자신들 앞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그것도 당대 최고의 권력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형들은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이미 손을 쓸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하나님이 자신들과 후손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먼저 자신을 보냈다고 하니 형들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믿는 하나님을 아직도 믿고 의지하고 그분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너무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권력만 얻은 것이 아니라 신앙적 인격마저 거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일을 신앙적 안목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2년의 흉년이 지났으니 앞으로 남아 있는 5년의 극심한 흉년으로부터 집안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먼저 보냈다고 신앙적인 안목으로 역사를 해석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사건과 역사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합니다. 내게 유익한가 불리한가 하는 이기적인 안목으로 해석합니다. 불리할 때는 불평불만하고 원망하여 한탄합니다. 이런 사람은 잘되면 교만하고 잘 안되면 자포자기하여 인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음을 압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발견하는 사람이 신앙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아버지가 있었는데 한 분은 자기의 어린 아들이 뛰어놀다가 다칠까봐서 미리 돌멩이를 치워 놓았고 또 다른 한 분은 자기 아들이 뜰에서 뛰어 놀다가 돌부리에 부딪혀 다치자 얼른 안아서 데리고 들어가 약을 발라주고 붕대를 감아주며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두 아버지 가운데 누가 더 지혜로울까요? 물론 사고를 미리 예방한 전자입니다. 그러나 어느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더 느끼겠습니까? 아마 후자일 것입니다. 전자의 아들은 아버지의 자상한 배려와 깊은 속을 모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려 깊은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그저 즉시 눈에 확인되는 결과를 봐야지만 직성이 풀릴 뿐만 아니라 즉시 죽이라도 끓여 먹을 수 있는 돈 몇 푼을 뚝 떨어지게 해달라고 조르고 기대합니다.

여러분은 눈에 보이는 뚜렷한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가 없으므로 걱정하고 계십니까? 그보다는 매일의 삶을 인도하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개입하십니다. 얼마든지 느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우리들이 이 자리에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신앙적인 안목에서 보아야 합니다.



3. 우리는 섬기는 예수를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흉년에 대비해서 자신을 먼저 애굽으로 보내서 아버지와 형들과 조카들을 섬기게 하려고 계획하신 것으로 믿고 섬기기로 작정했습니다. 요셉은 섬김의 의식을 확실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잔치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유대나라에서는 하인들이 손님들의 발을 씻어 주여야 하는데 그 집에는 하인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예수의 제자들이라도 예수를 비롯해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하는데 선뜻 나서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수건을 허리에 동이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었습니다.

이 모습이 예수의 본 모습입니다. 예수는 이 세상에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섬기는 것이 예수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이 예수를 따르는 신자들의 모습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종 차별로 악명 높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인종 차별이 심했기 때문에 흑인과 백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지 않고 별도로 예배를 드립니다.

‘성시온교회(Holy Church of Zion)’라는 흑인교회에서는 고난주간의 성만찬을 행하기에 앞서 세족식을 베풀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듯이 서로 발을 씻어 주며 예수의 겸손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세족식을 행하는 흑인교회에 올리브라고 하는 백인 대법원장이 이곳을 혼자 방문했습니다.

세족식 시간이 되자 그는 마르다라는 흑인 여성을 불러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서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백인인 대법원장이 흑인의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발을 다 씻어 준 올리브 대법원장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은 내 집에 노예로 있는 사람입니다. 한평생 우리 집 아이들의 발을 수백 번도 더 씻어 주었습니다. 그걸 보는 내 마음은 늘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우리 집 아이들의 발을 씻어 준 바로 이 사람의 발을 씻어 주어야 내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아 이렇게 한 것뿐입니다. 뭐 대단한 일을 행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이상하게 여길 것 없습니다.”

올리브 대법원장은 이 일 때문에 대법원장직에서 파면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제야말로 참으로 하나님께 찬양할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기뻐하며 감사했다고 합니다.

백인 우월주의가 지배하고 있던 사회였지만 올리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사랑의 정신을 앞서 실천하였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이런 섬기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요셉도 아버지와 자신을 돈 받고 팔았던 형님들과 그의 아들들을 섬기는 일을 자청했습니다.

요셉은 그들을 섬기라고 하나님께서 오늘의 축복을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안 그는 그들을 평생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오늘의 복을 주신 것은 우리도 저 굶주리고 있는 북한을 책임지라고 하는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일회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생색을 내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가정에서도 우리의 전 가족을 책임져야 합니다. 특히 늙으신 부모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나는 큰 아들이 아니라고, 나는 딸이라고 부모님에 대한 책임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모셔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신앙적인 안목에서 해석하고 온 가정을 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북한의 우리 동포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을 책임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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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5:1-15 화해의 사람 /전병금 창45:1-15 화해의 사람 /전병금 Reviewed by □□□ on December 26, 2025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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