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굼 -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란 뜻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주님을 만난 후 죽은 딸이 살아나는 기쁨의 은총을 맛보았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난 후 사람의 능력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기적을 베푸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거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죽은 자를 살리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며, 문둥병을 고칠 수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 믿음의 도리이신 예수그리스도, 그분은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달리다굼」 - 이 단어의 영적인 의미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1. 복음(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유대교의 회당은 율법을 가르치는 기관으로서 회당장은 매우 큰 영향력이 있는 유대 지도자입니다. 가버나움의 회당장인 야이로는 율법주의자인 바리새파였고,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 중, 그것도 그들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회당장 야이로는 딸이 병들자 회당장의 지위와 체면도, 예수를 죽이려면서 까지 지키려했던 율법도, 죽어가는 딸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찾아갔습니다. 어쩌면 출교를 당하고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을 지금 야이로는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딸의 죽어가는 모습을 아버지는 차마 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소유나 세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처럼 야이로 역시 딸의 질병과 죽음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회당장이라는 지위도, 자기가 철저하게 의지했던 율법도, 인간의 의술도 어린 딸의 생명을 살릴 수 없었기에 그는 모든 체면과 지위를 버리고 절박함으로 주님을 찾아갔습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체면을 버리고 주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야이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고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만이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친히 증거로 보여주셨습니다.
2. 믿음만이 생명을 살릴 수 있다.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 나올 때에는 크든 작든 믿음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을 야이로를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야이로는 딸이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이라면 혹시 고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막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의심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이 역사하실 때에 종종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반드시 믿음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주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는 우리의 믿음만큼 역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마가복음 6장에서 주님은 고향에서 아무 권능도 행하실수 없어서 소수의 병자들만 안수하여 고치셨습니다.(막6:5) 그것은 주님이 능력이 없거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향사람들이 오히려 주님을 배척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어서 능력의 주님이 함께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복을 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아무 역사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생명을 살리는 것은 율법이나 체면이 아니고 믿음이라는 사실을 몸소 증거로 나타내셨습니다.
3. 예수님의 말씀만이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에 도착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통곡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해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성도의 죽음을 잠을 자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죽는다는 것은 모든 것이다 끝났다는 의미이지만 잔다는 것은 나중에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성도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잠을 자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달리다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그 한 마디 말씀으로 죽은 딸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죽은 소녀를 살린 것은 다름아니라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었습니다. 야이로의 딸은 예수님의 말씀, 즉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살아났습니다. 에스겔이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뼈들이 맞춰지고 살아났던 것처럼,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실 때 나사로가 살아났던 것처럼 주님은 말씀으로 소녀를 살리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고 생명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맺는말
야이로는 사회적으로는 높은 신분이었지만 그러나 인생에 갑자기 찾아온 딸의 죽음의 위기 앞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평범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주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야이로에게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통해서만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달리다굼‘ 말씀 한마디로 죽은 소녀를 살리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언제나 말씀으로 역사하시고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말씀이 들릴 때 회복되고 살아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달리다굼‘ 바로 지금 여러분들을 향한 주님의 음성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을 때 야이로의 딸과 같이 일어나고 회복되는 은혜가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