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학교에서 학창생활을 하던 시절 한때 심취하여 읽었던 책 가운데 단 카스터가 지은 『신념의 마력』이란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 내용은 당시 제 마음을 깊이 끌었었는데 그 내용은 사람은 무엇이든지 마음을 집중하기만 하면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것이 다 된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마음을 집중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에 그리는 정신집중 혹은 정신통일, 그런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조금도 바람이 불지 않는 조용한 방에서 가는 실에 바늘을 공중에 매달아 놓고 바늘을 향하여 '움직여라 움직여라' 하고 마음 속으로 외치기만 하여도 바늘은 반드시 움직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번 흉내를 내보았습니다만 잘 되진 않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신념의 마력』이라는 책에 심취하고 있었던 당시 우리 한국 사회는 '적극적 사고' 혹은 '적극적 사고방식'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퍼지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 그 '적극적 사고'라는 것이 혹시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그 '적극적 사고'라는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과 성격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말하는 적극적 사고의 깊은 뿌리는 '인본주의'에 있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의 뿌리는 '신본주의'에 있음을 발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이 말씀을 중심으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주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그 믿음의 성격은 어떠한지를 좀더 깊이 규명해 보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내리지 못하면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적극적 사고' 정도로 성격을 규정하고는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면 다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제적으로 그렇게 하여 일이 잘 되면 그것이 믿음의 결과인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죄송합니다만 그것은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러한지 오늘 본문 말씀은 그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줄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인 마태복음 9장 27절-31절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거라사' 혹은 '가다라'라고 불리는 지방에서 무덤 사이에서 생활하던 귀신들린 사람 두 명을 치료하시고 또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다시 살리시고 난 이후 그 소문이 온 땅에 퍼지게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을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한 곳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아마 어느 집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노중(路中)에 많은 사람들이 또 몰리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그 많은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몰려들었다고 생각됩니다.
- 예수란 청년이 과연 어떤 사람인가 구경하러 온 사람.
- 말씀을 한번 들어보려고 온 사람.
- 자신이 갖고있는 질병을 예수님을 통해 한번 나아봤으면 하는 소원을 가지고 온 사람.
이렇게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은 많은 무리들 중에 섞여 있는 맹인 두 명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생각해 보아도 이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온 이유는 무엇보다 자신들의 눈을 뜨기 위함이 주된 목적이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그들은 눈 먼 맹인으로 겨우 겨우 회당장 야이로의 집까지 쫓아왔는데 예수님은 이제 서서히 다른 장소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알아차린 그들은 애써서 이곳까지 쫓아왔는데 또 장소를 옮기게 되니 정말 큰일났다고 생각하고는 때를 놓치지 않고 이렇게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 맹인들은 한두번만 소리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소리쳤습니다. 또한 소리칠 뿐만 아니라 소리도 치면서 계속 군중들을 따라갑니다. 그러던 중 이 맹인들은 예수님께서 어느 집에 들어가시게 되었을 때 그 집까지도 따라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그 군중들의 틈을 헤집고 예수님 앞에까지 나아갑니다. 이 모든 광경을 예수님이 모르실리 없었습니다.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 당시 앞 못보는 맹인들은 이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들 외에도 맹인들은 더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맹인들 대부분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기는 들었어도 이들처럼 예수님을 통하여 눈을 뜨려고 그렇게 애쓰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귀머거리를 낫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려냈다는 소문을 그들이 듣기는 들었을 것이지만 문제는 그들 대부분은 그저 가만히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그들이 가만있었을까 생각해 볼 때 아마도 그들은 비록 예수님에 대한 이름이나 행적을 듣기는 들었지만 그 들은 것이 그저 귀로만 듣고 귀로만 받아들인 것 뿐이지 그 사건 그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가만히 있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 맹인 두 사람은 달랐습니다. 달라도 정말 달랐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달라 붙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 가면서 외치며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이 맹인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어떤 믿음을 가지고 나아갔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우리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외친 말을 보면 가늠은 해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것은 소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적극적 사고방식' 수준의 외침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신념'에서 나온 외침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이 외침은 어떤 외침이라는 것입니까? 그들의 이 외침은 '믿음'의 외침이었습니다. 당시의 모든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었는데 그 메시아가 구약성경에서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날 것으로 예언되었으므로 이 맹인들도 이것을 알고는 '다윗의 자손이여!'하고 부르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으며 외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들의 자세나 간절함이나 믿음이 다 훌륭하기에 예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대답하시고 고쳐주실 것으로 예상되지만 예수님께서 이들을 향하여 취하신 행동은 전혀 뜻밖의 행동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대답도 쉽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간도 오래 끌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지, 맹인들의 믿음이 어떠한가 시험 좀 해보시려고 그러셨는지, 아니면 서두르지 않고 좀 천천히 하시고자 하셔서 그러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시간을 계속 끄시다가 끈질기게 소리치며 끝까지 따라오는 이 맹인들에게 드디어 입을 여십니다. 그런데 입을 여시기는 여시는데... 이것저것 복잡하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간단하게 한가지 질문만 하십니다.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로 믿느냐?"
의외의 말씀이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외쳤으면 "알았다. 불쌍히 여겨 고쳐 주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든지 아니면 "못고쳐 주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든지 둘 중 하나로 답변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예수님의 답변은 전혀 의외였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맹인들은 물러서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주님! 믿습니다!" 그들은 '믿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저들의 이 대답! 이 신앙고백적 대답을 들으시고 나서는 만족하셨는지 즉시 그 맹인들의 눈을 만져주십니다. 이 또한 의외의 행동이었습니다.
아마 그들이 조금은 기대 했겠지만 동시에 기대할 수 없는 행동이기도 했었습니다만 예수님은 그들의 눈을 직접 만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을 직접 만져 주실 뿐만 아니라 '네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까지 주셨는데 그러자마자 그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그들의 눈은 즉시 밝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먼저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이 맹인들이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예수님을 믿음을 가지고 바라보며 따랐다는 사실에 우리의 눈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대부분의 맹인들이란 처음엔 눈을 뜨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맹인이 눈 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직면하고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에 비해 이들은 달랐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달랐느냐?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눈 뜨기를 원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자신들의 처지가 어떠한지 다 달고 있었습니다. 맹인이 눈을 뜬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아니 맹인이 눈을 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 등장하는 맹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보다 나은 삶을 갈망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것, 직업에 대한 것, 공부에 대한 것, 결혼에 대한 것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삶의 크나큰 장벽에 부딪쳐 '아 이제 모든 것은 끝이다. 절망이다' 하면서 주저앉게 되지만 오늘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그렇게 주저앉지 말고 쉽게 무너지지 말고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기고 끈질기게 주님 앞에 나가보라 그리고 외쳐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맹인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어느 정도 가능한 상태에서 외쳤습니까? 그 가능성이 몇%나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두 번째로 본문에서 생각해 볼 주제는 예수님께서 맹인들에게 던지신 질문입니다.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로 믿느냐?" 이 질문은 네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예수, 매달리고 있는 예수, 그렇게 외치고 있는 예수를 누구로 믿느냐는 질문인 동시에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Key Point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매주일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며 살아가는 삶 속에서 예수님을 누구라고 믿으며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의 존재는 어느 정도 알고 또 인정도 하며 살아가지만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말에는 이해 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교우 여러분, 이 시간 저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드리려 하는데 그렇게 하나님은 믿지만 예수님은 믿지 못하겠다고 하거나 아니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분들은 죄송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죄사함이라는 은혜와 축복은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능력, 예수님의 그 죄사하실 수 있는 능력, 이미 십자가 위에서 다 사해 놓으신 그 은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이 신약 시대에 예수님의 시대에 이 은혜의 시대에 값없이 주시는 죄사함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죄송하지만 그들은 비록 시대는 신약시대에 살지만 신약의 은혜와 은총을 거부하므로 구약적으로 살면서 구약에 명시된 죄사함의 방법과 그 길을 따라 오늘도 피흘림의 제사를 드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나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무슨 말씀인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인간이 당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전부 다 해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 걱정과 근심의 문제, 질병과 고통의 문제, 인간들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의 문제, 이러한 것들은 인간들이 스스로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복된 소식입니까?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정말 인류의 모든 문제! 죄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하게 되는 모든 문제들의 해결자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또한 듣기는 무수히 들어서 알기는 알아도 그것을 믿지 못하여 부르짖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문제는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제가 이 시간 여러분에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자신의 인생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들을 정말 해결할 수 있는 능력있는 분으로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주님께서 맹인들에게 말씀하신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하신 말씀의 그 의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맹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로 믿느냐"고 물었을 때에 때를 놓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네 그러하오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타난 중요한 한가지 사실은 이들이 이렇게 확실하게 신앙고백적 대답을 한 다음에야 주님께서는 그들의 눈에 손을 대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는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은 즉시 뜨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신앙생활 속에서의 기적은 참으로 믿는 믿음 위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의심 속에서는 절대로 기적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 위로 걸어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가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갔을 때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믿음은 홍해를 갈랐고, 믿음은 골리앗을 물리치게 하였으며 믿음은 12년 동안이나 하혈하던 어떤 여인의 피를 멎게 하는 역사도 일으켰습니다. 오늘도 믿음은 죽은 심령을 살아나게 하고 죄로 인하여 지옥에 갈 사람을 구원하여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탄생시키고 있으며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경우엔 지금도 불치의 병이 치유되고 귀신도 물러가는 역사가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믿는 내용과 수준은 다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은 하여 주었지만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는 믿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로 전적으로 믿고 살아가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오늘의 본문에 등장하는 맹인의 믿음과 그 믿음의 행위는 우리들에게 많은 도전과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더 물어보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떠한 분으로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어떠한 분이십니까? -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로 믿느냐? 네, 믿습니다. 네, 믿음대로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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