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목사/기도할 때 숨겨진 축복까지 받습니다! (출 12;29-36)
우리 서로 반갑게 인사합시다. 잘들 지내셨지요.
우리 다 같이 따라 해 봅시다. 세상에서 가장 멋져요. 세상에서 가장 예뻐요. 아싸! 감동충만, 아싸! 성령충만, 아싸! 행복충만
세상에서 가장 멋지다. 예쁘다 생각하는 사람만 하세요. 다같이 다시 큰 소리로 해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져요. 세상에서 가장 예뻐요. 아싸! 감동충만, 아싸! 성령충만, 아싸! 행복충만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흑인과 백인이 결혼하여 갓난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의 이빨색은 무슨 색일까요? 좀 생각해 보세요. 다시 질문할까요? 흑인과 백인이 결혼하여 갓난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의 이빨색은 무슨 색일까요? 흑인이나 백인이나 이빨은 하얀색이니까 하얀색일 것이라구요. 아기를 낳아보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방집사님. 아기 낳아주셨지요. 대통을 낳았을 때 대통이가 이빨이 있던가요? 그렇습니다. 답은 이가 없습니다.
또 하나 질문합니다. 젊어서는 푸른 치마를 입는데요. 늙어서는 다홍치마를 입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잘 이해가 안 되십니까? 다시 질문할까요? 젊어서는 푸른 치마를 입고 늙어서는 다홍치마를 입는 것이 무엇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고추입니다. 저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전에 이렇게 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천국에 가면 세 번 놀라는 것이 있다고 해요. ① “드디어 내가 왔구나!” ② “그 사람이 안 보이시네.” ③ “저 놈이 어떻게 여길 왔지?” 사람이 지옥에 가도 똑같이 세 번 놀란다고 해요. ① “내가 여길 오게 되다니!” 하면서 놀라구요. ② “저 사람이 여길 어떻게 왔지?” 하면서 놀란다고 합니다. ③ “그 놈이 안 보이네?” 그러면서 자신이 볼 때 못되게 살았던 사람이 지옥에 오지 않은 것 때문에 놀란다고 하네요.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으로 갈까요? 지옥으로 갈까요? 당연히 천국으로 가겠지요.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을 잘 믿어서 천국 가야 합니다. “아멘” 다시 큰 소리로 “아멘”
자. 이제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이라는 나라에서 종으로 살면서 심한 노역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나일강 하류 지역인 고센 땅에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종살이를 합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나님께 “하나님,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사 이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옵소서. 이 고난과 역경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라고 하면서 애통하게 부르짖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모세라는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 내려고 합니다. 모세는 형님인 아론과 함께 바로의 궁궐로 찾아가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애굽에서 떠나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애굽의 바로는 거절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애굽에서 10재앙을 내리고 나면 보내 줄 것이라고 합니다. 차례로 9번째 재앙까지 내셨습니다. 재앙을 내리면 내릴수록 바로의 마음은 더욱더 강퍅해져 갑니다. 마지막 10번째 재앙을 내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마지막 10번째 재앙은 어떤 재앙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애굽의 모든 장자와 초태생을 죽이는 재앙입니다. 마지막 10번째 재앙을 내리고 나면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죽음의 사자를 전 애굽으로 보냅니다. 그러자 애굽의 바로 궁전에서뿐만 아니라 애굽의 저소득층,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서 모든 장자와 초태생을 죽입니다. 반면에 고센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 양을 죽여서 그 피를 집의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놓습니다. 양의 피가 발라진 집에는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지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죽지 않습니다.
모든 애굽인의 가정에는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서 모든 장자들을 죽였기 때문에 온통 절규, 원통함이 하늘을 찌르는 듯합니다. 어떤 애굽인의 가정에는 아버지도 죽고, 아들도 죽은 가정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장자인 가정에서 장자가 태어나면 부자 모두가 죽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바로의 아들로부터 시작하여 전 애굽 사람들에게는 아들을 잃습니다. 남편을 잃습니다. 오빠를 잃습니다. 남동생을 잃습니다. 큰 형님을 잃습니다. 그러니 어느 가정인들 조용하게 지내고 있을 애굽 사람들은 없습니다. 서해안의 백령도 부근 해안에서 천안함과 어선이 침몰하여 꽃다운 젊은이들이 죽음으로 인해 절규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지 않습니까? 애굽의 사람들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고센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환희와 기쁨과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해방이구나. 이제는 자유다”하면서 서로 서로 얼싸안으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 430년 동안 종살이하면서 고통당했던 지난 과거의 삶이 주마등처럼, 영화필름처럼 한순간에 지나가면서 회한의 눈물도 펑펑 흘립니다. 이들 중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나일강에 던져야 했던 아픈 기억을 되새김하면서 그 고통과 눈물도 지나갑니다. 라암셋을 건축하는 데 동원되어서 흘렸던 눈물도 되살아났을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고난과 역경과 시련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틀림없이 좋은 일, 아름답고 복된 일도 찾아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초상집이 되어 온갖 원성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를 갈고 있는 애굽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은금패물과 의복을 구하라고 합니다. 다시 애굽 사람들에게 찾아가라고 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간적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해방받은 기쁨과 환희로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만, 다시 애굽인 앞에 나가라고 할 때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인들에게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릴 지경입니다. 애굽인들의 악랄함을 익히 알고 있고, 지난 430년 동안 계속 당해 왔기 때문에 쉽게 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애굽 사람들의 집으로 찾아가서 “은을 내놓으세요, 금을 내놓으세요. 패물을 내놓으세요. 의복을 내놓으세요. 음식을 내놓으세요”라고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애굽인들이 생각할 때 자신의 가족이 죽임을 당한 것은 순전히 이스라엘 백성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누구누구 때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애굽인들은 가족이 죽은 것은 순전히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만 만나면 때려죽이고 싶어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은금패물과 의복을 구한다 해도 그것을 그대로 준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보장도 못 하는데 만일에 다시 애굽인에게 붙잡혀서 놓아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룰루랄라” 하면서 출애굽하는데 자신만 애굽인에게 붙잡혀서 전보다 더욱더 혹독한 종살이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기름통을 들고 불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불나방들이 자신이 죽을 줄도 모르면서 가로등으로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뻔히 애굽 사람들에게 찾아간다는 것은 죽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두렵습니다. 무섭습니다. 오금이 저려오고 오줌을 질질 흘릴 것 같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도 쉽게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망설이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애굽인에게 나간다는 것은 마치 큰 바위 덩어리를 두 발에 매여서 질질 끌려가는 것 같습니다. 마치 죄수들의 두 발에 착고를 채워서 질질 끌려가는 것 같습니다. 초상집이 된 모든 애굽인들의 가정에서는 통곡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원성이, 절규가 마치 하늘을 찌를 것 같기만 합니다. 그래서 애굽인들에게 찾아가서 그들이 당한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 찾아가서 위로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정사정도 없이 매정하게 은을, 금을, 패물을, 의복을 요구해야만 할까? 꼭 그렇게 해야만 할까 하면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난, 갈 수가 없어.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잇구멍을 쓰고 그렇게 매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애굽인과 다른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하면서 주저주저 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도 때로는 흔들리기도 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면서 믿음 없는 사람처럼 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애굽인에 대하여 두려움과 무서움과 미안함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라”고 합니다. 믿음을 주시면서 “가라”고 하십니다. 가서 당당하게 요구하라고 합니다. 가서 망설이지 말고, 주저주저하지 말고 당당하게 은금패물과 의복을 달라고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 같으면 도저히 갈 수 없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갈 수 있는 힘을 주심에 따라서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아주 작은 믿음이지만 믿음이 생겨납니다. 예수님께서 아주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이 들려서 저 바다 가운데 던져지라고 해도 그렇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작은 믿음이지만 그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단단하고 견고하게 붙잡아 주시면서 애굽인의 가정으로 찾아가서 은금패물과 의복을 구합니다. 슬픔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당당하게 달라고 합니다.
은을 내어놓으라고 합니다.
금을 내어놓으라고 합니다.
패물을 내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의복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청합니다.
이처럼 믿음은 인간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워도 찾아가서 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죽음을 당할 것 같고, 몰매를 당할 것 같고, 바가지로 물세례를 당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고 가서 구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그렇게 믿음으로 가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지켜보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담대한 마음도, 믿음도 주십니다.
그러면서 순종하여 가는 모습도 지켜보십니다.
430년 동안 애굽인에게 당하기만 했기 때문에 쉽게 나아가지 못하는 백성들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특해 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먼저 애굽인의 가정으로 찾아가십니다.
애굽인들에게 찾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두려운 마음을 줍니다.
감히 넘볼 수 없는 백성들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조금 전까지는 자신들의 종으로 마음껏 부려먹었지만 이제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민족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그래서 35-36절에 다 같이 봅시다.
무엇이라고 했나요?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애굽인들에게 은혜를 입게 만들어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해 주심으로 인하여 담대함과 당당함을 가지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엘샤다이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찾아가셔서 역사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아시고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애굽인들에게 은혜를 입게 하여 구하는 것은 물론 구하지 않는 것까지 주게 하십니다.
숨겨진 재물까지 내어주게 만듭니다.
장롱 속에 꽁꽁 숨겨놓은 것까지 내어 주게 합니다.
왜 이들이 그렇게 했을까요?
만약에 조금이라도 숨겨놓으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을 죽일 것 같이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했는데 이제는 애굽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제는 신분이 바뀝니다.
조금 전까지는 애굽인이 주인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의 신분이었는데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당하게 주인이고, 애굽인들이 종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인이 되어서 종들인 애굽인들에게 당당하게 은을 내어오라, 금을 내어오라, 패물을 내어오라. 의복과 양식을 내어오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분을 상승시켜 줍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행동하여 애굽인들에게 찾아가서 당당히 요구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구하기 힘들었지만 믿음으로 찾아가서 구할 때 하나님은 축복으로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헌신하는 백성들에게 모든 축복을 주고 싶어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를 매우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어떤 복을 받았을까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넘치는 재물을 얻습니다.
애굽인들은 본래 머리를 빡빡 깎습니다.
그런가하면 몸을 치장하기를 잘 하는 민족입니다.
귀걸이, 코걸이, 목걸이를 은으로, 금으로, 각종 패물로, 의복을 칭칭 치장하기를 즐겨하는 민족입니다.
그러니 이런 은금패물과 의복은 애굽인들에게 넘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넘치도록 받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430년 동안 죽도록 고생하며 종살이했지만 받지 못했던 밀린 일당, 월급입니다.
그 동안 받지 못했던 일당, 월급을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몰아서 받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일했는데 아직까지 받지 못한 일당이나 월급이 있습니까?
오늘 그 사람에게 당당하게 그 동안 받지 않았던 일당과 월급을 달라고 하세요.
당당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심판해서라도 그 월급, 일당을 챙겨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라고 하면 어떤 사람도 거절할 수 없습니다.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받았을 때 어떻게 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살이하면서 애굽인들처럼 치장하고 싶어도 치장해 볼 수 없었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이제는 넘치도록 받고는 자신들도 귀걸이, 목걸이, 코걸이를 해 보는 것입니다.
종살이할 때는 옷도 옷다운 옷을 입어보지도 못했을텐데. 이제는 비단 옷으로 치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자랑하면서 즐겁게 웃고 좋아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 무서움이 사라지고 평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임마누엘로, 에벤에셀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다는 믿음의 복을 받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구하는 이들에게 육신적인 복, 정신적인 복, 영적인 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그런데요. 우리가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 봅시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가서 구했을까요?
혹시 여전히 두려움과 무서움 때문에 벌벌 떨면서 찾아가지 못한 사람들은 없었을까요?
있었겠지요.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들은 믿음으로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빈털터리로 애굽에서 나갈 수밖에 없었겠지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축복을 받은 이웃들을 보면서 가족들의 불평, 원망을 들어야 했겠지요.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축복은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특권입니다.
믿음으로 구하지 못하면 빈털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달려가서, 찾아가서 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전의 모습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오늘 저가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는 지 아시지요.
예.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기도는 해야 되는 줄은 잘 아는데 기도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들이 있을까요?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이 없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전에 기도했었는데 응답하지 않은 경험이 없습니다.
작정기도도 해보고, 금식기도도 해보고, 온갖 기도는 다 해 보았는데 그 때마다 응답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응답을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기도해도 안 되더라. 응답도 하지 않더라 하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기도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못할 이유들이 많습니다.
그렇더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없고, 기도응답을 받는 경험이 없고, 기도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고, 직장과 사업에 바쁘고 만나야 될 사람이 많아서 기도하지 못할 처지일지라도 믿음으로 기도의 자리, 무릎의 자리로 나가야 한다.
기도는 타협이 아닙니다.
기도는 선택이 아닙니다.
기도는 필수입니다.
따라 해 봅시다.
기도는 타협이 아닙니다.
기도는 선택이 아닙니다.
기도는 필수입니다.
흔히 기도를 무엇이라 합니까?
영혼의 숨쉬기운동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숨쉬기를 타협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숨쉬기를 선택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숨쉬기는 무조건 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숨을 쉬는 것입니다.
기도도 똑 같은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체험할 수 없고,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됩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들 자신이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처지와 여건을 더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우리들 자신보다 더 하나님께서 더 안타까워하시고 아쉬워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도할 수 있는 마음과 믿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고, 시간도 내어주시고, 확신도 심어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시간을 내어 기도의 입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저가 기도에 대해서 말씀드릴 때마다 간혹 드리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기도할 수밖에 없도록 동서남북의 모든 창을 막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도록 하늘만은 활짝 열어놓으신다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을 다 막아놓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솟아날 수 있는 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명초가와 같습니다.
절대위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한 군데는 열어놓습니다.
그게 어디입니까?
예, 하늘입니다. 곧 하나님을 향하여 열어놓습니다.
기도하라고 열어놓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앙의 사람들은 반드시 기도해야 하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는 여건들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그 기도에 대한 응답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따라 해 봅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해서 응답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저가 오늘 아침에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들은 것입니다.
미국에서 작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어느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슈퍼마켓에 큰 새가 들어온 것입니다.
새가 매장에 들어오면 어떻게 됩니까?
여기저기 날아다니면서 쌓아놓은 제품들을 흩 틀어 놓을 것이고, 병들은 떨어져서 깨질 것이고, 난장판이 될 것이 뻔하고.......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사람은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새가 우리 가게에 들어왔네요. 새로 인해서 슈퍼마켓에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하면서 기도하고는 새와 이야기하다가 째려보다가 하면서 한 시간 정도 흘렀다고 합니다.
새와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실제로 이야기하기는 했겠습니까?
자기 스스로 묻고 대답하고 그랬겠지요.
그러기를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다시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제는 내 손으로 새가 부상당하지 않고 조용하게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기도가 끝나자 새가 매장을 한 바퀴 빙 돌더니 그 사람의 손등에 와서 살짝 앉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새에게 “이제 나랑 이야기할 것은 다 했지! 이제는 조용하게 밖으로 나가자” 하면서 밖으로 나왔더니 새가 멀리 날아가더랍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새도 주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니까 슈퍼마켓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새도 다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기도만이 살 길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체험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상황과 여건들로 인하여 기도할 수 없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을 주시고 놀라운 축복의 그릇으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면서 좋아하시고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시는 분이다. 어떤 복을 주실까요? 믿음으로 기도한 제목을 응답하십니다. 농사도, 직장생활도, 2010년에 가진 소망도 이루어주십니다.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을 주십니다. 항상 우리 하나님께서 늘 우리들의 편, 내 편이라는 확신을 심어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숨겨진 것들까지도 찾아서 주십니다. 믿음으로 성도들이 기도할 때만이 응답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주시지 않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이들에게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필요하다고 기도할 때만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반드시 기도하기 위하여 기도의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응답, 능력이 없기 때문에 기도의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우리 다 같이 옆에 있는 성경 구절을 읽습니다. 시81:10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왜 그리도 매가리가 없어요? 복을 받고 싶지 않으세요. 자, 복을 받고 싶은 사람만 다시 읽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더 크게 다시 읽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입을 크고 넓게 열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겠다고 합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입을 열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채워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을 조금 여니까 하나님께서 조금 채워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을 적게 여니까 하나님께서 적게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왕 받을 거. 크고 넓게 받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큰 소리로 읽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아멘입니까? 크게 아멘 합시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고 믿음의 입을 크고 넓게 열고 마음껏 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입을 크고 넓게 열어서 구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십니다.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어쩌면 매일매일 수도 없이 듣고 선포해야 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기도하기 위해서 항상 기도에 대하여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항상 기도했을 때 응답받았던 좋은 경험을 되새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기도에 방해되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의 속삭임에 속아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두 귀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말처럼 한쪽 귀로 듣고 다른 한쪽 귀로 흘려보내라고 양쪽 귀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은 오른쪽을 좋아합니다. 왼쪽은 싫어합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오른쪽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응답하신다. 하는 좋은 말은 오른쪽 귀로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왼쪽에서 들려오는 아무리 기도해도 안 되더라. 누구의 기도는 잘 응답하더니 내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더라 등등 부정적인 생각, 사탄의 소리는 귀를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른쪽 귀를 쫑긋 세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기도하여 응답받으면 누가 가장 좋을까요? 뭐니 뭐니 해도 기도하는 본인이 가장 좋습니다. 기도 응답해 주신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는 확신 때문에 기쁨과 소망이 살아납니다. 또한 가족들과 성도들과 목사와 하나님께서 좋아하십니다. 저는 목사로서 우리 성도들이 복 받는 모습, 기도 응답받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성도들이 복을 받고, 기도가 응답되어지면 마치 내 자신이 복을 받은 것 같고, 내 자신이 기도 응답받은 것 같아서 좋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면서도 좋아하시고, 기도 응답해 주시면서도 좋아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기도의 시간을 확보하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항상 기도에 파묻혀 삽니다. 믿음의 사람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기도의 시간을 찾아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구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숨겨진 재물의 복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구할 때 숨겨진 재물까지 다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복을 넘치도록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야베스가 받은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옆에 있는 성경 구절을 읽습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지역이 넓혀주시는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주님의 손으로 도와주시는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모든 환난에서 벗어나는 축복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모든 근심이 없어지는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그리고 신28:11-12절의 축복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내용인지 아시지요? 기억되지 않는 분들은 빨리 찾아서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어떤 복을 주신다고 합니까? 생업 터전의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자녀들의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 곧 창고를 활짝 열어서 주신다고 합니다. 때를 따라 돕는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남에게 꾸어주는 복을 받을지언정 꾸지 않는 물질의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아울러 영원한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지난주까지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은 숨겨진 축복까지 받게 하십니다. 믿으면 아멘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축복 주시고 싶어서 안달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복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가 손해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축복받은 것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넘치도록 축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많은 축복을 받고 시내산까지 와서 무엇을 합니까? 금송아지를 만들어냅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그 금이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오늘 애굽인들에게 믿음으로 찾아가서 구한 것들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구한 것들인데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죄를 범하는 데 사용합니다.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입니다. 레위 지파 사람들을 시켜서 3000명을 죽입니다. 지진을 일으켜서 몰살시킵니다.
그런가 하면 성막을 만듭니다. 성막에 쓰인 금이며 패물이 어디에서 나온 것들입니까? 예, 오늘 믿음으로 애굽인들을 찾아가서 구한 것들입니다. 믿음으로 구한 것들을 성막을 만드는 데 헌신하여 하나님을 위한 장막을 만듭니다. 또한 40년 광야 생활하는 데 사용합니다. 광야 생활하면서 입었던 옷이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오늘 구한 것들에서 나온 옷들입니다. 신발도 그렇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잘 사용하지 않아서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데 사용하면 죽임을 당합니다. 받은 축복이 도리어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잘 사용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산성교회 성도들은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축복의 근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만이 축복의 주인공, 축복의 근원이 됩니다. 하나님은 축복하시면서 감동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하나님을 위해서 잘 사용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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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로 반갑게 인사합시다. 잘들 지내셨지요.
우리 다 같이 따라 해 봅시다. 세상에서 가장 멋져요. 세상에서 가장 예뻐요. 아싸! 감동충만, 아싸! 성령충만, 아싸! 행복충만
세상에서 가장 멋지다. 예쁘다 생각하는 사람만 하세요. 다같이 다시 큰 소리로 해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져요. 세상에서 가장 예뻐요. 아싸! 감동충만, 아싸! 성령충만, 아싸! 행복충만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흑인과 백인이 결혼하여 갓난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의 이빨색은 무슨 색일까요? 좀 생각해 보세요. 다시 질문할까요? 흑인과 백인이 결혼하여 갓난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의 이빨색은 무슨 색일까요? 흑인이나 백인이나 이빨은 하얀색이니까 하얀색일 것이라구요. 아기를 낳아보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방집사님. 아기 낳아주셨지요. 대통을 낳았을 때 대통이가 이빨이 있던가요? 그렇습니다. 답은 이가 없습니다.
또 하나 질문합니다. 젊어서는 푸른 치마를 입는데요. 늙어서는 다홍치마를 입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잘 이해가 안 되십니까? 다시 질문할까요? 젊어서는 푸른 치마를 입고 늙어서는 다홍치마를 입는 것이 무엇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고추입니다. 저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전에 이렇게 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천국에 가면 세 번 놀라는 것이 있다고 해요. ① “드디어 내가 왔구나!” ② “그 사람이 안 보이시네.” ③ “저 놈이 어떻게 여길 왔지?” 사람이 지옥에 가도 똑같이 세 번 놀란다고 해요. ① “내가 여길 오게 되다니!” 하면서 놀라구요. ② “저 사람이 여길 어떻게 왔지?” 하면서 놀란다고 합니다. ③ “그 놈이 안 보이네?” 그러면서 자신이 볼 때 못되게 살았던 사람이 지옥에 오지 않은 것 때문에 놀란다고 하네요.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으로 갈까요? 지옥으로 갈까요? 당연히 천국으로 가겠지요.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을 잘 믿어서 천국 가야 합니다. “아멘” 다시 큰 소리로 “아멘”
자. 이제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이라는 나라에서 종으로 살면서 심한 노역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나일강 하류 지역인 고센 땅에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종살이를 합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나님께 “하나님,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사 이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옵소서. 이 고난과 역경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라고 하면서 애통하게 부르짖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모세라는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 내려고 합니다. 모세는 형님인 아론과 함께 바로의 궁궐로 찾아가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애굽에서 떠나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애굽의 바로는 거절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애굽에서 10재앙을 내리고 나면 보내 줄 것이라고 합니다. 차례로 9번째 재앙까지 내셨습니다. 재앙을 내리면 내릴수록 바로의 마음은 더욱더 강퍅해져 갑니다. 마지막 10번째 재앙을 내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마지막 10번째 재앙은 어떤 재앙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애굽의 모든 장자와 초태생을 죽이는 재앙입니다. 마지막 10번째 재앙을 내리고 나면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죽음의 사자를 전 애굽으로 보냅니다. 그러자 애굽의 바로 궁전에서뿐만 아니라 애굽의 저소득층,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서 모든 장자와 초태생을 죽입니다. 반면에 고센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 양을 죽여서 그 피를 집의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놓습니다. 양의 피가 발라진 집에는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지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죽지 않습니다.
모든 애굽인의 가정에는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서 모든 장자들을 죽였기 때문에 온통 절규, 원통함이 하늘을 찌르는 듯합니다. 어떤 애굽인의 가정에는 아버지도 죽고, 아들도 죽은 가정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장자인 가정에서 장자가 태어나면 부자 모두가 죽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바로의 아들로부터 시작하여 전 애굽 사람들에게는 아들을 잃습니다. 남편을 잃습니다. 오빠를 잃습니다. 남동생을 잃습니다. 큰 형님을 잃습니다. 그러니 어느 가정인들 조용하게 지내고 있을 애굽 사람들은 없습니다. 서해안의 백령도 부근 해안에서 천안함과 어선이 침몰하여 꽃다운 젊은이들이 죽음으로 인해 절규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지 않습니까? 애굽의 사람들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고센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환희와 기쁨과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해방이구나. 이제는 자유다”하면서 서로 서로 얼싸안으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 430년 동안 종살이하면서 고통당했던 지난 과거의 삶이 주마등처럼, 영화필름처럼 한순간에 지나가면서 회한의 눈물도 펑펑 흘립니다. 이들 중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나일강에 던져야 했던 아픈 기억을 되새김하면서 그 고통과 눈물도 지나갑니다. 라암셋을 건축하는 데 동원되어서 흘렸던 눈물도 되살아났을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고난과 역경과 시련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틀림없이 좋은 일, 아름답고 복된 일도 찾아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초상집이 되어 온갖 원성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를 갈고 있는 애굽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은금패물과 의복을 구하라고 합니다. 다시 애굽 사람들에게 찾아가라고 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간적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해방받은 기쁨과 환희로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만, 다시 애굽인 앞에 나가라고 할 때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인들에게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릴 지경입니다. 애굽인들의 악랄함을 익히 알고 있고, 지난 430년 동안 계속 당해 왔기 때문에 쉽게 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애굽 사람들의 집으로 찾아가서 “은을 내놓으세요, 금을 내놓으세요. 패물을 내놓으세요. 의복을 내놓으세요. 음식을 내놓으세요”라고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애굽인들이 생각할 때 자신의 가족이 죽임을 당한 것은 순전히 이스라엘 백성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누구누구 때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애굽인들은 가족이 죽은 것은 순전히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만 만나면 때려죽이고 싶어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은금패물과 의복을 구한다 해도 그것을 그대로 준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보장도 못 하는데 만일에 다시 애굽인에게 붙잡혀서 놓아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룰루랄라” 하면서 출애굽하는데 자신만 애굽인에게 붙잡혀서 전보다 더욱더 혹독한 종살이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기름통을 들고 불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불나방들이 자신이 죽을 줄도 모르면서 가로등으로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뻔히 애굽 사람들에게 찾아간다는 것은 죽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두렵습니다. 무섭습니다. 오금이 저려오고 오줌을 질질 흘릴 것 같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도 쉽게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망설이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애굽인에게 나간다는 것은 마치 큰 바위 덩어리를 두 발에 매여서 질질 끌려가는 것 같습니다. 마치 죄수들의 두 발에 착고를 채워서 질질 끌려가는 것 같습니다. 초상집이 된 모든 애굽인들의 가정에서는 통곡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원성이, 절규가 마치 하늘을 찌를 것 같기만 합니다. 그래서 애굽인들에게 찾아가서 그들이 당한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 찾아가서 위로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정사정도 없이 매정하게 은을, 금을, 패물을, 의복을 요구해야만 할까? 꼭 그렇게 해야만 할까 하면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난, 갈 수가 없어.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잇구멍을 쓰고 그렇게 매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애굽인과 다른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하면서 주저주저 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도 때로는 흔들리기도 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면서 믿음 없는 사람처럼 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애굽인에 대하여 두려움과 무서움과 미안함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라”고 합니다. 믿음을 주시면서 “가라”고 하십니다. 가서 당당하게 요구하라고 합니다. 가서 망설이지 말고, 주저주저하지 말고 당당하게 은금패물과 의복을 달라고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 같으면 도저히 갈 수 없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갈 수 있는 힘을 주심에 따라서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아주 작은 믿음이지만 믿음이 생겨납니다. 예수님께서 아주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이 들려서 저 바다 가운데 던져지라고 해도 그렇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작은 믿음이지만 그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단단하고 견고하게 붙잡아 주시면서 애굽인의 가정으로 찾아가서 은금패물과 의복을 구합니다. 슬픔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당당하게 달라고 합니다.
은을 내어놓으라고 합니다.
금을 내어놓으라고 합니다.
패물을 내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의복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청합니다.
이처럼 믿음은 인간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워도 찾아가서 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죽음을 당할 것 같고, 몰매를 당할 것 같고, 바가지로 물세례를 당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고 가서 구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그렇게 믿음으로 가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지켜보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담대한 마음도, 믿음도 주십니다.
그러면서 순종하여 가는 모습도 지켜보십니다.
430년 동안 애굽인에게 당하기만 했기 때문에 쉽게 나아가지 못하는 백성들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특해 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먼저 애굽인의 가정으로 찾아가십니다.
애굽인들에게 찾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두려운 마음을 줍니다.
감히 넘볼 수 없는 백성들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조금 전까지는 자신들의 종으로 마음껏 부려먹었지만 이제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민족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그래서 35-36절에 다 같이 봅시다.
무엇이라고 했나요?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애굽인들에게 은혜를 입게 만들어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해 주심으로 인하여 담대함과 당당함을 가지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엘샤다이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찾아가셔서 역사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아시고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애굽인들에게 은혜를 입게 하여 구하는 것은 물론 구하지 않는 것까지 주게 하십니다.
숨겨진 재물까지 내어주게 만듭니다.
장롱 속에 꽁꽁 숨겨놓은 것까지 내어 주게 합니다.
왜 이들이 그렇게 했을까요?
만약에 조금이라도 숨겨놓으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을 죽일 것 같이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했는데 이제는 애굽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제는 신분이 바뀝니다.
조금 전까지는 애굽인이 주인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의 신분이었는데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당하게 주인이고, 애굽인들이 종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인이 되어서 종들인 애굽인들에게 당당하게 은을 내어오라, 금을 내어오라, 패물을 내어오라. 의복과 양식을 내어오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분을 상승시켜 줍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행동하여 애굽인들에게 찾아가서 당당히 요구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구하기 힘들었지만 믿음으로 찾아가서 구할 때 하나님은 축복으로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헌신하는 백성들에게 모든 축복을 주고 싶어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를 매우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어떤 복을 받았을까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넘치는 재물을 얻습니다.
애굽인들은 본래 머리를 빡빡 깎습니다.
그런가하면 몸을 치장하기를 잘 하는 민족입니다.
귀걸이, 코걸이, 목걸이를 은으로, 금으로, 각종 패물로, 의복을 칭칭 치장하기를 즐겨하는 민족입니다.
그러니 이런 은금패물과 의복은 애굽인들에게 넘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넘치도록 받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430년 동안 죽도록 고생하며 종살이했지만 받지 못했던 밀린 일당, 월급입니다.
그 동안 받지 못했던 일당, 월급을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몰아서 받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일했는데 아직까지 받지 못한 일당이나 월급이 있습니까?
오늘 그 사람에게 당당하게 그 동안 받지 않았던 일당과 월급을 달라고 하세요.
당당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심판해서라도 그 월급, 일당을 챙겨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라고 하면 어떤 사람도 거절할 수 없습니다.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받았을 때 어떻게 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살이하면서 애굽인들처럼 치장하고 싶어도 치장해 볼 수 없었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이제는 넘치도록 받고는 자신들도 귀걸이, 목걸이, 코걸이를 해 보는 것입니다.
종살이할 때는 옷도 옷다운 옷을 입어보지도 못했을텐데. 이제는 비단 옷으로 치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자랑하면서 즐겁게 웃고 좋아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 무서움이 사라지고 평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임마누엘로, 에벤에셀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다는 믿음의 복을 받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구하는 이들에게 육신적인 복, 정신적인 복, 영적인 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그런데요. 우리가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 봅시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가서 구했을까요?
혹시 여전히 두려움과 무서움 때문에 벌벌 떨면서 찾아가지 못한 사람들은 없었을까요?
있었겠지요.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들은 믿음으로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빈털터리로 애굽에서 나갈 수밖에 없었겠지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축복을 받은 이웃들을 보면서 가족들의 불평, 원망을 들어야 했겠지요.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축복은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특권입니다.
믿음으로 구하지 못하면 빈털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달려가서, 찾아가서 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전의 모습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오늘 저가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는 지 아시지요.
예.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기도는 해야 되는 줄은 잘 아는데 기도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들이 있을까요?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이 없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전에 기도했었는데 응답하지 않은 경험이 없습니다.
작정기도도 해보고, 금식기도도 해보고, 온갖 기도는 다 해 보았는데 그 때마다 응답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응답을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기도해도 안 되더라. 응답도 하지 않더라 하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기도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못할 이유들이 많습니다.
그렇더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없고, 기도응답을 받는 경험이 없고, 기도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고, 직장과 사업에 바쁘고 만나야 될 사람이 많아서 기도하지 못할 처지일지라도 믿음으로 기도의 자리, 무릎의 자리로 나가야 한다.
기도는 타협이 아닙니다.
기도는 선택이 아닙니다.
기도는 필수입니다.
따라 해 봅시다.
기도는 타협이 아닙니다.
기도는 선택이 아닙니다.
기도는 필수입니다.
흔히 기도를 무엇이라 합니까?
영혼의 숨쉬기운동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숨쉬기를 타협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숨쉬기를 선택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숨쉬기는 무조건 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숨을 쉬는 것입니다.
기도도 똑 같은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체험할 수 없고,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됩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들 자신이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처지와 여건을 더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우리들 자신보다 더 하나님께서 더 안타까워하시고 아쉬워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도할 수 있는 마음과 믿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고, 시간도 내어주시고, 확신도 심어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시간을 내어 기도의 입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저가 기도에 대해서 말씀드릴 때마다 간혹 드리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기도할 수밖에 없도록 동서남북의 모든 창을 막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도록 하늘만은 활짝 열어놓으신다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을 다 막아놓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솟아날 수 있는 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명초가와 같습니다.
절대위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한 군데는 열어놓습니다.
그게 어디입니까?
예, 하늘입니다. 곧 하나님을 향하여 열어놓습니다.
기도하라고 열어놓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앙의 사람들은 반드시 기도해야 하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는 여건들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그 기도에 대한 응답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따라 해 봅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해서 응답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저가 오늘 아침에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들은 것입니다.
미국에서 작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어느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슈퍼마켓에 큰 새가 들어온 것입니다.
새가 매장에 들어오면 어떻게 됩니까?
여기저기 날아다니면서 쌓아놓은 제품들을 흩 틀어 놓을 것이고, 병들은 떨어져서 깨질 것이고, 난장판이 될 것이 뻔하고.......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사람은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새가 우리 가게에 들어왔네요. 새로 인해서 슈퍼마켓에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하면서 기도하고는 새와 이야기하다가 째려보다가 하면서 한 시간 정도 흘렀다고 합니다.
새와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실제로 이야기하기는 했겠습니까?
자기 스스로 묻고 대답하고 그랬겠지요.
그러기를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다시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제는 내 손으로 새가 부상당하지 않고 조용하게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기도가 끝나자 새가 매장을 한 바퀴 빙 돌더니 그 사람의 손등에 와서 살짝 앉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새에게 “이제 나랑 이야기할 것은 다 했지! 이제는 조용하게 밖으로 나가자” 하면서 밖으로 나왔더니 새가 멀리 날아가더랍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새도 주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니까 슈퍼마켓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새도 다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기도만이 살 길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체험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상황과 여건들로 인하여 기도할 수 없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을 주시고 놀라운 축복의 그릇으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면서 좋아하시고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시는 분이다. 어떤 복을 주실까요? 믿음으로 기도한 제목을 응답하십니다. 농사도, 직장생활도, 2010년에 가진 소망도 이루어주십니다.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을 주십니다. 항상 우리 하나님께서 늘 우리들의 편, 내 편이라는 확신을 심어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숨겨진 것들까지도 찾아서 주십니다. 믿음으로 성도들이 기도할 때만이 응답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주시지 않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이들에게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필요하다고 기도할 때만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반드시 기도하기 위하여 기도의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응답, 능력이 없기 때문에 기도의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우리 다 같이 옆에 있는 성경 구절을 읽습니다. 시81:10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왜 그리도 매가리가 없어요? 복을 받고 싶지 않으세요. 자, 복을 받고 싶은 사람만 다시 읽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더 크게 다시 읽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입을 크고 넓게 열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겠다고 합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입을 열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채워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을 조금 여니까 하나님께서 조금 채워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을 적게 여니까 하나님께서 적게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왕 받을 거. 크고 넓게 받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큰 소리로 읽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아멘입니까? 크게 아멘 합시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고 믿음의 입을 크고 넓게 열고 마음껏 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입을 크고 넓게 열어서 구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십니다.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어쩌면 매일매일 수도 없이 듣고 선포해야 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기도하기 위해서 항상 기도에 대하여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항상 기도했을 때 응답받았던 좋은 경험을 되새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기도에 방해되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의 속삭임에 속아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두 귀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말처럼 한쪽 귀로 듣고 다른 한쪽 귀로 흘려보내라고 양쪽 귀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은 오른쪽을 좋아합니다. 왼쪽은 싫어합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오른쪽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응답하신다. 하는 좋은 말은 오른쪽 귀로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왼쪽에서 들려오는 아무리 기도해도 안 되더라. 누구의 기도는 잘 응답하더니 내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더라 등등 부정적인 생각, 사탄의 소리는 귀를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른쪽 귀를 쫑긋 세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기도하여 응답받으면 누가 가장 좋을까요? 뭐니 뭐니 해도 기도하는 본인이 가장 좋습니다. 기도 응답해 주신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는 확신 때문에 기쁨과 소망이 살아납니다. 또한 가족들과 성도들과 목사와 하나님께서 좋아하십니다. 저는 목사로서 우리 성도들이 복 받는 모습, 기도 응답받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성도들이 복을 받고, 기도가 응답되어지면 마치 내 자신이 복을 받은 것 같고, 내 자신이 기도 응답받은 것 같아서 좋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면서도 좋아하시고, 기도 응답해 주시면서도 좋아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기도의 시간을 확보하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항상 기도에 파묻혀 삽니다. 믿음의 사람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기도의 시간을 찾아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구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숨겨진 재물의 복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구할 때 숨겨진 재물까지 다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복을 넘치도록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야베스가 받은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옆에 있는 성경 구절을 읽습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지역이 넓혀주시는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주님의 손으로 도와주시는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모든 환난에서 벗어나는 축복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모든 근심이 없어지는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그리고 신28:11-12절의 축복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내용인지 아시지요? 기억되지 않는 분들은 빨리 찾아서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어떤 복을 주신다고 합니까? 생업 터전의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자녀들의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 곧 창고를 활짝 열어서 주신다고 합니다. 때를 따라 돕는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남에게 꾸어주는 복을 받을지언정 꾸지 않는 물질의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아울러 영원한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지난주까지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은 숨겨진 축복까지 받게 하십니다. 믿으면 아멘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축복 주시고 싶어서 안달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복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가 손해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축복받은 것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넘치도록 축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많은 축복을 받고 시내산까지 와서 무엇을 합니까? 금송아지를 만들어냅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그 금이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오늘 애굽인들에게 믿음으로 찾아가서 구한 것들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구한 것들인데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죄를 범하는 데 사용합니다.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입니다. 레위 지파 사람들을 시켜서 3000명을 죽입니다. 지진을 일으켜서 몰살시킵니다.
그런가 하면 성막을 만듭니다. 성막에 쓰인 금이며 패물이 어디에서 나온 것들입니까? 예, 오늘 믿음으로 애굽인들을 찾아가서 구한 것들입니다. 믿음으로 구한 것들을 성막을 만드는 데 헌신하여 하나님을 위한 장막을 만듭니다. 또한 40년 광야 생활하는 데 사용합니다. 광야 생활하면서 입었던 옷이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오늘 구한 것들에서 나온 옷들입니다. 신발도 그렇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잘 사용하지 않아서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데 사용하면 죽임을 당합니다. 받은 축복이 도리어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잘 사용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산성교회 성도들은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축복의 근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만이 축복의 주인공, 축복의 근원이 됩니다. 하나님은 축복하시면서 감동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하나님을 위해서 잘 사용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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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2,29-36 기도할 때 숨겨진 축복까지 받습니다 /야베스
Reviewed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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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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