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순절(Lent)의 첫 주일입니다. 교회는 사순절을 부활절(Easter)을 맞이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난을 명상하고 회개하는 기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사순절은 교회가 세례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마지막 단계로 삼은 기간이었습니다. 즉 부활절을 세례받기에 가장 적합하고 의미 있다고 여겼던 고대 교회에서는 세례 지원자들이 사십 일 동안 금식 등 일상생활에서부터 떨어져 상당히 어려운 준비를 거친 후 부활주일에 세례를 받곤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 와서 사순절은 세례받을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동참하는 절기가 되었고, 그러면서 세례를 받기 위한 준비의 기간으로서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난을 명상하고 회개하는 기간으로서 그 성격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세례를 받기 위한 준비의 기간으로서이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난을 명상하고 회개하는 기간으로서이든 이 사순절은 달리 말하면 교회 공동체의 자기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기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세례가 갖는 의미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 확립이라는 의미에 상응하기도 하고 그것들을 예표한 것이 구약에서의 유월절과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의 의미일 것입니다. 따라서 사순절 기간에 유월절과 출애굽의 맥락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옛날 애굽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애굽 땅에서 나오기 직전에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모세는 애굽 왕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나가게 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바에 따라 바로와 애굽 백성들이 두려워할 만한 여러 가지 표징과 이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도 바로는 더욱 마음을 강퍅하게 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기를 완강하게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킬 수밖에 없게 만들 마지막이고 결정적인 무서운 재앙을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은 한날밤에 애굽 땅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맏아들들이 모두 죽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바로의 아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짐승들의 첫 새끼들까지도 다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사람들로부터 구별하셔서 이 죽음의 재앙에서 구출코자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죽음의 재앙을 면하며 애굽 땅을 벗어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새로운 삶을 향하여 갈 수 있기 위하여 취해야 할 몇 가지 행동 지침을 지시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준비 사항으로서 모세와 그 형 아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명령들 가운데에는 우리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며 그 의미를 새겨보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본문 2절에서 보는 대로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여기서 "이 달"이라고 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 곧 출애굽이 이루어질 그 달일 터인데 그 달을 이제부터는 한 해의 첫 번째 달로 삼으라는 명령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에는 가을부터 새해가 시작되는 연력을 사용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cf. 출 23:16, 34:22), 이제부터는 가나안 말로 아빕월이라고도 하고 그 뜻을 따라 이삭월이라고도 하며 훗날 바벨론 식으로는 니산월로 불렸던 오늘날의 3월과 4월 사이에 해당하는 이 달로부터 새해를 시작하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분명 일종의 건국 연호를 정하는 일에 상응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 민족이 일본 사람들처럼 늘 "소화 몇 년"이라고 연도를 지칭하다가 해방과 더불어 단군의 건국으로부터 그 기원을 삼는 단기를 사용하여 "단기 몇 년"으로 연도를 표시하곤 했던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의 나라 땅에서 거하며 다른 민족의 억압 아래 노예처럼 학대와 착취, 고통과 오욕 속에 살던 상태에서 하나님이 세우시는 한 자주독립국가로 옮겨지게 된 이스라엘은 마땅히 타민족과는 구별되어야 하며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할 것임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새 시대 새 삶의 근거는 "하나님의 구원"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에 앞서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명령 중 유의해야 할 둘째 사실은 본문 3∼7절에서 보는 대로 각 가족마다 "흠 없는" "어린양"을 잡아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고기를 구워 먹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의 집집마다 장자들을 치실 때 이 어린양의 피가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진 집들은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지 않고 넘어감으로써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안전하게 살아남았고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고유 명절인 유월절이 유래하게 되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흠 없는 어린양의 살과 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타민족과 구별되게 하시기 위하여 명하신 표지였고, 택하신 백성이 자유와 독립과 복된 삶을 향하여 안전하게 이끌어 내지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셋째 명령은 본문 8절에서도 간단히 언급되었지만 15∼20절에서 길게 반복되어 주어진 바와 같이 무교병을 먹으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을 준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해진 한 주간 동안 집안에서 누룩을 다 없이하고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을 먹을 것이며, 만일 유교병을 먹는 사람이 있을 때 그는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질 것임을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이렇게 출애굽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누룩을 제거하라 하신 명령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누룩은 지난해의 소출에서 오는 것이며, 옛것의 남은 것을 의미하곤 합니다.
중국 호떡집에는 밑반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매일 새로 호떡 구울 반죽을 할 때마다 그 밑반죽을 섞어서 반죽을 합니다. 그리고 그 반죽의 일부를 또 그 다음 날을 위한 밑반죽으로 남겨둡니다. 그래서 어떤 호떡집에는 몇 대 조상이 중국에서 건너올 때부터 가지고 온 밑반죽, 다시 말하면 누룩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누룩이라는 것이 옛것의 남은 것을 뜻한다면, 한편 떡은 삶의 수단이며 삶 그 자체를 상징하곤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집안에서 누룩을 없이 하고, 누룩 없는 떡을 먹을 것이며, 누룩 섞은 떡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는 분명하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삶과 결별하고, 새로 시작될 삶 속에 옛 삶의 방식을 섞지 말 것이며, 여전히 옛 삶의 모습으로 살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가 택하신 백성과 그 백성의 삶이 하나님을 섬길 줄 모르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삶으로부터 분명히 구별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넷째로 생각해 볼 것은 본문 11절에 있는 "너희는 이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는 명령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관습으로나 일반적으로도 음식을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발도 벗고 허리띠도 풀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최대한 편한 자세로 천천히 먹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음식을 즐기며 먹기에는 가장 부적절한 방법을 명하셨는데 그 뜻은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새 삶을 시작함에 있어서 망설임이나 지체됨이 없는 결연한 자세를 가져야 하며, 하나님의 출발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즉각적인 준비성을 지닐 것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새 삶을 살아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옛 삶에 대한 미련이나 또는 육신적으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에 대한 애착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에 지장을 초래해서는 안 될 것임을 가르치시고자 하신 뜻으로 보아도 잘못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살펴본 하나님의 명령들, 출애굽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다소 별나 보이는 이 명령들이 오늘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결코 우리와는 상관없는 옛날 이스라엘의 역사 이야기의 한 토막이 아닙니다. 출애굽 사건 자체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노예 상태와 죽음과 고통의 질곡에서 해방되어 약속된 자유와 복락을 누리는 삶에로 나아가게 되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며, 오늘 본문은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원하실 백성들에게 주신 명령의 일부분을 전하는 것이라면, 그 모든 사건과 그 모든 말씀은 곧 하나님 나라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와 관련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곧 그것은 우리의 구원 이야기이며 우리가 지키도록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앞서 언급한 네 가지 명령의 의미를 우리 자신과 연관시켜 다시 한번 정리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첫째는 출애굽 하게 될 그 달로 해의 첫 달을 삼으라는 명령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누릴 새 나라 새 시대 새 삶의 기원과 시작을 유월과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두는 의미를 갖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의 삶의 출발과 근거를 오직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에 두어야 함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얻은 새 생명, 이 자유, 모든 기쁨, 모든 행복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히 깨닫는 고백과 감격이 우리의 삶을 지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표가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향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소망과 위로와 힘과 지혜가 모두 그리스도에게서만 찾아져야 하며, 우리가 즐거워하고 힘써 일하며 애쓰고 노력하는 것, 섬기고 사랑하는 것, 또 때로는 애통하며 때로는 분노하는 것조차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때문이고 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세상 사람과 구별되게 하는 하나님이 주신 표지입니다.
둘째는 흠 없는 어린양을 잡아먹고 그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라는 명령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타 백성들과 구별하시고 죽음에서 구원하시고자 지정하시고 제시하신 길이라고 했습니다. 흠 없는 어린양의 살과 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과 구원의 길이었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의 양식과 구원의 길로서 주어졌음을 예표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이라고 했고 사도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예수 그리스도"(고전 5:7)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말씀하셨으며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3~55) 하셨습니다.
22절에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린양을 잡아먹고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뿌린 후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출 12:22)고 했었습니다. 그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소위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신앙의 혼란을 야기시키며 교회 안에 물의를 빚는 일들이 있으나,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다른 생명의 길이 없으며, 이 신앙고백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으며 그 피로 지켜지는 교회의 문 밖에는 구원의 도가 없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했습니다. "오직 예수로만"이라는 신앙고백이야말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참된 표지임을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그 집에서 누룩을 없이하고 무교병을 먹으라는 명령과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애굽 사람의 노예 상태에 있다가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새로 시작되는 삶 속에 옛 삶의 찌꺼기를 섞지 말라는 뜻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이 명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구원받은 우리들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된 우리는 이제는 새 삶의 모습을 지녀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삶의 양식을 그대로 지니고 살 수는 없습니다. 옛 삶의 찌꺼기를 우리의 새 삶 속에서 단호히 그리고 철저히 제거하는 노력이야말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표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5:7-8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넷째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는 명령입니다. 그것은 새 삶을 시작할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결연한 의지와 즉각적인 준비성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또 옛 삶에 대한 미련이나 육신의 배를 채우는 즐거움에 대한 애착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 지체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라는 의미로도 이해했습니다.
이것 또한 오늘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명령일 것입니다. 아직도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로 인한 구원을 받아들이면서도, 행동으로는 옛것의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며 차일피일 새 삶의 출발의 결단을 미루고 있다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일본의 침략과 강점과 학정과 착취 아래 있다가 한국의 독립국임과 한국인의 자유민임을 선언한 3.1 독립만세사건을 기념하는 3.1절을 며칠 전 새로 맞은 우리이기에, 그리고 일본이 그 침략의 범죄성과 그 숱한 반인륜적 만행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며 그 사악한 침략주의 근성과 군국주의 망령을 되살리고 있는 오늘이기에, 더더욱 우리는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그 명령들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지녀야 할 자기 정체성의 표지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보고 깨달음으로써 참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겠으며, 우리가 지금까지 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의 표지를 잊었거나 잃어버렸었다면 회개하고 새로워짐으로써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과 자유와 행복을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3.1절과 맞물린 이번 사순절 첫 주에 우리가 깨달아야 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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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 와서 사순절은 세례받을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동참하는 절기가 되었고, 그러면서 세례를 받기 위한 준비의 기간으로서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난을 명상하고 회개하는 기간으로서 그 성격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세례를 받기 위한 준비의 기간으로서이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난을 명상하고 회개하는 기간으로서이든 이 사순절은 달리 말하면 교회 공동체의 자기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기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세례가 갖는 의미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 확립이라는 의미에 상응하기도 하고 그것들을 예표한 것이 구약에서의 유월절과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의 의미일 것입니다. 따라서 사순절 기간에 유월절과 출애굽의 맥락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옛날 애굽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애굽 땅에서 나오기 직전에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모세는 애굽 왕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나가게 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바에 따라 바로와 애굽 백성들이 두려워할 만한 여러 가지 표징과 이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도 바로는 더욱 마음을 강퍅하게 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기를 완강하게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킬 수밖에 없게 만들 마지막이고 결정적인 무서운 재앙을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은 한날밤에 애굽 땅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맏아들들이 모두 죽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바로의 아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짐승들의 첫 새끼들까지도 다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사람들로부터 구별하셔서 이 죽음의 재앙에서 구출코자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죽음의 재앙을 면하며 애굽 땅을 벗어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새로운 삶을 향하여 갈 수 있기 위하여 취해야 할 몇 가지 행동 지침을 지시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준비 사항으로서 모세와 그 형 아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명령들 가운데에는 우리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며 그 의미를 새겨보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본문 2절에서 보는 대로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여기서 "이 달"이라고 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 곧 출애굽이 이루어질 그 달일 터인데 그 달을 이제부터는 한 해의 첫 번째 달로 삼으라는 명령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에는 가을부터 새해가 시작되는 연력을 사용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cf. 출 23:16, 34:22), 이제부터는 가나안 말로 아빕월이라고도 하고 그 뜻을 따라 이삭월이라고도 하며 훗날 바벨론 식으로는 니산월로 불렸던 오늘날의 3월과 4월 사이에 해당하는 이 달로부터 새해를 시작하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분명 일종의 건국 연호를 정하는 일에 상응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 민족이 일본 사람들처럼 늘 "소화 몇 년"이라고 연도를 지칭하다가 해방과 더불어 단군의 건국으로부터 그 기원을 삼는 단기를 사용하여 "단기 몇 년"으로 연도를 표시하곤 했던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의 나라 땅에서 거하며 다른 민족의 억압 아래 노예처럼 학대와 착취, 고통과 오욕 속에 살던 상태에서 하나님이 세우시는 한 자주독립국가로 옮겨지게 된 이스라엘은 마땅히 타민족과는 구별되어야 하며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할 것임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새 시대 새 삶의 근거는 "하나님의 구원"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에 앞서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명령 중 유의해야 할 둘째 사실은 본문 3∼7절에서 보는 대로 각 가족마다 "흠 없는" "어린양"을 잡아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고기를 구워 먹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의 집집마다 장자들을 치실 때 이 어린양의 피가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진 집들은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지 않고 넘어감으로써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안전하게 살아남았고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고유 명절인 유월절이 유래하게 되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흠 없는 어린양의 살과 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타민족과 구별되게 하시기 위하여 명하신 표지였고, 택하신 백성이 자유와 독립과 복된 삶을 향하여 안전하게 이끌어 내지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셋째 명령은 본문 8절에서도 간단히 언급되었지만 15∼20절에서 길게 반복되어 주어진 바와 같이 무교병을 먹으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을 준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해진 한 주간 동안 집안에서 누룩을 다 없이하고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을 먹을 것이며, 만일 유교병을 먹는 사람이 있을 때 그는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질 것임을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이렇게 출애굽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누룩을 제거하라 하신 명령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누룩은 지난해의 소출에서 오는 것이며, 옛것의 남은 것을 의미하곤 합니다.
중국 호떡집에는 밑반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매일 새로 호떡 구울 반죽을 할 때마다 그 밑반죽을 섞어서 반죽을 합니다. 그리고 그 반죽의 일부를 또 그 다음 날을 위한 밑반죽으로 남겨둡니다. 그래서 어떤 호떡집에는 몇 대 조상이 중국에서 건너올 때부터 가지고 온 밑반죽, 다시 말하면 누룩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누룩이라는 것이 옛것의 남은 것을 뜻한다면, 한편 떡은 삶의 수단이며 삶 그 자체를 상징하곤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집안에서 누룩을 없이 하고, 누룩 없는 떡을 먹을 것이며, 누룩 섞은 떡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는 분명하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삶과 결별하고, 새로 시작될 삶 속에 옛 삶의 방식을 섞지 말 것이며, 여전히 옛 삶의 모습으로 살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가 택하신 백성과 그 백성의 삶이 하나님을 섬길 줄 모르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삶으로부터 분명히 구별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넷째로 생각해 볼 것은 본문 11절에 있는 "너희는 이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는 명령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관습으로나 일반적으로도 음식을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발도 벗고 허리띠도 풀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최대한 편한 자세로 천천히 먹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음식을 즐기며 먹기에는 가장 부적절한 방법을 명하셨는데 그 뜻은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새 삶을 시작함에 있어서 망설임이나 지체됨이 없는 결연한 자세를 가져야 하며, 하나님의 출발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즉각적인 준비성을 지닐 것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새 삶을 살아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옛 삶에 대한 미련이나 또는 육신적으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에 대한 애착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에 지장을 초래해서는 안 될 것임을 가르치시고자 하신 뜻으로 보아도 잘못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살펴본 하나님의 명령들, 출애굽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다소 별나 보이는 이 명령들이 오늘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결코 우리와는 상관없는 옛날 이스라엘의 역사 이야기의 한 토막이 아닙니다. 출애굽 사건 자체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노예 상태와 죽음과 고통의 질곡에서 해방되어 약속된 자유와 복락을 누리는 삶에로 나아가게 되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며, 오늘 본문은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원하실 백성들에게 주신 명령의 일부분을 전하는 것이라면, 그 모든 사건과 그 모든 말씀은 곧 하나님 나라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와 관련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곧 그것은 우리의 구원 이야기이며 우리가 지키도록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앞서 언급한 네 가지 명령의 의미를 우리 자신과 연관시켜 다시 한번 정리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첫째는 출애굽 하게 될 그 달로 해의 첫 달을 삼으라는 명령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누릴 새 나라 새 시대 새 삶의 기원과 시작을 유월과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두는 의미를 갖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의 삶의 출발과 근거를 오직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에 두어야 함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얻은 새 생명, 이 자유, 모든 기쁨, 모든 행복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히 깨닫는 고백과 감격이 우리의 삶을 지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표가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향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소망과 위로와 힘과 지혜가 모두 그리스도에게서만 찾아져야 하며, 우리가 즐거워하고 힘써 일하며 애쓰고 노력하는 것, 섬기고 사랑하는 것, 또 때로는 애통하며 때로는 분노하는 것조차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때문이고 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세상 사람과 구별되게 하는 하나님이 주신 표지입니다.
둘째는 흠 없는 어린양을 잡아먹고 그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라는 명령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타 백성들과 구별하시고 죽음에서 구원하시고자 지정하시고 제시하신 길이라고 했습니다. 흠 없는 어린양의 살과 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과 구원의 길이었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의 양식과 구원의 길로서 주어졌음을 예표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이라고 했고 사도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예수 그리스도"(고전 5:7)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말씀하셨으며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3~55) 하셨습니다.
22절에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린양을 잡아먹고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뿌린 후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출 12:22)고 했었습니다. 그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소위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신앙의 혼란을 야기시키며 교회 안에 물의를 빚는 일들이 있으나,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다른 생명의 길이 없으며, 이 신앙고백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으며 그 피로 지켜지는 교회의 문 밖에는 구원의 도가 없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했습니다. "오직 예수로만"이라는 신앙고백이야말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참된 표지임을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그 집에서 누룩을 없이하고 무교병을 먹으라는 명령과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애굽 사람의 노예 상태에 있다가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새로 시작되는 삶 속에 옛 삶의 찌꺼기를 섞지 말라는 뜻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이 명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구원받은 우리들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된 우리는 이제는 새 삶의 모습을 지녀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삶의 양식을 그대로 지니고 살 수는 없습니다. 옛 삶의 찌꺼기를 우리의 새 삶 속에서 단호히 그리고 철저히 제거하는 노력이야말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표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5:7-8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넷째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는 명령입니다. 그것은 새 삶을 시작할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결연한 의지와 즉각적인 준비성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또 옛 삶에 대한 미련이나 육신의 배를 채우는 즐거움에 대한 애착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 지체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라는 의미로도 이해했습니다.
이것 또한 오늘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명령일 것입니다. 아직도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로 인한 구원을 받아들이면서도, 행동으로는 옛것의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며 차일피일 새 삶의 출발의 결단을 미루고 있다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일본의 침략과 강점과 학정과 착취 아래 있다가 한국의 독립국임과 한국인의 자유민임을 선언한 3.1 독립만세사건을 기념하는 3.1절을 며칠 전 새로 맞은 우리이기에, 그리고 일본이 그 침략의 범죄성과 그 숱한 반인륜적 만행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며 그 사악한 침략주의 근성과 군국주의 망령을 되살리고 있는 오늘이기에, 더더욱 우리는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그 명령들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지녀야 할 자기 정체성의 표지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보고 깨달음으로써 참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겠으며, 우리가 지금까지 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의 표지를 잊었거나 잃어버렸었다면 회개하고 새로워짐으로써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과 자유와 행복을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3.1절과 맞물린 이번 사순절 첫 주에 우리가 깨달아야 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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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2:3-12 하나님 나라 백성들 /이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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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3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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