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16:1-23 하나님의 등용 조건과 버린 이유 /윤봉원

여기에 등장하는 세 인물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사무엘이요, 한 사람은 사울 왕이요, 또 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왕 중에 가장 먼저 된 왕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에서 사울을 택하여 왕을 삼는 것이 좋겠다 하여 이스라엘의 첫 왕을 삼으셨습니다.

그때에 사무엘상 9장을 보면 9장 1절로부터 10장 25절까지에 사울은 사무엘이 왕을 삼으려고 이렇게 하실 때에 그가 말하기를 ‘나는 가장 말째 작은 지파에 속한 자요, 또 그중에도 가장 미약한 자라.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런 직책을 감당하겠습니까?’ 하고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택해서 이스라엘 왕을 삼으셨습니다. 그랬는데 그 뒤에 하나님이 사울 왕에 대해서 진노하셔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무엘이 사울 왕을 인하여 근심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언제까지 이 사울 왕을 인하여 근심하고 있겠느냐? 이미 내가 버렸으니 거기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말고 다시 한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라’ 그렇게 말씀을 하여 사무엘이 다윗 왕에게 기름 부으러 가게 됐습니다.

갈 때에 사무엘이 말하기를 ‘내가 가면 사울이 이 말을 듣고 나를 죽일 터인데 내가 어떻게 가겠습니까?’ 두려워하니까 ‘네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하고 가서 이새와 그 아들들을 청해서 기름을 부어라’ 그렇게 하여 기름 부으러 갔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거짓말을 시키신 게 아니고 제사 드린 것만 사울에게 알리고 기름 부은 것은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대해 혹 오해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밤에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이 사울 왕에 대해 본문에서 좀 생각하려고 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왕이 이스라엘 중에 가장 작은 자로 알고 자기를 낮추실 그때에 하나님이 왕을 택해서 기름 부어 왕 되게 하셨는데, 하나님이 사울 당신을 왕으로 세우신 것이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자요 무지무능자로 알 그때에, 겸손할 그때에 하나님이 택해서 왕을 삼으셨는데 왕이 왕이 되고 난 다음에는 그는 겸손이 하나도 없어지고 도리어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은 저버리고 왕의 사욕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왕을 버려서 왕이 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진리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단점을 보고 낙망하는 자도 다 사망이지만, 자기의 단점을 보고 하나님에게 구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근근이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고 등용받는 길입니다. 자기의 단점을 발견해서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사실을 아는 그자를 하나님은 들어서 쓰시는 것입니다.

이는 진리이기 때문에 어느 시대나 꼭 같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은 그 사람도 하나님에게는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어떤 사람이 필요한고 하니 자기의 무지 무능, 자기의 실수와 실패 이것을 찾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또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이 사람을 하나님은 들어 쓰십니다.

그와 정반대로 자기가 이 세상에 어떤 요소를 구비했든지 ‘내가 이만큼 구비해 놨으니까’ 하여 하나님 외에 자기의 가진 것의 가치를, ‘하나님이 함께 안 해도 이 가치만으로도 무엇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기의 가진 그것의 가치를, 하나님 없어도 그것만으로라도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어떤 것을 가졌든지 자기의 가진 것을 하나님이 그것을 은혜롭게 이루어 주시지 않아도 무엇을 할 수 있다 하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는 첫째 길입니다.

“내가 이만큼 지식이 있으니, 힘이 있으니, 지혜가 있으니, 열심이 있으니, 이만큼 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이런 지위가 있으니, 무엇이 있으니 이것 가지고” 그것만 가지고라도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 가기가 어렵다.” 그 말은, 자기의 어떤 가진 것이든지 하나님이 그것을 축복으로 이용해 주시면 축복이 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시면 그것은 다 화가 될 것 외에는 아무것도 될 것이 없는데 그것만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같이하지 않아도 쓸모가 있고 유익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제일 진노거리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화 덩어리가 됩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이 적게 있는 것을 ‘이것이 하나님이 같이 안 하면 이것이 화가 된다.’ 이리 여기는 자보다 많이 가진 자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지 않으면 이것이 화가 된다.’ 화가 된다 하는 것을 아는 그 사람은, 많이 가지고 그렇게 여기는 사람을 하나님이 크게 쓰십니다. 적게 가지고 그렇게 아는 사람보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안 좋을 것이 없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지 않으시면 화가 되지 않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식도 화가 되고 돈도 화가 되고 잘난 용모도 화가 되고 젊음도 화가 되고 힘도 화가 되고 전체가 화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가진 것에 함께하지 않으면 전체가 화가 되고 우리에게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되고 우리의 가진 것 이것조차도 하나님이 함께해야 이것이 화가 안 되고 쓸모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사울 왕이 처음에 등용될 때는 이 이치에 맞아서 등용이 됐고, 버림을 받을 때에는 이 이치에 버림받을 그 행동을 했기 때문에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울이 버림을 받을 때에 그 행동을 보니까 첫째로 그랬습니다. 15장 18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하고 자기 욕심만 취했습니다. 보기에 좋은 짐승, 보기에 아름다운 사람, 또 그러고 나서 자기를 위해서 승리했다고 승리의 승전비를 세우고, 이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해 버리고 자기를 생각하는 데에만 급급한 그것이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는 시작입니다.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잊어버리려, 잘못 찾으려, 감당치 못하고 버리려 하는 것.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마음이 기울어져야 할 터인데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야 뭐라고 하시든지 그것은 상관하지 않고 자기편만 생각합니다.

자기 유익, 자기에게 필요한 것, 자기 형편, 자기 사정, 자기 유익, 또 땅에 있는 것 그것만 자기가 욕심부린 것이 사울 왕이 버림을 당한 첫째 원인입니다. 지금도 꼭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잘나고 못나고, “하나님이 내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이 내게 지금 무엇을 요구하시며 명령하시는가?” 여기에 전심전력을 기울이고, 자기에게 어떻게 되든지 “하나님이 내게 무슨 말씀 하시는가?” 이 말씀 하나를 순종해서 감당하려고 하는 이 사람이 하나님에게 복을 받아 쓰임받는 사람이고, 정반대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이야 뭐라고 말씀하시든지, 요구와 명령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저 좋은 대로 제게 필요한 것, 저만 생각해서 땅의 것만 취하기를 날뛰는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버림을 당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꼭 같습니다.

버림을 당하고 나면 그다음에 어찌 되느냐? 여기에 보니까, 16장 14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신이 사울 왕을 떠나 버렸습니다. 이제까지는 사울 왕에게 하나님의 신이 함께 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버리니까 첫째 사울 왕에게 일어나는 역사가 영감이 없어졌습니다. 성신의 감화 감동이 없어졌습니다.

성신의 감화 감동은 전지의 감동이요 전능의 감동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의 감동인데 그만 이 감동이 떠나 버립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자기에게 없어져 버렸지. 하나님의 소원이 과거에는 제 소원이고 아무것도, 소원 중에 하나님의 소원만이 자기 소원이었는데 하나님의 소원이 없어지지, 하나님의 지혜가 없어지지,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지지, 하나님의 영이 떠나는 그것이 벌써 버림을 받은 증거입니다.

버림을 받은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은 두려워 떨면서 순종하지 아니하고, 청종하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대해서만 급급합니다. 자기에게 대해서만 급급하니까 “이것이 내게 필요하다. 저것이 내게 필요하다.” 저 좋은 대로 자기에게 필요한 그것만 취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원인이고,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증거는 첫째가 성령이 떠납니다.

성령이 떠나면 어찌 되느냐? 하나님의 소원이 자기에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자기 소원이 일치되어야 되는데 하나님의 소원이 자기에게 없지, 하나님의 지혜가 없지,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지지 이것이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그러고 나면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면 어찌 되느냐? 그다음에 보니까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를 멸하기 위해서, 넘어지고 절단 나도록 하기 위해서 거기에 쓰시는 이 악신이 사울 왕에게 들어갔습니다. 이제 사울 왕에게 들어가고 보니까 사울 왕은 머리가 아픕니다. 심히 번민스럽습니다. 어떻게 할 일 많고 복잡하고 이래서 머리가 복잡해서 견디지 못할 만큼 번뇌됩니다.

이 사울 왕을 버린 것을 보니까 첫째, 둘째, 셋째 이것이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증거로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만 생각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버림받을 원인이며, 버림받으면 성신의 감화 감동은 없고 마귀의 감화 감동이 이제는 자기에게 와서 주장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사무엘은 하나님이 함께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과 함께했는데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신 그 원인을 찾아보면 사무엘이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밖에 없었고, 사모하는 것이, 또 모시는 것이, 의논하는 것이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무엘이 살았습니다.

이것이 그만 하나님을 친밀히 사귀는 가장 좋은 방편입니다. 하나님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생각하고 항상 하나님 앞에 있는 것 이것이 불학무식한,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무엘이지만,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은, 그저 밥 먹고 이렇게 다닐 만하니까 자기 어머니가 사무엘을 엘리 제사장 앞에 바쳐서 항상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밤이나 낮이나, 놀아도 거기서 놀고 그저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만 생각하고 이렇게 하나님과 같이 있으면서 하나님만 사모하고 하나님으로 무엇이 될 것을 바라지 딴 것으로 무엇이 될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사무엘이 하나님과 동행한 원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당신과 같이 있는 것이 전지와 같이 있는 것이요, 전능과 같이 있는 것이요, 완전과 같이 있는 것이요, 승리와 같이 있는 것이요, 행복과 평강과 생명과 같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있어서 손해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있는 데는 돈이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유식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잘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못나도 하나님과 같이 있을 수 있는데 하나님은 무엇을 갖다 바치는 것보다도 당신과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들도 그러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라도 부모와 같이 있기를 원하는 것을 부모는 힘껏 좋아하지 아무리 잘나도 부모하고 같이 있기는 싫어하고 제가 사업으로 날뛰든지 어디를 돌아다니며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참 하나님을 위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부모와 같이 있기를 싫어하면 어떤 것을 갖다 해 줘도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부부간도 친구간도 그렇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과 같이 한 사람인데 하나님과 이렇게 친밀해진 원인이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같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은 하나님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과 같이 있기를 좋아하고 하나님과 속삭거리기를 좋아하고 의논하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에게 묻기를, 배우기를, 하나님의 도움을, 하나님에게 얻는 것을 좋아하는 이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또 하나님과 이렇게 같이 있어 하나님이 좋아해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느냐? 이 사무엘은 정치가 중에서 독특한 정치가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을 맡고 난 다음에는, 이스라엘 나라에 원수들이 많았지만, 원수들이 사무엘의 정권을 해하지 못했습니다. 달려들면 그들이 패해서 갔지 이쪽에는 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사 중에는 가장 마지막 사사인데, 많은 사사들의 시대가 지나갔지만, 사무엘이 사사가 될 때와 같이 그렇게 평안하고 조용하고 외적의 해를 받지 않은 때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가장 특수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증거는 그에게 언제든지 평강을 주십니다. 외부로 보면 요셉이 참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한 것 같았지만 남이 모르는 그 속으로는 굉장한 평강과 기쁨과 재미를 봤습니다.

또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에 보면, 그 일생 생활을 가만히 명상해 보면 너무 끔찍해서 생각하기에도 징그러울 만합니다. 이랬지만 제삼자들이 보기에 이랬지 자기로서는 굉장한 위로와 기쁨을 누렸습니다. 일어났다고 하면 복음이 크게 전파되고 큰 승리와 성공을 이루었고, 그래서 그분이 말하기를 ‘환란이 심한 그것보다 주의 위로가 더 크기 때문에 그것이 환란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에게는 평강이 있습니다. 안팎이 다 평안하고, 안팎이 평안하지 않으면 세상이 모르는, 겉이 험한 그 속에 굉장한 평안이 있습니다.

이러기에 모든 성도들이 간증하기를 십자가의 그 길을 전부 기뻐했습니다. 제삼자가 볼 때에는 “아마 이 사람이 지금 너무 외로워서, 너무 기가 막혀서 지금 한숨을 쉬고 밥맛이 없고 아마 낙망하고 있을 것이다. 위로를 하러 가야겠다.” 하고 위로를 하러 가면 상상도 못할 만큼 그 사람은 속으로 한없는 기쁨과 평강을 누리고 있습니다.

갔던 사람이 놀라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에게는 겉과 속이 다 평안하게 평안을 해 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겉이 불안한 속에 상상도 못할 특수한 평강을, 이 환란 속에 들어 있는 특수한 평강을 주시든지 어쨌든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괴롭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리고 갔지만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와 함께 있기 때문에, 너희 전부보다 나으신 아버지와 함께 있기 때문에 평안하다’ 했습니다.

또 “십자가상에 못을 박혔으니까 아마 심히 고통스러워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렇게 말을 했을 것이다.” 그 세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석을 하는데, 이 믿음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들은 십자가상에서 어떻게 기쁘고 좋은지 “어떻게 이렇게 영광스러운 지위, 영광스러운 역사, 창조주와 피조물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가 환영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런 직책을, 이런 역사를 어떻게 나에게 맡겨 주셨습니까?” 감탄해 마지않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이 그랬습니다. 사무엘은 그가 사사 중에, 사사로 들어서고 난 다음에는 그 연방이 조용하고 평안했습니다. 그에게 고통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하는 데에 좀 고민했으나 하나님이 ‘너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배척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배척당하는 배척 네가 당하니’ 하는 말로 사무엘은 다시 큰 위로와 큰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그가 일국의 왕을 잘못 세우면, 하나님의 명령은 이 사람에게 기름 부으라고 하는데 딴 사람에게 기름 부었으면 이스라엘에 대해서 멸망되는 모든 책임을 사무엘이 져야 할 것 아닙니까? 그 맏아들이 떡 오니까 사무엘이 말하기를, 어떻게 잘났는지 인물이 잘났어, 키가 훌륭해, 신체가 구비해, 말을 잘해 그만 사무엘이 그 인물을 보고 깜짝 놀라서 “사울 왕이 없어져도 문제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예비해 놓으셨구나.” 하면서 놀라 기뻐했습니다.

“아, 하나님이 이렇게 위대한 사람을 예비해 놓으셨구나.” 하고 기름을 부으려고 하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무엘아! 기름 붓지 말라. 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하기를 인물 잘나고 키 크고 신체 건강하고 말 잘하고 지식 있고, 이 세상에 떠날 때 두고 갈 것 그런 것들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만 나는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여호와는 사람의 중심을 보느니라.” 하셨습니다.

그 말은 인간 속에 하나님이 나타내신 이 계시와 영감이 속에 들어 있는 그것이 가치지, 그것 없이 이 세상 것으로 아무리 번들번들하게 채워봤자 하나님은 그것을 무가치한 자로 버린다 하셨습니다.

사무엘이 그때에 이새의 맏아들에게 기름을 부었으면 사무엘은 얼마 동안 안정한 통치를 했지만 하나님과 백성 앞에 큰 죄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무엘로 하여금 실수하게 두시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애굽으로 내려가서 애굽에서 큰 실수를 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아브라함으로 실수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바로 왕에게 현몽해서 아브라함으로 실수하지 않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첫째로 평강을 주시고, 둘째로는 그의 생활에 실족이 없도록 해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되게 하는 방편은 사무엘이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아니하고 항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같이 있었던 이것이 원인이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는 그에게 평강이 있었고, 겉이 불안하면 겉의 그 불안한 그것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는 그 속에 한없는 평강이 있었고 이러니까 그것이 더 좋습니다.

또 그는 사람이라 실수하기 쉽지만, 그 실수가 실수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실수하는 것이 본인이 회개해서 유익만 되게 하지 실수의 열매로서 죄에 나아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해 주십니다.

사무엘이 거기다가 기름 부으려고 시작했다가 하나님께서 ‘이는 내가 버렸다. 너는 외모로 보지만 나는 인간의 중심을 본다. 여호와는 그 중심을 본다.’ 이 말씀하는 데에 사무엘이 이제까지 받지 못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새의 마지막 아들 다윗을 부르라 하셔서 기름 부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에게는 평강이 있고, 겉이 환란스러워도 속에 평강이 있으니까 넘침으로서 환란 그것이 다 없어지고 평화가 된다 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에게는 평강을 주십니다. 또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에게는 실족이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실족이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또 하나님이 등용한 사람은, 다윗 왕을 하나님이 등용하셨는데 등용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을 하나님이 등용하셨는가?

첫째로 하나님이 등용하는 사람은 그 속에 하나님의 계시가 가득 찬 사람입니다. 영감과 진리가 그 속에 차 있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등용하십니다. 다윗 왕은 산에 가서 양을 치고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신의 감동으로 살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 부모를 통해서 들은 그 말씀을 그대로, 하나님이 주신 성경 말씀을 그대로 자기 마음에 채우고 살았습니다.

이러니까 ‘그들은 여호와가 버렸다. 여호와는 그 중심을 본다.’ 그 말은 그 중심에 여호와가 없다 그 말입니다. 다윗은 그 중심에 여호와가 계셨습니다.

영감과 진리가 그 속에 있은 이것이 하나님에게 등용되는 첫째 조건입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나 같은 이치입니다. 사무엘은 그 앞에 있었고, 다윗은 그 속에 여호와가 들어 있었다. 그는 여호와가 없기 때문에 여호와가 그를 버렸다.

하나님께 등용되는 첫째 조건은 영감과 진리가 그 속에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를 붙들고 쓰십니다. 하나님에게 붙들려 쓰이려면 영감과 진리가 그 마음에 들어 있어야 합니다. 그 중심에 진리와 영감이 들어 있으면 하나님에게 등용되고 아무리 세상 것으로 가득 차게 구비해도 진리와 영감이 그 속에 들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은 버리십니다.

잘못하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으로 자기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이 들어 있는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줄로, 그것을 대용될 수 있을 줄로, 영감과 진리의 그 대신이, 알아듣게 대신이, 대용이 될 줄로 이렇게 알고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버림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등용되는 것은 자기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이 떠나지 아니하고 계속되는 이것이 하나님에게 등용되는 것입니다.

옥토에 뿌린 씨라고 말씀하신 그 옥토에 뿌린 씨도 마찬가지로 꼭 같은 이치의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계속 그 사람 마음을 주장하고, 또 성신의 감화가 더 감동시켜서 주장하게 되는 이것이 하나님에게 등용되는 비결입니다. 다른 것을 가지고는 하나님에게 등용되지 않습니다. ‘외모로 가지고는 안 되고 여호와가 그 중심을 본다.’ 여호와는 그 중심을 본다 그 말입니다. 여호와는 전능하신 자가 말씀해 놓으신 그 말씀대로 이용하시는 전능자라 그런 뜻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둘째로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전 인류가 반대해도 소용없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다윗은 자기 부모들도 왕이 되게 기름을 붓는다 하니까 이 얼마나 기가 찰 놀랄 일입니까? 일국의 그때 사사니까 지금 대통령보다도 굉장한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사장이요 왕입니다.

종교와 정권을 다 혼자 가지고 있는 사무엘인데, 또 사사라도 참 유력한 사사인데 이분이 와서 기름 부으려 하는데, 자기 아들 중에 기름을 부으려 하는데 일곱만 내세우고 마지막 아들은 데려오지도 않았으니까 그 부모가 “아이구, 다윗 그까짓 거야 세워서 안 되겠고 우리 큰아들은 세우면 될 터인데” 이렇게 했지, 부모가 다윗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다. 이웃이 알았습니까? 아무도 몰랐소. 버림을 받아 저 산골에 가서 양이나 먹이고 심부름이나 하고 하는 그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등용했습니다.

하나님이 등용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무리 배척해도 상관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배척해도, 사람이 몰라줘도, 부모 형제가 몰라줘도, 부부간이 몰라줘도, 교인이 몰라줘도, 이웃 사람이 몰라줘도, 스승이 몰라줘도, 지도자가 몰라줘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등용하는 자는 인간이 몰라줘도 당신이 등용하시면 등용이 되는 것이지 인간이 몰라준다고, 천거를 안 한다고 안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등용하는 사람은 인간의 방해, 인간의 부인이 상관이 없다 이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또 셋째로는 하나님이 등용하게 되면 ‘여호와의 신이 크게 감동했다’고 그랬습니다. 16장 13절에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됐다.’ 하나님의 영이 크게 그에게 역사했다는 말입니다. 크게 감동했다는 말은 크게 역사했다는 말인데, 다윗이 모든 면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에게 크게 동행했으니까 그 다윗은 전능자 아닙니까? 전지자 아닙니까? 하나님의 신이 크게 그에게 감동됐으니까, 역사했으니까 이만하면 하나님 다음으로 세력가 아닙니까? 하나님이 등용하는 자는 이 세상 것 그런 것 준비해도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등용하면 그런 것 없어도 좋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세상 모든 것을 준비하는 그 준비를 반대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등용하시면 되는 줄로 믿는 사람은 이 세상 것을 준비해도 이것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준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벌써 그것은 하나님과 그것으로 멀어졌습니다. 왜 사람들이 공부하다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업하다가 멀어지고 이 세상 것 기반 닦다가 하나님과 멀어지는 그 사람은 왜 그러냐? 이것이 있어야 한다고, “이것이 있어야,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해도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이것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마련합니다.

하나님이 등용하시느냐 버리시느냐 그것이 문제이지 하나님이 쓰실 때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데 피조물에 대해서 무엇을 못할 것이며, 모든 것 하나님이 만드신 분인데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문제가 무엇이 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너 학교 가거라.” 하시니까 이것이 학교 안 가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에 할 수 없어 학교 가고, ‘네가 학교 가서 공부를 잘못하면 복음을 가릴 터이니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우등이 되어야 한다.’ 하시니까 어쩔 수 없어 하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합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이 시키시니 안 할 수 없는 믿음으로 하지 ‘이것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 죄를 범하지 아니한 것이 다니엘이 그런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등용하는 자는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동행합니다. 또 하나님이 동행하고 또 악령이 이 다윗을 도왔습니다. 악령이 다윗을 도왔습니다. 사울 왕에게 악령이 들어가서 그 머리를 번뇌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다윗이 사울 왕에게 그렇게 요긴하게 쓰였겠습니까? 악령이 사울 왕에게 와서 마구 전신을 혼미하게 하고 번뇌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견디지 못하게 하니까 저 다윗이 불려 올라갔습니다.

악령이 하나님이 등용하신 다윗에게 직접적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그 모든 역사가 다윗을 돕는 일이 됐습니다. 다윗의 인기가 올라가도록 했습니다.

사울 왕이 이렇게 번민스러우니까 견디지를 못해서 하는데 거기에 있는 사람이 하나 말하기를 “악기 잘 다루는 사람을 청해다가 악귀가, 악신이 들어와서 왕을 괴롭게 하거든 그 좋은 수금을 타서 왕의 마음이 기쁠 때에 그때 악신은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해 보십시오.”

이러니까 사울 왕이 모든 신하들을 다 불렀습니다. 불러서 “얘, 이렇게 말하는데 나를 위해서 그렇게 수금을 잘 타는 그런 사람 하나 구해 보아라.” 이러니까 온 신하들이 나서서 광고를 하는 가운데 어떤 소년이 하나 말하기를 다윗을 소개했습니다. “그런 목동이 하나 있습니다.’ ‘얼른 불러 오너라.” 청해서 오니까 당장에 그 모든 신하들도 이 다윗을 마구 이렇게 존대합니다.

그 신하들도, 또 거기에 있는 청년들도 다윗을 위하는 자가 됐고, 또 사울 왕도 오니까 아주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면서 “지금 네가, 내가 지금 악신 때문에 견디지 못하겠으니까 한번 수금을 타 보라.” 수금을 타니까 악신이 썩 물러가고 사울 왕이 쾌감을 느끼니까 사울이 이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아꼈습니다.

하나님이 등용하는 자에게는 자기 가족이 몰라줘도 상관없고, 하나님이 등용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등용할 수 있는 자는 그 중심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그 중심에 여호와가 가득 찼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가득 찼어. 그 사람은 하나님이 등용합니다.

하나님이 등용하시니까 인간이 추천 안 하고 몰라줘도 상관없었고, 또 하나님이 등용하시니까 당장에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크게 감동되었고, 이러니까 여호와의 신이 크게 감동되고 난 다음에 다윗에게 첫째로 일한 것이 누구입니까? 그것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첫째로 일한 것이 누구입니까? 여호와의 신이 다윗에게 크게 감동되고 난 다음에 이 다윗을 위해서 첫째로 일한 자가 누구입니까? 누구지요? 누구입니까? 악신입니다. 악신이 첫째로 일했습니다.

둘째로는 누가 일했습니까? 사울 왕의, 그 왕권 가진 왕의 머리 아픈 왕의 병이 다윗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그다음에 누가 일했습니까?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공론하기를 ‘아무래도 이 수금 잘 타는 사람을 데려다가 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윗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울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단합해서 또 다윗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이러니까 거기에 있는 소년 하나가 또 다윗을 소개해서 다윗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다윗이 오니까 그 신하들과 모든 사람들과 사울 왕이 다윗을 금쪽같이 높입니다. 이렇게 귀중히 높였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면 이렇게 존귀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보면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 전쟁은 다윗의 인기를 올리려고, 다윗의 권위를 올리려고 난 전쟁입니다. 그 전쟁은 다윗의 권위를 올리기 위해서 일어난 전쟁입니다. 또 그 전쟁은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다윗에게 마음이 다 집중해서 기울어지도록 만드는 그런 전쟁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등용할 때에는 모든 것이 다 합해서 하나님이 등용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사람을 위해서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대항할 수가 없습니다. 다윗이 아무리 수금을 잘 타 봤자 이렇게 하나님이 분위기 조정을 하지 않았으면 그 수금 잘 타는 것이 무엇이 그리 좋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위하시려고 하면 그 사람을 그 사람의 가진 것이 다 가진 것만큼 필요하도록, 그 사람이 하는 일만 유명해지도록, 성공이 되도록, 그 사람이 하는 일만 잘 되도록 이렇게 공간을 전부 그 사람을 위해서 활용을 하고, 인간의 심리를 다 활용을 하고, 마귀를 활용을 하고, 모든 인간들의 생명을 다 활용을 하니 이러니까 전체를 하나님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이 함께하는 그 사람에게는 전부가 이렇게 협동해서 그 사람이 되도록 이렇게 만드니까 어떤 인간이 그것을 반대하겠습니까?

여기에서 하나님에게 등용당한 사울 왕이 왜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했느냐? 버림당한 것을 여기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버림당한 것은 왜 버림당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만 생각하는 것이 버림당한 원인입니다. 버림당하고 나니까 왕은 왕이지만 하나님의 권능이 떠나 버리니까 왕이기 때문에 천해졌지, 하나님의 권능이 떠났으니까 목회자이기 때문에 천하지, 왕이기 때문에 천하지, 껍데기만 가지고 권능이 없으니까 천해집니다. 그런데 악신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 사무엘에 대해서 세 가지를 우리가 여기에서 찾아봤습니다. 함께하는 원인, 함께하니까 평안, 함께하니까 실수 없고, 그 속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만 들어 있으니까 하나님이 그것 보고 등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등용하시니까 인간의 천거가 없어도 됐습니다.

사람이 날 천거해서 어디로 보내주고 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천거하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에 채워 있으면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데 사람들이 소개해 주지 않으면 무엇이 어쩔 겁니까? 인간들의 소개를 바라서 ‘어디로 가면 좋은 데로 보내주고 어떻게 해야 등용될까?’ 그 참 굴욕적이고 애터지는 일인데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고 영감과 진리만 내 속에 계속 충만해지면 하나님이 날 등용하시니까 인간에게 사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길이 쉽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등용하시니까 아무리 무지하고 무능하지만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충만하니까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러고 나니까 악령도 그를 위했고, 사울 왕의 병든 것도 그를 위했고, 모든 사람들도 그를 위했고, 모든 사람들의 중론이 다, 공론이 그만 척, 무엇 때문에 수금 타는 사람을 데리고 와야 한다 그런 소리 하겠습니까? 모든 사람의 심리가 다 다윗을 위했고, 신하들도 위했고, 또 거기에 있는 소년들이 아는 지식이 다윗을 위했고, 이러니까 다윗이 청함 받아서 이렇게 존귀하게 됐고, 전쟁 일어나는 것이 또 다윗만 유명하게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받게 하고,

사울 왕이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잠이 폭 들게 하시고 파수꾼도 다 잠이 폭 들어서, 잠이 들어서 옆에 와 깨워도 모릅니다. 이러니까 와서 사울 왕을 죽일 것인데 죽일 수 있을 만큼 왔다 간 흔적을 떡 내고 가 버렸다 말입니다. 가고 나서 잠깨 보니까 다윗이 왔다 간 것이 분명하거든. 죽이고도, 죽이고도 남고 여기까지 왔다가 이렇게 하고 갔는데 잤으니 또 다윗의 유명세입니다. 전체가 다윗을 마구 유명하게 했습니다. 유력하게 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밤에 이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버림당하면 비참합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시면 참 평안하고 좋습니다. 하나님에게 들어 쓰이기만 한다고 하면 모든 것이 문제없고 전체가 협조해서 이렇게 협동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가 하는 일을 방해할 수가 없습니다. 배짱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 좋은 일, 가장 크고 튼튼하고 사람에게 아니꼬운 소리 안 하고 굴욕적인 소리 안 하고, 가장 씩씩하고 튼튼하고 유력하고 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우리가 어디에 궁색스런 소리를 할 것입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에게 버림당하는 이유,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이유, 하나님에게 등용되는 이유, 버림당할 때에 나타나는 흔적, 동행할 때에 그에게 이루어지는 역사, 하나님이 등용하실 때에 모든 것이 어떻게 하는지?

이 자리에서 확정을 지읍시다. 확정을 지읍시다. 이는 진리입니다. 이치입니다. 이 이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시대와 외모는 변해도 이 이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서 꼭 쥐고, 이 이치는 이 사람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옛날에도 오늘도 꼭 같습니다. 이 이치는 우리에게 해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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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6:1-23 하나님의 등용 조건과 버린 이유 /윤봉원 삼상16:1-23 하나님의 등용 조건과 버린 이유 /윤봉원 Reviewed by □□□ on October 21, 2026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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