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져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예뻐요. 그대는 세상에서 가장 멋져요. 그대는 세상에서 가장 예뻐요. 아싸! 감동 충만, 아싸! 성령 충만, 아싸! 행복 충만. 축복의 주인공이 됩시다. 축복의 통로가 됩시다. 축복의 근원이 됩시다.
못난이 감자 삼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못난이 감자 삼 형제는 자기들이 진짜 감자인지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큰 감자가 슈퍼 아줌마에게 물었습니다. “아줌마. 저..... 정말 감자 맞나요?” 슈퍼 아줌마는 “그럼. 당근이지.....!” 아줌마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고 큰형 감자는 자기가 당근인 줄 알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둘째 감자도 자기가 진짜 감자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할머니! 저...... 정말 감자 맞나요?”라고 여쭈었습니다. 할머니는 “오이냐. 오이냐. 맞다. 맞다고요!”라고 대답합니다. 둘째 감자는 자기가 오이인 줄로 알고 그만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셋째 감자도 자기가 진짜 감자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최불암 아저씨에게 여쭈었습니다. “아저씨! 저..... 정말 감자 맞나요?” 그러자 최불암 아저씨가 “파 하 하!” 하면서 웃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셋째 감자는 자기가 파인 줄로 알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살 진행국입니다. OECD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헝가리였는데 이제는 우리나라가 당당하게도 1위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하루에 35명이 자살하여 죽고 있습니다. 40분에 한 사람씩 자살하여 죽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지난주간에는 행복 전도사라고 알려진 최윤희 씨 부부가 경기도 일산의 한 모텔에서 자살하여 죽었습니다. 최윤희 씨는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인데 2년 전부터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홍반성 루푸스라는 류마티스성 질환을 앓아왔다고 합니다. 최근엔 세균성 폐렴까지 겹쳐서 큰 고통을 당했는데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700가지 고통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너무 고통스럽다는 표현입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기 혼자 몰래 자살하려고 했는데 그때는 남편이 찾아와서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 하면서 설득하여 자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지만 치료되지는 않고 더 심해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녀들에게 여행 다녀온다고 이야기하고서는 일산에 있는 모텔에 들어가서 먼저 남편이 아내를 목 졸라 죽이고 남편도 화장실에서 목매어 죽었습니다.
그러면서 유서를 남겼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먼저 간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여 죽었습니다. 저는 최윤희 씨가 자살하여 죽는 모습을 보면서 ‘자살은 특정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구나. 나라고 해서 피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우리 가족도 예외일 수 없는 일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항상 믿음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항상 믿음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들도 순간적으로 자살을 미혹하는 영이 들어와서 순간적으로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 충동을 느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최윤희는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입니다. 유명한 연예인들이 자살하여 생을 마감했지요. 최진실, 안재환, 이은주, 정다빈 등등 많은 이들이 자살하여 세상을 떠났는데 이들 다 교회를 잘 다니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여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최윤희 씨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 행복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웃음과 행복을 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자살하여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자살이 유행처럼 번져갈 때 방송에서 “자살”이라는 말을 서로 바꾸면 “살자”가 된다고 하면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호탕하게 웃어넘기면서 살아야 한다고 역설하던 분입니다. 그러던 분인데 정작 자기 자신이 자살하여 생을 마감했으니 정말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 믿음이 확실하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믿음에서 떠나면 누구나 자살의 굴레에 자신을 집어던져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 크게 웃으면서 시작합니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헤헤헤헤! 다시 크게 웃습니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헤헤헤헤! 크게 웃으면 기분 전환이 되고,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겠습니다. 블레셋 족속과 싸워야 하는 이스라엘 군사들 앞에는 골리앗이라는 걸출한 전쟁 영웅이 있습니다. 이 영웅 앞에 벌벌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어린 다윗은 어떻게 구원해 낼 수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는 어떤 무섭고 두려운 큰 장벽들이 놓여 있습니까? 그 높고 큰 장벽을 어떻게 극복하여 나가야 할까요?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의 군사와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서로 대치하여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군사 중에는 거대한 골리앗이라는 거목이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골리앗은 가드 사람으로서 키가 얼마나 큰지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이재만 집사님은 키가 얼마나 됩니까? 김양호 집사님은 키가 얼마나 됩니까? 골리앗은 여러분의 키보다 1m는 더 크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6규빗 1뼘이라고 하였습니다. 곧 6 x 45.5 + 15 하면 계산이 되는데 대략 285cm가 됩니다. 이 키면 농구 선수를 하면 그냥 골대 앞에 서서 공을 받아서 집어넣기만 하면 됩니다. 엄청 큰 사람입니다.
골리앗은 놋으로 된 투구를 썼습니다. 갑옷은 비늘 모양으로 되었는데 놋이 5000세겔이라 했습니다. 계산을 해 보면 5000 x 11.4g = 57,000g입니다. 그러니 약 57kg이나 되는 갑옷을 입고 있습니다. 다리에는 놋 각반을 찼고, 어깨에는 놋 단창을 메였고, 창 자루는 베틀 채 같다고 합니다. 그의 창날의 무게가 철이 600세겔이라 했습니다. 계산을 해보면 600 x 11.4g = 6,840g입니다. 그러니 약 7kg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방패를 든 부하가 앞서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무기를 가지고 있고, 어마어마한 몸을 지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골리앗은 40일 대치하는 동안 매일 아침마다 8-10절의 내용으로 이스라엘 군사들을 향하여 조롱하면서 엄포합니다. 우리 다 같이 17장 8-10절의 말씀을 볼까요?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하면서 조롱합니다.
어마어마한 덩치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산성 교회에서 소리를 지르면 저 안영 IC까지 들릴 정도입니다. 골리앗은 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하면서 날마다 이렇게 소리 지르는 것입니다.
반면 이스라엘에는 아무도 그 어마어마한 골리앗을 대적하여 싸울 수 있는 장군이 하나도 없습니다. 날마다 아침이 되면 골리앗이 외치는 소리 때문에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움츠려 있는 것입니다. 사울 왕뿐만 아니라 아브넬 장군도, 모든 군사들도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루하게 블레셋 군대와 대치하고 있는데 이새에게는 8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자 엘리압과 둘째, 셋째는 군대에 징집되어 전쟁터에 나가 있는 것입니다. 막내인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치다가 아버지께서 전쟁터에 가서 형님들의 안부를 알아보고 오라는 부탁으로 전쟁터를 방문하게 됩니다. 다윗이 전쟁터를 찾아갔는데 그날도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사를 향하여 엄포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그 소리를 듣게 되고 이스라엘 군사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골리앗의 소리를 들으면서 다윗은 분노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사울 왕에게 찾아가서 “폐하, 저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가 가서 저 골리앗의 목을 따오겠습니다.” 하면서 의기양양합니다. 다윗의 말을 들은 사울 왕은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 자신들도 두려워서 못 나가는데 이름도 없는 어린 애송이가 골리앗의 목을 따오겠다고 하니 웃기는 짬뽕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비록 아버지의 양을 치는 어린 나이에 불과하지만 맹수들이 양을 잡아먹으려고 하면 내가 달려가서 그 맹수들의 목을 비틀어서 양을 찾아왔습니다. 저 골리앗의 목도 맹수들의 목에 불과합니다. 아무 염려하지 말고 보내주세요.”라고 애원합니다. 그러자 사울 왕이 마지못해서 그럼 그렇게 해라 하면서 허락합니다.
하지만 다윗이 어떻게 골리앗을 맞서서 맞짱 떠서 싸울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골리앗을 맞아서 싸우러 나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왜 그럴까요?
다윗은 ① 아직 너무 어리고, 군인이 아닙니다. 이때 다윗의 나이가 대략 17살에서 18살 정도 된 시기입니다. 그러니 군인이 되려면 20세가 넘어야 합니다. 아직 20세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42절에 골리앗이 뭐라고 하지요? 골리앗이 자기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다윗을 둘러보다가 다윗을 업신여깁니다. 왜냐하면 어린 다윗이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에게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이 어디 까불고 있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주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윗은 자신이 나가서 억울하게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자신이 골리앗에게 맞아 죽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두렵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억울합니다. 그래서 골리앗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② 다윗은 전쟁의 참상이 어떤지를 알지 못합니다. 양을 치면서 맹수들(사자, 곰)을 쳐 죽인 경험은 있지만 직접 전쟁을 수행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맹수에게는 죽지 않을 수 있지만 전쟁에서는 죽을 수 있습니다. 맹수들은 무기가 없지만 골리앗은 어마어마한 거인이면서 무시무시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맹수들과 골리앗은 차원이 다릅니다.
③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갔다가 골리앗에게 죽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꼴이 됩니다. 하나님을 무능한 하나님으로 만드는 꼴이 됩니다.
④ 다윗이 상대해야 할 골리앗은 블레셋에서 싸움의 영웅입니다. 반면 다윗은 군인이 아닐뿐더러 신출내기에 불과합니다. 어디를 보나, 무엇을 보나 골리앗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상대도 되지 않는데 무모하게 나갔다가 골리앗에게 죽으면 나라 망신, 민족 망신, 가문 망신을 다 시키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자기를 향하여 공중의 새들에게, 들짐승들에게 던져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도 “쯧쯧 어쩌다가 호기를 부려서는 저러나..... 말이라고 다 하는 것이 아니지. 오늘은 다윗의 제삿날이 되겠구나. 어쩌면 좋으노.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고 죽게 되었구나.......” 하면서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큰형 엘리압을 비롯한 형님들도 다윗을 향하여 “꼴좋다. 그렇게 호기 부리더니 샘통이다. 이놈아. 잘 됐다. 너 죽으면 근심 덩어리 하나가 떨어져 나가겠구나...” 하며 손가락질합니다. 다윗 자신도 “내가 괜히 나간다고 했나. 이제라도 나갈 수 없다고 할까. 꽃다운 나이에 죽는 것은 아깝지. 앞으로 할 일도 창창하게 많은데......” 하며 주저주저하며 망설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이제라도 안 나가겠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요.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아요.”라고 하소연합니다.
믿음의 사람도 순간적으로 갈등하고 고민하고 주저주저 망설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골리앗을 죽이고 머리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믿음으로 나갑니다.
믿음으로 다윗은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냇가에서 매끄러운 돌멩이 다섯 개를 골라서 주머니에 넣습니다.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을 향하여 나가기로 결단합니다. 하나님은 골리앗을 향하여 나가기로 결단하는 다윗에게 담대한 믿음을 주십니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 믿음을 주십니다.
다윗에게 “골리앗에게 죽더라도 당당하게 죽어야지,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겠어!” 하는 강직함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믿음을 심어주시고 나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게 하십니다. 믿음은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죽음의 위협을 느낀다 해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상대가 어떤 권력과 위력과 세력을 지녔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나가는 것입니다.
사울 왕을 비롯하여 모든 이스라엘 군사들, 엘리압을 비롯한 형님들은 조롱하고 비웃고 있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바라보면서 박수를 쳐 주시면서 응원해 주십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 골랐어. 다윗아. 넌 대단해. 내가 응원해 줄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가렴.” 하면서 하나님께서 응원해 주시면서 보냅니다.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뒤로 물러서지 않게 당당함으로, 담대함으로 골리앗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45-47절의 말씀으로 선포하며 나가게 하십니다. 우리 다 같이 45-47절의 말씀을 봅시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이 아직 어려서 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하여 두려워하고 겁을 집어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싸워 이겨낼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비록 전쟁의 참상을 알지 못하지만 전쟁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임을 보여주시게 합니다. 전쟁은 군사의 능력이나 군사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는 것이라고 보여주시게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이름이 위대함을 보여주시게 합니다. 하나님은 골리앗이 블레셋에서나 영웅이지 하나님 앞에서는 덩치 큰 미련 덩어리임을 보여주시게 합니다. 골리앗의 덩치가 크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다윗이 날쌘돌이처럼 달릴 수 있도록 해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골리앗을 향하여 날아가는 물맷돌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않도록 하는 바람도 일어나지 않게 하십니다. 다윗이 믿음으로 던진 물맷돌이 정확하게 골리앗의 이마에 맞도록 돌을 이끌고 가시는 분입니다. 다윗이 달리면서 던진 물맷돌을 가지고 달려가서 골리앗의 이마에 맞추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물매로 돌을 던질 때 꼭 골리앗의 이마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다른 곳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물맷돌을 이끌고 골리앗의 이마에 정확하게 맞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블레셋 군사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군사들의 가슴마저 숨 쉬지 않고 지켜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골리앗을 향하여 달려 나간 다윗에게 하나님은 축복해 주십니다. ① 다윗이 믿음으로 던진 물맷돌에 골리앗의 이마에 정확하게 맞추게 하여 쓰러지게 합니다. 골리앗이 가진 칼을 빼어 죽입니다. 골리앗은 키가 너무 큰 덩치이기 때문에 곧바로 쓰러지고 맙니다. 넘어지니까 쉽게 일어서지 못합니다. 이마에 한 번 맞았다고 죽습니까?
아니요,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죽이기로 작정하시니 이마에 한 방 맞았다고 일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자랑하던 칼에 죽습니다.
② 두려움과 무서움에 벌벌 떨고 있는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블레셋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승리하게 합니다. ③ 당당하게 다윗이라는 이름을 알리게 되고, 일약 스타로 떠오르게 하십니다. 전쟁을 마치고 돌아올 때 여인들을 통하여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하며 다윗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드러나게 만들어 갑니다.
④ 아버지와 형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신이 무능한 양치기로만 남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⑤ 나이로는 군인이 될 수 없는데도 이제는 군대의 지휘관으로 승격되어 부하들을 거느린 장교가 되게 하십니다. ⑥ 이스라엘에 새로운 지도자로 당당히 나설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이처럼 기대치 않은 축복까지 주십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봅시다. 우리들에게 골리앗과 같은 세력, 온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금이 저려오게 만들고, 두려움과 무서움에 떨면서 어떤 일에도 도전조차 못하게 하는 세력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다양한 문제 덩어리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물질의 장벽이 있습니다. 물질의 장벽이 너무 높고 크고 자신을 집어삼킬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너무 크고 높은 물질의 장벽 때문에 어떤 것들도 해보고 싶은 마음마저 송두리째 빼앗아 갑니다. 물질의 장벽만 생각하면 몸서리쳐집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들이 가진 물질이 없기 때문에 물질의 장벽이 너무 높아 보이고, 도무지 올라가지도 못하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 물질이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비전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올라가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나아가려는 결단을 하게 합니다. 믿음은 도전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높아만 보이고, 너무 커서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물질의 장벽 때문에 주저주저하고, 아무 일도 못 하고 망설이기만 하는 우리들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께 능력이 있지 않냐. 하나님의 이름이 능력이지 않니.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도전해 봐!”라고 하시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골리앗을 향하여 나아가서 승리했듯이 크고 우리들에게 높아만 보이는 장벽도 능히 이겨낼 수 있어. 높아만 보이는 그 물질의 장벽도 하나님 아래 있는 것일 뿐이야. 하나님은 우리들이 볼 때 너무 크고 높아만 보이는 물질의 장벽이지만 위대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아래 놓여있는 것에 불과해. 그러니 다시 일어서서 도전해.”라고 하면서 용기와 위로를 심어주십니다.
믿음으로 도전하여 앞으로 나아가면 우리들 앞에 하나님의 능력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어서 주저앉아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우리들은 여전히 무능력한 사람으로만 남아 있게 됩니다. 만약 다윗이 어마어마한 골리앗의 위력 앞에 주눅 들어서 나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랬다면 다윗은 여전히 아버지와 형님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양치기 목동으로만 남게 됩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블레셋 군사의 위압 앞에서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여 노략질을 당하고 고통 중에 지내야 했을 것입니다. 사울 왕은 무능한 군주로 백성들의 신망을 잃어버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윗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위력으로 골리앗 앞으로 달려가서 이겼기 때문에 다윗 자신에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보여주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우리들 자신이 믿음이 가진 위력으로 나아가면 우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보여주게 됩니다. 우리들 자신이 믿음으로 나아가게 되면 승리는 우리들의 것이 됩니다. 아무리 높고 큰 물질의 장벽이 동서남북으로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도전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 우리들 앞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펼쳐집니다.
① 물질의 장벽이 결코 높지도, 크지도 않구나 하는 담대함을 주십니다. ② 어떤 일에도 믿음으로 도전할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십니다. 그렇다고 전혀 감당할 수도 없이 무모하고 허무맹랑하게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지혜롭게 해 주십니다. ③ 물질에 대하여 초연함과 자유함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면 가난함도 견디어낼 수 있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면 풍부하고 넉넉함도 감내할 수 있습니다.
④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주십니다.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것이 우리의 것이라는 확신에 찬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나아가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며 상속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우리들의 것입니다.
다 같이 따라 해 봅시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우리들의 것이다.” 다시 해 봅시다. “우리들 주변에 있는 것들 모두가 우리들의 것이다.” 믿습니까? 믿음으로 아멘 하면 우리들의 것이 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들에게 능력이 세워집니다.
우리들은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려고 하면 물질이 없어서 전도하지 못한다는 약한 마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물질이 없어서 전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전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물질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물질은 믿음으로 하는 전도에 쓰여지고 도와주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이 있듯이 물질이 없으면 물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전도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저 자신도 이가 많이 빠져서 없습니다. 이가 없으니까 정말 불편합니다. 하지만 이가 없어도 있는 이로 대체하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습니다. 전도는 위대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도는 비록 가난하고 보잘것없어도 믿음으로 당당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이스라엘 군사들 앞에 항상 골리앗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다윗이 다섯 개의 돌멩이를 가지고 간 것은 블레셋에 골리앗과 같은 거대한 장수가 다섯 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 다섯 명을 다 때려죽이기 위해서 다섯 개의 돌멩이를 가지고 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골리앗 한 사람만 죽입니다. 성경에 보면 블레셋에는 골리앗과 비슷한 거대한 장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다윗이 죽이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죽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서 다윗이 골리앗을 제거하였지만, 여전히 호기 넘치는 블레셋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믿음으로 그런 블레셋을 정복하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 앞에 높고 크게만 보이는 물질의 장벽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장벽들로 쌓여 있습니다. 그래도 믿음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전도하기 위해서 주변을 의식하고 주눅 들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주변을 내 것으로 만들면 됩니다. 주변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없다면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주변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믿음도, 지혜도 주십니다. 우리들 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도 하나님 아래 놓여 있을 뿐입니다. 믿음으로 도전하여 앞으로 나아가서 정복하면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믿음으로 전도하기 위해서 헌신하게 되면 “전도는 물질로만 하는 것이 아니구나. 우리들도 얼마든지 전도할 수 있네” 하는 확신에 찬 축복을 주십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전도하게 되면 전도를 통하여 우리 교회는 부흥하고,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상급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상급을 주시는데 가장 큰 상급이 전도의 상급이라고 합니다. 그 최고의 상급을 우리 전도자들에게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축복을 나누어주는 축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축복의 근원이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정복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쟁취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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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감자 삼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못난이 감자 삼 형제는 자기들이 진짜 감자인지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큰 감자가 슈퍼 아줌마에게 물었습니다. “아줌마. 저..... 정말 감자 맞나요?” 슈퍼 아줌마는 “그럼. 당근이지.....!” 아줌마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고 큰형 감자는 자기가 당근인 줄 알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둘째 감자도 자기가 진짜 감자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할머니! 저...... 정말 감자 맞나요?”라고 여쭈었습니다. 할머니는 “오이냐. 오이냐. 맞다. 맞다고요!”라고 대답합니다. 둘째 감자는 자기가 오이인 줄로 알고 그만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셋째 감자도 자기가 진짜 감자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최불암 아저씨에게 여쭈었습니다. “아저씨! 저..... 정말 감자 맞나요?” 그러자 최불암 아저씨가 “파 하 하!” 하면서 웃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셋째 감자는 자기가 파인 줄로 알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살 진행국입니다. OECD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헝가리였는데 이제는 우리나라가 당당하게도 1위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하루에 35명이 자살하여 죽고 있습니다. 40분에 한 사람씩 자살하여 죽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지난주간에는 행복 전도사라고 알려진 최윤희 씨 부부가 경기도 일산의 한 모텔에서 자살하여 죽었습니다. 최윤희 씨는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인데 2년 전부터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홍반성 루푸스라는 류마티스성 질환을 앓아왔다고 합니다. 최근엔 세균성 폐렴까지 겹쳐서 큰 고통을 당했는데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700가지 고통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너무 고통스럽다는 표현입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기 혼자 몰래 자살하려고 했는데 그때는 남편이 찾아와서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 하면서 설득하여 자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지만 치료되지는 않고 더 심해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녀들에게 여행 다녀온다고 이야기하고서는 일산에 있는 모텔에 들어가서 먼저 남편이 아내를 목 졸라 죽이고 남편도 화장실에서 목매어 죽었습니다.
그러면서 유서를 남겼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먼저 간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여 죽었습니다. 저는 최윤희 씨가 자살하여 죽는 모습을 보면서 ‘자살은 특정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구나. 나라고 해서 피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우리 가족도 예외일 수 없는 일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항상 믿음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항상 믿음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들도 순간적으로 자살을 미혹하는 영이 들어와서 순간적으로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 충동을 느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최윤희는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입니다. 유명한 연예인들이 자살하여 생을 마감했지요. 최진실, 안재환, 이은주, 정다빈 등등 많은 이들이 자살하여 세상을 떠났는데 이들 다 교회를 잘 다니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여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최윤희 씨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 행복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웃음과 행복을 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자살하여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자살이 유행처럼 번져갈 때 방송에서 “자살”이라는 말을 서로 바꾸면 “살자”가 된다고 하면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호탕하게 웃어넘기면서 살아야 한다고 역설하던 분입니다. 그러던 분인데 정작 자기 자신이 자살하여 생을 마감했으니 정말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 믿음이 확실하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믿음에서 떠나면 누구나 자살의 굴레에 자신을 집어던져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 크게 웃으면서 시작합니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헤헤헤헤! 다시 크게 웃습니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헤헤헤헤! 크게 웃으면 기분 전환이 되고,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겠습니다. 블레셋 족속과 싸워야 하는 이스라엘 군사들 앞에는 골리앗이라는 걸출한 전쟁 영웅이 있습니다. 이 영웅 앞에 벌벌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어린 다윗은 어떻게 구원해 낼 수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는 어떤 무섭고 두려운 큰 장벽들이 놓여 있습니까? 그 높고 큰 장벽을 어떻게 극복하여 나가야 할까요?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의 군사와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서로 대치하여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군사 중에는 거대한 골리앗이라는 거목이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골리앗은 가드 사람으로서 키가 얼마나 큰지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이재만 집사님은 키가 얼마나 됩니까? 김양호 집사님은 키가 얼마나 됩니까? 골리앗은 여러분의 키보다 1m는 더 크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6규빗 1뼘이라고 하였습니다. 곧 6 x 45.5 + 15 하면 계산이 되는데 대략 285cm가 됩니다. 이 키면 농구 선수를 하면 그냥 골대 앞에 서서 공을 받아서 집어넣기만 하면 됩니다. 엄청 큰 사람입니다.
골리앗은 놋으로 된 투구를 썼습니다. 갑옷은 비늘 모양으로 되었는데 놋이 5000세겔이라 했습니다. 계산을 해 보면 5000 x 11.4g = 57,000g입니다. 그러니 약 57kg이나 되는 갑옷을 입고 있습니다. 다리에는 놋 각반을 찼고, 어깨에는 놋 단창을 메였고, 창 자루는 베틀 채 같다고 합니다. 그의 창날의 무게가 철이 600세겔이라 했습니다. 계산을 해보면 600 x 11.4g = 6,840g입니다. 그러니 약 7kg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방패를 든 부하가 앞서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무기를 가지고 있고, 어마어마한 몸을 지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골리앗은 40일 대치하는 동안 매일 아침마다 8-10절의 내용으로 이스라엘 군사들을 향하여 조롱하면서 엄포합니다. 우리 다 같이 17장 8-10절의 말씀을 볼까요?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하면서 조롱합니다.
어마어마한 덩치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산성 교회에서 소리를 지르면 저 안영 IC까지 들릴 정도입니다. 골리앗은 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하면서 날마다 이렇게 소리 지르는 것입니다.
반면 이스라엘에는 아무도 그 어마어마한 골리앗을 대적하여 싸울 수 있는 장군이 하나도 없습니다. 날마다 아침이 되면 골리앗이 외치는 소리 때문에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움츠려 있는 것입니다. 사울 왕뿐만 아니라 아브넬 장군도, 모든 군사들도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루하게 블레셋 군대와 대치하고 있는데 이새에게는 8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자 엘리압과 둘째, 셋째는 군대에 징집되어 전쟁터에 나가 있는 것입니다. 막내인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치다가 아버지께서 전쟁터에 가서 형님들의 안부를 알아보고 오라는 부탁으로 전쟁터를 방문하게 됩니다. 다윗이 전쟁터를 찾아갔는데 그날도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사를 향하여 엄포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그 소리를 듣게 되고 이스라엘 군사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골리앗의 소리를 들으면서 다윗은 분노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사울 왕에게 찾아가서 “폐하, 저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가 가서 저 골리앗의 목을 따오겠습니다.” 하면서 의기양양합니다. 다윗의 말을 들은 사울 왕은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 자신들도 두려워서 못 나가는데 이름도 없는 어린 애송이가 골리앗의 목을 따오겠다고 하니 웃기는 짬뽕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비록 아버지의 양을 치는 어린 나이에 불과하지만 맹수들이 양을 잡아먹으려고 하면 내가 달려가서 그 맹수들의 목을 비틀어서 양을 찾아왔습니다. 저 골리앗의 목도 맹수들의 목에 불과합니다. 아무 염려하지 말고 보내주세요.”라고 애원합니다. 그러자 사울 왕이 마지못해서 그럼 그렇게 해라 하면서 허락합니다.
하지만 다윗이 어떻게 골리앗을 맞서서 맞짱 떠서 싸울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골리앗을 맞아서 싸우러 나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왜 그럴까요?
다윗은 ① 아직 너무 어리고, 군인이 아닙니다. 이때 다윗의 나이가 대략 17살에서 18살 정도 된 시기입니다. 그러니 군인이 되려면 20세가 넘어야 합니다. 아직 20세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42절에 골리앗이 뭐라고 하지요? 골리앗이 자기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다윗을 둘러보다가 다윗을 업신여깁니다. 왜냐하면 어린 다윗이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에게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이 어디 까불고 있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주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윗은 자신이 나가서 억울하게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자신이 골리앗에게 맞아 죽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두렵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억울합니다. 그래서 골리앗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② 다윗은 전쟁의 참상이 어떤지를 알지 못합니다. 양을 치면서 맹수들(사자, 곰)을 쳐 죽인 경험은 있지만 직접 전쟁을 수행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맹수에게는 죽지 않을 수 있지만 전쟁에서는 죽을 수 있습니다. 맹수들은 무기가 없지만 골리앗은 어마어마한 거인이면서 무시무시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맹수들과 골리앗은 차원이 다릅니다.
③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갔다가 골리앗에게 죽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꼴이 됩니다. 하나님을 무능한 하나님으로 만드는 꼴이 됩니다.
④ 다윗이 상대해야 할 골리앗은 블레셋에서 싸움의 영웅입니다. 반면 다윗은 군인이 아닐뿐더러 신출내기에 불과합니다. 어디를 보나, 무엇을 보나 골리앗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상대도 되지 않는데 무모하게 나갔다가 골리앗에게 죽으면 나라 망신, 민족 망신, 가문 망신을 다 시키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자기를 향하여 공중의 새들에게, 들짐승들에게 던져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도 “쯧쯧 어쩌다가 호기를 부려서는 저러나..... 말이라고 다 하는 것이 아니지. 오늘은 다윗의 제삿날이 되겠구나. 어쩌면 좋으노.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고 죽게 되었구나.......” 하면서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큰형 엘리압을 비롯한 형님들도 다윗을 향하여 “꼴좋다. 그렇게 호기 부리더니 샘통이다. 이놈아. 잘 됐다. 너 죽으면 근심 덩어리 하나가 떨어져 나가겠구나...” 하며 손가락질합니다. 다윗 자신도 “내가 괜히 나간다고 했나. 이제라도 나갈 수 없다고 할까. 꽃다운 나이에 죽는 것은 아깝지. 앞으로 할 일도 창창하게 많은데......” 하며 주저주저하며 망설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이제라도 안 나가겠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요.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아요.”라고 하소연합니다.
믿음의 사람도 순간적으로 갈등하고 고민하고 주저주저 망설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골리앗을 죽이고 머리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믿음으로 나갑니다.
믿음으로 다윗은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냇가에서 매끄러운 돌멩이 다섯 개를 골라서 주머니에 넣습니다.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을 향하여 나가기로 결단합니다. 하나님은 골리앗을 향하여 나가기로 결단하는 다윗에게 담대한 믿음을 주십니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 믿음을 주십니다.
다윗에게 “골리앗에게 죽더라도 당당하게 죽어야지,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겠어!” 하는 강직함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믿음을 심어주시고 나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게 하십니다. 믿음은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죽음의 위협을 느낀다 해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상대가 어떤 권력과 위력과 세력을 지녔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나가는 것입니다.
사울 왕을 비롯하여 모든 이스라엘 군사들, 엘리압을 비롯한 형님들은 조롱하고 비웃고 있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바라보면서 박수를 쳐 주시면서 응원해 주십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 골랐어. 다윗아. 넌 대단해. 내가 응원해 줄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가렴.” 하면서 하나님께서 응원해 주시면서 보냅니다.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뒤로 물러서지 않게 당당함으로, 담대함으로 골리앗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45-47절의 말씀으로 선포하며 나가게 하십니다. 우리 다 같이 45-47절의 말씀을 봅시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이 아직 어려서 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하여 두려워하고 겁을 집어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싸워 이겨낼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비록 전쟁의 참상을 알지 못하지만 전쟁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임을 보여주시게 합니다. 전쟁은 군사의 능력이나 군사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는 것이라고 보여주시게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이름이 위대함을 보여주시게 합니다. 하나님은 골리앗이 블레셋에서나 영웅이지 하나님 앞에서는 덩치 큰 미련 덩어리임을 보여주시게 합니다. 골리앗의 덩치가 크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다윗이 날쌘돌이처럼 달릴 수 있도록 해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골리앗을 향하여 날아가는 물맷돌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않도록 하는 바람도 일어나지 않게 하십니다. 다윗이 믿음으로 던진 물맷돌이 정확하게 골리앗의 이마에 맞도록 돌을 이끌고 가시는 분입니다. 다윗이 달리면서 던진 물맷돌을 가지고 달려가서 골리앗의 이마에 맞추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물매로 돌을 던질 때 꼭 골리앗의 이마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다른 곳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물맷돌을 이끌고 골리앗의 이마에 정확하게 맞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블레셋 군사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군사들의 가슴마저 숨 쉬지 않고 지켜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골리앗을 향하여 달려 나간 다윗에게 하나님은 축복해 주십니다. ① 다윗이 믿음으로 던진 물맷돌에 골리앗의 이마에 정확하게 맞추게 하여 쓰러지게 합니다. 골리앗이 가진 칼을 빼어 죽입니다. 골리앗은 키가 너무 큰 덩치이기 때문에 곧바로 쓰러지고 맙니다. 넘어지니까 쉽게 일어서지 못합니다. 이마에 한 번 맞았다고 죽습니까?
아니요,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죽이기로 작정하시니 이마에 한 방 맞았다고 일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자랑하던 칼에 죽습니다.
② 두려움과 무서움에 벌벌 떨고 있는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블레셋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승리하게 합니다. ③ 당당하게 다윗이라는 이름을 알리게 되고, 일약 스타로 떠오르게 하십니다. 전쟁을 마치고 돌아올 때 여인들을 통하여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하며 다윗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드러나게 만들어 갑니다.
④ 아버지와 형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신이 무능한 양치기로만 남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⑤ 나이로는 군인이 될 수 없는데도 이제는 군대의 지휘관으로 승격되어 부하들을 거느린 장교가 되게 하십니다. ⑥ 이스라엘에 새로운 지도자로 당당히 나설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이처럼 기대치 않은 축복까지 주십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봅시다. 우리들에게 골리앗과 같은 세력, 온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금이 저려오게 만들고, 두려움과 무서움에 떨면서 어떤 일에도 도전조차 못하게 하는 세력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다양한 문제 덩어리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물질의 장벽이 있습니다. 물질의 장벽이 너무 높고 크고 자신을 집어삼킬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너무 크고 높은 물질의 장벽 때문에 어떤 것들도 해보고 싶은 마음마저 송두리째 빼앗아 갑니다. 물질의 장벽만 생각하면 몸서리쳐집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들이 가진 물질이 없기 때문에 물질의 장벽이 너무 높아 보이고, 도무지 올라가지도 못하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 물질이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비전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올라가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나아가려는 결단을 하게 합니다. 믿음은 도전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높아만 보이고, 너무 커서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물질의 장벽 때문에 주저주저하고, 아무 일도 못 하고 망설이기만 하는 우리들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께 능력이 있지 않냐. 하나님의 이름이 능력이지 않니.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도전해 봐!”라고 하시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골리앗을 향하여 나아가서 승리했듯이 크고 우리들에게 높아만 보이는 장벽도 능히 이겨낼 수 있어. 높아만 보이는 그 물질의 장벽도 하나님 아래 있는 것일 뿐이야. 하나님은 우리들이 볼 때 너무 크고 높아만 보이는 물질의 장벽이지만 위대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아래 놓여있는 것에 불과해. 그러니 다시 일어서서 도전해.”라고 하면서 용기와 위로를 심어주십니다.
믿음으로 도전하여 앞으로 나아가면 우리들 앞에 하나님의 능력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어서 주저앉아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우리들은 여전히 무능력한 사람으로만 남아 있게 됩니다. 만약 다윗이 어마어마한 골리앗의 위력 앞에 주눅 들어서 나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랬다면 다윗은 여전히 아버지와 형님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양치기 목동으로만 남게 됩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블레셋 군사의 위압 앞에서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여 노략질을 당하고 고통 중에 지내야 했을 것입니다. 사울 왕은 무능한 군주로 백성들의 신망을 잃어버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윗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위력으로 골리앗 앞으로 달려가서 이겼기 때문에 다윗 자신에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보여주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우리들 자신이 믿음이 가진 위력으로 나아가면 우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보여주게 됩니다. 우리들 자신이 믿음으로 나아가게 되면 승리는 우리들의 것이 됩니다. 아무리 높고 큰 물질의 장벽이 동서남북으로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도전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 우리들 앞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펼쳐집니다.
① 물질의 장벽이 결코 높지도, 크지도 않구나 하는 담대함을 주십니다. ② 어떤 일에도 믿음으로 도전할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십니다. 그렇다고 전혀 감당할 수도 없이 무모하고 허무맹랑하게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지혜롭게 해 주십니다. ③ 물질에 대하여 초연함과 자유함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면 가난함도 견디어낼 수 있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면 풍부하고 넉넉함도 감내할 수 있습니다.
④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주십니다.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것이 우리의 것이라는 확신에 찬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나아가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며 상속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우리들의 것입니다.
다 같이 따라 해 봅시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우리들의 것이다.” 다시 해 봅시다. “우리들 주변에 있는 것들 모두가 우리들의 것이다.” 믿습니까? 믿음으로 아멘 하면 우리들의 것이 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들에게 능력이 세워집니다.
우리들은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려고 하면 물질이 없어서 전도하지 못한다는 약한 마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물질이 없어서 전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전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물질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물질은 믿음으로 하는 전도에 쓰여지고 도와주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이 있듯이 물질이 없으면 물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전도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저 자신도 이가 많이 빠져서 없습니다. 이가 없으니까 정말 불편합니다. 하지만 이가 없어도 있는 이로 대체하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습니다. 전도는 위대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도는 비록 가난하고 보잘것없어도 믿음으로 당당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이스라엘 군사들 앞에 항상 골리앗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다윗이 다섯 개의 돌멩이를 가지고 간 것은 블레셋에 골리앗과 같은 거대한 장수가 다섯 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 다섯 명을 다 때려죽이기 위해서 다섯 개의 돌멩이를 가지고 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골리앗 한 사람만 죽입니다. 성경에 보면 블레셋에는 골리앗과 비슷한 거대한 장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다윗이 죽이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죽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서 다윗이 골리앗을 제거하였지만, 여전히 호기 넘치는 블레셋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믿음으로 그런 블레셋을 정복하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 앞에 높고 크게만 보이는 물질의 장벽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장벽들로 쌓여 있습니다. 그래도 믿음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전도하기 위해서 주변을 의식하고 주눅 들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주변을 내 것으로 만들면 됩니다. 주변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없다면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주변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믿음도, 지혜도 주십니다. 우리들 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도 하나님 아래 놓여 있을 뿐입니다. 믿음으로 도전하여 앞으로 나아가서 정복하면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믿음으로 전도하기 위해서 헌신하게 되면 “전도는 물질로만 하는 것이 아니구나. 우리들도 얼마든지 전도할 수 있네” 하는 확신에 찬 축복을 주십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전도하게 되면 전도를 통하여 우리 교회는 부흥하고,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상급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상급을 주시는데 가장 큰 상급이 전도의 상급이라고 합니다. 그 최고의 상급을 우리 전도자들에게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축복을 나누어주는 축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축복의 근원이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정복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쟁취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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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7:41-54 믿음이 가진 위력으로 /야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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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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