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이 430년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애굽을 떠나온 지 3개월째 되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위엄이 넘치는 상황을 조성하시며 이 백성에게 임하여 오셨습니다. 그리고 직접 육성으로 이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열 가지의 내용을 담은 아주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6절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십계명 가운데 아홉 번째 계명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제9계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계명을 2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대선언과 함께 주셨습니다. 이 대선언과 함께 주시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고, 요구는 무엇일까요?
1.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계명은 신자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 3개월이 되었을 때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본문 1절에서 보는 것처럼 이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이 십계명을 중요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이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즉,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이니”하는 이 말씀은 제1계명에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이후의 모든 계명에 다 붙어야 되는 말씀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이니,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이니, 너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이니, 도적질 하지 말라.”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이니, 너는 간음하지 말라.” 그러므로 제9계명도 그렇게 붙여서 읽어야 합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이니,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그러므로 이 계명은 모든 인간들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여 낸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주신 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 구원해 놓으시고 그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이 이제 그에 걸맞은 수준의 삶을 살아갈 구체적인 행동 지침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출애굽기 19장에서 모세를 통해 백성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4-6).
애굽에서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인도하신 하나님이 이제 그들이 듣고 지켜서 하나님의 보물이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나라답게 살 구체적인 말씀과 언약으로 주시는 것이 바로 이 십계명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게 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가치 기준으로 볼 때 값이 나가는 사람으로 살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우리를 심판하기 위한 기준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무거운 짐도 아니고, 괴로운 십자가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넘치는 구원 역사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특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주신 특권입니다.
우리가 이제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존재라는 하나님의 인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과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외형은 똑같아 보일지 몰라도 그 본질은 판이하게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세상의 교양과 인품이 있는 사람들이 도덕적, 준법적 차원에서 다른 사람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우리 신자들은 신앙적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하여 거짓 증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거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신자들의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이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즐거움으로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면서라도 이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2. 신자의 거짓 증거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의 증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암시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정의와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고 책임감 있게 대해야 한다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증거가 그 사람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무책임한 거짓 증거가 다른 사람의 정의와 명예를 철저히 파괴해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거짓 증거가 무죄한 한 사람에게 억울한 고통과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죄 있는 사람을 불의하게 그냥 풀려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거짓 증거가 때로는 한 사람의 평생에 지울 수 없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거로 주어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은 단지 우리가 거짓 증거를 한 그 사람만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다른 사람에 대하여 진실된 말과 성실한 태도로 대하며 사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한 반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거짓 증거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은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2절에서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이 밝히신 십계명을 주시는 의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계명을 지킴으로써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세상을 향하여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어 증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 신자들이 다른 사람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하며 사는 것과 불신자들이 그렇게 사는 것이 외형적으로는 동일한 삶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확연히 다른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키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거짓 증거를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관련된 이 모든 내용들을 왜곡하거나 말살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이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신자로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거짓으로 대하는 것이 초래하는 치명적인 결과입니다.
그것은 단지 그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하여도 치명적인 손상을 끼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 사회로부터 그리고 심지어 조직적으로 형성된 안티기독교 단체들로부터 지탄과 비방과 조롱을 받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도 근원적으로는 우리 신자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에 실패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많이 말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의 생활이 하나님을 반영한 진실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어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이 사회에서 능욕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다른 사람에 대하여 스스럼없이 거짓 증거를 행하는 것은 점점 하나님에 대하여 거짓 증거를 행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3. 그러므로 거짓 증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증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증거가 갖고 있는 놀라운 의미를 보아도, 우리의 거짓 증거가 초래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보아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증거하지 말아야 합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제9계명은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가 하루하루의 삶에서 지켜야 되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거짓 증거를 실질적으로 행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거짓말, 속임, 과장, 왜곡, 곡해, 은폐, 거짓된 소문을 확산시키는 것, 진실이 아닌 다수의 여론에 편승하는 것 등이 우리가 거짓 증거를 행하는 구체적인 모습들입니다. 직접 행하는 것도, 다른 사람이 행하는 것을 동조하고 인정하는 것도 거짓 증거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거짓 증거를 행하게 되는 동기도 또한 다양합니다. 약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교만 때문에 약한 사람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기 쉽습니다. 그런가 하면 강한 사람에 아부하는 비겁함 때문에, 악한 자와 가까이 지내고 그를 편드는 잘못된 의리 때문에, 자기 탐욕을 채우려는 잘못된 욕심 때문에 거짓 증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감으로 그 사회에서 무난하게 살아가려는 안일함이 우리로 하여금 거짓 증거를 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23장 초두에서 모세는 거짓 증거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그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23:1-3, 6-8).
우리가 신자로서 행하는 거짓 증거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거짓 증거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참되신 분인데 우리는 거짓을 행함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부인하는 것이 될 뿐 아니라, 결국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마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8:44). 거짓을 행함으로 우리는 진리이신 하나님을 떠나서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기독교가 이 사회와 언론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핍박을 받고 있다고 불만하기 전에, 적그리스도적인 세력들에 의하여 기독교가 왜곡당하고 있다고 기분 나빠하며 그들을 상대할 그룹들을 세력화하기 전에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이 사회 안에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이 계명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에 걸맞은 진실과 성실과 정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자들에게 시급한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4. 거짓 증거하여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9계명, 곧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라는 사실도 감격에 차서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계명을 그대로 지키는 신자로서 살고 싶다는 소원을 품기도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 계명대로 살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의 삶 가운데서 자주자주 확인하는 것은 이 계명을 어기고 무너져 버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연약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모습은 때로 깊은 좌절로 우리를 몰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십계명은 우리를 심판하기 위하여 주신 계명이 아니라는 데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십계명은 그것을 주신 동기를 보든지, 그것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보든지 그 계명을 지키지 못한 실패자에게 완전한 좌절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은 하나님은 계명을 구원의 조건으로 주신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 주신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취할 반응으로 주신 것입니다. 또한 십계명의 결어라고 할 수 있는 20절은 하나님이 백성에게 임하시고 계명을 주시는 목적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지켜보고 있다가 어기면 심판을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호와께서 임하시고 친히 계명을 말씀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변함없이 마음을 다하여 그들 앞에 항상 계시는 여호와를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계명들을 주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연약하여 무너져 버리는 때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돌이키고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시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이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넘어졌을 때에도, 그곳에서 회개하고 그 복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하여 세 번씩 완벽하게 거짓 증거하고 철저하게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런 자리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며 돌이켰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이 말씀을 기억하고 삶 속에서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일에 실패했을 때에도 돌이켜 회개하고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복된 신자의 삶을 살아나가는 특권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cafe.daum.net/kmc4755/MDpo/383
그중에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6절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십계명 가운데 아홉 번째 계명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제9계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계명을 2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대선언과 함께 주셨습니다. 이 대선언과 함께 주시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고, 요구는 무엇일까요?
1.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계명은 신자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 3개월이 되었을 때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본문 1절에서 보는 것처럼 이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이 십계명을 중요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이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즉,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이니”하는 이 말씀은 제1계명에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이후의 모든 계명에 다 붙어야 되는 말씀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이니,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이니, 너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이니, 도적질 하지 말라.”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이니, 너는 간음하지 말라.” 그러므로 제9계명도 그렇게 붙여서 읽어야 합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이니,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그러므로 이 계명은 모든 인간들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여 낸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주신 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 구원해 놓으시고 그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이 이제 그에 걸맞은 수준의 삶을 살아갈 구체적인 행동 지침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출애굽기 19장에서 모세를 통해 백성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4-6).
애굽에서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인도하신 하나님이 이제 그들이 듣고 지켜서 하나님의 보물이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나라답게 살 구체적인 말씀과 언약으로 주시는 것이 바로 이 십계명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게 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가치 기준으로 볼 때 값이 나가는 사람으로 살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우리를 심판하기 위한 기준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무거운 짐도 아니고, 괴로운 십자가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넘치는 구원 역사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특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주신 특권입니다.
우리가 이제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존재라는 하나님의 인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과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외형은 똑같아 보일지 몰라도 그 본질은 판이하게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세상의 교양과 인품이 있는 사람들이 도덕적, 준법적 차원에서 다른 사람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우리 신자들은 신앙적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하여 거짓 증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거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신자들의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이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즐거움으로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면서라도 이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2. 신자의 거짓 증거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의 증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암시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정의와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고 책임감 있게 대해야 한다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증거가 그 사람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무책임한 거짓 증거가 다른 사람의 정의와 명예를 철저히 파괴해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거짓 증거가 무죄한 한 사람에게 억울한 고통과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죄 있는 사람을 불의하게 그냥 풀려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거짓 증거가 때로는 한 사람의 평생에 지울 수 없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거로 주어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은 단지 우리가 거짓 증거를 한 그 사람만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다른 사람에 대하여 진실된 말과 성실한 태도로 대하며 사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한 반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거짓 증거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은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2절에서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이 밝히신 십계명을 주시는 의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계명을 지킴으로써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세상을 향하여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어 증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 신자들이 다른 사람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하며 사는 것과 불신자들이 그렇게 사는 것이 외형적으로는 동일한 삶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확연히 다른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키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거짓 증거를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관련된 이 모든 내용들을 왜곡하거나 말살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이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신자로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거짓으로 대하는 것이 초래하는 치명적인 결과입니다.
그것은 단지 그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하여도 치명적인 손상을 끼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 사회로부터 그리고 심지어 조직적으로 형성된 안티기독교 단체들로부터 지탄과 비방과 조롱을 받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도 근원적으로는 우리 신자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에 실패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많이 말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의 생활이 하나님을 반영한 진실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어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이 사회에서 능욕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다른 사람에 대하여 스스럼없이 거짓 증거를 행하는 것은 점점 하나님에 대하여 거짓 증거를 행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3. 그러므로 거짓 증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증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증거가 갖고 있는 놀라운 의미를 보아도, 우리의 거짓 증거가 초래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보아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증거하지 말아야 합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제9계명은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가 하루하루의 삶에서 지켜야 되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거짓 증거를 실질적으로 행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거짓말, 속임, 과장, 왜곡, 곡해, 은폐, 거짓된 소문을 확산시키는 것, 진실이 아닌 다수의 여론에 편승하는 것 등이 우리가 거짓 증거를 행하는 구체적인 모습들입니다. 직접 행하는 것도, 다른 사람이 행하는 것을 동조하고 인정하는 것도 거짓 증거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거짓 증거를 행하게 되는 동기도 또한 다양합니다. 약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교만 때문에 약한 사람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기 쉽습니다. 그런가 하면 강한 사람에 아부하는 비겁함 때문에, 악한 자와 가까이 지내고 그를 편드는 잘못된 의리 때문에, 자기 탐욕을 채우려는 잘못된 욕심 때문에 거짓 증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감으로 그 사회에서 무난하게 살아가려는 안일함이 우리로 하여금 거짓 증거를 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23장 초두에서 모세는 거짓 증거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그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23:1-3, 6-8).
우리가 신자로서 행하는 거짓 증거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거짓 증거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참되신 분인데 우리는 거짓을 행함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부인하는 것이 될 뿐 아니라, 결국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마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8:44). 거짓을 행함으로 우리는 진리이신 하나님을 떠나서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기독교가 이 사회와 언론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핍박을 받고 있다고 불만하기 전에, 적그리스도적인 세력들에 의하여 기독교가 왜곡당하고 있다고 기분 나빠하며 그들을 상대할 그룹들을 세력화하기 전에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이 사회 안에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이 계명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에 걸맞은 진실과 성실과 정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자들에게 시급한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4. 거짓 증거하여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9계명, 곧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라는 사실도 감격에 차서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계명을 그대로 지키는 신자로서 살고 싶다는 소원을 품기도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 계명대로 살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의 삶 가운데서 자주자주 확인하는 것은 이 계명을 어기고 무너져 버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연약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모습은 때로 깊은 좌절로 우리를 몰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십계명은 우리를 심판하기 위하여 주신 계명이 아니라는 데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십계명은 그것을 주신 동기를 보든지, 그것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보든지 그 계명을 지키지 못한 실패자에게 완전한 좌절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은 하나님은 계명을 구원의 조건으로 주신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 주신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취할 반응으로 주신 것입니다. 또한 십계명의 결어라고 할 수 있는 20절은 하나님이 백성에게 임하시고 계명을 주시는 목적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지켜보고 있다가 어기면 심판을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호와께서 임하시고 친히 계명을 말씀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변함없이 마음을 다하여 그들 앞에 항상 계시는 여호와를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계명들을 주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연약하여 무너져 버리는 때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돌이키고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시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이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넘어졌을 때에도, 그곳에서 회개하고 그 복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하여 세 번씩 완벽하게 거짓 증거하고 철저하게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런 자리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며 돌이켰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이 말씀을 기억하고 삶 속에서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일에 실패했을 때에도 돌이켜 회개하고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복된 신자의 삶을 살아나가는 특권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cafe.daum.net/kmc4755/MDpo/383
출20:1-2;16 거짓증거 하지 말라 /정창근
Reviewed by □□□
on
October 31, 2026
Ra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