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 이 아침에 나오신 여러분 어떻습니까? 저는 오늘 아침 여러분들에게 그런 마음의 소원을 갖습니다. 한 분도 예외 없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고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부분들을 해결하시고 치유하시며, 우리의 부족한 부분들은 잘라도 주시고, 태워도 주시고, 방망이로 두들겨도 주시며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주보 안에 매 주일마다 설교 노트와 요절 카드가 들어 있는데, 이것을 일주일 내내 간직하고 다니시면서, 가슴에 품고 다니거나 지갑 안에 넣고 다니시면서 계속해서 되뇌고 반복하고 복습해 보십시오. 말씀이 과연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사로잡는지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도 예수님의 힘과 능력으로 이겨내신 것이 아니라, 구약에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이겨내셨습니다.
오늘 저는 민수기 27장 1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아마 이 말씀은 평생에 오늘 한 번 듣고 끝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설교자들이 거의 본문으로 잡지 않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좌우에 날 선 검과 같이 여러분 삶의 부족한 부분들을 제거하고 능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살아 있는 말씀의 능력을 체험케 하여 주옵소서. 오늘 제 생각과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만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지난 12월 말에 대학부 수양회를 인도하며 참 감격스럽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수양회를 마치자 대학부에서 선물을 하나 주었습니다. 목사님이 한 해 동안 말씀의 능력을 솔로몬의 검과 같이 힘있게 감당하기를 원한다며 진짜 솔로몬의 검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 칼에는 시편 28편 7절 말씀인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라는 구절이 영어로 적혀 있습니다. 온 교우들에게 꼭 보여 달라는 학생들의 요청이 있어 오늘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이 한 해 동안 매 주일 설교 노트와 지난주 요절을 그저 읽고 지나치지 마시고, 암송하여 확인해 보시면서 이 말씀이 여러분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를 삶을 통해 확증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슬로브핫과 함께 그의 다섯 딸의 이름이 나옵니다. 바로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의 인구조사에서 수많은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지만, 여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이 다섯 딸이 유일합니다. 당시에는 여성이 족보에 올라갈 수 없었음에도 이 다섯 여인의 이름은 정확하게 등장합니다.
주로 우리는 아브라함, 모세, 다윗, 다니엘, 요셉 같은 인물들을 거명하고, 여성 중에서도 룻, 한나, 드보라, 도르가, 마리아를 이야기하지만 오늘은 슬로브핫의 다섯 딸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시편 144편 12절에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라고 했습니다.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보다 왕궁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이 얼마나 귀합니까?
오늘 본문의 다섯 딸은 그 이름값을 온전히 해냈습니다. 그들의 이름 끝자락은 모두 히브리어 여호와의 이름을 연상케 합니다. 슬로브핫은 다섯 딸의 이름을 하나하나 지으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분깃을 받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고 이제 죽음을 앞둔 노쇠한 상태였습니다. 민수기 26장 65절에 기록된 대로, 출애굽 1세대 장정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모세 외에는 광야에서 다 죽고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말씀의 권위가 그대로 확증된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세대가 장성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너희가 들어갈 가나안 땅은 애굽 땅과 같지 않고,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땅이며, 샘이 솟고 하나님의 눈이 세초부터 세말까지 권고하시며 돌보시는 은혜의 땅입니다.
이 젊은 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분배받을 땅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속성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실까 기대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주실 것인가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땅 분배가 시작될 무렵, 민수기 27장 1절에서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이 모세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광야에서 죽었고 아들이 없었기에, 가족 중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고 이름이 삭제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 가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민 27:4).
당시 관습으로는 아들이 없으면 땅을 분배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막막하고 두려운 상황을 무릅쓰고 다섯 딸들은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슬로브핫'이라는 이름은 '두려움으로부터의 보호'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두려움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삭제될 것 같은 두려움, 아무것도 손에 쥘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부터 지킴을 받는 것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정복합니다. 믿음과 두려움은 상극입니다. 믿음이 빛이라면 두려움은 어둠입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절로 물러갑니다. 예수님께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막 5:36)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은혜가 있으면 두려움은 물러갑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기르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모든 염려는 사라집니다. 이런 믿음의 자세로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은 모세에게 나아갔던 것입니다.
믿음은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21세기 오늘날이나 3,500년 전 모세의 시대나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초시간적인 비밀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간, 지금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첫째, 믿음은 결단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가문이 약속받은 기업을 모두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가나안에 대한 설렘과 꿈이 산산이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가나안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된 영적인 부요와 축복, 열매 맺는 삶과 성숙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0절 말씀처럼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는 영적 성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적 부요를 예비해 두셨지만, 강제적으로 주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소원하고 결단해야 주어지는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삭제되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몫을 요구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나도 원하고 결단하는 것, 이것이 믿음의 개별화 작업입니다. 열 명이 비전을 품어도 실제로 결단하는 사람은 한 명에 불과합니다. 안정과 현실의 안주에서 벗어나 믿음으로 살기 위해 결단하십시오. 히브리서 4장 16절 말씀처럼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아뢰니라"(민 27:5).
다섯 딸이 모세 앞에 나아왔을 때 즉시 땅이 분배된 것은 아닙니다. 먼저 약속의 말씀을 받았고, 실제 분배는 나중에 이루어졌습니다. 결단하고 나아가도 하나님께서는 종종 기다림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기다림의 미학'입니다. 기다림은 결코 하나님의 거절이 아니며, 인내를 배우고 성숙한 인격으로 빚어지는 신비한 과정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동기가 정결해지고 말씀에 대한 갈망이 깊어집니다.
노아는 120년을, 아브라함은 25년을, 모세는 40년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께서도 30년의 세월을 묵묵히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결단하고 기다릴 때 참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셋째, 믿음은 용기입니다.
"그들이 회막 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휘관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이르되"(민 27:2).
당시 계수된 장정만 60만 명이 넘었고, 전체 무리는 200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 거대한 회중 앞에서 다섯 여인이 걸어 나와 남성 중심의 전통적 관습에 이의를 제기하고 유산을 요구한 것은 실로 엄청난 용기였습니다.
믿음에는 성령이 주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화석처럼 굳어진 전통과 인습을 깨뜨리고 본질을 회복하는 용기입니다. 전통은 존중해야 하지만, 생명력을 잃고 성령의 인도를 가로막는 전통주의는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형식만 남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전통의 벽과 끊임없이 부딪히셨습니다. 믿음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공간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올바른 믿음에는 거룩한 모험과 용기가 반드시 수반됩니다.
넷째, 믿음은 재생산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슬로브핫 딸들의 요청을 옳게 여기시고 그들에게 땅을 주셨을 뿐 아니라, 아들이 없는 모든 집안에 딸이 기업을 이을 수 있도록 새로운 법을 세워주셨습니다(민 27:8-10).
참된 믿음은 나 한 사람의 축복에 머물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흘러가는 '영적 재생산(Reproduction)'을 이룹니다. 한 사람의 믿음의 결단으로 인해 비슷한 처지의 수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겨자씨 한 알 같은 믿음은 작아 보이지만, 자라나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게 합니다. 믿음은 쓸수록 자라나며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염시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슬로브핫 딸들의 이 믿음의 결단이 훗날 마리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계보를 잇는 구속사의 정통성으로까지 연결된다는 사실입니다. 딸들에게도 유업을 잇게 하신 이 은혜의 원리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놀라운 통로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결단하십시오. 하나님의 때를 인내로 기다리십시오. 인습을 깨뜨리는 거룩한 용기를 가지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의 믿음이 다른 사람을 살리고 축복을 흘려보내는 거룩한 재생산의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부분들을 해결하시고 치유하시며, 우리의 부족한 부분들은 잘라도 주시고, 태워도 주시고, 방망이로 두들겨도 주시며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주보 안에 매 주일마다 설교 노트와 요절 카드가 들어 있는데, 이것을 일주일 내내 간직하고 다니시면서, 가슴에 품고 다니거나 지갑 안에 넣고 다니시면서 계속해서 되뇌고 반복하고 복습해 보십시오. 말씀이 과연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사로잡는지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도 예수님의 힘과 능력으로 이겨내신 것이 아니라, 구약에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이겨내셨습니다.
오늘 저는 민수기 27장 1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아마 이 말씀은 평생에 오늘 한 번 듣고 끝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설교자들이 거의 본문으로 잡지 않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좌우에 날 선 검과 같이 여러분 삶의 부족한 부분들을 제거하고 능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살아 있는 말씀의 능력을 체험케 하여 주옵소서. 오늘 제 생각과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만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지난 12월 말에 대학부 수양회를 인도하며 참 감격스럽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수양회를 마치자 대학부에서 선물을 하나 주었습니다. 목사님이 한 해 동안 말씀의 능력을 솔로몬의 검과 같이 힘있게 감당하기를 원한다며 진짜 솔로몬의 검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 칼에는 시편 28편 7절 말씀인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라는 구절이 영어로 적혀 있습니다. 온 교우들에게 꼭 보여 달라는 학생들의 요청이 있어 오늘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이 한 해 동안 매 주일 설교 노트와 지난주 요절을 그저 읽고 지나치지 마시고, 암송하여 확인해 보시면서 이 말씀이 여러분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를 삶을 통해 확증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슬로브핫과 함께 그의 다섯 딸의 이름이 나옵니다. 바로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의 인구조사에서 수많은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지만, 여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이 다섯 딸이 유일합니다. 당시에는 여성이 족보에 올라갈 수 없었음에도 이 다섯 여인의 이름은 정확하게 등장합니다.
주로 우리는 아브라함, 모세, 다윗, 다니엘, 요셉 같은 인물들을 거명하고, 여성 중에서도 룻, 한나, 드보라, 도르가, 마리아를 이야기하지만 오늘은 슬로브핫의 다섯 딸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시편 144편 12절에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라고 했습니다.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보다 왕궁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이 얼마나 귀합니까?
오늘 본문의 다섯 딸은 그 이름값을 온전히 해냈습니다. 그들의 이름 끝자락은 모두 히브리어 여호와의 이름을 연상케 합니다. 슬로브핫은 다섯 딸의 이름을 하나하나 지으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분깃을 받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고 이제 죽음을 앞둔 노쇠한 상태였습니다. 민수기 26장 65절에 기록된 대로, 출애굽 1세대 장정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모세 외에는 광야에서 다 죽고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말씀의 권위가 그대로 확증된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세대가 장성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너희가 들어갈 가나안 땅은 애굽 땅과 같지 않고,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땅이며, 샘이 솟고 하나님의 눈이 세초부터 세말까지 권고하시며 돌보시는 은혜의 땅입니다.
이 젊은 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분배받을 땅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속성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실까 기대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주실 것인가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땅 분배가 시작될 무렵, 민수기 27장 1절에서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이 모세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광야에서 죽었고 아들이 없었기에, 가족 중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고 이름이 삭제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 가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민 27:4).
당시 관습으로는 아들이 없으면 땅을 분배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막막하고 두려운 상황을 무릅쓰고 다섯 딸들은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슬로브핫'이라는 이름은 '두려움으로부터의 보호'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두려움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삭제될 것 같은 두려움, 아무것도 손에 쥘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부터 지킴을 받는 것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정복합니다. 믿음과 두려움은 상극입니다. 믿음이 빛이라면 두려움은 어둠입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절로 물러갑니다. 예수님께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막 5:36)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은혜가 있으면 두려움은 물러갑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기르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모든 염려는 사라집니다. 이런 믿음의 자세로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은 모세에게 나아갔던 것입니다.
믿음은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21세기 오늘날이나 3,500년 전 모세의 시대나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초시간적인 비밀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간, 지금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첫째, 믿음은 결단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가문이 약속받은 기업을 모두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가나안에 대한 설렘과 꿈이 산산이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가나안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된 영적인 부요와 축복, 열매 맺는 삶과 성숙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0절 말씀처럼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는 영적 성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적 부요를 예비해 두셨지만, 강제적으로 주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소원하고 결단해야 주어지는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삭제되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몫을 요구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나도 원하고 결단하는 것, 이것이 믿음의 개별화 작업입니다. 열 명이 비전을 품어도 실제로 결단하는 사람은 한 명에 불과합니다. 안정과 현실의 안주에서 벗어나 믿음으로 살기 위해 결단하십시오. 히브리서 4장 16절 말씀처럼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아뢰니라"(민 27:5).
다섯 딸이 모세 앞에 나아왔을 때 즉시 땅이 분배된 것은 아닙니다. 먼저 약속의 말씀을 받았고, 실제 분배는 나중에 이루어졌습니다. 결단하고 나아가도 하나님께서는 종종 기다림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기다림의 미학'입니다. 기다림은 결코 하나님의 거절이 아니며, 인내를 배우고 성숙한 인격으로 빚어지는 신비한 과정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동기가 정결해지고 말씀에 대한 갈망이 깊어집니다.
노아는 120년을, 아브라함은 25년을, 모세는 40년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께서도 30년의 세월을 묵묵히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결단하고 기다릴 때 참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셋째, 믿음은 용기입니다.
"그들이 회막 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휘관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이르되"(민 27:2).
당시 계수된 장정만 60만 명이 넘었고, 전체 무리는 200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 거대한 회중 앞에서 다섯 여인이 걸어 나와 남성 중심의 전통적 관습에 이의를 제기하고 유산을 요구한 것은 실로 엄청난 용기였습니다.
믿음에는 성령이 주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화석처럼 굳어진 전통과 인습을 깨뜨리고 본질을 회복하는 용기입니다. 전통은 존중해야 하지만, 생명력을 잃고 성령의 인도를 가로막는 전통주의는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형식만 남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전통의 벽과 끊임없이 부딪히셨습니다. 믿음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공간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올바른 믿음에는 거룩한 모험과 용기가 반드시 수반됩니다.
넷째, 믿음은 재생산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슬로브핫 딸들의 요청을 옳게 여기시고 그들에게 땅을 주셨을 뿐 아니라, 아들이 없는 모든 집안에 딸이 기업을 이을 수 있도록 새로운 법을 세워주셨습니다(민 27:8-10).
참된 믿음은 나 한 사람의 축복에 머물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흘러가는 '영적 재생산(Reproduction)'을 이룹니다. 한 사람의 믿음의 결단으로 인해 비슷한 처지의 수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겨자씨 한 알 같은 믿음은 작아 보이지만, 자라나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게 합니다. 믿음은 쓸수록 자라나며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염시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슬로브핫 딸들의 이 믿음의 결단이 훗날 마리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계보를 잇는 구속사의 정통성으로까지 연결된다는 사실입니다. 딸들에게도 유업을 잇게 하신 이 은혜의 원리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놀라운 통로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결단하십시오. 하나님의 때를 인내로 기다리십시오. 인습을 깨뜨리는 거룩한 용기를 가지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의 믿음이 다른 사람을 살리고 축복을 흘려보내는 거룩한 재생산의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민27:1-11 초시간적 믿음의 비밀 /오정현
Reviewed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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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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