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3:1-7 내가 여기 있나이다 /고신일

엘리와 사무엘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을 때, 정치·군사적 지도자는 ‘사사’였습니다. 본문 말씀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실로의 대제사장이자 사사로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엘리’와 사울을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세움으로 마지막 사사가 된 ‘사무엘’이 그 주인공입니다.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던 부모의 뜻에 따라,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제사장 엘리와 함께 살며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자던 중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사무엘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연히 엘리 제사장이 부른 줄 알았던 사무엘은 엘리를 찾아갔으나 엘리는 사무엘을 부른 적이 없다 하고 돌려보냈습니다. 잠자리에 다시 누운 사무엘은 또 한 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고 이번에도 엘리를 찾아갔으나 엘리는 그를 부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들었던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으나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였던 까닭에 자신을 부른 분이 하나님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을 몰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엘리를 찾아갔던 것은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궁금증을 갖게 하는 부분은 다른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 엘리를 두고 왜 어린 사무엘을 찾으셨을까?’

제사장은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을 하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보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대로 백성들을 가르쳐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을 보면 엘리는 제사장임에도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자녀를 구하며 기도할 때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술에 취한 줄로 생각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에게 ‘포도주를 끊으라’고 면박을 주었습니다. 함께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물을 탐내어 가로채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심지어는 두 아들이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아들들을 막지 못했습니다. 말로는 아들들의 죄가 크다고 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명목상으로만 하나님의 일꾼인 사람, 말로는 하나님을 찾고 죄를 미워했지만 회개하고 죄를 바로잡으려 하거나 영적으로 깨어있는 행동은 할 줄 몰랐던 사람이 엘리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엘리의 시대를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려서가 아니었습니다. 제사장도 있고 하나님께 제사도 드렸지만,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고 하나님 뜻에 합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에 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머리로만 하나님을 알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말씀 들으며 성경공부도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고 그 뜻대로 사는 데에는 무기력한 이론적인 신앙은 아닌지, 머리로만 알고 있는 신앙은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이 가치 있는 것은 ‘신앙이 머리에 남아있을 때’가 아닙니다. 기도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행동하는 신앙’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머리만 커지는 그리스도인보다는, 아는 것을 토대로 목소리만 커지는 그리스도인보다는 겸손하게 말씀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뻐하십니다.

제사장인 엘리조차 영적으로 어두웠을 만큼 “하나님의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던 때”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일꾼으로 사용하실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은 그 음성을 들었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내가 여기 있나이다 ...”

부르는 소리를 듣고, 엘리가 부르는 소리로만 알았던 사무엘은 잠을 자던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에게로 갔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무엘이 그냥 가지 않고 ‘달려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다 말고 빨리 달려갔던 것입니다.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한밤중일 때조차도 자신이 섬겨야 할 제사장에게 최선을 다해 순종하는 사무엘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무엘의 성실함은 자신을 찾은 음성이 하나님이심을 알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무엘은 엘리에게 가르침을 받은 대로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무엘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에게도 순종해야 할 자리에서 순종하며 쓰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환상 중에 여러분에게 나타나셔서 부르신다면 “예, 저 여기 있습니다. 제가 뭘 해야 하죠?”라고 대답할 수 있으십니까? 순종의 사람인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제사장 엘리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했던 사무엘은 언제든지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성실함과 무엇이든 말씀하시면 듣겠다는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끔 순종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순종하고 싶지 않은데 때로 순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순종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의 머리입니다. ‘그 일을 왜 내가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엇 때문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알 수 없어도 믿고 따르는 것이 진짜 순종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사무엘의 말 속에는 이해할 수 없어도, 이유를 몰라도 듣고 행하겠다는 사무엘의 결단이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게 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위대한 믿음을 가졌던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의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더라도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 때문에 사람이 보든 안 보든 성실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겨루어 이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열심일 수밖에 없고 충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경쟁력’보다 ‘순종력(順從力)’에 의해 일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기둥교회는 새롭게 변화하려는 준비를 하고 도전하려고 합니다. 교구를 늘렸고 속회를 개편했으며 선교회를 새롭게 조직해 가고 있습니다. 교육부서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고 교회 내 각 부서와 팀, 선교회마다 새로운 리더들이 세워질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헌신하는 새로운 일꾼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동안 교회 일에 나서지 않으시던 분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사용하실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연말이 되어서 속회, 선교회, 교육부, 찬양대 여러 부서에 필요한 헌신자를 세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이 권면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도해 보겠습니다. 제게 일 맡겨 주신다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대부분 “기도해보겠습니다”라고 핑계를 댑니다. 정말 그 일을 놓고 진심으로 기도하십니까? 이미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기도하고 고민하고 회의하여 믿고 신뢰할 만한 분이라고 판단되어 부탁하고 권하면 ‘아멘’하면 되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을 ‘정보 사회’, ‘지식 사회’라고 합니다. 그만큼 ‘아는 것’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직접 일일이 조사하고 연구해서 내 것으로 갖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노력하여 간추린 소식을 통해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야의 전문가를 통해 들으면 됩니다. 누가 하나님의 일에 전문가입니까? 여러분의 생활을 잘 이해하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여러분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이 하나님 일에 있어서는 전문가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려주시기도 하겠지만 말씀을 통해서, 성경을 읽는 중에, 찬송을 부르는 중에,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간접적으로 깨닫게 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중요한 선택을 내려야 할 갈림길에 서서야 듣는 것이 아닙니다. 평상시에도 쉬지 않고 기도하고,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잠자는 중에라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면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하며 순종하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무엘의 자세였습니다. 따라하겠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실 때 그렇게 외치며 일어나는 사람, 달려가는 사람 “저 여기 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한 변화와 도전에 여러분을 부르실 때, 가정의 평안을 위하여 평안을 만드는 사람이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선교회에, 부서에 내가 낮아지고 녹아져 소금이 되고 타서 빛이 되어 “내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순종하는 사무엘과 같은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으시고 그런 사람을 쓰십니다. 여러분 모두 귀하게 쓰임 받는 주인공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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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3:1-7 내가 여기 있나이다 /고신일 삼상3:1-7 내가 여기 있나이다 /고신일 Reviewed by □□□ on October 25, 2026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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