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8:1-15 많음의 재앙 /이장우

제목이 좀 이상하지요? 많음의 재앙이라니, 많으면 좋은 것이지 왜 많은 것이 재앙이 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궁핍의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거저 많은 것이 좋은 것인 줄 알고 그것을 추구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이 있지요. 많을수록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을수록 더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많을수록 나쁜 것도 있겠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사십니까?

평소에 늘 생각하는 이것은 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 아닙니까? 늘 궁핍을 느끼는 것이 돈 아닙니까? 그런데 돈이 많으면 좋을 것 같은데 돈이 많은 것이 재앙이 된다면 이런 말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개구리가 많아지면 재앙이 된다고 하더라도 돈이 많아지는 것이 왜 재앙이 됩니까?

그동안 황소개구리를 식용으로 수입해서 기르다가 그것이 너무 많아져서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황소개구리 잡기 대회를 하였지요. 이러한 황소개구리가 너무 많아지면 생태계가 파괴된다고, 생태계의 재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많아지는 것은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개구리가 돈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왜 이런 발상이 나왔는가 하면 개구리가 애굽의 신인 것입니다.

개구리가 애굽의 어떤 신인가 하면 애굽의 하피 신과 아이의 출생을 돕는 헤크트 여신과 관련되어 있어서 풍요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개구리는 풍요의 상징인 것입니다. 여름철 개구리가 왕성하게 울어대는 소리를 시골에서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 왕성한 울음소리로 인하여서인지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으로 대접을 받은 것이 개구리입니다. 그러니 평소에 개구리를 보면 아이고 복이다, 그러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네 조상들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 낳아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금으로 송아지도 만들지만 금으로 두꺼비도 만들어 보관하지 않습니까? 금은방에 가보면 그러한 형상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신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으로서의 개구리가 이제 너무 많아서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또 말합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바로가 거절하면 개구리가 너의 온 지경을 칠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가 하나님의 백성 보내기를 거절함으로 개구리가 애굽의 온 천지를 뒤덮어버리는데 어느 정도입니까?

3-4절을 보시면 “개구리가 하수에서 무수히 생기고 네 궁에와 네 침실에와 네 침상 위에와 네 신하의 집에와 네 백성에게와 네 화덕에와 네 떡 반죽 그릇에 들어 갈찌며 개구리가 네게와 네 백성에게와 네 모든 신하에게 오르리라”고 하십니다. 온통 개구리 천지입니다. 앉아도 개구리 위에 앉고, 누워도 개구리 위에 눕고, 밥을 먹으려 해도 개구리가 밥그릇에 들어 있고, 가만히 있어도 개구리가 뛰어 사람에게 오르고 이것이 재앙이 아닙니까? 이러한 개구리가 많아지자 애굽의 술사들도 개구리를 애굽땅에 올라오게 합니다. 그러나 없애지는 못합니다. 그제서야 바로 왕이 모세를 불러 개구리를 물리쳐 달라고 합니다.

8절을 봅니다. “바로가 모세를 불러 이르되 여호와께 구하여 개구리를 나와 백성에게서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희생을 드릴 것이니라” 개구리가 너무 많아지자 이것을 처리할 수가 없으니 바로가 항복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기도하여 개구리를 물리치고 나자 그 개구리가 무더기를 이루어 악취가 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어떻게 나옵니까?

15절입니다. “그러나 바로가 숨을 통할 수 있음을 볼 때에 그 마음을 완강케 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았더라” 개구리로 인하여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괴로움을 당할 때에는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러 가라고 하고서는 개구리가 물러가고 숨을 통할 수 있으니 다른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숨도 쉴 수 없이 몰아치면 살려달라고 빌다가 어느 정도 숨을 쉬게 되면 내가 언제 그렇게 하였나, 하는 식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더 많은 재앙을 만나야 제대로 항복을 하겠습니까?

지금 숨을 쉴만하십니까? 그러면 우리가 자신의 풍요 속에서 절박한 심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꾸만 개구리나 많았으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앙이란 개구리가 많아지는 것이 재앙이듯이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오늘의 재앙이란 풍요가 재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개구리가 풍요의 신이라지만 그러나 개구리가 너무 많아지니 재앙이 되는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이 풍요로 인하여 재앙의 시대가 닥친 것입니다. 풍요를 누리기 위하여 대량생산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대량생산의 결과 소비되지 않는 것들은 폐기처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것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작 고민은, 없어서 고민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고민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귀할 때는 거저 배부르고 추위만 막아주어도 감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많아지니 어떤 고민이 생긴 것입니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먹을 것이 없어서 염려하는 것인데 이제는 무엇을 얼마나 맛있게 먹을까를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옷도 얼마나 멋있게, 아름답게 입을까가 염려가 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더 많이를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의 한편에서는 정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어서 죽어가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 이러한 세상이 어찌 바른 세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세상에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신다고 하십니까?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애굽의 풍요를 치시고 그 애굽의 가난한 히브리 민족을 해방시켜 내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해방신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키시는 것이지 단지 고통받는 자들을 모두 해방시키자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시는 것은 구원이란 세상의 풍요를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풍요에서 탈출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광야를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나일강의 풍요를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하시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모르고 애굽의 풍요를 사모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들을 징계하셨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민수기 11:4-8절을 봅니다.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이들이 만나로 부족하였다는 것입니다. 만나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종합식품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출애굽 때 섞여 나온 무리들이 원망을 하자 이스라엘 자손들도 전염이 되어 원망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는 고기와 여러 가지 식물을 값없이 먹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값없이 먹었습니까? 자기들의 몸을 노예로 노동을 지불하고 받은 것인데 어떻게 값없이 먹었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러니 이들의 탐욕이란 결국 자기의 배를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과 그 자유의 가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권을 팔아버린 에서와 별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사형수가 죽기 전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니 자기의 시신을 팔아서 술과 고기를 먹고 죽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들의 원망에 대하여 모세도 원망하면서 하나님이 이들을 왜 나에게 맡기시는 것입니까, 하고 항의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내가 이들에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한 달 동안 고기 냄새가 질리도록 고기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보행자가 60십만인데 이들이 다 먹으려면 소떼 양떼를 다잡은들 족하며 바다의 고기를 다 모은들 되겠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고 하십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기를 마음껏 주시겠다는 것은 축복입니까? 재앙입니까? 재앙입니다. 이 재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봅니다.

민수기 11:31-34절입니다.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백성들이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십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진 사면에 펴 두었더라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메추라기를 몰아와서 지면 90센티 정도에 내리게 하시니 손으로 잡기에 좋은 위치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이 잡았는지 첫날은 종일 종야를 메추라기 잡은 것입니다. 철야하면서 잡고 다음날 또 하루 종일 잡았습니다. 메추라기가 어느 정도인지 보셨습니까? 중간 정도의 닭 크기입니다. 몇 마리만 잡아도 몇 일은 먹을 텐데 얼마나 잡은 지 아십니까? 적게 잡은 자도 십 호멜이라고 합니다.

한 호멜은 당나귀 한 마리가 짊어지는 양이랍니다. 리터로는 약 220리터입니다. 그러니 적게 잡은 사람이 당나귀 열 마리가 지고 갈 분량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탐욕으로 인하여 큰 재앙이 내려서 수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죽었습니다. 그 고기를 잇 사이에서 씹히기도 전에 재앙이 내린 것입니다. 그 재앙으로 죽은 자를 모아 시체더미를 이룬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곧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고 명명합니다. 무슨 이름입니까? 탐욕의 무덤입니다.

인간의 탐욕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렇지 않다, 라고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나 메추리 한 마리 사는 돈이 천 원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천 원짜리가 90센티미터 정도에서 날고 있다면 우리는 며칠 동안 모을 수 있을까요? 1박 2일 정도가 아니라 아마 죽을 때까지 쫓아다니며 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애굽에서 나온 무리를 광야에서 죽이시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로 낮추고 주리게 하시고 네 열조가 알지도 못하는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가서 먹고 배부르게 되면 나를 잊어버릴까 염려한다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8장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먹고 배부름과 풍요를 좇아간 것입니다. 애굽에서 개구리가 풍요의 신이라면 가나안 땅에서는 바알과 아세라가 풍요의 신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한 풍요를 위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이들을 섬긴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수를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5절입니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간음하다가 죽었고, 주를 시험하다가 죽었고, 원망하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으시는데도 우리는 거저 수가 많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탐욕의 무덤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입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수와 재물의 많음, 바로 이것이 많음의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하여 많은 것이 좋다고 합니다. 돈도 많아야 좋다고 하고, 사람도 많아야 좋다고 합니다. 개인이나 단체나 모두가 힘이 많아야 한다고 합니다. 힘이란 곧 숫자에서 나오니 숫자가 많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점검도 안 하고 거저 진리인 양 마구 달려갑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개구리가 와글와글하듯이 교회당마다 기도원마다 와글와글 합니다. 돈 주세요. 사람 주세요. 와글와글 하는 소리에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래 돈 여기 있다, 사람 여기 있다, 하고서 주시니 이것이 재앙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라 돈을 믿고 사람의 수를 믿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가정이나 교회나 모두가 탐욕의 무덤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곳을 우리는 기브롯핫다아와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이번 주가 고난주간입니다. 일주일이라도 사람들은 하루에 한 끼씩 금식을 하고 검은 옷을 입고 오락을 삼가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까? 1년 동안 내내 탐욕을 위하여 살다가 일주일만 참으면 됩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많음을 버리고 없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여기 고난주간이라고 꽃꽂이를 보십시오. 가시나무로 십자가 형태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많음을 위하여 사신다면 그것은 개구리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많음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버림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이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염려는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개구리를 몰아내셔서 죽여 버리심으로 그것이 악취가 됩니다. 어느 날 그것이 생명인 줄 알고 좇아가던 것들이 악취가 나면, 주님께서 일하신 것인 줄 알고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2장 22~34절을 봉독합니다. “봉독” 32절, “적은 무리여 두려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니라” 많음의 재앙에서 없음의 자유를 주님과 함께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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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8:1-15 많음의 재앙 /이장우 출8:1-15 많음의 재앙 /이장우 Reviewed by □□□ on October 29, 2026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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