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장에서 11장까지는 언약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특별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언약과 그들을 사랑하심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출애굽이 일어나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받았지만 40년 동안 그 언약을 배반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지금 다시 가나안 입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2장부터는 이제 들어가서 얻을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하나님께 대한 예배입니다. 구약에서의 예배란 제사가 중심입니다만 넓게 예배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제사와 예배란 인간이 신에게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 드림으로 그 반대급부를 받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먼저 주신 것입니다. 10절을 봅니다. “봉독” 언제 예배합니까? 약속한 땅을 주시고 사방의 대적을 이기게 하셔서 안식을 주시고 평안히 거하게 하실 때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먼저 제사를 드리고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받고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서 살아야 할 가나안 땅은 전혀 다른 곳입니다. 이미 우상이 가득한 땅입니다. 그들의 종교란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들도록 고안된 신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이 투사된 것이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이 다양한 만큼 그들의 신도 다양한 것입니다. 가나안의 다양한 신들의 공통점이란 자신들의 풍요를 위한 신입니다. 그 신이 나무이든 돌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모든 신상과 그 장소들을 파멸하라는 것입니다. 2-3절을 봅니다.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의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 무론하고 파멸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어느 나라이건 다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을 곳곳에 신을 섬기는 곳이 있습니다. 좀 오래된 나무나 큰 바위에 절을 하기도 하고 마을마다 서낭당을 짓고 그곳에서 절하며 제물을 드리며 비는 내용은 다 대동소이합니다. 농사가 잘되고 자식들이 잘되고 마을과 나라의 안녕을 비는 것은 그래도 소박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의 우상숭배는 풍요와 다산을 원하기에 그런 신들을 자극하기 위하여 남녀의 매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성적인 관행이 그들의 제사의식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민수기 25:1-9절을 보시면 미디안 여인들이 그들의 신들에게 제사하는 일에 이스라엘 남자들을 끌어들여서 음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일어나 염병으로 죽어갈 때에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로 질투하여 음행하는 두 남녀를 죽임으로 염병이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죽은 자가 이만사천 명입니다. 이러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한 신상과 신전들을 다 파멸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까? 5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그 거하실 곳으로 나아가서 예배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나아갈 때에 번제와 희생과 십일조와 거제와 서원제와 낙헌예물과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가져다가 드리고 여호와 앞에서 먹고 마시며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이 즐거움에 참예할 자는 자녀와 노비와 함께 즐거워하며 또한 레위인과 함께 나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함께 나누며 누리는 즐거움인 것입니다.
이 내용은 다음에 자세히 보기로 하고 오늘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시는 한 장소를 중심으로 보려고 합니다. 11절을 봅니다. 5절과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13-14절입니다. 삼가라고 합니다.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라고 합니다.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의 택하실 그곳에서 번제물을 드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느 곳인지 지명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지명하실 때까지는 언약궤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서 예배의 장소는 언약궤가 있는 곳이 됩니다. 사사시대에는 언약궤가 실로에 있었습니다. 전쟁 시에는 언약궤를 메고 갔다가 다시 실로에 둡니다. 사사시대를 지나 다윗시대 때 예루살렘으로 옮겨졌고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서는 성전의 지성소에 두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한 장소를 말씀하셨다는 것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물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까지 움직이던 성막이 이제는 고정된 성전의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제는 다른 곳에 가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7:10-13절입니다. “10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기 위한 한 장소를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서의 예배를 거부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솔로몬 사후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지고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남쪽의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배하러 가면 마음이 남쪽의 르호보암 왕에게도 갈까 염려하여 북 이스라엘의 벧엘과 단에 자의적인 성소를 만들었습니다. 그곳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죄에서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 대형교회들이 각 신흥개발지역에 선점하여 예배당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호세아 4:11-14절입니다. “11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12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하나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그 하나님의 수하를 음란하듯 떠났음이니라 13 저희가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아름다움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행하는도다 14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
이러함으로 북 이스라엘이 먼저 망합니다. 그러나 남쪽 예루살렘의 성전도 우상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성전 안에 온갖 우상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의하여 파괴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고자 하신 집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영영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는 예배의 장소가 없어지는 것입니까? 결코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기에 반드시 성취가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에서 70년 만에 다시 돌아와서 성전이 재건됩니다. 그러나 이 성전의 영광보다 더 나은 영광이 나타날 것을 학개 선지자가 예언하였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참된 성전, 이전의 영광보다 더 나은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그 성전은 건물이나 장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세를 통하여 어디서 예배할지를 말씀하셨는데 그 장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장소가 인격으로 증거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건물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3일 만에 다시 일으키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고발 제목이 됩니다만 예수님은 자기 몸이 성전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말한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시는 그곳이(신12:5,11,14) 장소가 아니라 예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정말 그러한지 요한복음 4:19-26절을 봅니다. “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북쪽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장하는 그리심산도 아니고 남쪽 유대인들이 말하는 예루살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바로 이 때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신령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나오는 신령한 그 무엇이 아니라 성령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여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 예배의 시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때라는 것은 시간과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8:18-20절입니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 세 사람이라도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주님의 이름의 능력에 의하여 모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모세를 통하여 주님의 이름을 두신다는 그 언약의 완성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레위지파가 아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곳이 참으로 예배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더 이상 인간의 공로가 높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만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 안에 있는 것이 예배입니다. 찬송 496장에서 십자가를 의지하고 항상 거기에서 머물겠다고 합니다. 이런 예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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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부터는 이제 들어가서 얻을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하나님께 대한 예배입니다. 구약에서의 예배란 제사가 중심입니다만 넓게 예배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제사와 예배란 인간이 신에게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 드림으로 그 반대급부를 받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먼저 주신 것입니다. 10절을 봅니다. “봉독” 언제 예배합니까? 약속한 땅을 주시고 사방의 대적을 이기게 하셔서 안식을 주시고 평안히 거하게 하실 때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먼저 제사를 드리고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받고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서 살아야 할 가나안 땅은 전혀 다른 곳입니다. 이미 우상이 가득한 땅입니다. 그들의 종교란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들도록 고안된 신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이 투사된 것이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이 다양한 만큼 그들의 신도 다양한 것입니다. 가나안의 다양한 신들의 공통점이란 자신들의 풍요를 위한 신입니다. 그 신이 나무이든 돌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모든 신상과 그 장소들을 파멸하라는 것입니다. 2-3절을 봅니다.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의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 무론하고 파멸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어느 나라이건 다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을 곳곳에 신을 섬기는 곳이 있습니다. 좀 오래된 나무나 큰 바위에 절을 하기도 하고 마을마다 서낭당을 짓고 그곳에서 절하며 제물을 드리며 비는 내용은 다 대동소이합니다. 농사가 잘되고 자식들이 잘되고 마을과 나라의 안녕을 비는 것은 그래도 소박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의 우상숭배는 풍요와 다산을 원하기에 그런 신들을 자극하기 위하여 남녀의 매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성적인 관행이 그들의 제사의식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민수기 25:1-9절을 보시면 미디안 여인들이 그들의 신들에게 제사하는 일에 이스라엘 남자들을 끌어들여서 음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일어나 염병으로 죽어갈 때에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로 질투하여 음행하는 두 남녀를 죽임으로 염병이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죽은 자가 이만사천 명입니다. 이러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한 신상과 신전들을 다 파멸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까? 5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그 거하실 곳으로 나아가서 예배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나아갈 때에 번제와 희생과 십일조와 거제와 서원제와 낙헌예물과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가져다가 드리고 여호와 앞에서 먹고 마시며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이 즐거움에 참예할 자는 자녀와 노비와 함께 즐거워하며 또한 레위인과 함께 나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함께 나누며 누리는 즐거움인 것입니다.
이 내용은 다음에 자세히 보기로 하고 오늘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시는 한 장소를 중심으로 보려고 합니다. 11절을 봅니다. 5절과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13-14절입니다. 삼가라고 합니다.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라고 합니다.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의 택하실 그곳에서 번제물을 드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느 곳인지 지명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지명하실 때까지는 언약궤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서 예배의 장소는 언약궤가 있는 곳이 됩니다. 사사시대에는 언약궤가 실로에 있었습니다. 전쟁 시에는 언약궤를 메고 갔다가 다시 실로에 둡니다. 사사시대를 지나 다윗시대 때 예루살렘으로 옮겨졌고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서는 성전의 지성소에 두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한 장소를 말씀하셨다는 것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물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까지 움직이던 성막이 이제는 고정된 성전의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제는 다른 곳에 가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7:10-13절입니다. “10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기 위한 한 장소를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서의 예배를 거부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솔로몬 사후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지고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남쪽의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배하러 가면 마음이 남쪽의 르호보암 왕에게도 갈까 염려하여 북 이스라엘의 벧엘과 단에 자의적인 성소를 만들었습니다. 그곳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죄에서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 대형교회들이 각 신흥개발지역에 선점하여 예배당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호세아 4:11-14절입니다. “11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12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하나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그 하나님의 수하를 음란하듯 떠났음이니라 13 저희가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아름다움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행하는도다 14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
이러함으로 북 이스라엘이 먼저 망합니다. 그러나 남쪽 예루살렘의 성전도 우상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성전 안에 온갖 우상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의하여 파괴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고자 하신 집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영영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는 예배의 장소가 없어지는 것입니까? 결코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기에 반드시 성취가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에서 70년 만에 다시 돌아와서 성전이 재건됩니다. 그러나 이 성전의 영광보다 더 나은 영광이 나타날 것을 학개 선지자가 예언하였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참된 성전, 이전의 영광보다 더 나은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그 성전은 건물이나 장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세를 통하여 어디서 예배할지를 말씀하셨는데 그 장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장소가 인격으로 증거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건물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3일 만에 다시 일으키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고발 제목이 됩니다만 예수님은 자기 몸이 성전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말한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시는 그곳이(신12:5,11,14) 장소가 아니라 예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정말 그러한지 요한복음 4:19-26절을 봅니다. “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북쪽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장하는 그리심산도 아니고 남쪽 유대인들이 말하는 예루살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바로 이 때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신령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나오는 신령한 그 무엇이 아니라 성령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여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 예배의 시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때라는 것은 시간과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8:18-20절입니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 세 사람이라도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주님의 이름의 능력에 의하여 모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모세를 통하여 주님의 이름을 두신다는 그 언약의 완성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레위지파가 아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곳이 참으로 예배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더 이상 인간의 공로가 높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만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 안에 있는 것이 예배입니다. 찬송 496장에서 십자가를 의지하고 항상 거기에서 머물겠다고 합니다. 이런 예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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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12:1-14 어디서 예배할 것인가? /이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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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0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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