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14:1-10 믿음의 말을 합시다 /한성진

(요약)

말을 둘로 나누면 사실의 말과 믿음의 말이 있다. 그런데 사실의 말은 종종 믿음의 말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참 신앙의 사람이 되어 믿음의 말을 해야 한다. 믿음의 말이란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요, 기적을 기대하는 말이요, 영의 눈으로 보고 하는 말이요, 성경으로 말하는 것이 믿음의 말이다. 신앙생활을 하였다면 말이 달라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가득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말은 인격과 신앙의 표현이요, 그 말은 그대로 열매를 거둔다. 항상 믿음의 말로 나와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자.

(설교)

우리는 늘 말을 하면서 삽니다. 말을 하지 않고 사는 날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하루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다 각자 정당한 말을 하고 산다고들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의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의 말과 믿음의 말이 있습니다. 사실의 말이란 보이는 사실 그대로의 말로서 옳은 것 같지만 믿음의 말이 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목포에서 있던 일인데 어느 성도의 병원에 불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실만 보고 참 안 됐다고 혀를 찼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의 원장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병원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더 좋은 병원을 주시려고 그러신 것이라고 믿음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 병원은 그때를 기회로 더 큰 병원, 더 좋은 병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성경 민수기를 보면 유명한 정탐꾼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나안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이 있었는데 돌아온 12명은 10대 2로 갈라졌습니다. 10명의 보고는 눈에 보이는 대로 사실의 보고였습니다. 그래서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그곳에는 거인족들이 살고 있고 악한 민족들이 곳곳에 거하여 우리로서는 가망이 없다는 보고였습니다(민 13:27-33). 이것은 조금도 거짓이 없는 사실의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달랐습니다. ‘우리가 가 보니 여호와께서 예비하신 땅은 아주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장대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떠났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다 얻을 수 있습니다.’(민 14:8-9) 하는 믿음의 보고였습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이 같은 사실을 보고했지만 내용이 달랐던 것은 한 부류는 사실의 말을, 한 부류는 믿음의 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느 편의 말이 더 옳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실의 말을 물리치시고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을 기뻐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제부터는 사실의 말보다 믿음의 말을 하여 하나님께 복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떤 말이 믿음의 말입니까?

1. 하나님 입장에서 하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벧전 4:11에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그랬습니다. 이처럼 항상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건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실만 보니까 환경이 원망스럽고 남이 원망스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다윗이 여러 난리가 날 때 이것이 누구의 탓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진실로 회개할 수 있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홍해의 사건 역시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는 길에 앞에는 넘실거리는 홍해가 가로놓여 있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실만 보고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것은 앞에 보이는 홍해와 강한 애굽 군대 사이에서 틀림없이 죽음만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 입장에서 보았기에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출 14:13)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눈으로만 자신과 남을 보기 때문에 잘하면 의기양양하거나 칭찬이지만 잘못하면 비판하거나 크게 비관에 빠집니다. 요즘 탤런트 고 이은주 씨 사건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데 왜 죽습니까? 그리고 왜 우울증이 옵니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지 못하고 사람의 관점으로 만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희망이 넘칩니다. 자신이 행복해집니다. 사랑받는 귀한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성경의 관점입니다. 성경으로 만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2. 기적을 기대하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막 11:23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우리들을 구원하실 때도 말씀으로 구원하셨듯 말이란 중요합니다. 우리의 말이 우리 인생을 좌우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야고보 선생은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약 3:3-5)라고 말했습니다. 벧전 3:10-11에도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실만 보고 실망하지 말고 기적을 기대하며 말을 해야 합니다.

오병이어 기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벳새다 들판에서 말씀을 증거하실 때 해가 지고 사람들은 영혼의 배는 불렀지만 육신의 배는 허기가 졌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저들이 허기져서 돌아갈 수 없을 터이니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여기는 빈들이요. 5,000명이나 되니 먹을 것을 구할 수도 없습니다. 사 먹인다 해도 200 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모두 틀림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때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들고 있는 어린이의 손목을 잡고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요 6:9) 사실로만 말하는 제자들과는 달리 안드레는 작은 도시락 하나인 오병이어지만 가지고 와서 무언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왔던 것입니다. 안드레를 통하여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실 때 다 배불리 먹고 부스러기만 해도 열두 광주리나 되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면 다 할 수 있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힘을 주십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믿음 없는 말만 많이 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며 진실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3. 우리의 영의 눈으로 보고 하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히 11:1-2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했습니다. 보이는 것을 말하기란 말하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고 듣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육신으로는 보지 못해도 영의 눈으로 보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기도할 때 비 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청한 대낮이지만 영의 눈으로 비 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도단성의 엘리사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람이 싸울 때였습니다. 아람이 이스라엘을 침략할 때마다 탄로가 나서 크게 졌습니다. 아람 왕은 우리 중에 첩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신하들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이때 한 신하가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왕하 6:12) 아람 왕은 이 말을 듣고 전쟁을 하기 전에 엘리사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엘리사가 있는 도단 성으로 군대를 보내 포위했습니다.

엘리사의 종이 새벽에 성벽에 올라가 보니 수많은 군사들이 도단성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아람 군대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왕하 6:16) 이 얼마나 서로 차이 나는 말입니까? 종의 말은 조금도 틀림이 없는 사실의 말이었습니다. 잘못한 것 없게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종의 눈이 열리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영의 눈이 열리고 보니 아람 군대 수보다 더 많은 천사들이 도단성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의 눈으로 보고 말해야 믿음의 말이 됩니다.

4. 성경으로 말하는 것이 믿음의 말입니다.

요 16:13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오직 자의로 말하시지 않고 듣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만을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오직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말한다면 그것이 믿음의 말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 보세요. 마귀가 이렇게 저렇게 꾀어도 오직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말하는 것이 성경과 다를 때는 절제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가감 없이 의심하지 말고 믿고 그대로 말하고 행하세요. 다른 것이 능력이 아닙니다.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한 율법 학자 중 한 명이 힐렐이라는 랍비입니다. 그가 율법 공부를 할 때에는 가난하였습니다. 어느 날 그가 한 푼도 벌지 못해 토라 학교에 갔지만 수업료 때문에 교실에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빛이 들어가게 만든 지붕창에 올라가 그 창에 얼굴을 대고 공부를 하다가 몸에 눈이 쌓이는 것도 잊어버리고 공부에 빠졌습니다. 아침이 되어 지붕창이 하도 이상해서 쳐다보니 힐렐이 거기 엎드려 공부하다가 그만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 공부에 힘썼기 때문에 힐렐은 당시 최고 학자가 되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신앙은 하나님 말씀에서 옵니다. 성경에 입각한 사고를 가질 때 믿음의 말을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 한 지 얼마나 됩니까? 이제부터 우리의 언어를 바꾸십시다. 사실의 언어가 아닌 믿음의 말을 하십시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는 말, 기적을 믿는 말,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하는 말, 성경으로 하는 말을 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쓰시듯 귀히 쓰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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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14:1-10 믿음의 말을 합시다 /한성진 민14:1-10 믿음의 말을 합시다 /한성진 Reviewed by □□□ on November 03, 2026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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