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하여 모진 고난 중에 광야 생활을 마치고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가나안 땅을 탐지하기 위하여 모세가 여호와의 명을 받들어 각 지파 중에서 한 사람씩 뽑아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보냈으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돌아와 보고를 하는데,
"가나안 땅에 갔더니 정말로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들이 터를 잡고 있으니 그들의 모습이 마치 기골이 장대한 대장부들이었으며 우리의 모습은 마치 메뚜기와 같았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아마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상반된 보고를 하는데, "가나안 땅이 아름다운 땅이요 과연 여호와께서 준비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민족은 별것이 아니요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할 수가 있으니 여러분 결단코 두려워하지 마시오"라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순종과 불신앙의 패역한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믿지 못하고 부정적인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걱정을 합니다. 이제 앞길이 막막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자기들을 여기까지 인도한 모세와 아론을 돌로 치려고 달려들면서 하는 말이,
"아 원통하구나 어찌하여 우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아낙 자손들에게 죽을 것이냐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아니면 광야에서 죽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외치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들의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27절에 말씀하시기를,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사람들의 소리를 내가 어느 때까지 참고 들으랴 그들의 원망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은즉 이제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 결국 하나님은 당신의 귀에 들린 대로 행하셨으니 "출애굽한 1세대 백성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되었으며 오직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28절에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에게 행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하는 소리를 듣고 그대로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어떤 사람은 무섭게 들릴 수도 있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말씀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섭게 들릴까요? 바로 함부로 떠들며 입술의 죄를 짓는 불신앙의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말씀이요, 갈급한 심령에 하나님께 간구하는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말씀으로 들릴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평소에 하던 말이 실제로 생활 속에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시골 어느 교회에 여전도회장의 직분을 맡은 여집사님이 있는데 이분이 얼마나 말이 거친지 만나는 사람마다 다투기를 좋아하고 또 악담을 잘했답니다. 이 여집사님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엄마의 성격을 닮아서 그런지 어찌나 부산스럽고 장난기가 심했던지 말썽을 자주 부리는 바람에 그때마다 말씨 거칠은 여집사님이 아들들에게 하는 말이,
"이 망할 놈들, 저 자식들이 죽어야 내가 속이 시원하지 내가 언제나 편할꼬"라고 악담을 하였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여집사의 두 아들이 한꺼번에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며칠 간격으로 두 아들이 모두 죽고 말았답니다. 이 여집사님 평소 말버릇대로 두 아들이 죽었지만 속이 시원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은 슬픔과 아픔으로 삶에 의욕을 잃어버렸으며 그 후로 여집사님은 말문을 닫아버리고 꼭 필요한 말만을 하였답니다.
우리는 아무리 빈말이라도 필요 없는 말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을 주기 위하여 구원하셨건만 불평과 불신앙의 이스라엘 백성은 조금만 힘들어도 "목말라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애굽에는 매장지가 없어서 여기까지 우리를 끌어냈느냐 차라리 여기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당신의 귀에 들린 대로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셔서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형편이 어려워지면 다른 사람들에게 화풀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은 믿음이 좋았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어느 땐가부터 교회에 와서 하나님과 교인에게 화풀이를 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교회에 이것저것을 험담합니다. 교회가 지저분하다느니 설교가 은혜가 없다느니 음악 소리가 크다느니, 돈을 함부로 쓴다느니, 어느 집사는 어떻다느니, 주보 헌금자 명단에 자기의 이름이 빠지면 난리가 납니다. 이렇게 자신의 어려움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사람은 한마디로 믿음이 없기 때문이요 체험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한 여집사님은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해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건강하게 하심을 감사하였으며 가정에 자녀들이 잘 자라는 것을 감사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은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화려한 궁전에서 살아도 감사가 없고 불평만이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두막에 살아도 매사를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은 환경과 여건에 따라서 감사하거나 불평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형편이 어떻든지 항상 자기 형편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때에 하나님은 그 감사의 소리를 듣고 그의 형편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욥이라는 사람은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다 잃고 열 자녀가 다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귀의 유혹에 소리를 듣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찬양을 하였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으로(벌거숭이 빈손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되어서 돌아갈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 하나님이요 취하시는 자도 여호와 하나님이시니 오직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리라"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욥의 믿음을 보시고 결국 하나님은 욥에게 갑절의 축복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자세인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란 마치 심는 대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칭찬을 심으면 칭찬이 돌아올 것이요 비평을 심으면 비평이 내게 돌아올 것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남의 흉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남을 비평하고 흉을 보는 것은 바로 자기를 흉보는 것이요 하나님을 흉보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할 때의 모습을 보면 검지 손가락 하나는 상대방을 향하지만 나머지는 자기를 향하고 있으며 엄지손가락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남의 허물 하나를 이야기하지만 자기 허물이 세 개요 결국 남을 흉보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산에서 말할 때 울리는 메아리와 같아서 남을 칭찬하면 칭찬이 돌아오며 남을 흉을 보면 흉이 나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에 가서 "나는 너를 미워한다" 하면 산이 "나는 너를 미워한다"라고 말할 것이며 또 "나는 너를 사랑한다" 말하면 산이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리를 귀로 들으시고 그대로 행하십니다. 요한복음 1장 45절에서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먼저 예수님은 빌립을 부르시고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합니다. "나다나엘아 나사렛에서 메시야가 나왔다 나는 그 예수를 만났다 가보자" 그러나 나다나엘은 "빌립아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라 무슨 나사렛에 선한 것이 나겠느냐?"면서 빌립의 말을 믿지 않고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를 하자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나다나엘아 너의 속에 간사한 것이 없으니 너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로다" 그 소리에 나다나엘이 깜짝 놀라 묻습니다. "당신이 누군데 나를 언제 보았다고 그런 말을 하십니까?"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소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소리를 듣고 그대로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여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믿음의 사람들은 거짓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들 세 명이 길을 가다가 동전 하나를 주웠습니다. 서로 갖겠다고 싸우다가 거짓말을 제일 잘하는 아이가 갖기로 하였습니다. 첫 번째 아이가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산이 무너진다고 작대기로 산을 받치러 나갔다"고 말하였습니다. 두 번째 아이는 "우리 엄마는 비가 안 와서 논이 말랐다고 논에 오줌 누러 갔다"고 말하였습니다. 세 번째 아이는 "우리 누나는 하늘이 찢어져서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늘을 꿰매러 간다면서 바늘하고 실을 갖고 갔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서로 비슷하여서 결정을 못 하고 서당에 가서 훈장님에게 판결을 내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은 훈장님이 아이들에게 혼을 내면서 말하였습니다. "아니 할 것이 없어서 거짓말 내기를 하느냐 나는 평생에 한 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단다 이놈들아"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세 명의 아이들이 상의를 하더니 동전을 훈장님 앞에 놓으면서 "훈장님이 1등입니다. 이 돈은 훈장님 것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물론 이 말은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거짓말은 마귀가 하는 말이요, 그러므로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마귀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와 대화를 하는 바람에 마귀의 꼬임에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마귀와 대화를 나누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은 결코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말끝마다 "차라리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으니 그들이 보아도 그랬을 것이다"라고 자신을 비하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마귀의 꼬임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9절에서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니 두려워 말라" 외쳤으니 이것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언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항상 감사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40일간 대화를 나누고 내려오자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남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바로 모세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귀의 말버릇을 닮지 말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늘려야 할 것입니다.
이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귀에 들리도록 말을 하되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진실된 말을 하여야 합니다. 진실된 말을 해야만 진실한 마음을 소유하게 되며 성도의 믿음은 진실한 마음 가운데서 성장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을 말하면 마음까지도 거짓되게 만듭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겉으로는 신앙이 좋은 척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팔았지만 감추고 거짓을 말함으로써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거짓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진실을 말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이 진실하시니 우리도 역시 진실하여야 합니다.
두 번째, 믿음의 사람들은 남을 비판하기보다 격려하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비판하기는 쉬워도 남을 격려하기란 참으로 인색합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 보니까 IMF를 맞이하여 남편들이 제일 아내에게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따뜻한 말 한마디의 격려라는 것입니다. 어디 남편뿐이겠습니까? 여성분들도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격려가 필요한 시대인 것입니다. "여보 힘들지요, 어렵지요, 용기를 내세요.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또 제가 항상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잖아요. 당신은 승리할 거예요." "당신도 힘들지? 변변치 못한 봉급으로 살림하랴 애들 뒷바라지하랴 여보 어려움 많지? 힘을 내요. 사랑하는 애들이 있고 내가 있잖아."
누에는 뽕을 먹고 살지만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사랑은 특별히 돈 드는 것 아닙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바로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격려 대신 비평을 하고 책망을 한다면 그렇잖아도 힘든 세상 더욱 힘이 들 것입니다. 미국에서 일란성 쌍둥이가 고아원에 들어와서 각각 다른 가정으로 양자를 보냈는데 훗날에 보니까 한 사람은 국회의원이 되었고 또한 사람은 죄수가 되어서 감옥소에 있더랍니다. 그래서 학자가 그들의 성장 과정을 조사해 보았더니 국회의원이 된 양부모는 "항상 격려하는 말을 하였답니다.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해 주었으며, 죄수가 된 사람의 양부모는 항상 책망을 하였답니다. "바보같이 그런 것도 못하냐, 너는 가망이 없어." 결국 그 아이는 가망이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말은 씨앗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세 번째, 생명을 살리는 살아있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생명의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에 의하여 전도를 받고 예수 믿게 되었다면 우리는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외로운 불쌍한 슬픔과 좌절 속에서 방황하는 눈물로 흐느적거리는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기주의요 사랑에 인색한 잔인한 사람인 것입니다. 지옥에 떨어져 그 영혼들이 소금 치듯 고통당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어찌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않겠습니까?
믿는 우리 기독교인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근본이 되어야 하며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통하여 육신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입술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외치면서 우리의 행동에서 사랑이 없고 오히려 인색함이 전달된다면 그들은 우리를 비웃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실천된다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통하여 육신을 입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치유가 일어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날 선 검과 같고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10년을 교회에 다녀도 입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내 신앙을 고백하지 않고 증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구원은 완전한 것이 못됩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입술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시인하고 고백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죄악 속에 살던 영혼을 구원하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데 우리가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밖에 없습니다.
누에는 입에서 나온 실을 가지고 집을 짓고 그 속에서 삽니다. 사람도 자기의 입에서 나온 말대로 형편과 환경이 이루어지고 자기의 입에서 나온 말대로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시편 141편의 말씀처럼 우리는 우리의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고 입술을 조심하여야 합니다. 사람의 혀는 부드럽고 뼈도 없지만 이것을 잘못 쓰면 칼보다 무서운 것으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죽이기도 함으로 우리는 입술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6절에 보면 "누구든지 경건하기 원하면 자기의 입술에 자갈을 먹여야 할 것이며 만약에 입술에 자갈을 먹이지 아니하면 그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말을 함부로 놀리면서 남을 흉보고 혈기를 부린다면 그의 경건은 헛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경건은 입술부터 경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입술을 어떻게 하여야 깨끗한 입술이 될 것인가? 이사야 6장 6절에 의하면 우리의 부정한 입술은 하나님의 성령의 숯불이 닿으니 깨끗해졌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우리는 성령의 숯불로 정화된 입술이 되어서 소망의 기도 소리와 소망의 말소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귀에 들리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역대상 7장 13절에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혹시 하늘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가물고 메뚜기가 너희 곡식을 도적질하고 너희가 병에 걸릴지라도 내 백성들이여 너희는 악을 행치 말고 기도로 내게 구하면 하늘에서 내가 너희의 소리를 듣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혹시 삶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문제가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귀에 들리도록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소리를 듣고 고쳐 주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에게 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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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땅에 갔더니 정말로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들이 터를 잡고 있으니 그들의 모습이 마치 기골이 장대한 대장부들이었으며 우리의 모습은 마치 메뚜기와 같았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아마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상반된 보고를 하는데, "가나안 땅이 아름다운 땅이요 과연 여호와께서 준비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민족은 별것이 아니요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할 수가 있으니 여러분 결단코 두려워하지 마시오"라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순종과 불신앙의 패역한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믿지 못하고 부정적인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걱정을 합니다. 이제 앞길이 막막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자기들을 여기까지 인도한 모세와 아론을 돌로 치려고 달려들면서 하는 말이,
"아 원통하구나 어찌하여 우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아낙 자손들에게 죽을 것이냐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아니면 광야에서 죽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외치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들의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27절에 말씀하시기를,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사람들의 소리를 내가 어느 때까지 참고 들으랴 그들의 원망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은즉 이제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 결국 하나님은 당신의 귀에 들린 대로 행하셨으니 "출애굽한 1세대 백성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되었으며 오직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28절에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에게 행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하는 소리를 듣고 그대로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어떤 사람은 무섭게 들릴 수도 있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말씀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섭게 들릴까요? 바로 함부로 떠들며 입술의 죄를 짓는 불신앙의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말씀이요, 갈급한 심령에 하나님께 간구하는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말씀으로 들릴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평소에 하던 말이 실제로 생활 속에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시골 어느 교회에 여전도회장의 직분을 맡은 여집사님이 있는데 이분이 얼마나 말이 거친지 만나는 사람마다 다투기를 좋아하고 또 악담을 잘했답니다. 이 여집사님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엄마의 성격을 닮아서 그런지 어찌나 부산스럽고 장난기가 심했던지 말썽을 자주 부리는 바람에 그때마다 말씨 거칠은 여집사님이 아들들에게 하는 말이,
"이 망할 놈들, 저 자식들이 죽어야 내가 속이 시원하지 내가 언제나 편할꼬"라고 악담을 하였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여집사의 두 아들이 한꺼번에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며칠 간격으로 두 아들이 모두 죽고 말았답니다. 이 여집사님 평소 말버릇대로 두 아들이 죽었지만 속이 시원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은 슬픔과 아픔으로 삶에 의욕을 잃어버렸으며 그 후로 여집사님은 말문을 닫아버리고 꼭 필요한 말만을 하였답니다.
우리는 아무리 빈말이라도 필요 없는 말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을 주기 위하여 구원하셨건만 불평과 불신앙의 이스라엘 백성은 조금만 힘들어도 "목말라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애굽에는 매장지가 없어서 여기까지 우리를 끌어냈느냐 차라리 여기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당신의 귀에 들린 대로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셔서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형편이 어려워지면 다른 사람들에게 화풀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은 믿음이 좋았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어느 땐가부터 교회에 와서 하나님과 교인에게 화풀이를 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교회에 이것저것을 험담합니다. 교회가 지저분하다느니 설교가 은혜가 없다느니 음악 소리가 크다느니, 돈을 함부로 쓴다느니, 어느 집사는 어떻다느니, 주보 헌금자 명단에 자기의 이름이 빠지면 난리가 납니다. 이렇게 자신의 어려움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사람은 한마디로 믿음이 없기 때문이요 체험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한 여집사님은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해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건강하게 하심을 감사하였으며 가정에 자녀들이 잘 자라는 것을 감사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은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화려한 궁전에서 살아도 감사가 없고 불평만이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두막에 살아도 매사를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은 환경과 여건에 따라서 감사하거나 불평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형편이 어떻든지 항상 자기 형편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때에 하나님은 그 감사의 소리를 듣고 그의 형편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욥이라는 사람은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다 잃고 열 자녀가 다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귀의 유혹에 소리를 듣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찬양을 하였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으로(벌거숭이 빈손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되어서 돌아갈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 하나님이요 취하시는 자도 여호와 하나님이시니 오직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리라"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욥의 믿음을 보시고 결국 하나님은 욥에게 갑절의 축복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자세인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란 마치 심는 대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칭찬을 심으면 칭찬이 돌아올 것이요 비평을 심으면 비평이 내게 돌아올 것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남의 흉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남을 비평하고 흉을 보는 것은 바로 자기를 흉보는 것이요 하나님을 흉보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할 때의 모습을 보면 검지 손가락 하나는 상대방을 향하지만 나머지는 자기를 향하고 있으며 엄지손가락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남의 허물 하나를 이야기하지만 자기 허물이 세 개요 결국 남을 흉보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산에서 말할 때 울리는 메아리와 같아서 남을 칭찬하면 칭찬이 돌아오며 남을 흉을 보면 흉이 나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에 가서 "나는 너를 미워한다" 하면 산이 "나는 너를 미워한다"라고 말할 것이며 또 "나는 너를 사랑한다" 말하면 산이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리를 귀로 들으시고 그대로 행하십니다. 요한복음 1장 45절에서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먼저 예수님은 빌립을 부르시고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합니다. "나다나엘아 나사렛에서 메시야가 나왔다 나는 그 예수를 만났다 가보자" 그러나 나다나엘은 "빌립아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라 무슨 나사렛에 선한 것이 나겠느냐?"면서 빌립의 말을 믿지 않고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를 하자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나다나엘아 너의 속에 간사한 것이 없으니 너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로다" 그 소리에 나다나엘이 깜짝 놀라 묻습니다. "당신이 누군데 나를 언제 보았다고 그런 말을 하십니까?"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소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소리를 듣고 그대로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여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믿음의 사람들은 거짓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들 세 명이 길을 가다가 동전 하나를 주웠습니다. 서로 갖겠다고 싸우다가 거짓말을 제일 잘하는 아이가 갖기로 하였습니다. 첫 번째 아이가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산이 무너진다고 작대기로 산을 받치러 나갔다"고 말하였습니다. 두 번째 아이는 "우리 엄마는 비가 안 와서 논이 말랐다고 논에 오줌 누러 갔다"고 말하였습니다. 세 번째 아이는 "우리 누나는 하늘이 찢어져서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늘을 꿰매러 간다면서 바늘하고 실을 갖고 갔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서로 비슷하여서 결정을 못 하고 서당에 가서 훈장님에게 판결을 내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은 훈장님이 아이들에게 혼을 내면서 말하였습니다. "아니 할 것이 없어서 거짓말 내기를 하느냐 나는 평생에 한 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단다 이놈들아"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세 명의 아이들이 상의를 하더니 동전을 훈장님 앞에 놓으면서 "훈장님이 1등입니다. 이 돈은 훈장님 것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물론 이 말은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거짓말은 마귀가 하는 말이요, 그러므로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마귀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와 대화를 하는 바람에 마귀의 꼬임에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마귀와 대화를 나누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은 결코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말끝마다 "차라리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으니 그들이 보아도 그랬을 것이다"라고 자신을 비하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마귀의 꼬임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9절에서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니 두려워 말라" 외쳤으니 이것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언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항상 감사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40일간 대화를 나누고 내려오자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남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바로 모세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귀의 말버릇을 닮지 말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늘려야 할 것입니다.
이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귀에 들리도록 말을 하되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진실된 말을 하여야 합니다. 진실된 말을 해야만 진실한 마음을 소유하게 되며 성도의 믿음은 진실한 마음 가운데서 성장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을 말하면 마음까지도 거짓되게 만듭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겉으로는 신앙이 좋은 척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팔았지만 감추고 거짓을 말함으로써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거짓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진실을 말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이 진실하시니 우리도 역시 진실하여야 합니다.
두 번째, 믿음의 사람들은 남을 비판하기보다 격려하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비판하기는 쉬워도 남을 격려하기란 참으로 인색합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 보니까 IMF를 맞이하여 남편들이 제일 아내에게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따뜻한 말 한마디의 격려라는 것입니다. 어디 남편뿐이겠습니까? 여성분들도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격려가 필요한 시대인 것입니다. "여보 힘들지요, 어렵지요, 용기를 내세요.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또 제가 항상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잖아요. 당신은 승리할 거예요." "당신도 힘들지? 변변치 못한 봉급으로 살림하랴 애들 뒷바라지하랴 여보 어려움 많지? 힘을 내요. 사랑하는 애들이 있고 내가 있잖아."
누에는 뽕을 먹고 살지만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사랑은 특별히 돈 드는 것 아닙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바로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격려 대신 비평을 하고 책망을 한다면 그렇잖아도 힘든 세상 더욱 힘이 들 것입니다. 미국에서 일란성 쌍둥이가 고아원에 들어와서 각각 다른 가정으로 양자를 보냈는데 훗날에 보니까 한 사람은 국회의원이 되었고 또한 사람은 죄수가 되어서 감옥소에 있더랍니다. 그래서 학자가 그들의 성장 과정을 조사해 보았더니 국회의원이 된 양부모는 "항상 격려하는 말을 하였답니다.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해 주었으며, 죄수가 된 사람의 양부모는 항상 책망을 하였답니다. "바보같이 그런 것도 못하냐, 너는 가망이 없어." 결국 그 아이는 가망이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말은 씨앗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세 번째, 생명을 살리는 살아있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생명의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에 의하여 전도를 받고 예수 믿게 되었다면 우리는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외로운 불쌍한 슬픔과 좌절 속에서 방황하는 눈물로 흐느적거리는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기주의요 사랑에 인색한 잔인한 사람인 것입니다. 지옥에 떨어져 그 영혼들이 소금 치듯 고통당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어찌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않겠습니까?
믿는 우리 기독교인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근본이 되어야 하며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통하여 육신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입술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외치면서 우리의 행동에서 사랑이 없고 오히려 인색함이 전달된다면 그들은 우리를 비웃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실천된다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통하여 육신을 입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치유가 일어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날 선 검과 같고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10년을 교회에 다녀도 입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내 신앙을 고백하지 않고 증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구원은 완전한 것이 못됩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입술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시인하고 고백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죄악 속에 살던 영혼을 구원하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데 우리가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밖에 없습니다.
누에는 입에서 나온 실을 가지고 집을 짓고 그 속에서 삽니다. 사람도 자기의 입에서 나온 말대로 형편과 환경이 이루어지고 자기의 입에서 나온 말대로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시편 141편의 말씀처럼 우리는 우리의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고 입술을 조심하여야 합니다. 사람의 혀는 부드럽고 뼈도 없지만 이것을 잘못 쓰면 칼보다 무서운 것으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죽이기도 함으로 우리는 입술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6절에 보면 "누구든지 경건하기 원하면 자기의 입술에 자갈을 먹여야 할 것이며 만약에 입술에 자갈을 먹이지 아니하면 그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말을 함부로 놀리면서 남을 흉보고 혈기를 부린다면 그의 경건은 헛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경건은 입술부터 경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입술을 어떻게 하여야 깨끗한 입술이 될 것인가? 이사야 6장 6절에 의하면 우리의 부정한 입술은 하나님의 성령의 숯불이 닿으니 깨끗해졌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우리는 성령의 숯불로 정화된 입술이 되어서 소망의 기도 소리와 소망의 말소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귀에 들리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역대상 7장 13절에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혹시 하늘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가물고 메뚜기가 너희 곡식을 도적질하고 너희가 병에 걸릴지라도 내 백성들이여 너희는 악을 행치 말고 기도로 내게 구하면 하늘에서 내가 너희의 소리를 듣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혹시 삶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문제가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귀에 들리도록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소리를 듣고 고쳐 주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에게 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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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14:28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 /이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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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0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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