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주변의 나라들처럼 왕을 세우리라는 뜻이 나거든 이런 왕을 세우라고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이미 출애굽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용사로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셔서 약속의 땅에 심으시고 영원무궁히 다스리실 것을 모세의 찬양을 통하여 나타내신 것입니다(출 15:3, 18).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시지 않으시지만 이스라엘을 친히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스리시는 방법은 자신의 말씀을 주심으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만 있어도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를 삼으시기 위하여 세우신 나라이기에 제사장이 율법을 잘 가르치면 됩니다. 물론 장로들이 있어서 백성들을 다스리지만 눈에 보이는 왕이 없어도 되는 나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믿음으로 살면 되는데 이런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우려는 마음이 들면 이런 왕을 세우라고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왕을 세워야 합니까? 15-20절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여야 하고 네 형제 중에서 세워야 하며 말을 많이 두지 말고 말을 얻기 위해 애굽으로 가지 말아야 하며 아내를 많이 두지 말고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두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왕위에 오르면 제사장 앞에 보관한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의 마음이 형제 위에 교만하여지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받고서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다. 여호수아가 살아있을 동안은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다스립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죽으면서 백성의 지도자를 세우지 않고 죽습니다. 이제 약속의 땅에 들어왔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순종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사시대를 보면 왕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고 합니다. 위기 시에 사사를 일으켜 세웠습니다만 사사는 세습이 안 되는 직분입니다. 백성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사시대 말기 즉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 시대 때에 백성들이 왕을 요구합니다. 사무엘상 8:4-9절입니다. “봉독” 사무엘이 왕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한 것은 자기를 버린다는 생각이었는가 봅니다. 그래서 7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너를 버림이 아니라 나를 버렸다고 합니다. 인간 왕을 세운다는 것은 결국 보이지 아니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왕 되심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한다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왕을 세우되 엄히 경계하고 왕의 제도를 알려주라고 합니다. 왕을 세우면 엄청난 세금을 내어야 하고 자기의 아들과 딸들이 왕을 섬겨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도 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왕이 있어야 적과 싸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세운 왕이 사울입니다. 처음에는 겸손하였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 여호와 하나님보다 백성들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더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울 왕이 버림을 받습니다. 사울 대신에 다윗 왕이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사울은 악신이 들고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여호와의 택하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기름부음을 받았기에 골리앗을 물리친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다고 한 것이 바로 왕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시기를 받고 여러 번의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다윗은 이 신명기의 왕의 제도에 거의 합치하는 인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형제입니다. 왜 외국인을 왕으로 세우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은 언약의 백성이기에 그 언약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을 많이 두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윗 왕이 많은 군대가 있었기에 적을 물리쳤습니다만 적으로부터 노획한 말의 힘줄을 끊어버린 일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8:3-4절입니다. “3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저를 쳐서 4 그 마병 일천 칠백과 보병 이만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마병 일천 칠백이라면 이인 일조로 병거를 탔다고 해도 병거가 850대가 됩니다. 그리고 말은 병거 한 대당 두 마리가 끌면 말의 수가 일천 칠백이 됩니다. 그런데 병거 일백 승의 말만 남겼다면 200마리만 남기고 나머지 말의 힘줄을 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탱크나 전차와 같은 병거와 말들의 힘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33:16-17절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17 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시편 32편과 34편이 다 다윗의 노래인데 33편은 제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시편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편의 찬송은 다윗이 노획한 말들의 힘줄을 자르면서 불렀을 것이라고 추측을 해 보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이 없이는 말의 힘줄을 자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하였는데 다윗의 아내도 여러 명이 됩니다만 그러나 고대의 왕으로서는 정말 몇 명 되지 않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아내를 많이 둔다는 것은 결국 지방의 토호 세력과 연대하기 위한 정략결혼이나 또는 외국과의 정략적인 결혼을 함으로 아내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아내를 많이 두면 그 아내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섬기게 할 것이기 때문에 금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두지 말라고 합니다. 왕이란 말과 병거와 아내가 많아야 하고 또 은금이 풍부하여야 힘이 있고 권세가 있는 왕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말도 얼마 없고 아내도 많지 않고 은금도 없다면 그것이 무슨 왕다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의 진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왕의 힘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 왕은 자기의 소유를 성전 짓는 일에 드린 것입니다. 그것도 기쁨으로 아낌없이 드린 것입니다. 왕이 은금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율법에 대체적으로 합당한 왕이었지만 그러나 치명적인 죄를 범하게 되는 사건이 바로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취한 것입니다. 자기가 왕으로서 백성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주인이 자기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이때는 다윗이 정복을 거의 다 하고 신하들이 전쟁터 나가고 자신은 왕궁에 있을 때에 이런 죄를 범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여호와의 종으로서 백성들을 섬기는 왕이 아니라 주변 나라의 왕들처럼 백성을 자기 소유물처럼 여겼기에 죄를 짓고서 죄인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범죄로 인하여 우리아도 희생당하고 밧세바와 사이에 태어난 아들도 죽고 또 다윗의 집안에 집안싸움이 계속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외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왕입니다.
그런데 다윗 다음의 왕인 솔로몬은 어떠하였습니까? 처음에는 지혜를 구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지혜만이 아니라 부귀와 장수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솔로몬이 그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았습니다. 지난주 오후에 이 부분은 잘 들었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지켜야 할 일과는 정반대로 행하였습니다. 열왕기상 9장에서 10장을 보면 솔로몬이 무역을 하여 벌어들인 금과 은이 얼마나 많은지 세금으로만 666달란트가 됩니다. 금으로 큰 방패 이백을 만들고 작은 방패 삼백을 만들었습니다. 은은 너무나 흔해서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말과 병거를 많이 수입하여 모을 뿐만 아니라 중계상인 역할을 하여 수입을 잡았습니다.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일천 사백이며 마병이 일만 이천이라고 합니다. 또한 아내는 얼마나 많이 두었는지 왕후가 3백이며 비빈이 7백이라고 하니 천 명의 아내가 됩니다. 이들을 솔로몬이 연애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왕의 마음을 미혹하여 돌이킴으로 이스라엘에 온갖 우상숭배가 가득해졌습니다. 이것이 왕의 제도를 미리 말씀하시고 또 그 왕의 곁에 율법서를 늘 가까이 두고 읽어서 자신이 지키고 백성들을 다스려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 결국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누어지고 말았습니다.
솔로몬 이후의 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왕들과 백성들이 하는 일이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인간의 왕을 의지하니 자기 나라의 왕이 약하면 보다 더 강한 나라의 왕들의 도움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의 강대국으로 사절단 보내기에 바쁜 것입니다.
이사야서 31:1-3절을 봅니다.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 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이 모습이 오늘 모습이 아닙니까? 구원하지도 못할 것들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기에 다 함께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왕을 허락하신 것은 인간들이 세운 왕이 이렇게 부실함을 보여주시면서 온전한 왕을 세우실 것을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셨습니다. 호세아 13:9-11절입니다. “9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10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방백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11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왕을 구한 것이 여호와를 대적한 것이기에 분노로 왕을 세우시고 진노로 폐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조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면서 끊어집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새로운 왕을 기대합니다. 그 왕은 다윗에게 언약하신 바를 이루실 왕입니다. 다윗에게 그 왕위를 영원히 주시겠다는 그 언약을 인간 왕들은 이루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다윗의 왕국을 일으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모스 9:11절입니다. “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예언의 성취를 사도행전 15장에서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 예루살렘 사도들의 회의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세우신 분이 누구십니까?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시며 성결의 영으로는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분은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가 되시지만 그는 이 땅에 어떤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말이 한 마리도 없어서 나귀 새끼를 빌려 타신 분이십니다. 아내는커녕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은금은커녕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왕의 직분을 수행하신 것입니다. 누가 이분을 나의 왕으로 주님으로 모시고 살겠습니까? 오직 주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 세상에서 버림받은 왕의 뒤를 미련하고 어리석은 모습으로 따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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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만 있어도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를 삼으시기 위하여 세우신 나라이기에 제사장이 율법을 잘 가르치면 됩니다. 물론 장로들이 있어서 백성들을 다스리지만 눈에 보이는 왕이 없어도 되는 나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믿음으로 살면 되는데 이런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우려는 마음이 들면 이런 왕을 세우라고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왕을 세워야 합니까? 15-20절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여야 하고 네 형제 중에서 세워야 하며 말을 많이 두지 말고 말을 얻기 위해 애굽으로 가지 말아야 하며 아내를 많이 두지 말고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두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왕위에 오르면 제사장 앞에 보관한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의 마음이 형제 위에 교만하여지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받고서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다. 여호수아가 살아있을 동안은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다스립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죽으면서 백성의 지도자를 세우지 않고 죽습니다. 이제 약속의 땅에 들어왔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순종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사시대를 보면 왕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고 합니다. 위기 시에 사사를 일으켜 세웠습니다만 사사는 세습이 안 되는 직분입니다. 백성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사시대 말기 즉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 시대 때에 백성들이 왕을 요구합니다. 사무엘상 8:4-9절입니다. “봉독” 사무엘이 왕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한 것은 자기를 버린다는 생각이었는가 봅니다. 그래서 7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너를 버림이 아니라 나를 버렸다고 합니다. 인간 왕을 세운다는 것은 결국 보이지 아니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왕 되심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한다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왕을 세우되 엄히 경계하고 왕의 제도를 알려주라고 합니다. 왕을 세우면 엄청난 세금을 내어야 하고 자기의 아들과 딸들이 왕을 섬겨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도 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왕이 있어야 적과 싸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세운 왕이 사울입니다. 처음에는 겸손하였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 여호와 하나님보다 백성들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더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울 왕이 버림을 받습니다. 사울 대신에 다윗 왕이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사울은 악신이 들고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여호와의 택하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기름부음을 받았기에 골리앗을 물리친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다고 한 것이 바로 왕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시기를 받고 여러 번의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다윗은 이 신명기의 왕의 제도에 거의 합치하는 인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형제입니다. 왜 외국인을 왕으로 세우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은 언약의 백성이기에 그 언약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을 많이 두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윗 왕이 많은 군대가 있었기에 적을 물리쳤습니다만 적으로부터 노획한 말의 힘줄을 끊어버린 일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8:3-4절입니다. “3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저를 쳐서 4 그 마병 일천 칠백과 보병 이만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마병 일천 칠백이라면 이인 일조로 병거를 탔다고 해도 병거가 850대가 됩니다. 그리고 말은 병거 한 대당 두 마리가 끌면 말의 수가 일천 칠백이 됩니다. 그런데 병거 일백 승의 말만 남겼다면 200마리만 남기고 나머지 말의 힘줄을 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탱크나 전차와 같은 병거와 말들의 힘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33:16-17절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17 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시편 32편과 34편이 다 다윗의 노래인데 33편은 제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시편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편의 찬송은 다윗이 노획한 말들의 힘줄을 자르면서 불렀을 것이라고 추측을 해 보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이 없이는 말의 힘줄을 자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하였는데 다윗의 아내도 여러 명이 됩니다만 그러나 고대의 왕으로서는 정말 몇 명 되지 않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아내를 많이 둔다는 것은 결국 지방의 토호 세력과 연대하기 위한 정략결혼이나 또는 외국과의 정략적인 결혼을 함으로 아내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아내를 많이 두면 그 아내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섬기게 할 것이기 때문에 금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두지 말라고 합니다. 왕이란 말과 병거와 아내가 많아야 하고 또 은금이 풍부하여야 힘이 있고 권세가 있는 왕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말도 얼마 없고 아내도 많지 않고 은금도 없다면 그것이 무슨 왕다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의 진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왕의 힘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 왕은 자기의 소유를 성전 짓는 일에 드린 것입니다. 그것도 기쁨으로 아낌없이 드린 것입니다. 왕이 은금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율법에 대체적으로 합당한 왕이었지만 그러나 치명적인 죄를 범하게 되는 사건이 바로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취한 것입니다. 자기가 왕으로서 백성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주인이 자기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이때는 다윗이 정복을 거의 다 하고 신하들이 전쟁터 나가고 자신은 왕궁에 있을 때에 이런 죄를 범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여호와의 종으로서 백성들을 섬기는 왕이 아니라 주변 나라의 왕들처럼 백성을 자기 소유물처럼 여겼기에 죄를 짓고서 죄인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범죄로 인하여 우리아도 희생당하고 밧세바와 사이에 태어난 아들도 죽고 또 다윗의 집안에 집안싸움이 계속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외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왕입니다.
그런데 다윗 다음의 왕인 솔로몬은 어떠하였습니까? 처음에는 지혜를 구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지혜만이 아니라 부귀와 장수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솔로몬이 그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았습니다. 지난주 오후에 이 부분은 잘 들었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지켜야 할 일과는 정반대로 행하였습니다. 열왕기상 9장에서 10장을 보면 솔로몬이 무역을 하여 벌어들인 금과 은이 얼마나 많은지 세금으로만 666달란트가 됩니다. 금으로 큰 방패 이백을 만들고 작은 방패 삼백을 만들었습니다. 은은 너무나 흔해서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말과 병거를 많이 수입하여 모을 뿐만 아니라 중계상인 역할을 하여 수입을 잡았습니다.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일천 사백이며 마병이 일만 이천이라고 합니다. 또한 아내는 얼마나 많이 두었는지 왕후가 3백이며 비빈이 7백이라고 하니 천 명의 아내가 됩니다. 이들을 솔로몬이 연애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왕의 마음을 미혹하여 돌이킴으로 이스라엘에 온갖 우상숭배가 가득해졌습니다. 이것이 왕의 제도를 미리 말씀하시고 또 그 왕의 곁에 율법서를 늘 가까이 두고 읽어서 자신이 지키고 백성들을 다스려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 결국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누어지고 말았습니다.
솔로몬 이후의 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왕들과 백성들이 하는 일이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인간의 왕을 의지하니 자기 나라의 왕이 약하면 보다 더 강한 나라의 왕들의 도움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의 강대국으로 사절단 보내기에 바쁜 것입니다.
이사야서 31:1-3절을 봅니다.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 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이 모습이 오늘 모습이 아닙니까? 구원하지도 못할 것들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기에 다 함께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왕을 허락하신 것은 인간들이 세운 왕이 이렇게 부실함을 보여주시면서 온전한 왕을 세우실 것을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셨습니다. 호세아 13:9-11절입니다. “9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10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방백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11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왕을 구한 것이 여호와를 대적한 것이기에 분노로 왕을 세우시고 진노로 폐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조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면서 끊어집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새로운 왕을 기대합니다. 그 왕은 다윗에게 언약하신 바를 이루실 왕입니다. 다윗에게 그 왕위를 영원히 주시겠다는 그 언약을 인간 왕들은 이루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다윗의 왕국을 일으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모스 9:11절입니다. “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예언의 성취를 사도행전 15장에서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 예루살렘 사도들의 회의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세우신 분이 누구십니까?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시며 성결의 영으로는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분은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가 되시지만 그는 이 땅에 어떤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말이 한 마리도 없어서 나귀 새끼를 빌려 타신 분이십니다. 아내는커녕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은금은커녕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왕의 직분을 수행하신 것입니다. 누가 이분을 나의 왕으로 주님으로 모시고 살겠습니까? 오직 주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 세상에서 버림받은 왕의 뒤를 미련하고 어리석은 모습으로 따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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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17:14-20 왕을 세우려면 /이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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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0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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