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18:15-20 오늘의 선지자 /전병금

세계적인 신학자 에밀 부르너 교수(Emil Brunner)가 자기 친구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그의 두 친구는 사이가 몹시 나빠 1년 동안이나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아예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친구가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교회에 나갔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친구와 상종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고 깊이 회개하였습니다.

그는 먼저 친구와 화해를 하기 위해 다섯 통이나 되는 화해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친구에게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그 친구의 집을 방문하여 눈보라 속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얼음장 같았던 친구의 가슴이 녹아지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은 뜨겁게 포옹하며 서로를 용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인생의 귀한 동역자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친구와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여러 번 화해의 제스처로 율법을 보내시고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화석화시켜 버리고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인간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화해 요청을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직접 오셔서 화해의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이처럼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와 화해하시기 위해서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구약시대에 화해를 위한 하나님의 손길은 하나님이 선택한 선지자를 통해 사람들에게 내밀어졌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모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고통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선택하여 그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출애굽의 대역사와 광야 생활 동안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모세에게 불평불만을 터뜨렸지만, 모세의 지도력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신임했습니다.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제공해 주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준 모세 없이는 잠시도 불안하여 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만약 그런 모세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을 혼란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광야 생활의 막바지에 이르러 120세가 된 모세의 역할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자, 하나님께서는 '모세 이후'에 대한 계획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해결책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시대마다 모세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를 세우셨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서 여호수아를 세우셨고, 사사들을 세우셨고, 사무엘 같은 인물을 세워 백성들을 인도했습니다. 그 뒤 왕정 시대에는 다윗 같은 사람과 그의 선지자들을 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해야 할 시기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헌신하는 자들을 택하셔서 이 시대의 선지자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또한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1. 우리는 이 시대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애굽의 왕자였던 모세는 어느 날, 자기 백성인 히브리인이 애굽 감독에게 폭행당하는 것을 보고 그를 돕다가 그만 애굽 감독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졸지에 살인자가 된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피하여 그곳에서 '이드로'라고 하는 사람의 사위가 되어 양을 키우면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어느덧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모세는 혈기방장한 40대에서 힘없는 80세 노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과거에 가졌던 야망도, 젊음도 다 사라지고 일개 촌로가 되어버린 모세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가 가졌던 민족 구원의 비전도, 자신의 정치적 야망도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모세가 애굽의 왕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모세는 단지 자신의 손에 들린 지팡이처럼,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 받았을 뿐입니다. 홍해를 가르고,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게 하고, 율법을 전해 주는 등,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대적인 지도력을 행사했지만, 그 모든 능력은 모세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한 일들이었습니다. 모세도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를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에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신 18:15)

하나님께서도 모세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주리니"(신 18:18)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는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세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일 뿐입니다. 절대적인 존재는 모세가 아니라, 그 모세를 세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모세가 떠난 후,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것은 모세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교회를 일으킨 어느 목회자의 은퇴 시기를 놓고 논란이 많았습니다. 본인은 은퇴하겠다고 하고, 교회와 교단에서는 계속해달라고 하고, 또 외부에서는 한국 교회를 위해 본인의 의사대로 은퇴를 해야 한다고 해서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비록 그 목사님이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분을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세계적인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지도자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분의 능력이 아니라 그를 일으킨 하나님의 능력임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가 떠나기 전, 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그 목사님이 떠나더라도 '그와 같은 목회자'를 세우셔서 교회의 역사를 이어가실 것이기에, '그 사람 없이는 안 된다'는 주장은 결코 신앙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들입니다.

모세가 한 위대한 일들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한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전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율법을 가리켜 '모세의 율법'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을 선지자라고 합니다. 즉 모세의 가장 큰 역할은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 이후에도 '그와 같은 선지자'를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한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왕들과 예언자들 모두가 '그와 같은 선지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가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라고 말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와 같은 선지자'로 부르셔서 모세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선지자들인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잘 들어야 바로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듣지도 않고 바로 전할 수는 없습니다. 모세는 언제나 하나님과 대면하여 겸손하게 말씀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주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서야 합니다.

베드로가 백부장인 고넬료의 초청을 받고 갔을 때, 그는 일가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전부 불러 모아놓고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자 고넬료는 엎드려 절하면서 겸손하게 베드로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 10:33)라고 말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가이사랴 지방에 주둔한 로마군의 지역사령관이었습니다. 머리를 숙여도 베드로가 숙여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베드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가친척과 가까운 친구들 앞에서, 일개 전도자에 불과한 베드로에게 절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앞에 겸손히 선다는 것은, 그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들은 말씀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듣기만 해서는 말씀에 순종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말씀에 순종하여 그 말씀을 전하기 때문에, 말씀을 전할 때 자기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고하라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신 18:2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가볍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나태함과 게으름 또한 포함됩니다. 에스겔 3장 17-18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파수꾼'으로 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대신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책임을 감당하지 않았을 때, 그 책임을 그 '파수꾼'에게 묻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며 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 복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신 28:1-14).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서서, 잘 듣고 순종하여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신 28:6) 복된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충성을 다하는 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모세는 한때, 이집트의 왕자로 화려한 왕궁 생활을 40년 동안이나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살인죄를 범하고 쫓기는 신세가 되어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80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서 가나안까지 인도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삶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겠습니까? 화려한 궁궐에서 왕자의 신분으로 보냈던 40년이었겠습니까? 양을 치며 가족과 함께 편하게 지냈던 미디안에서의 40년이었겠습니까? 아니면 정처 없이 광야를 떠돌며, 불순종하는 백성들과 씨름하던 출애굽 이후의 40년이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모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복된 때는 언제였겠습니까?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어떤 사람이 가장 행복하게 보입니까? 일류 대학에 들어가고, 대기업에 취직한 것도 행복한 일입니다. 좋은 부모 만난 것도 행복이요, 좋은 배우자를 만난 것도 행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복은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걱정 근심 없는 편안한 삶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조금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도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은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시 144:15)

진정으로 복 받은 사람은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아니라, 일류 대학에 합격한 사람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려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가정이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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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18:15-20 오늘의 선지자 /전병금 신18:15-20 오늘의 선지자 /전병금 Reviewed by □□□ on November 06, 2026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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