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 사람들은 점에 약합니다. 노스트라다무스나 정감록의 예언들은 모두 비과학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들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자기에게 문제가 닥치면 점을 치거나 예언을 받기 위해서 돈을 아낌없이 씁니다. 그래서 요즘 대한민국에서 제일 사업을 활발하게 하는 사람들은 점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각종 일간지를 보면 오늘의 운세가 빠짐없이 자리를 잡고 있고, 별을 보고 점을 치는 점성술(horoscope)도 대유행입니다. 기독교 안에도 소위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카리스마틱 지도자들이 전 세계를 다니면서 자기 스스로를 사도라고 지칭하고 이런저런 예언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기독교 안팎으로 이렇게 갖가지 예언이 난무하고 있는 이 시대에 무엇이 참된 예언이고 누가 참된 예언자인지에 대한 문제를 우리가 분명히 정의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언자를 ‘선지자(prophet)’라고 부릅니다. 선지자는 히브리어로 ‘나비’라고 하는데 ‘나비’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서 현재에 관한 일, 혹은 장래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인간에게 전달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선지자, 혹은 예언자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언자는 반드시 미래의 일만을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현재의 일을 말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사람은 예언자, 혹은 선지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두 종류의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거짓 선지자요, 또 다른 하나는 참된 선지자입니다. 거짓 선지자를 명확하게 분별하는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22절) 거짓 예언자를 분별하는 첫 번째 기준은 그 사람이 말한 것에 증험이나 성취함이 있느냐입니다. 예언을 했는데 아무런 증험과 성취함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 예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참된 선지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요즘 베스트셀러 가운데 부산 수산대학을 졸업하고 해군 장교를 지낸 신유승이라고 하는 분이 저술한 ‘점쟁이 죽이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남의 운명을 예언하는 점은 대가가 하든, 혹은 초보자가 하든 간에 적중할 확률은 1/5, 틀릴 확률은 4/5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백OO이라고 하는 유명한 점성가가 예언을 해도, 완전 초보자가 간판을 걸고 점집을 개업해서 점을 쳐도 똑같이 1/5은 맞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1/5의 확률에 따라 혹시 점이 맞았다고 해도 그것이 참된 선지자의 보증이 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참된 선지자냐 거짓 선지자냐를 구별하는 두 번째 기준이 중요합니다.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20절)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않고 다른 신들의 이름을 사용한다면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거짓 선지자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예언을 하는 사람은 증험 여부를 볼 것도 없이 거짓 선지자입니다. 정리하자면 예언에 증험이 없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게 예언하는 사람이 거짓 선지자요, 거짓 예언자입니다.
예언은 성경과 일치할 때만이 진실이요, 성경에 어긋나면 반드시 거짓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2차적인 예언을 의존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언의 원본인 성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존하는 신앙인으로서 이 시대를 휩쓸고 있는 거짓 영과 점술에 미혹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중에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면서도 여기저기 점치러 다니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이 시간에 회개하고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1. 참된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안심하고 들을 수 있는, 또 안심하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하는 참된 선지자는 누구일까요? 모세는 본문 15절과 18절을 통해 그 해답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15절)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18절) 15절은 모세의 말이고 18절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유대인들 가운데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나온다면 그분이 참된 선지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세 같은 선지자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은 이 선지자를 여호수아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칼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이지 예언자는 아닙니다. 유명한 청교도 주석가인 매튜 헨리는 “이 말씀은 우선적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요, 모세의 율법 가운데서 이처럼 명확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된 메시야라고 증거하는 구절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신약을 보면 이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사람들은 요한복음 6장 14절을 통해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또한 사도 베드로도 명확한 언어로 이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행 3:22-23)고 기록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그 선지자도 바로 하나님께서 예정하사 보내신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또 첫 순교자인 스데반도 “이스라엘 자손을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행 7:37-52) 선포하였습니다. 따라서 베드로와 스데반이 증거한 것처럼 모세가 예언한 ‘나와 같은 선지자’는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는 추호의 의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참된 예언자를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예언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참된 선지자의 세 가지 특징
참된 예언자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된 예언자는 첫째로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mediator)가 되어야 합니다. 중보자는 ‘사이에 가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기 19장 16절 이하에 기록된 내용처럼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시내산은 그 자체로 무서운 광경이었습니다.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컸으며, 진중 모든 백성이 이 광경을 보며 떨었습니다.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 거기 강림하셨습니다.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대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시내산에 나타난 그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영광이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극히 일부만 드러나고, 사실은 더 숨겨져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박국서 3장 4절을 통해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무리 외적인 환경이 두려워 보여도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은 다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밖에 드러나지 않은 하나님의 영광을 통해서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우리가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두렵습니다. 모세여! 당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우리에게 그 말씀을 전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모세를 중보자로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구를 기뻐하시고 모세를 중보자로 세웠습니다. 이처럼 참된 예언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에게 전해줘야 합니다. 모세는 중보자로서 시내산 꼭대기에서 40주 40야를 금식하며 십계명과 갖가지 제사 의식에 관한 의식법과 성막 제작법과 창세기의 내용을 계시받아서 백성들에게 증거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시내산 기슭에 서있던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나을 바가 없습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 앞에서 죄인이 되어 두려워 떨 뿐입니다. 제가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십계명 가운데 몇 가지를 어기셨습니까? 하나입니까? 두 개입니까? 혹은 모두 어겼습니까? 아마 십계명을 한 개만 어긴 분은 ‘나는 십계명을 모두 어긴 사람보다 낫지. 나는 도적질만 했지 살인은 안 했거든. 그러니 내가 살인자보다는 더 의로운 사람이지’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 말씀합니다. 십계명 가운데 하나만 어겨도 모두 범한 자나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십계명 가운데 하나만 범해도 모두 범한 자로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조차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죄인 된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서서 중보하실 분이 필요합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며 변호하시겠습니까? 그분이 바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피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을 갚아 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인으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예언자가 많아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될 수 있는 참된 예언자요, 참된 선지자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참된 예언자는 모세와 같이 유대인들 가운데서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셨기 때문에 참된 예언자가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사람은 참된 예언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사람은 참된 예언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참된 예언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모세와 유사성이 있는 사람만이 참된 예언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와 예수님은 어떤 유사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스펄전 목사님은 모세와 예수님의 유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첫째로 모세는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계시를 받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어떤 예언자도 하나님과 항상 연결된 사람은 없었습니다. 계시는 한 번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언제나 계시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모세 앞에 열어두셨습니다. 이와 동일하게 예수님께서도 조금도 끊긴 바가 없이 하나님과 100% 교제를 지속하셨습니다.
둘째로 모세와 예수님은 모두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들 중에는 일에는 능하지만 말에는 부족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많은 기적을 일으켰지만 글을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어떤 선지자들은 글은 많이 남겼지만 기적은 하나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선지자는 말에는 능할지라도 일에는 능하지 못한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모세와 예수님은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였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중 글로바라 하는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눅 24:19). 이처럼 모세와 예수님은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라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셋째로 모세와 예수님은 언약의 창시자였습니다. 모세는 시내산 언약이라고 불리는 옛 언약의 창시자이며, 예수님은 은혜언약으로 불리는 새 언약의 창시자입니다. 이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는 자마다 죄 사함과 영생을 얻는다는 약속입니다.
넷째로 모세와 예수님은 모두 하나님께 충성하였습니다. 히브리서 3장 5-6절에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다섯째로 모세와 예수님은 모두 온유하셨습니다. 참된 선지자는 온유합니다. 반면에 점쟁이들은 온유하지 못합니다. 온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점치러 온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반말로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참된 선지자이신 예수님과 모세는 온유함이 지상의 어떤 사람보다 뛰어난 분들이었습니다.
여섯째로 예수님과 모세는 모두 유대인이라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예언자를 찾기 원한다면 이와 같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모세는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선지자의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분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참된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그 입에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 18절을 보면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언을 원하신다면 참된 예언자는 그리스도 예수이시며, 예수님의 말씀만이 참된 예언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총각 개구리가 장가를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점쟁이를 찾아가 “선생님. 제가 아름다운 여인에게 장가가고 싶습니다. 제 점을 좀 봐주십시오”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총각 개구리의 말을 들은 점쟁이는 수정구슬을 들여다보다가 외쳤습니다. “흰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너한테 오고 있다. 그 여인이 이렇게 말한다. 너의 안과 밖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고. 너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점쟁이의 말을 들은 총각 개구리는 신이 나서 “그곳이 어디입니까? 클럽입니까? 아니면 카페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수정구슬을 한참 들여다보던 점쟁이는 “자세히 보니 해부학 교실이다. 그 여인의 손에 칼이 들렸구나. 네 배를 째려고 준비 중이다”라고 대답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의 점쟁이들은 미혹하는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많은 점쟁이들이 대통령이 당선될 때마다 자기가 예언해서 맞혔다는 둥 소문내기를 좋아합니까? 또 자기가 가르쳐줘서 로또복권에 당첨됐다고 자랑하는 점쟁이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잘 맞추면 자기가 로또 복권 사서 좋은 일에 쓰지 자기 로또 복권 번호는 왜 맞추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짓된 예언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점쟁이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이며, 모세와 같은 선지자요, 진리를 증거하는 참된 예언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신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인간의 의무
예수님을 향한 인간의 의무는 무엇일까요? 15절 후반부를 보면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마가복음 9장 7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변화산에서도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참된 예언자가 예언을 하므로 저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의 예언의 내용은 단순합니다. “너희는 죄인이니 회개하고 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예언을 하겠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살아서도 마귀의 종이며, 죽어서도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불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될 것이고, 이 땅에서 살 때에 하나님과 동행할 것이며,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젠가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하늘과 땅과 이 세상의 모든 나라는 불로 망하고 녹아지며, 우리는 하나님의 완성된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부활한 몸으로 영생하면서 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확실한 예언입니다.
그러나 참된 선지자이신 예수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19절을 보면 “무릇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참된 예언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벌을 받을 것입니다. 영어성경은 이 구절을 “I will require it of Him”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는지 그 책임을 묻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이 심판대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는 “왜 너는 회개하지 않았는가?”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할 변명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빠서 믿지 못했다고 대답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즐기다 보니 못 믿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이 신앙생활 하니까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무슨 대답이든 하나님께서 납득할만한 대답을 준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변명에 납득하지 않으신다면 그 사람은 그냥 지옥불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대답으로도 하나님을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결 론
일전에 어떤 점쟁이가 낸 광고에서 ‘집사, 장로, 목사도 환영’이라는 카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광고를 보면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점을 보러 가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점쟁이들이 사주카페라는 것을 만들어서 커피도 마셔가며 친근한 언어로 예언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예언들은 모두 거짓된 것입니다. 맞아도 거짓이요, 틀려도 거짓입니다. 점쟁이들은 모두 거짓 선지자입니다. 참된 예언자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 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만이 참된 예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고,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며, 그 입술에 진리를 담고 있는 예수님만이 오직 참된 예언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분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말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만을 참 예언자로 삼아 그분의 참된 예언을 들으며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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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안팎으로 이렇게 갖가지 예언이 난무하고 있는 이 시대에 무엇이 참된 예언이고 누가 참된 예언자인지에 대한 문제를 우리가 분명히 정의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언자를 ‘선지자(prophet)’라고 부릅니다. 선지자는 히브리어로 ‘나비’라고 하는데 ‘나비’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서 현재에 관한 일, 혹은 장래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인간에게 전달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선지자, 혹은 예언자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언자는 반드시 미래의 일만을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현재의 일을 말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사람은 예언자, 혹은 선지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두 종류의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거짓 선지자요, 또 다른 하나는 참된 선지자입니다. 거짓 선지자를 명확하게 분별하는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22절) 거짓 예언자를 분별하는 첫 번째 기준은 그 사람이 말한 것에 증험이나 성취함이 있느냐입니다. 예언을 했는데 아무런 증험과 성취함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 예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참된 선지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요즘 베스트셀러 가운데 부산 수산대학을 졸업하고 해군 장교를 지낸 신유승이라고 하는 분이 저술한 ‘점쟁이 죽이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남의 운명을 예언하는 점은 대가가 하든, 혹은 초보자가 하든 간에 적중할 확률은 1/5, 틀릴 확률은 4/5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백OO이라고 하는 유명한 점성가가 예언을 해도, 완전 초보자가 간판을 걸고 점집을 개업해서 점을 쳐도 똑같이 1/5은 맞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1/5의 확률에 따라 혹시 점이 맞았다고 해도 그것이 참된 선지자의 보증이 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참된 선지자냐 거짓 선지자냐를 구별하는 두 번째 기준이 중요합니다.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20절)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않고 다른 신들의 이름을 사용한다면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거짓 선지자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예언을 하는 사람은 증험 여부를 볼 것도 없이 거짓 선지자입니다. 정리하자면 예언에 증험이 없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게 예언하는 사람이 거짓 선지자요, 거짓 예언자입니다.
예언은 성경과 일치할 때만이 진실이요, 성경에 어긋나면 반드시 거짓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2차적인 예언을 의존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언의 원본인 성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존하는 신앙인으로서 이 시대를 휩쓸고 있는 거짓 영과 점술에 미혹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중에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면서도 여기저기 점치러 다니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이 시간에 회개하고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1. 참된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안심하고 들을 수 있는, 또 안심하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하는 참된 선지자는 누구일까요? 모세는 본문 15절과 18절을 통해 그 해답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15절)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18절) 15절은 모세의 말이고 18절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유대인들 가운데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나온다면 그분이 참된 선지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세 같은 선지자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은 이 선지자를 여호수아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칼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이지 예언자는 아닙니다. 유명한 청교도 주석가인 매튜 헨리는 “이 말씀은 우선적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요, 모세의 율법 가운데서 이처럼 명확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된 메시야라고 증거하는 구절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신약을 보면 이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사람들은 요한복음 6장 14절을 통해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또한 사도 베드로도 명확한 언어로 이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행 3:22-23)고 기록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그 선지자도 바로 하나님께서 예정하사 보내신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또 첫 순교자인 스데반도 “이스라엘 자손을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행 7:37-52) 선포하였습니다. 따라서 베드로와 스데반이 증거한 것처럼 모세가 예언한 ‘나와 같은 선지자’는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는 추호의 의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참된 예언자를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예언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참된 선지자의 세 가지 특징
참된 예언자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된 예언자는 첫째로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mediator)가 되어야 합니다. 중보자는 ‘사이에 가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기 19장 16절 이하에 기록된 내용처럼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시내산은 그 자체로 무서운 광경이었습니다.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컸으며, 진중 모든 백성이 이 광경을 보며 떨었습니다.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 거기 강림하셨습니다.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대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시내산에 나타난 그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영광이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극히 일부만 드러나고, 사실은 더 숨겨져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박국서 3장 4절을 통해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무리 외적인 환경이 두려워 보여도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은 다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밖에 드러나지 않은 하나님의 영광을 통해서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우리가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두렵습니다. 모세여! 당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우리에게 그 말씀을 전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모세를 중보자로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구를 기뻐하시고 모세를 중보자로 세웠습니다. 이처럼 참된 예언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에게 전해줘야 합니다. 모세는 중보자로서 시내산 꼭대기에서 40주 40야를 금식하며 십계명과 갖가지 제사 의식에 관한 의식법과 성막 제작법과 창세기의 내용을 계시받아서 백성들에게 증거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시내산 기슭에 서있던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나을 바가 없습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 앞에서 죄인이 되어 두려워 떨 뿐입니다. 제가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십계명 가운데 몇 가지를 어기셨습니까? 하나입니까? 두 개입니까? 혹은 모두 어겼습니까? 아마 십계명을 한 개만 어긴 분은 ‘나는 십계명을 모두 어긴 사람보다 낫지. 나는 도적질만 했지 살인은 안 했거든. 그러니 내가 살인자보다는 더 의로운 사람이지’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 말씀합니다. 십계명 가운데 하나만 어겨도 모두 범한 자나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십계명 가운데 하나만 범해도 모두 범한 자로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조차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죄인 된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서서 중보하실 분이 필요합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며 변호하시겠습니까? 그분이 바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피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을 갚아 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인으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예언자가 많아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될 수 있는 참된 예언자요, 참된 선지자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참된 예언자는 모세와 같이 유대인들 가운데서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셨기 때문에 참된 예언자가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사람은 참된 예언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사람은 참된 예언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참된 예언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모세와 유사성이 있는 사람만이 참된 예언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와 예수님은 어떤 유사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스펄전 목사님은 모세와 예수님의 유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첫째로 모세는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계시를 받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어떤 예언자도 하나님과 항상 연결된 사람은 없었습니다. 계시는 한 번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언제나 계시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모세 앞에 열어두셨습니다. 이와 동일하게 예수님께서도 조금도 끊긴 바가 없이 하나님과 100% 교제를 지속하셨습니다.
둘째로 모세와 예수님은 모두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들 중에는 일에는 능하지만 말에는 부족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많은 기적을 일으켰지만 글을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어떤 선지자들은 글은 많이 남겼지만 기적은 하나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선지자는 말에는 능할지라도 일에는 능하지 못한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모세와 예수님은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였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중 글로바라 하는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눅 24:19). 이처럼 모세와 예수님은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라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셋째로 모세와 예수님은 언약의 창시자였습니다. 모세는 시내산 언약이라고 불리는 옛 언약의 창시자이며, 예수님은 은혜언약으로 불리는 새 언약의 창시자입니다. 이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는 자마다 죄 사함과 영생을 얻는다는 약속입니다.
넷째로 모세와 예수님은 모두 하나님께 충성하였습니다. 히브리서 3장 5-6절에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다섯째로 모세와 예수님은 모두 온유하셨습니다. 참된 선지자는 온유합니다. 반면에 점쟁이들은 온유하지 못합니다. 온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점치러 온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반말로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참된 선지자이신 예수님과 모세는 온유함이 지상의 어떤 사람보다 뛰어난 분들이었습니다.
여섯째로 예수님과 모세는 모두 유대인이라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예언자를 찾기 원한다면 이와 같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모세는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선지자의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분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참된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그 입에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 18절을 보면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언을 원하신다면 참된 예언자는 그리스도 예수이시며, 예수님의 말씀만이 참된 예언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총각 개구리가 장가를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점쟁이를 찾아가 “선생님. 제가 아름다운 여인에게 장가가고 싶습니다. 제 점을 좀 봐주십시오”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총각 개구리의 말을 들은 점쟁이는 수정구슬을 들여다보다가 외쳤습니다. “흰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너한테 오고 있다. 그 여인이 이렇게 말한다. 너의 안과 밖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고. 너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점쟁이의 말을 들은 총각 개구리는 신이 나서 “그곳이 어디입니까? 클럽입니까? 아니면 카페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수정구슬을 한참 들여다보던 점쟁이는 “자세히 보니 해부학 교실이다. 그 여인의 손에 칼이 들렸구나. 네 배를 째려고 준비 중이다”라고 대답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의 점쟁이들은 미혹하는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많은 점쟁이들이 대통령이 당선될 때마다 자기가 예언해서 맞혔다는 둥 소문내기를 좋아합니까? 또 자기가 가르쳐줘서 로또복권에 당첨됐다고 자랑하는 점쟁이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잘 맞추면 자기가 로또 복권 사서 좋은 일에 쓰지 자기 로또 복권 번호는 왜 맞추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짓된 예언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점쟁이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이며, 모세와 같은 선지자요, 진리를 증거하는 참된 예언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신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인간의 의무
예수님을 향한 인간의 의무는 무엇일까요? 15절 후반부를 보면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마가복음 9장 7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변화산에서도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참된 예언자가 예언을 하므로 저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의 예언의 내용은 단순합니다. “너희는 죄인이니 회개하고 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예언을 하겠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살아서도 마귀의 종이며, 죽어서도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불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될 것이고, 이 땅에서 살 때에 하나님과 동행할 것이며,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젠가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하늘과 땅과 이 세상의 모든 나라는 불로 망하고 녹아지며, 우리는 하나님의 완성된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부활한 몸으로 영생하면서 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확실한 예언입니다.
그러나 참된 선지자이신 예수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19절을 보면 “무릇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참된 예언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벌을 받을 것입니다. 영어성경은 이 구절을 “I will require it of Him”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는지 그 책임을 묻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이 심판대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는 “왜 너는 회개하지 않았는가?”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할 변명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빠서 믿지 못했다고 대답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즐기다 보니 못 믿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이 신앙생활 하니까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무슨 대답이든 하나님께서 납득할만한 대답을 준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변명에 납득하지 않으신다면 그 사람은 그냥 지옥불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대답으로도 하나님을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결 론
일전에 어떤 점쟁이가 낸 광고에서 ‘집사, 장로, 목사도 환영’이라는 카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광고를 보면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점을 보러 가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점쟁이들이 사주카페라는 것을 만들어서 커피도 마셔가며 친근한 언어로 예언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예언들은 모두 거짓된 것입니다. 맞아도 거짓이요, 틀려도 거짓입니다. 점쟁이들은 모두 거짓 선지자입니다. 참된 예언자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 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만이 참된 예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고,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며, 그 입술에 진리를 담고 있는 예수님만이 오직 참된 예언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분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말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만을 참 예언자로 삼아 그분의 참된 예언을 들으며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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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18:15-22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피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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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0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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