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왜 들어가지 못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금까지 신실하게 이루어 오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일을 이루어 내신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 보고 경험하도록 애굽의 10가지 재앙,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 구름 기둥 불기둥이 주야로 함께 하였건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보다 그들의 눈앞에 보이는 적들이 더 강해 보였던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약속의 땅에 그대로 들여놓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다시 회정시키시는 것입니다. 1절을 봅니다. 홍해 길에서 가나안으로 왔었는데 이제 다시 홍해 길로 회정하여야 한 것입니다. 여러 날 동안 세일산을 두루 행하였습니다. 여러 날 정도가 아니라 무려 38년을 광야에서 돌아다녀야 하였습니다. 38년 동안 무엇을 위하여 광야에서 보내야 한 것입니까? 정탐한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하여 40년을 돌아다니게 하신 것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말한 자들이 다 죽기까지의 기간인 것입니다.
2:14-15절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회정하여 38년을 광야에서 보내는 동안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한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맹세하신 대로 진중에서 멸하신 것입니다. 38년을 보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일은 장사 지내는 일이었습니다. 불신앙의 세대가 땅에 묻히는 기간입니다. 그 일을 통하여 후세대는 무엇을 보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실함을 보고 배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신약에서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히브리서 4:1-3절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히브리서 3:7-19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복음을 믿지 못하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 3절을 봅니다.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고 합니다. 다시 가나안을 향하여 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38년 전에 이미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때 불신앙으로 들어가지 못하였기에 이제 다시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믿지 않았던 세대가 다 죽고 난 후에 다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받은 사람이 죽어도 여전히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아무리 거대한 꿈을 가지고 이루어 낸다고 하여도 그 사람이 죽어버리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6장을 보시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구술하고 바룩이 받아쓴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이 듣고 놀랍니다. 심판과 재앙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백성의 관원들이 듣고 왕에게 보고를 합니다. 왕이 그 말씀을 듣고서는 그 기록된 말씀을 읽는 대로 칼로 잘라서 겨울 화로 불 피워 둔 곳에 집어던져 불살라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그 같은 말씀을 다시 기록하라고 합니다.
40여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지 못한다고 자기의 자녀들이 다 죽게 되었다고 원망하였지만 그 죽게 되었다는 자녀들이 성장하여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지금 들어가는 사람들은 분명코 40년 전의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한 모세가 그 40년 전의 일을 상기시키며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정하여 광야에서 두루 행하면서 그 세대가 다 죽은 후에 다시 말씀이 주어지기를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북으로 간다는 것은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입니다. 4-7절을 봅니다. 세일 산에 거하는 너희의 동족 에서의 자손의 지경으로 지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두려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럴지라도 그곳을 지날 때에 스스로 깊이 삼가 하여 다투지 말고 물도 거저 먹지 말고 돈을 주고 사 먹으라고 합니다.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그 땅은 에서에게 준 것이기에 그 땅은 넘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모압과 암몬의 땅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압과 암몬은 롯의 후손의 땅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몇 가지 의미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모든 민족의 경계를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26절입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모든 민족의 년대와 경계를 제한하셨다고 합니다. 이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도 다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주변의 여러 나라들과 강대국인 애굽과 앗수르와 바벨론 메데 바사 제국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시는지 보았습니다.
본문 10-12절을 봅시다. 옛적에 모압 사람들이 그 땅을 차지하기 전에 엠 사람이 살았는데 그들은 아낙 자손들처럼 거인 족이었습니다. 또 호리 사람도 세일에 거하였는데 에서의 자손이 그들을 멸하고 대신하여 그 땅에 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주신 기업을 차지하는 것과 일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0-23절도 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주권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만 주셨듯이 다른 민족들을 그곳에 살게 하시고 이미 살던 족속을 멸하시는 것은 여호와의 통치인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권고하시는 바가 참으로 많은 것입니다. 요즈음 시대를 무한 경쟁의 시대라고 합니다. 온 세상이 힘이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정복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의 가치관은 실용입니다. 지금 정부가 실용을 외치고 있습니다. 실용이란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은 가차 없이 버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는가를 진리의 척도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 회장의 가치관인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런 말씀은 그야말로 걸림돌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은 힘을 가지고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증거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의지할 만한 힘들을 다 빼버리시면서 증거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전도가 사람의 지혜와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성경을 보면서도 어떻게 알아왔습니까? 세계에 선교사를 제일 많이 보낸 나라가 제일 강대국이 되었다고 하면서 영국을 이야기하고 미국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보냅니다. 그러니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어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되자고 하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어왔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정복욕인 것이지 정말 복음을 전하는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복음이란 한 알의 죽는 밀알로서의 모습이지 힘을 가지고 제압하는 식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다른 것에 기웃거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야 할 방향과 목표가 분명하게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그런 나라들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곳에 무슨 좋은 곳이 있는지 기웃거려 가면서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그런 식으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가나안 백성들이 요단강 이편에서 자리 잡고 살려고 한 족속들이 있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지 않은 지파가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파의 절반입니다. 그곳에서 눌러 살고자 할 때에 허락은 합니다만 그러나 12지파 중 가장 먼저 사라지는 족속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은 영원한 나라를 목표로 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변에 마음을 너무 많이 빼앗기고 사는 것입니다.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고 하시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돌이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벧후 3:12-13).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히 11:13-16).
이 땅에서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면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사는 것을 성경은 복 받았다고 합니다. 본문 7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시고, 이 넓은 광야를 지나는 길에서, 너희를 보살펴 주셨으며, 지난 사십 년 동안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셨으므로, 너희에게는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광야 사십 년을 사는 동안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 넓고 막막한 광야를 지나는 길에서 부족한 것이 없도록 보살펴 주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에 아멘이 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에 아멘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십 년을 얼마나 원망하고 불평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만나만 먹게 하시고 옷은 사시사철 한 벌로 지내고 신발도 한 켤레로 지내게 하신다면 이것을 복 받은 것이라고 하시겠습니까?(신 8:2-4) 저희 집사람이 예배당 창문이 마음에 안 든다고 어떻게 바꾸어 보려고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저희 집에는 지금 베란다 쪽에 누수로 인하여 페인트가 절반은 벗겨져서 떨어져 내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신경을 안 씁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셋집이거든요! 이곳도 사실은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지하에 살아도 예수 믿고서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면서 간다면 그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없도록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지상에 올라와서 이것저것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나그네 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가야 할 방향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돌이켜야 하는지 생각해 보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돌이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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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들을 약속의 땅에 그대로 들여놓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다시 회정시키시는 것입니다. 1절을 봅니다. 홍해 길에서 가나안으로 왔었는데 이제 다시 홍해 길로 회정하여야 한 것입니다. 여러 날 동안 세일산을 두루 행하였습니다. 여러 날 정도가 아니라 무려 38년을 광야에서 돌아다녀야 하였습니다. 38년 동안 무엇을 위하여 광야에서 보내야 한 것입니까? 정탐한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하여 40년을 돌아다니게 하신 것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말한 자들이 다 죽기까지의 기간인 것입니다.
2:14-15절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회정하여 38년을 광야에서 보내는 동안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한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맹세하신 대로 진중에서 멸하신 것입니다. 38년을 보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일은 장사 지내는 일이었습니다. 불신앙의 세대가 땅에 묻히는 기간입니다. 그 일을 통하여 후세대는 무엇을 보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실함을 보고 배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신약에서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히브리서 4:1-3절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히브리서 3:7-19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복음을 믿지 못하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 3절을 봅니다.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고 합니다. 다시 가나안을 향하여 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38년 전에 이미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때 불신앙으로 들어가지 못하였기에 이제 다시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믿지 않았던 세대가 다 죽고 난 후에 다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받은 사람이 죽어도 여전히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아무리 거대한 꿈을 가지고 이루어 낸다고 하여도 그 사람이 죽어버리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6장을 보시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구술하고 바룩이 받아쓴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이 듣고 놀랍니다. 심판과 재앙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백성의 관원들이 듣고 왕에게 보고를 합니다. 왕이 그 말씀을 듣고서는 그 기록된 말씀을 읽는 대로 칼로 잘라서 겨울 화로 불 피워 둔 곳에 집어던져 불살라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그 같은 말씀을 다시 기록하라고 합니다.
40여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지 못한다고 자기의 자녀들이 다 죽게 되었다고 원망하였지만 그 죽게 되었다는 자녀들이 성장하여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지금 들어가는 사람들은 분명코 40년 전의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한 모세가 그 40년 전의 일을 상기시키며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정하여 광야에서 두루 행하면서 그 세대가 다 죽은 후에 다시 말씀이 주어지기를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북으로 간다는 것은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입니다. 4-7절을 봅니다. 세일 산에 거하는 너희의 동족 에서의 자손의 지경으로 지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두려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럴지라도 그곳을 지날 때에 스스로 깊이 삼가 하여 다투지 말고 물도 거저 먹지 말고 돈을 주고 사 먹으라고 합니다.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그 땅은 에서에게 준 것이기에 그 땅은 넘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모압과 암몬의 땅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압과 암몬은 롯의 후손의 땅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몇 가지 의미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모든 민족의 경계를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26절입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모든 민족의 년대와 경계를 제한하셨다고 합니다. 이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도 다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주변의 여러 나라들과 강대국인 애굽과 앗수르와 바벨론 메데 바사 제국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시는지 보았습니다.
본문 10-12절을 봅시다. 옛적에 모압 사람들이 그 땅을 차지하기 전에 엠 사람이 살았는데 그들은 아낙 자손들처럼 거인 족이었습니다. 또 호리 사람도 세일에 거하였는데 에서의 자손이 그들을 멸하고 대신하여 그 땅에 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주신 기업을 차지하는 것과 일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0-23절도 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주권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만 주셨듯이 다른 민족들을 그곳에 살게 하시고 이미 살던 족속을 멸하시는 것은 여호와의 통치인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권고하시는 바가 참으로 많은 것입니다. 요즈음 시대를 무한 경쟁의 시대라고 합니다. 온 세상이 힘이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정복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의 가치관은 실용입니다. 지금 정부가 실용을 외치고 있습니다. 실용이란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은 가차 없이 버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는가를 진리의 척도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 회장의 가치관인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런 말씀은 그야말로 걸림돌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은 힘을 가지고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증거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의지할 만한 힘들을 다 빼버리시면서 증거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전도가 사람의 지혜와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성경을 보면서도 어떻게 알아왔습니까? 세계에 선교사를 제일 많이 보낸 나라가 제일 강대국이 되었다고 하면서 영국을 이야기하고 미국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보냅니다. 그러니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어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되자고 하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어왔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정복욕인 것이지 정말 복음을 전하는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복음이란 한 알의 죽는 밀알로서의 모습이지 힘을 가지고 제압하는 식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다른 것에 기웃거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야 할 방향과 목표가 분명하게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그런 나라들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곳에 무슨 좋은 곳이 있는지 기웃거려 가면서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그런 식으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가나안 백성들이 요단강 이편에서 자리 잡고 살려고 한 족속들이 있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지 않은 지파가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파의 절반입니다. 그곳에서 눌러 살고자 할 때에 허락은 합니다만 그러나 12지파 중 가장 먼저 사라지는 족속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은 영원한 나라를 목표로 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변에 마음을 너무 많이 빼앗기고 사는 것입니다.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고 하시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돌이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벧후 3:12-13).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히 11:13-16).
이 땅에서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면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사는 것을 성경은 복 받았다고 합니다. 본문 7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시고, 이 넓은 광야를 지나는 길에서, 너희를 보살펴 주셨으며, 지난 사십 년 동안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셨으므로, 너희에게는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광야 사십 년을 사는 동안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 넓고 막막한 광야를 지나는 길에서 부족한 것이 없도록 보살펴 주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에 아멘이 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에 아멘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십 년을 얼마나 원망하고 불평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만나만 먹게 하시고 옷은 사시사철 한 벌로 지내고 신발도 한 켤레로 지내게 하신다면 이것을 복 받은 것이라고 하시겠습니까?(신 8:2-4) 저희 집사람이 예배당 창문이 마음에 안 든다고 어떻게 바꾸어 보려고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저희 집에는 지금 베란다 쪽에 누수로 인하여 페인트가 절반은 벗겨져서 떨어져 내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신경을 안 씁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셋집이거든요! 이곳도 사실은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지하에 살아도 예수 믿고서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면서 간다면 그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없도록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지상에 올라와서 이것저것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나그네 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가야 할 방향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돌이켜야 하는지 생각해 보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돌이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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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2:1-23 돌이켜 나아가라 /이장우
Reviewed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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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0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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