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2:1-9 하나님은 축복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오덕호

오늘도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모든 성도님들 가정에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서로 축복해주실까요? “주님의 약속은 꼭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지난 남아공 월드컵 경기를 재미있게 보셨습니까? 월드컵 경기는 정말 많은 사람이 봅니다. 한일월드컵 때는 한 경기당 평균 6억 명 이상이 봤다고 합니다. 이번 월드컵 때는 시청자가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보는 경기는 어떤 경기일까요? 당연히 결승전이지요. 한일월드컵 결승전은 17억 명 이상이 봤다고 합니다. 보통 경기보다 세 배 정도 많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월드컵에서 결승전을 더 열심히 보셨습니까, 우리나라의 경기를 더 열심히 보셨습니까? 우리나라의 경기지요. 우리나라의 경기를 보면서 언제 더 기뻤습니까? 상대 팀 선수가 멋있는 골을 넣었을 때입니까? 멋있는 골은 아니어도 우리나라 선수가 골을 넣었을 때입니까? 우리나라 선수가 넣었을 때지요. 이렇게 우리는 객관적으로 멋있는 것보다 우리 편이 잘 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운동경기만 그런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우수한 학생이 대학에 합격되는 게 더 좋습니까, 우수하지 못해도 내 아들이 합격되는 게 더 좋습니까? 내 아들이 합격되는 거지요. 그러면 우리는 언제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할까요? 내 자신이나 내 가족이나 내 교회나 내 나라나 우리 편이 잘 될 때이지요. 이게 잘못된 겁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편이 잘 될 때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 편이 잘 될 때만 기뻐하며 감사한다면 어떻습니까? 잘못된 거지요. 그러면 어떨 때도 기뻐하며 감사해야 합니까? 우리 편이 잘 안 될 때도 기뻐하며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라고 가르쳐주지 않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16-18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상대 팀이 골을 넣었는데 기뻐하고 아들이 불합격했는데 감사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렇게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일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면 됩니다. 그런 일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섭리가 뭡니까? 오늘 본문이 그것을 가르쳐줍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처음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는 불신앙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불신앙 때문에 이들은 벌을 받아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며 어른들은 다 죽습니다. 그리고 이제 40년이 다 차서 다시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러자 모세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줍니다. 신명기 1:3입니다. “마흔째 해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나” 이때 모세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신명기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제 40년이 찼으니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십니다. 이때 하나님은 세 가지를 알려주십니다. A첫째, 이제는 때가 되었으니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마운 말씀입니까? 여러분 40년이 짧은 시간입니까? 그동안 애굽에서 나올 때 성인이었던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올 때 미성년자였던 사람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뿐입니다. 이들이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 약속된 땅에 들어간다는 게 얼마나 까마득하게 느껴졌겠습니까? 정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는 하는 것인지 회의가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드디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너희가 이 산을 두루 다닌 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이 말씀은 “이제 가나안 땅을 향해 가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시내산을 거쳐 가데스바네아에 갔을 때 정탐꾼을 보내지요. 그러나 가나안 사람들이 무서워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광야로 보내 에돔 산지에서 지내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가나안 땅보다 남쪽에서 지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북쪽으로 가라고 하시는 것은 가나안 땅을 향해 가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을 철저히 벌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약속을 저버리신 것은 아닙니다. B이제 때가 되니까 약속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하셨으면 주시는 것입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이 받을 믿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믿음의 준비를 시킨 후에 주신 것뿐입니다.

우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약속도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약속을 주셨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지요. 요한복음 1:12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권세를 얻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받는 권세를 얻지요. 마태복음 7:11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준비시키신 후에 주십니다. C그래야 우리에게 진정한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사람들을 그렇게 무서워하는데 가나안 땅을 주시면 거기 들어가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금방 가나안 사람들을 따라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바로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 백성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나라가 망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해주신 후에 땅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주셨는데도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우상숭배에 빠져 많은 어려움을 겪지요. 그러니까 이런 믿음의 훈련 없이 들어가게 하셨다면 아마 들어가자마자 나라가 망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약속도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여러분 소망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아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아직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주시지 않는 것은 우리를 좀 더 준비시킨 후에 주시려는 것뿐입니다. 준비만 되면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대로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의 권세와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훈련 기간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 훈련 기간에 오직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따르면 됩니다. 그러면 광야의 시간은 끝나고 약속이 성취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면 광야의 시간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의 기간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이 두 번째로 가르쳐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도 하나님이 놀라운 사랑과 권능으로 돌봐주셨다는 것입니다. D이 광야의 시간에 놀라운 기적이 두 가지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애굽에서 나올 때 20세 이상이었던 사람은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60세 이상은 모두 죽은 것입니다. 오직 믿음을 지킨 여호수아와 갈렙만 살았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20세 이상의 남자가 6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같이 다 죽은 것입니다. 갓 60세가 된 사람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반면에 불과 며칠 차이여도 60세 미만은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나이가 많아서 죽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벌로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위엄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 하나님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반드시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엄을 알아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신 게 얼마나 큰 사랑인지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7b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이것도 말할 수 없이 놀라운 기적이지요. 하나님은 40년 동안 이들의 의식주를 해결해주시고 건강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항상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무엇을 주셨습니까? 만나를 주셨지요. 만나는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기적적인 음식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옷이 해어지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발도 부르트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신명기 8:4입니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이것도 우리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기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을 항상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주시기 위해 구름기둥과 불기둥까지 사용하셨습니다. 이들은 그 어려운 광야 생활을 철저한 하나님의 보호 속에 지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두 가지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백성 전체를 대하시는 섭리이고 다른 하나는 백성 하나하나를 대하시는 섭리입니다. E백성 전체를 놓고 보면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 파멸되지 않고 약속의 땅을 얻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보면 어떤 사람은 벌을 받고 어떤 사람은 보호를 받습니다. F불신앙으로 불순종했던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죽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들 모두가 영원히 멸망 받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들 중 많은 사람이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 회개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벌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악에 대한 벌이 있어야 하나님의 정의가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징계가 있어야 후손들이 경고를 받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렇게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사라져야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믿음이 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불신앙의 책임이 없는 어린 자손들은 철저히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어린 자손들이 광야에서 고생한 것은 억울한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믿음이 약한 부모로부터 양육을 받습니다. 그래서 대충 훈련을 받으면 꼭 자기 부모들처럼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이런 엄격한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광야의 훈련은 선조들은 회개하게 해주고 후손들은 더 귀한 신앙인으로 성장시켜 복 받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하나님은 아주 특별한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지만 이 세상을 모두 주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뜻 생각하면 참 이상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온 세상에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온 세상을 다 차지하고 다스리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이 세상의 작은 땅만 주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땅을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여러 민족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절대 다른 민족의 땅을 뺏을 수 없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이 그 민족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에서 자손의 땅을 뺏으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약탈해서도 안 됩니다. 모압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나라도 모두 하나님이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모든 나라의 땅을 정해주셨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땅도 정해주셨습니다. 신명기 32:8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그리고 아모스 9:7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기르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렇게 하나님은 온 세상의 모든 민족을 다스리시며 각 민족에게 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절대 다른 민족의 땅을 뺏어도 되는 게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복을 허락해주신 나라도 있습니다. 어떤 나라들입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모리 족속의 나라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는 그 땅에 사는 족속들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들은 정복할 수 있게 해주셨을까요? 아모리 족속은 이스라엘에게 협조하지 않고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1입니다. “우리가 돌이켜 바산으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에드레이에서 싸우고자 하는지라” 아모리 왕들은 이스라엘을 대적했기 때문에 파멸된 것입니다.

가나안 땅의 족속들은 죄 때문에 멸망당했습니다. 레위기 18:24-25에서 하나님은 그 땅의 족속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세상을 이끌어 가시는구나!” 생각해보십시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 중에 어른들은 믿음을 지킨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의 후손들은 철저한 보호 속에 강한 연단을 통해 믿음의 백성으로 성장하여 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족속들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 그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 족속들과 죄악에 빠진 족속들은 벌을 받아 망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벌을 받아 망하는 것과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은 땅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철저히 돌보시고 인도해주신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불평할 수 있겠습니까? 광야에서 태어난 아이가 왜 이렇게 힘드냐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훈련을 통해 자기가 가나안 땅을 얻게 되는데요? 에돔 땅이나 모압 땅을 뺏지 못한다고 원망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인으로서 그들에게 그 땅을 주신 건데요? 가나안 땅을 그냥 얻지 못하고 전쟁을 하며 피를 흘려야 한다고 하나님을 비난할 수 있습니까? 가나안 땅 족속들은 죄를 지어서 벌을 받아야 하는데요?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불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고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시험에서 불합격되었다면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섭리를 생각하며 오직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사업이 내 사업보다 더 잘 되어도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해주신 것이니 그 사람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만 축복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연단이 되어 더 큰 축복으로 인도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는 그런 실패가 회개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죄 없이 당하는 어려움이라면 신앙과 인격을 연단시켜주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런 실패와 연단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철저히 보호해주시고 결국 약속의 축복으로 인도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안다면 언제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언제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언제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이것만 알면 우리는 항상 자족하는 마음으로 감사와 기쁨 속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예비해두신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돛단배를 타보셨습니까? 돛단배는 바람의 힘으로 가는 거지요. 그러면 돛단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게 뭘까요? 바람일까요? 아닙니다. 돛과 키입니다. 심지어 돛단배는 바람을 거슬러 갈 수도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가족이 한강에서 돛단배를 타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버님이 사공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배가 바람을 거슬러서 갈 수도 있소?” 사공이 대답했습니다. “갈 수 있지요.” 저는 놀랐습니다. 바람의 힘으로 가는 돛단배가 바람을 거슬러 갈 수 있다니. 그러자 아버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겠지. 그러나 지그재그로 가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때야 저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최신형 돛단배가 뭔지 아십니까? 요트지요. 요트에 대한 글을 보니까 요트가 움직일 수 없을 때는 바람이 없을 때뿐이라고 합니다. 바람만 있으면 요트는 어느 방향으로나 갈 수 있답니다. 물론 역풍을 타고도 갑니다. 역시 지그재그로 가는 거지요. 그런데 요트는 역풍에서도 상당히 빨리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정말 신기하지요.

우리 인생도 비슷합니다. 무풍에서는 못 갑니다. 하나님이 아무것도 안 하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섭리하시며 순풍과 역풍을 주시면 우리는 어디로나 갈 수 있습니다. 바람의 방향 때문에 우리가 파멸로 가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의 돛과 키만 제대로 잡고 있으면 항상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축복의 자리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이 모든 세상을 다스리시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정한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불신자에게도 일정한 재물과 성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고난을 주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대적하는 자는 파멸시키고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자리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섬기고 순종하십시오. 남들 잘 된다고 원망하지도 말고 남들 것을 뺏으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 뜻대로만 사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이 준비해두신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는 믿음으로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을 존중하며 덕을 끼치고 우리 자신도 약속된 축복을 받게 되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세상에 나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며 항상 좋은 것만 주십니다. 고난 속에서도 철저히 보호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정한 복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섬기고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존중해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에게 덕을 끼치며 귀하고 복된 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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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2:1-9 하나님은 축복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오덕호 신2:1-9 하나님은 축복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오덕호 Reviewed by □□□ on November 07, 2026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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