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21:4-9 순종과 회복의 상관계수 /노경모

어떤 두 가지가 서로 상관이 있나를 살펴보고 그것을 수치로 나타내는 것을 상관계수라고 합니다. 상관계수가 +1이라고 하면 그것은 100% 상관이 있는 것입니다. 수치가 -1이면 그것은 반대로 상관이 있는 것이고, 수치가 0이면 그것은 서로 간에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득과 소비의 상관계수를 계산해 보았더니 만일 1이 나왔다면 그것은 100% 소득이 많을수록 소비가 많아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1이 나왔다면 반대로 상관이 있는 것입니다. 100% 소득이 많을수록 소비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만일 0이 나왔다면 소득과 소비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순종과 회복, 또는 순종과 치유의 상관계수는 어떻게 될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회복과 치유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회복과 치유에 관한 상관계수가 높다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그것에 매달려야 합니다. 올인해야 합니다.

우리의 나라의 분야별 최고의 의사 명단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명단 중에 반가운 이름이 있었습니다. 제 친구의 동생입니다. 종합병원 유방외과의 의사인데, 요즈음 유방암 환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유방암 환자들이 이 의사한테 수술과 치료를 받기 위해서 올인합니다. 한번 진료를 받으려면 몇 개월을 기다립니다.

왜 이렇게 유방암 환자들이 이 의사한테 올인합니까? 이 의사와 성공적인 유방암 수술과의 상관계수가 높기 때문입니다. 다른 의사에 비해서 조금 높다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높은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올인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는 상처와 아픔과 고통이 치유받고 회복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치유와 회복의 길이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제쳐 놓고 그것에 올인해야 하지 않을까요? 폐암으로 진단받은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뒤로 미루고 폐암을 치료받기 위해서 올인을 하듯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서 애굽 땅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너 광야 길로 들어섭니다. 38년 동안 광야 길을 가다가 호르산에 도착을 합니다. 그리고 이 호르산을 떠나 가나안을 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름길로 올라가지 않게 하시고 에돔 땅을 우회하는 길로 가게 하십니다.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상하게 되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 소리를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5절,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이렇게 돌아가게 하신 것에도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조금만 참고 인내하고 순종했으면 되는데 그것을 참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상처받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한결같이 내가 다른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상처받는 원인이 스스로에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누구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모세도 그 누구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왕 바로를 꺾으시고 바로의 손에서 끄집어내셨습니다. 그리고 기적으로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물을 주시고 먹을 것을 주시고 그들의 옷이 헤어지지 않도록 하시고 밤에는 추위와 들짐승으로부터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불기둥으로, 낮에는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지금까지 받아오고 누려왔습니다.

이제 호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름길이 아닌 에돔 땅을 우회하는 길로 이끄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 이번에도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있을 것이야’라고 믿고 감사하면서 따라가야 하는데 그들이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불평과 원망하는 마음이 나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들이 마음이 상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상하게 된 것은 하나님과 모세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하여서 그들에게 불뱀을 보냈습니다. 독사이지요. 이 불뱀들이 백성들을 물었고 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하나님께 중보기도 해서 우리를 살려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7절,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이때 긍휼과 자비가 많으신 하나님께서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해결책을 주십니다. 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놋으로 불뱀의 형상을 만들어 장대 위에 모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높이 매달았습니다. 뱀에 물린 자들은 누구든지 장대 위에 만들어 매단 놋뱀을 보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뱀에 물려 죽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장대 위에 달려 있는 놋뱀을 보기만 하면 사는 것입니다. 보라고 하면 보면 되는 것입니다. 장대 위의 놋뱀을 쳐다보지 않은 자는 다 죽었습니다.

순종하는 자는 다 살았습니다. 회복과 치유를 맛보기 위해서는 순종해야 합니다.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문둥병자였습니다.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에게 갔을 때, 엘리사는 얼굴도 내밀지 않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만 합니다. 나아만 장군이 화가 나서 돌아가려고 했지만 신하들의 간절한 권유로 마지못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습니다. 하여튼 순종했더니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우리 모두 다 회복되고 치유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순종하면 됩니다. 치유되고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할지라도 순종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순종에 대해서는 의지가 없다면 치유와 회복은 희망 사항으로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이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우리들의 회복과 치유를 위한 처방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다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대로 그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폐암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의사는 이렇게 주의사항을 줍니다. 첫째,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십시오. 둘째, 술 담배를 하지 마십시오. 셋째, 적절한 운동을 하십시오. 넷째, 심호흡을 하십시오.

이렇게 의사가 주의사항을 주면 수술을 받은 환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수술받은 환자가 오래 생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놋뱀은 놋으로 만든 뱀의 형상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뱀에게 물려서 고통스러운데, 내가 지금 뱀에게 물려서 죽어가고 있는데 무슨 놋뱀을 바라본다고 살 수 있나? 라고 귀찮게 생각하거나 놋뱀을 바라보면 살 수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계속 버틴 자들은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는 바로 놋뱀에 물린 자들의 의지와 행동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회복될 수가 있고 치유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각종 각색의 병든 자와 약한 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고 정상적으로 회복시켜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연약하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영적인, 정신적인, 육체적인 모든 약함과 상처와 고통과 병을 담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 앞에 이렇게 나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께 간절히 치유와 회복을 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말씀대로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미리 다 겪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과 고통을 우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마가복음 2장 17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말씀대로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아픔과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러 오신 진정한 의사가 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치유가 되고 회복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의사가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세상적인 것에 몰두하거나 기웃거림으로 인해서 상처와 아픔과 고통을 더 확대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의사가 되시는 예수님을 우리가 의지적으로 행동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의 상처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상처가 드러난다는 것은 치유와 회복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감사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치유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회복과 치유를 원한다면 다른 어떤 무엇보다도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올인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순종입니다.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마치 중환자가 의사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듯이 말입니다. 순종할 때만 진정한 회복과 치유가 내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순종함으로 진정한 회복과 치유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cafe.daum.net/kmc4755/MDpq/129
민21:4-9 순종과 회복의 상관계수 /노경모 민21:4-9 순종과 회복의 상관계수 /노경모 Reviewed by □□□ on November 05, 2026 Rating: 5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