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21:4-9 그것을 보면 살리라 /피영민

목사님들이 가장 많이 설교하는 본문 중 하나는 아마 요한복음 3장 14-16절일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장대에 놋뱀을 꿰어 하늘과 땅 사이에 달았을 때에 불뱀에 물려 독이 퍼져 죽게 된 사람이 그 놋뱀을 바라보면 살게 되었던 것처럼, 하늘과 땅 사이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은 죄 때문에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요한복음 3장의 배경이 되는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은 민수기 21장입니다. 이 경우에 민수기 21장은 보통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게 하는 데에 인용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민수기 21장은 불신자들이 구원받는 데 사용된 말씀이 아닙니다. 원래 배경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불평했을 때 불뱀의 심판을 받게 되었고, 불뱀의 독으로 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치료함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수기 21장은 불신자의 구원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신자의 치료를 위한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수기 21장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민수기를 불평의 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민수기에는 모두 아홉 번의 불평이 나오는데,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불평이 아홉 번째 불평입니다. 이제 21장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불평과 원망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민수기는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천로역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애굽에서 탈출하는 기본 구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가는 과정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 된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방황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어도 어떤 분들은 승리와 기쁨과 능력을 체험하는 반면, 어떤 분들은 그렇지 못하고 간신히 천국에 가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수기는 단순히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성도들이 걸어가고 있는 영적인 행로요, 영적인 천로역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민수기 21장의 이야기는 광야 40년 방황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보입니다. 에서의 후손이 사는 에돔 땅을 지나기만 하면 하루 만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왕의 거절로 인해 에돔 땅을 지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호르산을 돌아서 홍해 길로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호르산을 진행하는 도중에 아론이 123세의 나이로 별세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앞에 보이는 가나안 땅에 곧바로 들어가지 못한 실망감 때문에 마음이 상합니다. 4절 말씀에 보니까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백성들의 인내심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실망은 믿음의 반대요, 불신앙의 열매입니다. 실망은 건강한 삶의 적이요, 삶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역기능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현실이 때로 실망과 좌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우리는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어야 합니다. 실망은 아무 유익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 유익도 없는 것을 왜 붙들어야 하겠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실망을 극복하고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실망과 좌절의 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망하고 좌절한 까닭은 이렇습니다. 첫째로 다 온 길을 돌아서 가라 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 다 온 줄 알았는데, 다시 뒤로 돌아서 홍해 길로 가라고 하니 백성들이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습니까? 제가 교수 생활 할 때, 어떤 학생들은 2학기에 학점이 안 나와서 졸업식장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경우를 보기도 했습니다. 졸업인 줄 알았는데 졸업이 아니라고 하니 얼마나 씁쓸한 절망감이 밀려오겠습니까? 또 내가 신앙생활을 오래 해서 이만하면 영적으로 성장한 신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만 어떤 죄에 걸려서 넘어진다면 얼마나 좌절이 되겠습니까?

제가 어떤 기도원에 가서 설교를 하는데 한 여자가 대성통곡을 합니다. 저 분이 큰 은혜를 받았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사연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에요. 이 분이 여전도사님이신데 남편이 당뇨병에 걸려서 오랫동안 함께 잠자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만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동창생의 유혹에 넘어가서 불륜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이고. 하나님. 제가 평생 하나님을 섬기고 여전도사 노릇을 했는데 이만한 죄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갔으니 내 꼴이 뭡니까?”하고 대성통곡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다 왔다고 생각했을 때, 성장했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돌아서게 되면 마음이 상하고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가까운 친척인 에돔의 불친절 때문입니다. 에돔 족속은 에서의 후손입니다. 이 에서는 야곱의 쌍둥이 형님이기 때문에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 즉 야곱 족속에게 있어서는 형님 집안과 다름없습니다. 아우 집안의 후손들이 형님 집안의 길을 평안히 지나가기를 원하는데, 형님 집안의 왕과 군사들이 나와서 칼로 막고 죽이겠다고 하니 야곱 집안 후손들이 얼마나 실망했겠습니까? 예수님도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인 가룟 유다의 배반을 받았고, 심지어 다윗은 자기 자식의 배반을 받았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다윗을 왕위에서 쫓아내고, 아버지의 후궁 열 명을 백주에 범했으니 다윗의 상처가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친한 친구와 가족의 불친절, 배반은 언제나 치료하기 어려운 상처와 좌절을 남기게 마련입니다.

세 번째로 길이 멀고, 어렵고, 피곤했기 때문입니다. 왕의 대로는 미국의 고속도로처럼 국가를 통과해서 가는 길입니다. 물론 잘 닦이고 평탄한 도로입니다. 이런 좋은 길을 두고 돌 많고 경사진 산길을 가려니 더 힘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는 저절로 불평이 튀어나왔을 것입니다.

2. 실망하지 않을 이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첫째 이유는 아무리 험한 길이라고 할지라도 그 길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왕의 대로라도 어린아이가 혼자 그 길을 간다면 위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험한 산길이라도 아버지가 손을 잡고 올라가면 따라갈 수 있습니다.

어떤 군인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의 행동이 망나니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군인 아버지가 하루는 아들에게 “내가 그동안 너의 행동을 참고 봐왔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너는 죽어 마땅한 녀석이므로 내가 산에서 이 총으로 네 생명을 거두겠다”고 말하면서 아들의 손을 잡고 산 속 깊은 곳으로 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산길이 하도 험하니까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좀 쉬었다 가요.” 그러자 아버지가 대답합니다. “이 놈아. 죽을 놈이 쉬기는 뭘 쉬어.” 그래도 아들은 쉬었다 가자고 사정합니다. 그래서 잠시 쉬는데 이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아빠하고 등산하니까 참 좋네요.” “야. 이 녀석아. 조금 더 가면 죽을 건데 좋긴 뭐가 좋아?” “평생 동안 언제 아빠가 나하고 이렇게 등산 한 번 해본 적이 있는 줄 아세요? 내가 죽으러 가는 길이지만 아빠하고 손잡고 등산하니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 이 아버지가 생각을 해보니까 자기가 국가를 위해 충성하느라고 아들과 등산 한 번 같이 못 갔던 것이 마음에 찔렸습니다. 그래서 그만 마음이 풀려서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아들을 데리고 산을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이처럼 아버지와 손잡고 가는 길은 감사하고 행복한 길입니다. 찬송가 456장에도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주님과 함께 가면 즐거운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하나님께서 공급자가 되시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방황했어도 발이 부르트지 않았고, 옷이 헤어지지 않았으며 목마르거나 배고프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땅에서 생수를 내시기를 40년 동안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고속도로를 달리더라도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공급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저는 78년도에 공군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공군 소위가 되기 위해서는 다섯 달 동안 훈련을 받는데, 마지막에는 3일 동안 산악훈련을 받습니다. 방독면을 쓰고 지내야 하는 고생스러운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이 산악훈련은 공군 장교들에게 아주 기다려지는 훈련입니다. 그 이유는 점심시간만 되면 보급부대의 차가 오기 때문입니다. 보급부대의 차가 오기 때문에 그날은 흰 쌀밥에 건더기도 많은 맛있는 국을 먹게 됩니다. 힘든 훈련이지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 주는 보급부대를 생각하면 그 훈련도 받을 만한 훈련이 됩니다. 이처럼 공급자 되신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아무리 어려운 길이라도 우리는 더불어 함께 갈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길을 가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르산을 돌아서 홍해 길로 간다 하니까 가나안 남방의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쳐서 몇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참 오래간만에 믿음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물리치고 그곳 이름을 호르마(파괴/destruction)라고 짓습니다. 험한 길이지만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험한 길로 가도 승리를 주시면 그 길이 좋은 길입니다.

3. 실망이 불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민수기 21장이 고비였습니다. 21장 이전에는 온통 고난과 불평의 이야기로 가득 찼었지만, 21장에서는 조금씩 승리가 찾아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속에 실망이 있으시다면 오늘부터 불평을 그치시고 승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 인생에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믿으십시오. 실망이 바뀌어 기쁨이 두 배 되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은 곧바로 불평하고 말았습니다. 실망과 좌절의 다음 단계는 불평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와 모세를 향해 불평합니다. 불평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불평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노예의 땅, 장자를 죽이는 땅, 고생하는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 건져주신 것인데, 불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비를 주셔도 여전히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을 주면 고통에 대해 불평이요, 자비를 주면 자비에 대해 불평입니다. 이런 불평을 가리켜서 어불성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불평은 식물과 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근거 없는 불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만나를 주시고, 물이 없을 때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셨습니다. 그런데도 식물과 물이 없다고 하니 이 얼마나 근거 없는 불평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두 가지 소리를 들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소리도 들으시고, 불평의 소리도 들으십니다. 믿음의 소리에는 승리로 응답하시지만, 불평의 소리에는 하나님의 채찍으로 응답하십니다. 따라서 근거 없는 불평을 발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불뱀이라는 채찍을 내리셨습니다. 이 불뱀이 사람을 물면 불처럼 열이 나서 결국 죽게 됩니다. 이 불뱀들은 원래 사막에 흩어져 사는데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자 집합명령을 내리신 겁니다. 그래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도 불뱀이 있습니까? 질병의 불뱀, 사업 실패의 불뱀, 정신 혼돈의 불뱀, 자녀들이 말썽 부리는 불뱀. 이러한 갖가지 형태의 불뱀들은 결국 불평과 원망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민수기도 이 불평과 원망의 문제를 아홉 번이나 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수기 21장에서 아홉 번째 불평이 깨끗이 끝나버렸듯이 여러분의 모든 불평도 오늘부로 다 끝내시고 여러분 앞에는 오직 승리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하나님의 치료책

하나님께서는 채찍을 주실 때, 거기서 그치는 분이 아니십니다. 채찍을 주시면, 반드시 치료책을 주십니다. 이 치료책을 받아들인 사람은 살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료책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7절을 보면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와 모세를 향해 원망하며 범죄한 사실을 인정하고 치료함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치료받을 수 없습니다.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이 치료의 첫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7절 후반에 나옵니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뱀에 물려 온 몸이 퉁퉁 붓고 죽게 될지도 모르는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약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영계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무신론자가 될 수 없습니다. 무당과 점쟁이들이 점치고 칼춤 추는 것은 모두 귀신 들려 하는 것입니다. 눈앞에 나타나는 악한 영들의 역사를 보면서도 선한 영이신 하나님과 천사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이 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해결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모세가 중보자입니다. 모세는 우리 중보자로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했습니다. 다른 종교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진리는 진리로 말해야 합니다. 하늘의 하나님과 문제 있는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누구입니까? 중보자는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부처나 공자, 맹자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중보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피타고라스도 모두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이지만 하늘의 하나님과 문제 있는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중보를 요청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0절의 말씀처럼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양 편을 모두 중보할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한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모세에게 하늘과 땅 사이에 놋뱀을 장대에 달아서 세워놓도록 명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놋뱀은 그리스도 예수의 상징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아 치료를 받았던 것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 중보자 되신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구원해 주시도록 부르짖어야 할 것입니다. 모세가 놋뱀을 장대에 달아놓았을 때, 모세의 말에 순종하여 놋뱀을 바라본 사람들은 살았습니다. 그러나 장막 안에서 “모세여. 웃기는 소리 하지 마세요. 내가 이렇게 퉁퉁 부어 죽게 되었는데 놋뱀을 쳐다본다고 산단 말입니까? 난 깨끗이 죽으면 죽었지 그런 거 안 봅니다”라고 부정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구원을 부정하는 모든 사람들의 자세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함 받지 못한 사람이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성경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은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이며,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지옥을 믿지 않아. 난 깨끗이 죽고 말지 천국과 지옥 같은 거 믿지 않아!”라고 자신만만하게 소리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천국, 혹은 지옥에 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결정권에 달린 일입니다. 우리는 그저 겸손한 자세로 하늘과 땅 사이에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영혼의 치료함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이 시간에 간절히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하늘과 땅 사이에 달리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고백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 론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믿는 사람은 이처럼 기본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갖가지 불평, 낙심, 원망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그런 성도님들도 오직 하늘과 땅 사이에 달리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고 예수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여! 제가 실패했습니다. 예수여! 저의 죄로 말미암아 이런 불뱀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지금 불뱀에 물려 실망하고 낙심하여 마음이 상했습니다. 제가 하늘과 땅 사이에 달린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오니 나를 고쳐주옵소서.”

예수님은 기본 구원의 주님이시며, 또한 믿는 자의 치료와 회복을 위한 건설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구원받지 못한 분들은 구원을 받고, 치료를 받지 못한 분들은 치료를 받고, 문제가 있는 분들은 해결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해결함을 받아서 이제부터는 불평과 원망을 그치고 감사함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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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21:4-9 그것을 보면 살리라 /피영민 민21:4-9 그것을 보면 살리라 /피영민 Reviewed by □□□ on November 03, 2026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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