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24:1-4 이혼증서 /이장우

여러분은 살다가 이혼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없었습니까? 오늘날 이 땅에 이혼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이혼을 하면 남자가 훨씬 불리하다고 합니다. 이혼 위자료에 자녀 양육비와 생활비까지 남편이 부담해야 되기에 이혼하게 됨으로 살림이 거덜 나고 평생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협의이혼이 된 경우는 모르지만 법적인 소송에 들어가게 되면 남자가 훨씬 불리하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이 기록된 당시에는 여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세상입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 칠거지악이라는 악습이 있어서 남자들이 아내를 내어 쫓는 구실로 삼았습니다. 그 칠거지악이 무엇입니까? 불순구고(不順舅姑), 무자(無子), 음행(淫行), 질투(嫉妬), 악질(惡疾), 구설(口舌), 도벽(盜癖)입니다. 이것은 남자들이 자기 입맛대로 하기 나름입니다. 남자가 바람피우는 것을 아내가 질투하였다고 쫓아내고 수다스러운 것도 이혼의 사유가 됩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칠거지악에 속하지만 돌아갈 친정이 없거나 함께 부모의 상을 지냈거나 시집올 때 가난했는데 시집온 후에 부하여졌다면 내어 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기록될 당시는 조선시대보다 천 년이나 앞선 시대입니다. 그때에 여자의 지위라는 것이 얼마나 열악하였는지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서 살아갈 가나안의 여인들의 처지는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구실로든 아내를 내어 보낼 수가 있었으며 위자료도 없이 내어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그 아내와 결혼하는 경우도 흔하였다는 것입니다. 결혼에 대한 신성함도 없었습니다. 이런 풍습이 만연한 땅에 들어가서 살아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혼과 이혼에 대한 하나님의 법을 듣는 것입니다.

1절을 봅니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 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어 내어 보낼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수치 되는 일을 발견하였다는 것은 음행은 아닙니다. 음행을 하면 이미 신명기 22:22절에서 보았듯이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치 되는 일이 구체적으로 지적이 되지는 않았지만 아내에게서 허물이 발견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남편이 싫어하여 내어보낼 경우 이혼증서를 써 주라는 것입니다.

이혼증서를 가진 것은 음행의 연고는 아니라는 것이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혼증서를 줌으로 재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를 하는 것입니다. 이혼 당한 여인이 혼자서 살아가기에 너무 힘드는 세상이 고대사회입니다. 그러므로 이혼 증서를 줌으로 이혼을 허용한 것은 이혼하지 않고서 아내를 괴롭히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기에 허용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런 허용은 인간의 악함을 인함이지 원래의 결혼제도의 뜻은 아니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9:3-10절입니다. “봉독” 이혼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질문이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원래는 너희가 뜻하는 그런 이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한 것입니다. 이혼증서를 주고서라도 내어 보내게 한 것은 마음의 완악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내어보내는 것이 그 당시 가나안의 풍습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혼증서라도 주게 하신 것은 그들의 완악함으로 인한 약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한 것이지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행의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 데 장가가는 것은 간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의 답변이 그렇다면 장가가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마음에 들지 않는 한 여인만 평생 바라보고 사느냐는 그런 악함이 들어있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다는 것은 이런 이혼증서 대한 말씀을 보고서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기 편리하고 유리한 대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의 유대사회에서는 이 모세의 법을 자기들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의 외모를 좋아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내어 보내고 남편의 음식을 태웠다는 이유로 이혼 당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답변을 들었던 바리새인들이 그럴 바에야 장가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결혼이란 예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경우를 말씀하셨듯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족장들은 여러 아내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야곱도 여러 아내가 있었는데 이것을 합당한 것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풍습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받은 이후에도 왕들이 보면 여러 아내를 거느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윗도 여러 아내가 있었고 솔로몬은 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내들로 인하여 솔로몬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이르게 되고 나라는 남북으로 나눠진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이 책망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2:10-16절을 봅니다. “봉독”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돌아보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의 눈물과 울음과 탄식과 헌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돌아보지 아니하겠다는 것은 그들의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증거 하신 네 짝이요 맹약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한 것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서 이혼을 한 것입니다. 즉 신명기 율법을 이용하여 이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지었다는 것은 아담에게 아내를 하나만 허락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신 것은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신 것이므로 어려서 취한 아내 즉 처음 결혼한 아내를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는 자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혼에 대하여 이런 말씀을 주신 것이 그들의 악함 때문에 주어졌으며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남편으로 이스라엘을 아내로 비유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서 취한 아내를 버리는 것은 그들의 남편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영원한 남편이 되시는데도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욕망을 따라 이혼을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31-33절입니다. “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주가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그들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남편이 되어도 내 언약을 파하였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새 언약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언약을 반드시 이루어내신다고 하십니다.

이사야 54:1-10절을 봅니다. “봉독” 이스라엘의 구원을 노래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을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즉 이혼당한 여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홀로된 이 여인의 자식이 남편이 있는 자식의 자의 자식보다 많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장막 터를 넓히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 함으로 이혼을 당한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간음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것은 이혼을 당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다시 그들을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4절을 봅니다.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인 과부가 되어 수치를 당한 것입니다. 이들을 구원하여 내시는데 5절에서 네 남편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고 합니다. 6절에서 여호와께서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입어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소시에 아내 되었다가 버림을 입은 자에게 함같이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버림을 받은 아내란 단지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여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음행의 연고로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신명기 24:2-4절을 보시면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되어 남편에게 이혼증서를 받아서 나간 여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였다가 그 남자에게서도 버림을 받거나 또는 그 남편이 죽었을 경우에 본 남편이 그 아내를 다시 취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미 그 여인이 몸을 더럽혔기에 본 남편의 아내가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가증한 것이고 그 주시는 기업을 범죄 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내 된 이스라엘은 남편 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수치스러운 것이 발견된 정도가 아니라 늘 음행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버림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사야 선지자도 이러한 음행한 여인을 다시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호세아서 2장 14-2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4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이렇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되고 그 기업이 더럽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까? 방금 이사야 54장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버림받은 여인, 그것도 수치스러운 정도의 일이 아니라 음행으로 인하여 버림받은 여인의 구원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런 구원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이사야 53장 5-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지금까지 본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된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우리가 수치스러운 정도의 일이 아니라 이미 음행을 하여 버림을 받아 마땅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마음에 음욕을 품어도 이미 간음한 것입니다. 음욕이란 반드시 성적인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간음이란 우상숭배를 말합니다. 탐심이 우상숭배이기에 우리가 땅의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삶의 목표로 살아가는 것은 늘 간음하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혼증서도 필요 없습니다. 돌로 쳐 죽임을 당하여야 마땅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의 자리에 예수님이 대신 서신 것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신 것입니다. 그렇게 담당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영원히 결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신부라고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을 통하여 호세아서의 예언대로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고 하신 그 말씀의 성취를 예수님을 통하여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에 이혼증서가 아니라 영원한 혼인증서가 들려져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https://cafe.daum.net/kmc4755/MDps/196
신24:1-4 이혼증서 /이장우 신24:1-4 이혼증서 /이장우 Reviewed by □□□ on November 07, 2026 Rating: 5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