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29:1-13 옛 언약의 한계와 목표 /이장우

지난주일 낮에 사람들마다 하나님이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범죄한 이후에 모두가 각자가 상상하는 하나님의 상이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그것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성경 자체가 언약 책인 것입니다. 크게는 옛 언약과 새 언약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세부적인 언약들이 나타납니다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언약하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 내심을 통하여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봅니다. 호렙에서 언약하신 것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호렙이란 시내산을 말합니다. 그래서 시내산 언약이라고 합니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은 지 약 40년이 지났습니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였지만 언약 체결 중에 이미 결렬이 나 버렸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섬기는 사건으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금송아지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언약을 맺은 것이기에 언약의 저주대로 진멸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목숨을 건 중보로 인하여 진멸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그로부터 약 40년이 지나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언약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호렙산에서 맺은 언약 외에 모압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전체와 마찬가지로 29장에서 30장 역시 고대 근동의 조약 유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물론 내용 면에서 다르지만 형태는 유사한 것입니다. 언약 체결 전에 역사적 서론을 다루는 부분과 일반적인 규정과 언약을 파기한 경우에 대한 경고와 축복과 저주 그리고 증인 소환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보는 본문은 주로 역사적인 서론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언약의 목표와 옛 언약의 한계를 보려고 합니다. 먼저 언약의 목표입니다. 13절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자기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이 언약의 목표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 언약의 성취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모릅니다. 단지 아는 것은 자기들이 언약의 조문을 다 지키면 되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신명기 1장에서 지금까지 살펴보았지만 그들의 노력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언약 상대자로서 의무를 다 이루어 낼 수가 없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언약을 지키면 복이 주어지고 언약을 어기면 저주가 주어지는 그 규정에 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 역사적인 증거이며 또한 지난주에 보았던 신명기 28장의 저주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신명기에 기록된 온갖 저주가 이스라엘 땅에 그대로 이루어짐을 통하여서도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보이십니다.

그러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시리라고 하신 이 언약의 목표를 왜 인간이 실패를 하게 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홀로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언약의 조문을 주어도 그것을 보고 듣고 깨달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문자는 읽고 그 문자대로 지킨다고 애는 썼지만 그 본질을 몰랐던 것입니다.

2-4절을 봅니다.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말합니다. 언약 체결에서 역사적인 서론 부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상기시킵니다. 너희 목전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다고 합니다.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목격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큰 기적들을 보고도 이들은 믿지를 못하였습니다. 10가지 재앙과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장자가 살아남은 것을 보고도 믿지 못한 것은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5-6절입니다. 사십 년 동안 광야를 인도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특별한 보호를 하심으로 옷이 낡아지지 않았고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세상의 떡을 먹는 것이 아니라 만나를 먹었고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신 것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알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떡과 포도주는 주식입니다. 그런 주식을 전혀 공급받을 수 없는 광야로 몰아내신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시기 위함인데 그들은 오히려 광야 40년 동안 불평과 원망과 거역만 일삼았습니다.

7-9절입니다.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물리치고 그 땅을 취하여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다는 것도 말씀하십니다. 이 왕들이 얼마나 거인들인지 바산 왕 옥의 철 침대가 무려 4미터나 되는 크기입니다. 그러니 골리앗 같은 사람이 왕으로 있는 족속을 물리친 것들을 서론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게 언약을 지켜 주셨는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들어가는 가나안 땅에서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형통할 것이라고 합니다.

40년 만에 언약을 새롭게 하여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언약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켜 행하였습니까? 전혀 그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언약을 주시고 지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테스트를 하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8:2-3절입니다.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에서도 시험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시험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합격하지 못하였습니다. 만나 사건에서도 불순종하고 만나가 맛없다고 고기를 달라고 하여 메추라기가 주어졌을 때에도 그들은 기브롯핫다아와라는 탐욕의 무덤을 쌓았을 뿐입니다. 이런 시험을 통하여 사람들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험을 쳐도 이미 장님이 되어 있고 귀머거리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장님과 귀머거리가 되어 있다고 해서 성경을 읽을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듣고 지키는데도 그 뜻을 깨달을 수가 없으니 장님과 소경이 되어 깨달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선생인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께 찾아왔을 때에 예수님은 그를 향하여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율법의 선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달을 마음도 볼 눈도 들을 귀도 주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돌아오도록 눈과 귀를 열어 주셔야 하나님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히려 돌아오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게 하신다는 이 언약의 목표를 이루심에 있어서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 영광이란 곧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언약을 받은 인간들이 어느 정도로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가 하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정도로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4절의 말씀대로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은 계속하여 언약을 주시고 언약을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10-13절입니다. 언약 갱신의 현장이 모든 백성들을 다 세웁니다. 두령, 장로들, 유사와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 유아, 아내와 객과 나무 패며 물 긷는 종들까지 모두 여호와 앞에 선 것은 그 언약에 참예하며 여호와께서 네게 향하여 하시는 맹세에 참예하여 여호와께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언약의 백성을 만드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을 늘 새롭게 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범죄와 부패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언약을 새롭게 하는 일은 단지 율법을 새롭게 하는 차원이 아니라 새 언약을 예언합니다. 아무리 갱신을 하여도 돌아서면 또 언약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개혁을 한다고 하지만 개혁을 아무리 하여도 돌아서면 그 개혁한 것이 또 개혁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의 특징이란 고정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앉는 자리도 얼마나 고정이 되어 있는지 그 자리에 앉아야 안정감을 누리는 것입니다. 모든 우상이 이와 같습니다. 과거의 경험과 전통들이 자기 몸에 익어 있어서 무언가 고정된 것이 주어져야 안정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 언약의 특징은 율법처럼 조목조목 고정된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31-34절입니다. “봉독” 옛 언약을 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은 파할 수 없도록 마음에 새기는 것이 되기에 이웃과 형제에게 여호와를 알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 언약에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여호와를 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새 언약을 예수님께서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 때에 자신의 떡과 잔을 베푸시면서 자신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목표인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로 이루어 내신 것입니다. 모든 언약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이루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증거할 뿐입니다. 그러면 언약 백성은 같은 신앙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고백이란 히브리서 8:1-13절입니다. “봉독” 지상의 성전이란 그림자입니다. 참 장막의 성소는 주께서 베푸신 것이며 사람이 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좋은 약속으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된 새 언약의 성취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모여서 예배하는 것도 언약의 갱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처럼 자꾸만 언약의 내용이 더하여지거나 새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완성된 언약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새 언약의 백성들은 날마다 그의 피의 공로를 거듭 확인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로 세우신 새 언약이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가를 날마다 절감하며 사는 것이 새 언약 백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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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29:1-13 옛 언약의 한계와 목표 /이장우 신29:1-13 옛 언약의 한계와 목표 /이장우 Reviewed by □□□ on November 07, 2026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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