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7:1-7 하나님의 성민이라 /이장우

1절부터 5절까지 여러 가지 행하여야 할 말씀을 하십니다. 원주민 진멸, 언약 체결 금지, 원주민과 결혼 금지, 모든 우상 제거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백성이기에 그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6절에서 너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민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조건을 갖추어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되었기에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무엇으로 유지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인도함이 있습니다. 1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에 들여놓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도는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지금 가나안에 들어가는 자들 어느 누구의 계획과 꿈과 비전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만큼 꿈과 비전을 많이 이야기하는 곳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관을 지었다고 하면 무슨 비전센터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하나님의 인도나 비전이 아니라 자기들 야망의 인도를 받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둘째, 자기들의 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단체들은 다 힘을 원합니다. 촛불 집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촛불 집회를 반대하는 쪽에서도 신문에 대대적인 광고를 내면서 자기들도 많이 모이자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많이 모여야 힘이 있는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힘 있는 소리가 되어야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자기들의 뜻을 관철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단체도 이런 기 싸움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자기들의 힘이 아닙니다. 2절에 보시면 일곱 족속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보다 수가 많고 강한 족속들입니다. 힘으로 하면 결코 이길 수 없는 족속입니다. 그러므로 힘과 힘의 대결이 아닌 것입니다. 7절에서도 보시면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오히려 많은 민족 중에서 가장 적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일하심은 결코 말과 병거의 수로 일하시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거룩함과 거룩하지 않음의 싸움인 것입니다.

셋째, 단절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어울려 살기를 원합니다. 모가 나면 정 맞는다는 말을 우리는 어른들로부터 들어왔습니다.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살고,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삽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진리보다 인정에 끌려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백성은 이런 적당한 혼합이 허용되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어느 정도로 단절되어야 하는가 하면 2-3절에서 그들을 붙여주실 때에 진멸하고 어떤 언약도 맺지 말고 상호 결혼도 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너희는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이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항의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나 가나안 사람이나 다 같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차별하는가?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이라면서 어떻게 남녀노소 다 진멸하라고 하시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들이 멸망한 것은 그들의 죄악 때문임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5:16절입니다.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신다고 하시면서 이 땅의 죄악이 아직 관영하지 않았기에 4대 만에 주신다고 합니다.

죄악이 관영하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창세기 6:5절에 죄악이 관영하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 마음에 좋아하는 대로 아내를 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악이 관영한 상태입니다. 즉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다는 것은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만 사는 것, 이것이 그 마음과 생각이 항상 악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죄악의 관영으로 인하여 노아 홍수의 심판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가나안 땅에 관영하다는 것입니다. 심판의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악이 관영하다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마음에 좋은 대로, 자기들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사는 것이 죄악이 관영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사람들마다 자기들 생각대로 살지 않습니까? 그런 대표적인 모습을 광고에서 잘 보게 됩니다. 무엇이나 된다는 식의 카드를 선전하고 생각대로 된다는 휴대폰을 선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것이 죄악의 관영입니다.

우리가 구역 모임 시간에 본 에베소서 2:1-3절을 봅니다.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죄악이 관영한 상태나 같은 말씀이지요! 그 내용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멸 받아 마땅한 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에베소서 2:1-3절의 모습과 꼭 같은 것입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이 자기들이 마음의 원대로 행하는 것이 다 우상숭배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 이 시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왜 가나안 원주민들이 진멸당해야 마땅하냐고 항의를 하는 것은 지금 자신들이 가나안 원주민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들과 동지의식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은 이들과 단절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함이란 구별됨을 말합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그들을 진멸하고 그들이 섬기던 모든 우상들을 다 찍어 불사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 원주민들과 결혼도 금지하는 것은 그들의 딸들이 네 아들들을 유혹하여 다른 신을 섬기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질투하시는 하나님께서 원주민을 심판하시듯이 이스라엘도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은 도대체 무엇이 그들과 다르기에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6-7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성민이 된 것은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그 선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받을 만한 조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선택받은 조건은 오히려 다른 민족보다 적은 나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의 중심을 차지하는 내용입니다. 흔히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라고 하면서 300명을 대단한 용사로 말하지만 그러나 사사기에서는 300명을 택하신 분명한 이유가 수가 작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7:2-3절입니다.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하나님께서 너무 많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전쟁에서 자기들이 이겼다고 할까 봐서 두려운 자를 돌아가게 합니다. 그러자 일만 명 남았는데 이것도 많다고 하셔서 물을 마시게 하셔서 적은 숫자 300명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그들의 자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하셨고 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며 또한 다음 구절에 계속하여 나옵니다만 하나님의 사랑을 인한 것이지 이스라엘의 그 어떠한 자격과 조건으로 거룩한 백성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너희는 나의 성민이라고 하시면서 여러 가지 말씀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라고 촉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거룩한 백성이라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열망에 의하여 거룩함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거룩한 백성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시는가 하면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언약과 하나님의 사랑과 그 기뻐하시는 뜻대로 하시는데 더 구체적으로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하시는 것은 어린 양의 피라는 것입니다. 유월절 밤에 생사를 가르는 구별은 어린 양의 피에 있었습니다.

오늘도 예수 믿는 자를 성경은 성도라고 합니다. 거룩한 무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거룩한 무리가 되는 것입니까? 구약에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과 꼭 같은 원리입니다. 구약에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되듯이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을 어린 양의 피 안에 있는 것이 거룩함이라면 신약에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번 새벽 기도회 주제를 거룩함으로 보았습니다. 그때 거룩함에 대하여 제일 기억에 남은 세 가지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에스겔서 36:22-28절입니다. “봉독”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신명기의 말씀대로 이들이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렇게 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아끼시고 자기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맑은 물을 뿌려 깨끗하게 하시고 새 영을 그들 속에 두어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의 거룩함이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6-31절입니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거룩함의 방법은 구약과 꼭 같습니다. 인간의 그 어떤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히브리서 10:28-31절입니다.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오늘 우리가 성도가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거룩한 언약의 피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성령도 이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서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평생에 이 보혈의 능력과 공로를 맛보아 가며 살기를 소원합니다.

https://cafe.daum.net/kmc4755/MDps/124
신7:1-7 하나님의 성민이라 /이장우 신7:1-7 하나님의 성민이라 /이장우 Reviewed by □□□ on November 06, 2026 Rating: 5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