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리고 낮추시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조상들도 알지 못한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게 된다는 것을 알고 믿게 되는 것이 마침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 복이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자신의 살과 피를 자기 백성에게 주심으로 영생 얻게 하시는 복인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하나님이 이루어 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 것입니까? 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하신 바를 하나님께서 이루어 내셔야 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역할인 것입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여서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순종하였는지 그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기 맹세를 이루시기 위하여, 즉 하나님의 이름의 영예를 위하여 들여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떤 말을 하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먹고 배부르게 될 때에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의 능력과 자기들의 손의 힘으로 이것들을 얻을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재물 얻을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능력이라고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이스라엘만의 모습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자기 능력을 믿고 사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평가해도 그 사람의 능력을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모습이 이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재산이 늘어나면 자기들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처럼 가나안에 들어온 것이 자기들의 의로움 때문이라고 하지 못하게 미리 못을 박아 두고 있는 말씀입니다. 자기들의 능력이나 의로움이 아님을 알기 위하여 가나안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하면 그들의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강한 민족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을 보시면 너보다 강한 나라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철옹의 요새이며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은 아낙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골리앗과 같은 거인 족들인 것입니다. 누가 감히 당하겠느냐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1-2절에서 이스라엘의 능력으로는 정복하지 못하는 가나안입니다. 그러므로 알라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앞장서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하시고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앞장서서 적을 물리치면 이스라엘은 그냥 뒤를 따르며 전리품만 챙기는 전쟁입니다. 이런 전쟁을 일컬어 ‘붙이시매’의 전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붙여 주시는 전쟁의 특징은 이스라엘의 힘과 능력은 부인되어지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만 증거 되는 전쟁인 것입니다. 물론 이런 전쟁에서 창과 칼을 들고서 나가 싸워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전쟁은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애굽 한 후 최초의 전쟁이 아말렉과의 전투였습니다. 산 밑에서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싸우고 있습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는데 산 밑에서는 왜 그렇게 되는지 모릅니다. 그 전쟁은 산 위의 모세의 팔에 달린 것입니다. 모세의 팔이 들리면 이기고 팔이 아파 내려오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4-5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였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악하여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가서 얻는 땅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요 너의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악함만이 아니라 그들을 쫓아내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결코 그들이 의로워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가나안의 원주민이 악함을 인하여 그들을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보다는 의롭거나 정직한 것이 있었습니까? 분명히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맹세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 체결로서 쪼개진 짐승 사이로 하나님께서 불꽃의 형상으로 지나가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순전히 하나님의 언약의 혜택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6절입니다. 그러므로 알라고 하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아름다운 땅을 주신 것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롭기는커녕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목이 곧다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대항하는 것입니다.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는가 하면 7절을 봅니다.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한 일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애굽에서 나온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다고 합니다.
24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오므로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다고 합니다. 7절에서 ‘늘’과 24절에서 ‘항상’입니다. 늘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역한 몇몇 사건이 일어날 때만 거역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늘 거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화산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지표를 뚫고 뿜어 나오듯이 늘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게 쌓여 있다가 폭발하여 나오는 것이 금송아지 사건과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와 가데스 바네아의 일들인 것입니다.
다베라에서는 악한 말로 원망하여 불이 진 끝을 살랐으며 맛사에서는 물이 없다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다툼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니 계신가 시험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고기가 없다고 원망하여 탐욕의 무덤인 기브롯 핫다아와를 쌓게 되었고 가데스 바네아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라고 하였지만 그들이 거역함으로 그 세대가 광야에서 끊어져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거역하고 믿지 않고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함이 ‘늘’ ‘항상’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에 나오는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 인간의 죄악이 어떠하였는지를 창세기 6:5절에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이런 결과로 노아 홍수가 일어나서 진멸당하지만 노아의 자식들이 번성하게 되어도 여전히 같은 모양입니다. 창세기 8:21절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합니다. 종합하면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한 것입니다.
신앙의 출발이란 이것을 인정함으로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얼마나 악한지 도무지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인정하기는커녕 틈만 나면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세상의 요란함이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나라와 나라끼리 시끄러운 이유는 자기들이 옳다는 것 때문입니다. 나라 안에서도 당파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서로 자기들이 옳다고 우기기 때문입니다. 집안에서도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자기의 말과 행위가 옳다는 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모이는 교회에서도 자기들이 옳다는 것 때문에 다툼과 요란함과 분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늘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앞에서 보았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자기 맹세를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맹세를 이루시기 위함이지만 맹세로 맺은 언약을 위한 중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늘 항상 거역하는 이스라엘과 직접 충돌하면 남아날 이스라엘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사이에 자기의 목숨을 건 중보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역할을 구약에서 모세가 합니다.
8-24절까지입니다. 모세가 40일 동안 금식하며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백성은 목이 곧은 백성이기에 내가 그들을 멸하리니 말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름을 천하게 멸하고 모세로 하여금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모세가 산 아래 내려와서 보니 금송아지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섬기며 먹고 마시고 뛰어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돌판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왜 깨뜨려 버렸을까요? 저는 이 돌판이 깨어지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다 죽었다고 봅니다.
그 돌판의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어떤 형상물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하시는 계명인데 이것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있으니 그 돌판의 말씀을 그대로 적용해 버리면 그들이 진멸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노 중에 일어난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자신이 희생당함으로 반역자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마음을 모세가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깨뜨린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다시 40일을 금식합니다.
18-19절입니다. “18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 주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케 하여 크게 죄를 얻었음이라 19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었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모세가 자기의 목숨을 걸고 중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아론도 죽이시려고 하시는 것을 모세가 기도합니다. 그 금송아지를 불살라 찧고 갈아서 시냇물에 뿌렸습니다.
모세가 이때 기도한 내용이 25-29절입니다.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들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들도 의로워서 언약 맺으신 것이 아니듯이 이들도 그들을 생각하셔서 강퍅과 악과 죄를 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또 중요한 기도는 하나님의 영예를 위하여 구원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진멸당하여도 마땅하지만 그렇게 되면 적들이 여호와께서 능력이 없어서 광야에서 다 죽었다거나 하나님이 미워하여서 죽이려고 인도하여 내셨다는 그런 말을 들을까 봐서 두렵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사환입니다. 참된 중보자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짐승의 피가 아닌 자기 피로 땅의 지성소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중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기도하시는 것입니까? 우리의 생각과 계획이 ‘늘’ ‘항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고 영생을 얻고 하늘나라를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까? 결코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인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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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 것입니까? 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하신 바를 하나님께서 이루어 내셔야 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역할인 것입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여서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순종하였는지 그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기 맹세를 이루시기 위하여, 즉 하나님의 이름의 영예를 위하여 들여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떤 말을 하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먹고 배부르게 될 때에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의 능력과 자기들의 손의 힘으로 이것들을 얻을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재물 얻을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능력이라고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이스라엘만의 모습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자기 능력을 믿고 사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평가해도 그 사람의 능력을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모습이 이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재산이 늘어나면 자기들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처럼 가나안에 들어온 것이 자기들의 의로움 때문이라고 하지 못하게 미리 못을 박아 두고 있는 말씀입니다. 자기들의 능력이나 의로움이 아님을 알기 위하여 가나안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하면 그들의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강한 민족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을 보시면 너보다 강한 나라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철옹의 요새이며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은 아낙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골리앗과 같은 거인 족들인 것입니다. 누가 감히 당하겠느냐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1-2절에서 이스라엘의 능력으로는 정복하지 못하는 가나안입니다. 그러므로 알라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앞장서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하시고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앞장서서 적을 물리치면 이스라엘은 그냥 뒤를 따르며 전리품만 챙기는 전쟁입니다. 이런 전쟁을 일컬어 ‘붙이시매’의 전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붙여 주시는 전쟁의 특징은 이스라엘의 힘과 능력은 부인되어지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만 증거 되는 전쟁인 것입니다. 물론 이런 전쟁에서 창과 칼을 들고서 나가 싸워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전쟁은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애굽 한 후 최초의 전쟁이 아말렉과의 전투였습니다. 산 밑에서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싸우고 있습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는데 산 밑에서는 왜 그렇게 되는지 모릅니다. 그 전쟁은 산 위의 모세의 팔에 달린 것입니다. 모세의 팔이 들리면 이기고 팔이 아파 내려오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4-5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였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악하여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가서 얻는 땅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요 너의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악함만이 아니라 그들을 쫓아내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결코 그들이 의로워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가나안의 원주민이 악함을 인하여 그들을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보다는 의롭거나 정직한 것이 있었습니까? 분명히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맹세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 체결로서 쪼개진 짐승 사이로 하나님께서 불꽃의 형상으로 지나가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순전히 하나님의 언약의 혜택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6절입니다. 그러므로 알라고 하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아름다운 땅을 주신 것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롭기는커녕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목이 곧다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대항하는 것입니다.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는가 하면 7절을 봅니다.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한 일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애굽에서 나온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다고 합니다.
24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오므로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다고 합니다. 7절에서 ‘늘’과 24절에서 ‘항상’입니다. 늘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역한 몇몇 사건이 일어날 때만 거역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늘 거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화산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지표를 뚫고 뿜어 나오듯이 늘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게 쌓여 있다가 폭발하여 나오는 것이 금송아지 사건과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와 가데스 바네아의 일들인 것입니다.
다베라에서는 악한 말로 원망하여 불이 진 끝을 살랐으며 맛사에서는 물이 없다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다툼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니 계신가 시험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고기가 없다고 원망하여 탐욕의 무덤인 기브롯 핫다아와를 쌓게 되었고 가데스 바네아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라고 하였지만 그들이 거역함으로 그 세대가 광야에서 끊어져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거역하고 믿지 않고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함이 ‘늘’ ‘항상’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에 나오는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 인간의 죄악이 어떠하였는지를 창세기 6:5절에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이런 결과로 노아 홍수가 일어나서 진멸당하지만 노아의 자식들이 번성하게 되어도 여전히 같은 모양입니다. 창세기 8:21절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합니다. 종합하면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한 것입니다.
신앙의 출발이란 이것을 인정함으로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얼마나 악한지 도무지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인정하기는커녕 틈만 나면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세상의 요란함이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나라와 나라끼리 시끄러운 이유는 자기들이 옳다는 것 때문입니다. 나라 안에서도 당파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서로 자기들이 옳다고 우기기 때문입니다. 집안에서도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자기의 말과 행위가 옳다는 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모이는 교회에서도 자기들이 옳다는 것 때문에 다툼과 요란함과 분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늘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앞에서 보았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자기 맹세를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맹세를 이루시기 위함이지만 맹세로 맺은 언약을 위한 중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늘 항상 거역하는 이스라엘과 직접 충돌하면 남아날 이스라엘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사이에 자기의 목숨을 건 중보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역할을 구약에서 모세가 합니다.
8-24절까지입니다. 모세가 40일 동안 금식하며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백성은 목이 곧은 백성이기에 내가 그들을 멸하리니 말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름을 천하게 멸하고 모세로 하여금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모세가 산 아래 내려와서 보니 금송아지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섬기며 먹고 마시고 뛰어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돌판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왜 깨뜨려 버렸을까요? 저는 이 돌판이 깨어지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다 죽었다고 봅니다.
그 돌판의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어떤 형상물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하시는 계명인데 이것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있으니 그 돌판의 말씀을 그대로 적용해 버리면 그들이 진멸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노 중에 일어난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자신이 희생당함으로 반역자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마음을 모세가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깨뜨린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다시 40일을 금식합니다.
18-19절입니다. “18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 주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케 하여 크게 죄를 얻었음이라 19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었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모세가 자기의 목숨을 걸고 중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아론도 죽이시려고 하시는 것을 모세가 기도합니다. 그 금송아지를 불살라 찧고 갈아서 시냇물에 뿌렸습니다.
모세가 이때 기도한 내용이 25-29절입니다.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들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들도 의로워서 언약 맺으신 것이 아니듯이 이들도 그들을 생각하셔서 강퍅과 악과 죄를 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또 중요한 기도는 하나님의 영예를 위하여 구원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진멸당하여도 마땅하지만 그렇게 되면 적들이 여호와께서 능력이 없어서 광야에서 다 죽었다거나 하나님이 미워하여서 죽이려고 인도하여 내셨다는 그런 말을 들을까 봐서 두렵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사환입니다. 참된 중보자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짐승의 피가 아닌 자기 피로 땅의 지성소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중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기도하시는 것입니까? 우리의 생각과 계획이 ‘늘’ ‘항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고 영생을 얻고 하늘나라를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까? 결코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인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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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9:1-29 너의 의로움이 아니라 /이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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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0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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